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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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어제 너무 마셨나. 그렇게 마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열기에 휩쓸려 취기가 얼마나 도는지 몰랐었다.
운이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기왕이면 아침에 눈을 뜨는 걸 옆에 누워서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어젯밤 비가 너무 내렸다. 군영 부근에서도 한창 비 내린 이후의 업무를 처리할 것이니 그 전부를 조인 장군에게만 맡길 수도 없는 일.
어젯밤 그리도 억세게 내리던 비는 어느덧 그쳤고, 아침이 되니 먹구름이 개고 푸른 하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응?”
아니 근데 이건 또 뭐야.
담벼락 부근에 크게 금이 간 흔적이 보였다. 어제까지는 이런 자국 본적이 없는데? 뭔가 크게 금이 간 자국인데, 올 때 분명 이쪽 길을 걸었으니까 못 봤을 리도 없었다.
가운데에서부터 깨져가는 담벼락.
“소라도 달려서 처박았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자국이 날 리가 없지 않나? 대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운이에게 따로 말해서 수리 좀 하라고 해둬야겠다.
“아으, 머리야.”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지만 쉬자니 어젯밤 폭우가 너무 강했다. 고작 숙취 때문에 쉴 수도 없는 일. 비록 적당히 보조만 하라고는 했지만, 이럴 때는 움직여야지.
다음에는 좀 적당히 마셔야겠다.
그리고 운이에게도 따로 말해둬야지.
앞으로는 술기운에 밀어붙이듯이 안 해도 어울려줄 테니까, 그놈의 술 좀 그만 사들이라고. 이게 뭐냐. 매번 하고 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관계가 정상은 아니잖아.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바닥은 질척거려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끈적이면서 신발에 들러붙는 감각이 느껴졌다. 무언가 작은 늪이라도 걷는 것만 같은 감각.
별로 좋은 감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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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소연 별가. 표정이 좋지 않은데?”
“별거 아닙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비를 그렇게 맞아서 그럴까, 아니면 집에 돌아와서 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에서건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증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신음이 들린다.
“그나저나 본가에 연락은 넣었나요?”
“참, 그대도 너무 닦달하는군. 안 그래도 진즉에 아버지께 연통을 넣었다. 이제 조가의 남은 식솔들을 데리고 출발했을 무렵이겠지.”
그거면 됐다.
조숭의 죽음은 서주 대학살로 이어지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우선 조숭을 도겸과의 갈등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빼 온다. 이러면 당장 서주에서 대학살로 번질 트리거를 제거하는 일이겠지.
“진궁 치중은 아직인가?”
“연락대로라면 산양에서 막 출발하셨을 무렵이겠죠. 아무래도 그쪽 호족들은 이번 황건적의 준동에 가장 큰 피해를 봤으니까요.”
“그런 호족들은 무시해도 그만인 것을.”
그럴 수 없다는 건 조조도 잘 알고 있을 건데도 투덜대는 모습에 머리가 아파 왔다. 평소의 대화였지만 묘하게 짜증이 일었다. 사실 그냥, 오늘은 뭔가 업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지끈거리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말을 이었다.
“호족과 연계하지 않으면 주는 통치할 수 없어요.”
“진궁도 그렇고 그대도 그러는군.”
조조도 분명 알고 있을 거다.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꼬장꼬장한 이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싫겠지.
분명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들을 지금 관리하지 않으면 나중이 힘들었다.
지금은 아직 그런 조짐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장막과 진궁이 손을 모아 일으켰던 연주 내 대규모 반란은 분명 연주 내 호족들이 전부 그들의 손을 들었기에 더욱 규모를 키운 것이었다.
그런 일은 막아야만 했다.
아직 동탁이 죽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게임에서라면 5월쯤에 죽을 텐데, 그러면 슬슬 여포가 떠돌이가 되어 각지를 전전하게 된다.
여포 봉선.
그 무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게임에서라면 무조건 시도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현실이었다. 현실에서 그런 무장을 수용하여 들이기에는 다소…, 아니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만 했다.
여포의 방천화극.
그 시퍼렇게 선 날이 그에게 내밀어 졌던 상황이 떠올랐다.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진 전호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화극을 치켜든 여포.
그런 여자를 들이지 않아도 충분해.
불순분자가 될 뿐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일단 여포에 대한 문제는 당장 처리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내부의 결실을 다져야 할 때인데, 당장 조조 자체가 내부 호족에게 다소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지지는 분명 받아내야만 해요. 진궁 치중께서는 연주 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는 명사잖아요. 안 그래도 저희는 정통성 부분은 좀 약한데, 연주는 기본적으로 자존심이 강하다고 할까….”
