1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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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군이 약 일만이 넘는 시점에서 반절에 불과한 병력이었지만, 소연은 거점에서 벗어나 서주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 장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소연의 말에 우금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너무 태연하게 답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떨떠름하게마저 느껴졌다. 분명 열세인 상황에서 오히려 진을 버리고 공세에 나선다.
그런 와중에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으니 그것이 어찌 이상하지 않을까. 그의 옆에 선 악진도 말로 꺼내지 않을 뿐 같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병력의 차가 다소 심합니다. 차라리 진을 지키면서 수비로 들어서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래서는 주도권을 넘겨주잖아.”
소수라고 틀어박힌다면 적은 분명 산양군 인근의 현을 휩쓸고 다닐 것이 뻔했다. 그러면 이제 막 안정화에 들어간 연주에 다시금 혼란을 야기할뿐더러 적이 원하는 대로 쥐고 흔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질질 끄는 건 취향이 아니거든.
그녀는 작게 웃으며 지휘봉을 쥐었다.
“이걸로 괜찮아. 연주목께서도 그런 의미로 내게 전권을 주셨어. 우리는 연주를 수호할 의무가 있고, 반대로 저들은 그렇게까지 정예가 아니야.”
오히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예주에서 올라오는 손견과 원술을 상대하는 조조였다.
서주는 황건적의 난 당시에도 전란에서 살짝 빗겨 나간 위치에 있었다. 하여 서주군은 영지 수호에 전념했지 토벌에 나선 적은 없기에 전투경험이 그렇게 풍부한 군은 아닌 것.
그러나 원술이 이끌고 손견이 지휘하는 군은 궤를 달리했다.
원술이 아무리 도련님이라고 무시당한다지만 그 역시도 다양한 전투에 가담한 적이 있는 지휘관. 그 아래의 부하들도 잦은 전투를 경험해본 적이 있었고, 손견은 아예 논외로 평가할 수 있었다.
전투경험에 한정한다면 손견이 이끄는 군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은 군을 찾기 힘들었다. 아마 북방에 있을 공손찬의 군이 그나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비교 대상이 북방에서 잦은 반란이나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온 공손찬의 군인 시점에서 손견이 얼마나 많은 수라장을 겪었을지는 일목요연했다.
“서주에서 넘어오는 이들은 회전으로 쳐부순다. 그 뒤에는 바로 진류로 향할 거야. 그러니까 최대한 힘을 온존하도록.”
“명이라고 하시면 따르겠습니다.”
악진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에 우금도 다소 떨떠름한 부분이 있으나 고개를 숙였고, 그들을 바라보며 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진과 우금.
둘 다 차후 명장의 반열에 오를 인물들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그들도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었다.
반면 그들도 소연의 공적에 대해 알고 있었다.
황건적의 수급을 만 단위로 베어낸 인물. 고작 열흘 정도로 황건적의 목 수천을 베어냈으며, 길게 보면 반동탁 연합군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보인 장군이었다.
지금은 문관으로 일하고 있다지만 그녀가 지휘관으로서 보인 성과를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도 도겸이 직접 나선 것은 아니야. 그들은 어디까지나 원술의 공격에 호응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으니까. 상황을 보긴 해야겠지만, 규모를 생각해봐도 한 번 제대로 짓누를 수만 있으면 퇴각하리라 생각하고 있어.”
적어도 그녀가 아는 도겸은 그랬다.
지극히 기회주의자인 인물.
공손찬의 손을 든 것도 가까이에 있는 연주에 자리를 잡은 것이 원소의 부하인 조조였다는 것. 그리고 원소보다는 공손찬이 군사적 역량이 더 출중하다는 점에 있었다.
그런 인물이 이런 상황에서 전력으로 연주를 차지하려 들 리가 없었다. 기껏 연주를 점령한다고 해도 병력의 차를 보아 원술이 날름 집어먹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열심히 일할 이유도 없겠지.
그녀는 그리 판단하며 저 멀리, 서주 인근을 바라보았다. 척후의 말이라면 앞으로 이틀 뒤에는 맞닥뜨리게 될 터.
“서주의 군은 전초전으로 생각하도록. 괜찮아. 내가 너희의 앞에 설 테니, 너희는 오롯이 내 등을 바라보면서 달리면 그만이야.”
언젠가 호세, 지금은 전호라 자칭하는 남자가 했던 말이었다. 그가 과거 도적이었던 이들을 늘어놓고 출전을 준비하며 했던 말이지만, 그 말은 그녀의 마음속에도 확실히 새겨져 있었다.
설마 내가 네 흉내를 낼 줄은 몰랐는데.
“지휘관께서 선봉에 서시다뇨. 여기는 저희에게 맡겨주시지요. 자칫 그, 아, 아름다운 얼굴에 흉이라도 생기실까, 그것이 염려입니다.”
“어머, 말만으로도 고마워.”
매력 100의 스텟은 확실히 헛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머뭇거리는 악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선봉에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서주 방면은 주요 전장이 아니었다. 저들은 어디까지나 들러리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격전지는 진류 일대가 될 터.
가장 중요한 국면은 예주의 손견, 그리고 원술을 막아내는 것. 그녀는 이런 곳에서 서주의 병력을 상대로 시간을 끌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간 간간이 조운이나 하후돈, 조인 등과 무기를 맞대면서 전투에 대한 감은 익혔다.
