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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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겠네.”
나도 복양의 방위병력 일부만 남기고는 예주 방면으로 차출되었다. 아가씨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우금, 악진이라는 장수와 함께 오천 병력으로 서주 방면으로 향했다는데, 솔직히 그쪽도 걱정되었다.
물론 예주 방면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게, 과거 손견이 보였던 무명과 그 위상을 생각하면 예주 방면으로 들어오는 원술의 군도 결코 얕볼 수 없었다.
“언니가 고민이 많겠네.”
“전황이 불리하니까요.”
바로 옆에서 말을 몰던 조홍의 말에 사마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좋은데 내 품 안에서 그러지 말아 줄래? 머리가 가슴팍에 스칠 때마다 간지럽거든?
전차도 있는데 뭐 좋다고 말에 타가지고는.
“손견 장군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는 맹장 아닙니까.”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그가 황건적의 난과 반동탁 연합군에서 올린 공적이 범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이 누님은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거든? 그거 괴물이야. 여포만큼이냐면 그건 아닌데, 병력을 이끌고 싸우는 전투만큼은 여포보다 더 강할 수도 있을걸?”
“거참, 농담 그만하쇼. 여포보다 강한 사람이 어딨어.”
만약 있다면 신은 무언가 단단히 실수한 거다. 그런 괴물이 천하에 널렸다면 세계를 주조하는 과정에서 뭔가 착오를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아니길 바라야지. 적이니까.”
조홍도 그리 말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과장은 아닌 듯싶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적을 지레짐작하여 불안해하는 것은 딱히 득 될 것이 없는 것.
“사실 손견은 둘째로 치더라도 병력이 모자라잖아요. 이번에 연주에서 진류 일대 방위군으로 모인 게 이만 오천이라면서요? 상대는 사만이고.”
“어쩔 수 없지. 기존 산양군 일대 방위군을 남기고 거기에 아가씨에게 오천 군을 더한 거니까.”
원래라면 삼만 이상으로 받아칠 수 있었던 것.
도겸의 갑작스러운 공격은 확실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아무리 공손찬의 줄을 탄 인물이라지만 그가 설마 원술과도 손을 잡고 움직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
“아가씨가 지키는 산양도 문제긴 한데….”
더 큰 문제는 원술이었다.
사만이라는 군세도 버겁다. 그걸 이끄는 선봉장이 손견이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조조의 능력이 원술 같은 작자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지만, 한 손으로 두 손을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감이 있었다.
게다가 예주라면 연주 바로 옆. 상대가 아무리 양주에 근간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예주를 통한다면 보급에 어려움을 겪을 일도 없었다.
즉 상대가 보급에 차질을 빚어 퇴각하는 전개도 노릴 수 없는, 말 그대로 힘과 힘의 맞대결인 셈이었다.
“아저씨. 이번 전쟁, 힘들 거에요.”
“알고 있어.”
방삼이는 복양의 성주 대리로 남겼다.
복양에서 차출한 병력은 총 삼천. 그걸 더한 조조군의 숫자가 이만 오천이라는 셈인데, 아무래도 손견을 선봉으로 이끄는 원술의 사만 대군에 비하면 모자람이 있었다.
“언니라면 가능하겠지.”
아마 아군이 도착했을 즘엔 대치, 혹은 전투가 펼쳐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기병 전력은 과거 황건적과의 전투 이후 전부 연주성으로 차출했기에 보병과 궁수의 무리밖에 데리고 있지 않아 진군 속도가 느렸다.
그나마 북쪽으로는 원소가 버텨주고 있으니, 아마 연주 북동쪽에 자리한 태산 방면으로 도겸이 군을 돌리지 않는 이상 전선이 더 늘어날 염려는 없었다.
“조공을 너무 믿는 거 아닙니까?”
“그야 언니는 대단하니까.”
그녀의 말에 핀잔을 주었지만, 돌아오는 게 저렇게 강한 신뢰와 믿음이라면 더 할 말도 없었다. 조홍은 정말 의심이라고는 터럭만큼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호하게 답했다.
사마의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공이 대단한 만큼 손견이 대단하다는 것도 아셔야죠. 전공으로만 판단한다면 손견은 어지간한 중앙 무관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요. 조공보다도 전공에서 앞서는 것이 사실이고요.”
“아니 뭐, 그야 그렇지. 언니는 기본적으로 문관 출신이었고, 그 양반은 태생부터 지방 호족이면서 무관이었잖아.”
조홍의 말에는 공감했지만, 그런 차이가 있다고 하여 있던 무공이 깎이는 것은 아니었다. 전장을 많이 나갔으니까 전공을 더 많이 쌓을 기회가 있었을 거라고?
“그건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손견과 그 휘하는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용사들이라는 거 아닙니까?”
객관적으로 보아 손견이 조조에게 전투적인 부분에서 밀리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쌓아온 무공, 전적, 실적. 어떤 지표를 보아도 전쟁에서만큼은 손견이 조조보다 우위에 있음은 명백.