“그런 허례허식에는 껌뻑 죽는 것들 천지지.”
구태여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조조가 단칼에 잘랐다.
연주는 낙양 인근에 있는 주. 그렇기에 무보다는 학문을 숭상하고 대대로 고관을 지낸 호족이나 명가가 많은 지역이었다. 그러니 당장 연주 내 가장 큰 힘을 지닌 조조에게도 이리 까칠하게 나오는 것인데.
안 그래도 조조는 정식으로 황실의 관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연주자사의 공백을 이용해 제북상 포신과 진류태수 장막의 추천을 받아 연주자사, 이제는 군권까지 다스리는 연주목을 자처하고 있을 뿐.
황실에 연통은 넣었으나 그것이 닿을 리도 없었다. 그건 연주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연주목이라는 자리에 대한 의문부호도 당연히 따를 수밖에.
“힘들겠지만 받아들여야 해요.”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들이 이 천하를 다잡기 위해 무엇을 했지? 그런 이들이 이제는 제 기득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꼬락서니가 역겹지 않은가?”
조조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불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조조가 걸어온 길은 분명 의도야 어쨌거나 바깥에서 본다면 영웅적인 업적뿐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체제에 저항했다.
망조가 든 나라에서 권력을 쥔 권력자에게 저항하는 게 조조의 일생이었으며, 그녀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가시덤불로 빽빽해 고난뿐인 길이었다.
“정작 가장 큰 악적에게는 입도 뻥끗하지 못하더니, 정작 만만해 보이는 본인이 제 위에 있는 것이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지. 우습군.”
“우스운 사람의 표정이 아니에요.”
“본인도 안다.”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씹어먹을 표정이면서 대체 뭐가 우습다는 말인지. 그러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닌 게, 당장 세수조차 내지 못하겠다는 관료나 호족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이래서는 주를 관리할 수 없다.”
“진궁 치중께서 나서셨으니….”
그리 말하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이미 그들은 이번 황건적의 난으로 크게 데였다. 연주자사였던 유대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했으니, 앞으로 어찌 중앙 주목의 힘을 믿을까.
듣기로는 각지에서 호족들이 자체적으로 병력을 기르기 시작했다는데, 이걸 그냥 방관하면 조조의 영향력은 연주에서 지워질 판국이었다.
“진소연.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받아들여야 한다.
이 생각에 차이는 없었다.
그렇지만 저들이 저리 대놓고 어깃장을 놓는다면, 그래서 장차 저들이 세력을 불리기 시작한다면 그것 또한 감당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게임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다.
그냥 적당히 주를 점령했으면 자연스럽게 세수는 들어오는 것. 그러나 현실은 각지의 호족들이 반발하여 중앙과 연결고리를 끊고 자체적으로 세력을 기르기 시작했다.
알고는 있었다.
조조 또한 그렇게 일어난 인물이니 그녀도 잘 알고 있겠지. 저런 세력을 방관하면 언젠가는 조조가 앉은 연주목의 자리에 도전할 것들이었다.
“일단은 진궁 치중의 귀환을 기다리죠.”
“만약 안 된다면?”
진궁은 연주 내에서도 알아주는 명사. 실제로 명망이 높은 이였기에 조조가 크게 기용하기도 했을 정도로 영향력 하나는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갔는데도 거절한다면.
“…몇 정도는 본보기를 보여야죠.”
차후 진궁과 장막, 그리고 여포가 반란을 일으킨 시점에서 호족들이 조조를 버리고 그들을 따른 건 원래 역사에서도 조조가 그들을 탄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딴 곳에서 발목을 잡힐 수도 없었다.
진궁과 장막의 반란. 그러나 아직 진궁은 그럴 조짐이 없었다. 그리고 서주에서의 학살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 이후에 내부를 잘 다스리기만 한다면야 저런 이들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국정을 운영할 필요는 없었다.
아군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호오?”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조공이 이 자리에 어떻게 올랐는지 생각한다면, 자체적으로 저희의 통제를 벗어나 세력을 일구는 이들은 잡아 밟아놓을 필요가 있어요.”
“그것은 참, 진궁과는 다른 의견이군.”
그녀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 갈래로 땋은 은발이 고개가 끄덕임에 맞춰 흔들리며 찰랑거리고 있었다.
“좋다. 본인도 그것이 취향이지. 일단 진궁 치중이 도착한다면 말을 듣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어그러짐이 있다면.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내 직무는 별가종사사.