아직 100이라는 능력치 전부를 활용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쉽게 패하지 않을 정도로는 강해질 수 있었다.
통솔력은 명확하게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무력만이라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모자랐던 전투에 대한 개념이나 무기를 쥐고 휘두르는 방식. 호흡에서 시작해 힘의 과중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까지 어느 정도는 익힐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이용해 적을 빠르게 부순다.
그녀 자신이 탄환이 되어 앞을 가른다면 충분히 적의 기세를 꺾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런다면 피해를 볼 이유가 없는 서주군이 더 연주를 노릴 이유도 없어진다.
“말은 고맙지만, 걱정은 필요 없어.”
이미 그런 말에 주저할 시기는 지나갔다.
소연이 알던 역사는 이미 비틀리기 시작했다. 이게 앞으로 더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면한 상황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승리를 잡아야만 했다.
그게 앞으로 있을 미래를 위한 것.
그녀는 이미 멈출 생각을 접었다.
* * *
“이거 참. 여긴 초상집이냐?”
“아저씨, 쉿.”
기껏 군을 끌고 도착했더니 군중의 분위기가 영 어수선했다. 딱 전형적으로 패전을 겪은 직후에는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고는 했는데,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언니가 초전부터 화려하게 깨졌나 본데.”
“그러게나 말이요.”
조조라면 그리 쉽게 패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건 아무래도 희망 사항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지휘부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듣기로는 초전에서 패했다고 하는데, 안 그래도 소수인 아군에게 초전으로 기세를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조조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졌다는 건, 요컨대 초장부터 완벽하게 지고 들어갔다는 말과도 진배없었다. 안 그래도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이건 좀 위험한데.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게 눈에 보이네요.”
사마의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의 끝을 따라가니 저 멀리 바닥에 늘어져 부상을 치료하고 있는 병사들이 있었다. 저마다 천이나 헝겊 등으로 상처를 동여매고 있는 모습.
계속 보고 있어 좋은 모습은 아니었기에 소녀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당겼다. 사마의는 내 손길에 맞춰 시선을 거두고는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라오며 말을 이었다.
“피해는 크지 않다고 하는데, 그에 비해서 분위기가 너무 침울한 게 마음에 걸리네요. 이길 턱이 없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도는 건 조금 좋지 않아요.”
“그러게나 말이다.”
조조의 군은 기본적으로 소수의 병력을 제외하면 전부 연주에서 새로 모병한 신출내기 병사들이었다.
그걸 조인과 하후돈, 어떨 때는 조조 본인이 직접 나서 조련하며 구색을 갖춘 것인데, 결과적으로 아무리 잘 조련했다고 해도 경험이 적은 병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신출내기 병사가 많은 것도 사기가 낮은 이유일 수도 있겠지. 풋내기들은 어떤 일에건 일희일비하는 법이니까.
다만 그렇지 않겠느냐고 편하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로는 앞으로도 계속 저들을 이끌고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점일까.
신출내기고 자시고 앞으로도 계속 저들을 이끌고 원술군을 상대해야만 하는 시점에서 이렇게 사기가 낮아진 것은 조금 우려할 부분이었다.
“어쨌건, 이 분위기를 쇄신하지 않으면 이길 전쟁도 져. 뭐, 조공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실 테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언니라면 잘할 거야.”
“글쎄요. 초전부터 패배한 상황에서 낙관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선 원인을 알고 대처법을 생각해야죠. 물론 전황을 들은 적이 없어 뭐라고도 말할 수 없긴 한데요.”
아마 조조가 초전부터 패했다고 한다면 선봉의 차이겠지. 보통 전초전은 각 군의 정예를 선봉으로 내세워 교전하는 것을 보통이니까.
그렇다면 상대는 원술군의 선봉인 손견이었다.
한때 연합군에서 같은 편이었기에 그 남자가 세운 업적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낙양을 수복한 남자. 동탁군을 상대로 연합군의 그 누구보다 많은 승리를 거둔 인물이었다.
그 남자를 꺾을 예봉이 아군에게 있던가.
아마 없겠지. 하후돈 그 양반도 돌격대장이라는 느낌이지 군을 이끌고 싸우는 지휘관은 아니고. 조인 장군은 기마 대장이었고, 하후연이라는 사람이랑은 그렇게 접점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어쨌건 패전은 패전이었다.
이 뒷수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이건 솔직히 조조의 역량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사기라는 건 별거 아니다.
요컨대 내가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 적어도 여기서 죽는다 하더라도 개죽음은 아니겠구나 하는 희망.
그런 감정적인 부분을 전부 뭉뚱그려 사기라고 했다.
즉 지금 조조가 해야 할 것은 축 처진 아군에게 다시금 동기부여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우선 조공께 갑시다.”
우리끼리 아무리 떠들어도 정작 전장을 직접 겪지 못한 시점에서는 그 어떠한 말도 의미가 없었다.
손견에게 패했다면 그의 군은 얼마나 강하고, 막 도착한 우리가 맡아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선 그걸 들은 뒤에 발언하여도 늦지는 않았다.
어딘가 석연찮은 기분과 묘한 불길함.
그런 잡다한 감정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침울하게 축 늘어진 분위기가 앞으로 향할 전장의 고됨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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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정에 제가 참고하는 지도 중 하나를 올려두었습니다. 만약 군이나 현 등, 위치에 대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한 번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00시에 다시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