단지 한 가지 앞서는 것이 있다면 총사령관의 기량일까. 아무리 그래도 원술보다는 조조가 낫지 않겠어?
“동생도 그렇고 사마 꼬마도 그렇고, 왜 다들 전쟁 들어가기도 전에 기가 죽고 그럴까? 손견이 무서운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원술이 무서운 건 아니잖니?”
“아니 뭐.”
솔직히 원술 자체라면 반동탁 연합군에서 보여준 추태가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유능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그간 원술군이 쌓은 공적은 전부 손견의 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 둘이 같은 깃발 아래에만 있을 뿐, 전혀 별개의 군이라는 건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고.
“언니도 그랬어. 원술이 손견이라는 호랑이를 제대로 부릴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응? 그러니까 좀 칙칙하게 굴지 말라고!”
그녀는 그리 말하며 말을 몰고 바로 옆까지 붙어서는 그대로 내 등판을 후려쳤다. 자연스럽게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품 안에 있던 사마의도 같이 수그러진다.
“꺄악! 뭐 하는 거예요!?”
“기운 좀 내라고.”
환하게 웃는 금발의 여인.
사실 그렇기도 했다. 손견이 대단하다고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막상 전장에서 몸이 굳을 따름. 그녀도 예전부터 전장을 돌았다고 하더니, 이렇게 사기를 올려주는 면에서는 나보다 나은 면도 있었다.
이만 오천과 사만.
전력의 차는 다소 나지만, 아예 승산이 없는 전투도 아닌 것. 벌써 걱정하는 것보다는 우선 자신감 있게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으, 허리야.”
반면 내가 등판을 맞으며 몸을 수그렸을 때 같이 짓눌린 사마의가 자기 허리를 매만지면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게 마차 타라고 했지.”
“그치만요….”
사마의는 그리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대체 말에 타는 게 뭐가 좋은지. 솔직한 말로 나도 가능하다면 전차 같은 거 타고 다니고 싶었다. 마차라던가. 얼마나 편해?
물론 복양의 사정상 마차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으니, 적어도 전차에라도 타라는 것인데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니. 물론 이번 건 조홍이 내 등판을 때린 여파이긴 했다마는.
“지금이라도 전차 탈래? 허리 아픈데 말에 계속 올라있으면 아플 거거든? 애초에 너 타라고 준비한 전차인데 말이야.”
“천천히 가는 거잖아요. 아직은 괜찮아요.”
어차피 곧 산조에 도착한다. 해도 떨어지기 시작한 부근이라 산조현 인근에 진을 치고 한 번 묵고 난 뒤에 다시 출발해야 하는 상황.
“꼬마가 오빠를 많이 따르네?”
조홍은 그 광경을 보고 입을 가리고 웃었다.
“오빠 아니거든요. 아저씨라니까요?”
“그냥 오빠라고 하자, 좀.”
나이 차이가 몇이나 난다고. 아니 뭐, 조금 많이 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아저씨보다는 오빠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 모든 남자의 공통적인 이해가 아닌가?
“싫어요.”
소녀는 고집쟁이였다.
“멋대로 해라.”
“전 언제나 멋대로 사는걸요?”
말이라도 못하면 얄밉지는 않지.
* * *
기마가 달린다.
중앙에서 손견의 선봉대를 조조의 본대가 막고, 우회하는 조인의 기마대를 돌격시키는 단순한 전술.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막힌 적이 없었던 전투법이었다.
그것이 지금.
“물러서지 마라!! 우측 군은 최대한 물고 늘어지도록!! 정보! 적기를 흔들어라! 원술의 본대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적의 기본 포진에서 상대 기병의 진로를 예측한 손견은 이미 우익의 군에 대 기마용 장비와 물자를 준비했었다. 구태여 보병이 진군하면서 수레나 목책을 짊어지고 진군케 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조조군 기마의 돌격을 막는다.
후속으로 따라오는 원술의 본대에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수단도 미리 준비하였다. 그렇게 적 기병의 돌격만 막는다면 수적 우위를 잡은 원술군이 조조군에게 질 리가 없었다.
조조의 본대는 강했다.
그간 잦은 전투로 전쟁에 익숙해진 손견의 본대가 전투력이 강하다면 조조의 군은 결속력과 조직력이 강한 군대였다.
필히 좋은 장수의 조련을 받았겠지.
그러나 그런 군을 상대하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전투력이 아니라 조직력으로 강화된 군이라면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적을 좌우로 흔들면서 대열을 무너뜨리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압도적인 힘으로 이음새를 끊는 것.
규율에 익숙한 군일수록 그 대열이 무너지면 삽시간에 오합지졸로 변한다. 특히 최근 조조군은 신병을 많이 모병하여 조련하며 몸집을 불렸다고 들었다.
그걸 저 단기간에 저리 조직력을 갖춘 조조군은 분명 놀라운 것이지만, 반대로 그 조직력만 무너뜨린다면 저들은 평범한 신출내기로 돌아간다.
손견은 손에 쥔 지휘봉을 뒤따라오던 정보에게 던졌다.