자사나 목을 따라 주를 순회하면서 그의 뒤를 보좌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었다. 그렇기에 주내에서 자사나 목 다음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긴급할 때는 군사력을 파견할 수도 있었다.
“그때는 제가 직접 쳐내지요.”
“망설임이 없군.”
이런 난세는 최대한 빨리 끝내야만 했다.
그와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나 자신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그것을 위해 조조의 손을 들었다. 역사상 가장 승자에 가까웠던 이 여자를 지원하기로 했던 것도 모두 그것을 위한 결정이었다.
역사적으로 패착이었던 서주 대학살과 연주 내 반란을 막는다. 그러면서 조조가 중원에서 벌일 전란을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수습할 수 있다면, 앞으로 있을 관도대전에서 더욱 확실한 승기로 이을 수 있었다.
가능했다.
모든 건 이걸 위해서였으니까.
“좋다. 그러면 그대는 좀 물러가 쉬도록.”
“네?”
아직 오전이었다. 남은 업무가 꽤 많은 상황이었는데도 조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손을 내젓고 있었다.
“그대, 표정은 보고 있는가? 얼굴이 창백해서는, 무슨 죽을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이를 데리고 일을 해봐야 본인이 병자를 부려먹는 악한밖에 더 될까.”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재차 손을 저었다. 사실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감기일까 싶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주변 공기는 싸늘하게만 느껴졌다. 체온도 그리 높다는 느낌은 없었다.
점점 몸 상태가 망가지는 느낌이었다.
“그럼 죄송하지만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그리하라.”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천천히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돌아가는 길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멍하니 발을 움직이며 걸어가는 길. 어젯밤 비가 그리 억세게 퍼부었던 탓일까, 바닥은 벌써 질척하니 진탕이 되어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푹푹 가라앉는 느낌.
마치 이대로 발에 힘을 준다면 늪에 빠지는 것처럼 쭉 가라앉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천천히, 그 밑바닥에 아무것도 없을 수렁에 몸을 맡기고 싶은 기분.
“멍청하긴.”
내가 거절했던 손이었다.
스스로 밀어냈던 감정이었다.
그걸 이제야 바란다는 건 다소 욕심이 지나치지 않을까. 그 둘이 맺어졌다면 어쩔 수 없이 손뼉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자리는 내가 한 번 밀어낸 것이니까.
바보 같았다.
이런 내가. 그들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는 내가. 그들의 모습에, 그 사랑에 가슴을 아파하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천하는 아직도 어지러웠다.
세상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만들겠다.
그 약속이 지켜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적어도 이 천하 전체를 바로잡아 평화로 이끌려면 이런 곳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이미 손에는 피를 잔뜩 묻혔다.
설령 내가 그와 맺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뒤늦게 깨달은 이 연정이 보답 받을 수 없는 것이라도.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했던 약속만은 변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그에게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니까 이뤄줄게.
비록 네가 원하는 방식의, 정말 신의 기적과도 같은 만천하의 평화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손으로 이룰 수 있는 방식으로는 그것을 이뤄줄게.
그게 내 나름의 유일한 보답이니까.
그것을 위해 설령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더라도.
“멈출 수는 없는 거잖아.”
이미 모든 것은 가열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원소는 하북 평정을 위해 군을 몰아치고 있었다. 장안의 동탁도 슬슬 죽을 테고, 그렇다면 천하는 한 번 더 요동치겠지.
이젠 아무도 멈출 수 없었다.
문득 예전과는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현대인이었던 진소연, 한나라의 진소연. 그것들은 이미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예전이라면 누군가를 직접 죽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보지 않아도 될 피해를 보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발상은 불가능했겠지.
그 남자도, 나도.
이미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버렸다.
후회는 없었다.
그저 주저앉아 이러지 말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그저 한탄하기에는 이뤄야 할 목표가 너무 컸으니까.
그러니까.
그 모든 걸 이루고 난 뒤라도 좋으니까.
한 번쯤은 나를….
“미련하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쉬자. 어차피 내일부터는 다시 할 일이 많았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묵힌 감정을 모두 씻어낼 겸, 딱 하루만 쉬자. 그러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전부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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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 아가씨가 조금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초반의 진소연과 지금의 진소연. 그 사고와 행동방식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보시는 것도 나름 쏠쏠한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플레이어인 아가씨를 지지합니다...
내일은 다시 전개로 나아가겠네요.
투표는 역시 사마의의 압승이네요. 전 방삼이도 좋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