“정보, 내 뒤를 잘 받쳐라.”
“또 돌격하실 생각입니까?”
손견은 답하지 않고 한 손에는 검을, 다른 반대편에는 창을 쥐었다. 사령관이 선봉에 선다는 건 언제나 위험이 따르는 불안요소.
정보는 그것을 항상 만류하였으나 손견이라는 남자가 그런다고 들을 남자던가. 이미 과거부터 손견이 가장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르는 건 손견군의 필승법과도 같은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조무가 살아있었더라면 조금은 만류라도 해보았을 것을. 그 여자가 크게 말린다면 손견도 듣는 시늉은 했겠지만 이미 조무는 죽고 없었다.
정보는 한숨을 쉬며 지휘봉을 건네받았다.
“죽지 마십시오, 장군.”
“네가 잘해주면 죽을 일도 없다.”
손견이 먼저 말을 몰고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 뒤를 수십 기의 기병이, 또 뒤를 손견군 보병대가 따른다. 사령관이 가장 선두에서 쐐기의 꼭짓점이 되어 적에게 달려드는 모양새.
반면 그 상대편에서 군을 지휘하던 조조는 한숨을 내쉬었다.
군의 진격이 막혔다. 기병대장 조인이 우회하는 진로 부근에 적 보병대가 돌격을 방해할 물건을 쌓거나 조립했던 목책을 설치하고 있었다.
사실상 아군 기병의 진군 경로를 정확히 예측하고 방비한 셈인데, 저렇게 단단히 준비한 보병대를 뚫는 건 기병에게도 큰 피해를 감내해야 할 터.
그동안 손견은 직접 군을 이끌고 본대로 몰려들고 있었다. 원술 본대에서도 양 날개처럼 군이 넓게 퍼지며 조조군을 향해 진격하는 모양새.
“한 번의 교전임에도 알겠군.”
강하다.
사실상 가벼운 전초전에 불과했던 전투에서 적의 기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군의 포진을 보고 기병 돌격을 예측한 움직임.
손견은 저 멀리에서 기마를 몰고 아군 본대를 향해 맹렬하게 돌격하고 있었다. 호랑이라는 이명은 헛것이 아닌 게 벌써 선행했던 보병대를 무참히 도륙하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저 남자, 확실히 강하네요.”
진궁도 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령관이 직접 선두에 선다.
그것이 어떤 위험부담을 안고 행해지는 것인지는 누구나가 알고 있었다. 아군의 사기는 오르겠지만, 선두의 말로는 언제나 싸움에 지쳐 스러지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저런 전투법으로 그는 근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남으며 무공을 쌓고 맹장이 되었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반대로 저런 방식을 통하게 하였기에 강동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받을 정도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셈.
가장 앞장서는 싸움을 반복하면서도 살아남은 그 무력, 그 무명. 그것을 얕보았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자신감이 있을 만은 하네요.”
“전초전은 패배군.”
손견을 얕봤다.
저 돌파력을, 사령관이 직접 선두에 서서 군을 이끈다는 행위를 얕봤다. 조조는 손견의 보병대가 설마 저만한 돌파력을 구가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조인은 퇴각하는군. 좋다. 이러면 큰 패배로는 번지지 않을 터, 궁수를 앞세우고 좌익의 병사를 돌려라.”
기세는 꺾었다만 큰 패배는 아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상대보다 열세인 상황에서 전초전까지 패배했다면 그걸 다시 뒤집는 것은 제법 고난스러울 일이 될 터. 조조와 진궁, 그녀들은 모두 다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강동의 호랑이.
저 선봉의 예기를 꺾지 못한다면 전쟁은 이길 수 없었다.
아군이 자랑하는 기병 전력을 화끈하게 부딪치고 싶었지만, 정작 상대는 전면전을 피하며 소규모 교전을 유도. 그것이 아니라면 몸을 웅크리기만 할 뿐.
무식하게 돌격만 감행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진소연이 있었더라면 군을 양면으로 나누어 적의 양 측면을 흔들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 역시 소수의 병력으로 도겸을 상대하러 떠난 상황.
이러면 지휘관의 숫자가 부족해졌다.
하후돈은 군의 조련이나 선봉에 서는 것은 잘 이룰 수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지휘관으로서의 식견이 부족했다. 조인은 아군의 가장 강력한 쐐기를 맡아야만 하는 인물.
“복양의 군은?”
“내일, 늦어도 모레면 도착하겠죠.”
전호와 조홍. 그 둘이 도착한다면 그래도 군을 나눌 수 있었다. 조조는 왼손 엄지손톱을 뜯으면서 전선을 바라보았다.
아군의 전열을 무너뜨린 손견은 유유히 제 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원술의 군도 양 날개를 거두고 다시 진열을 갖추고 있는 상황.
도겸만 아니었어도.
어쩔 수 없다지만 입맛이 썼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오늘 중으로 한 편 더 올라옵니다.
몸 상태가 안 올라와서 그런지 글이 좀 안 다듬어지네요.
건강 유념하세요. 감기 진짜 독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