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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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는 이제 막 혼란을 수습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그 전란을 성공리에 수습한 조조를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과 기존에 터를 잡았던 사람들까지.
저마다 이유는 달랐지만 모두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침울한 분위기만은 느낄 수 없었다.
그게 현재 진행형으로 침울해졌던 소연에게도.
“나쁘지 않네.”
홀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오늘 조조는 연주 내 호족과 회동이 있어 다소 한가했던 시간.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방안에만 있어 봤자 다시 부정적인 사고에 사로잡힐 뿐이었다. 바깥에서는 이리도 많은 이들이 삶에 충실한데 그녀만 방안에 틀어박혀서 홀로 고독함을 곱씹을 필요도 없는 것.
가끔은 이렇게 산책이라도 해야지.
적어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때는 몸이 떨리지 않았다. 홀로 있을 때는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는데도, 정작 이렇게 바깥으로 나오면 진정이 됐다.
심리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앞으로도 그런 일이 반복되어 나중에는 누가 있던 몸을 떤다면 그건 큰 문제였다. 호세, 이제는 전호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수하에게도 보일 낯이 없었다.
“같이 가!”
“네가 느리니까 그러지!!”
저 멀리서는 한 사내아이가 멀찍이 달리고 있었고, 그 뒤를 그보다 어린 소녀가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사내아이가 먼저 그녀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고, 이윽고 따라오던 소녀가 그녀의 근처까지 왔을 때. 소녀는 달리던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저 앞을 달려가는 소년.
그걸 따라가려다가 넘어지는 소녀.
어디선가 많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익숙할 만도 했다.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에 그 모습에서 자신과 전호의 모습과 굉장히 흡사했으니까. 저 멀리 달려가는 소년은 전호였고,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가는 건 언제나 진소연이었다.
그는 항상 그녀보다 앞서있었다.
전호 본인은 자신이 그녀를 따라간다고 말했지만, 정작 소연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달랐다. 항상 그녀를 이끌던 것은 그 남자였다.
그 남자는 항상 그녀의 앞을 달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현실에 대해 고뇌할 때, 그는 언제나 앞장서서 검을 휘두르고 그녀에게 말했던 모든 걸 이뤄내면서 길을 열고 있었다.
소연은 그것에 지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더 악착같이 이 게임을 배경으로 한 세계에 익숙해지려 노력했었다.
“흑, 흐윽, 흐….”
바닥에 넘어진 소녀는 고개를 들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홀로 남겨져서 눈물을 흘리는 모양새가 썩 가슴에 동하는 게 있어서, 그것이 어딘가 남 일 같지 않아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게 뛰지 말지.”
그보다 먼저 소년이 다가와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빠가, 먼저… 가니까.”
“미안하다니까.”
그리 말하며 맞잡는 두 손. 소년은 소녀를 돌보면서 다친 곳을 살피고는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그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며 소연은 뻗었던 손을 무안하게 접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서로 부축하면서 나란히 걷는 소년 소녀의 모습.
여전히 주변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아이들의 모습도 이내 도로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사이로 사라졌다.
바쁘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현실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게임의 배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계였지만, 그런데도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동감과 그 감정의 희로애락은 전부 진짜였다.
소연은 그 뒷모습이 안 보일쯤 되어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할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따로 누군가를 만날 사람도 없었다.
전호 정도라면 한 번 찾아가 얼굴을 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녀 자신이 생각하기에 본인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혼자만 있으면 몸을 떠는 사람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정신적인 문제이지 않을까. 그리 어림잡을 뿐이지만,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그냥 혼자만 되면 몸이 춥고 떨려왔다.
겨울 한복판에 홀로 남겨진 사람처럼 추위와 외로움으로 떨었다. 이유도 모르고, 그냥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밖에라도 나오니까 좋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답답한 분위기를 떨쳐내면 조금은 기분도 나아졌다. 소연의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을 무렵.
“이건 어때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운.
그녀의 수하이기도 하면서 처음으로 맞이했던 역사상에 기록된 맹장. 이 맛 간 세계에서는 군청색 머리카락의 미소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실력이 어디로 갈까.
전호가 없을 때 언제나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워준 무장이었다. 최근에는 그녀와도 자주 대화를 나누며 조금은 친근함도 들었다.
그 목소리에 한 발짝 다가가려 했지만.
“야야. 너 얼마나 마시려고. 벌써 수레로 몇 동이를 보냈는지 알아?”
다음으로 이어지는 목소리에 발걸음이 뚝 멈춰버렸다.
“남으면 나중에 마시죠, 뭐!!”
조운은 웃으며 한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남자는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내 못 말린다는 투로 픽하니 웃으며 조운의 볼을 잡아당겼다.
“아하여.”
“아프기는.”
살살 잡아당겼다며 너스레를 떠는 남자.
전호는 웃으면서 조운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소연은 그들이 친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언제 저렇게 친해졌나 싶으면서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럴 이유도 없는데.
그냥 몸이 멋대로 뒤로 숨어버렸다.
“됐다. 이만큼 샀으면 됐어. 지금 몇 동이 보냈는지 모르지? 너 지금 여덟 동이 시켰어. 장난해? 취하는 게 아니라 배불러서 못 마시겠다.”
“이쯤 할까요?”
그 질문에 당연하다며 주먹으로 조운의 머리를 내리치는 전호. 그냥 살살 꿀밤을 놓았다는 느낌이라 그녀도 살짝 신음만 내고는 다시 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가갈까.
그렇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소연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미 인파 사이로 파고들어 인근 건물 뒤편으로 숨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은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그녀의 안에서 복잡한 감정이 몰아치고 있었다. 답답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전신으로 퍼지는 느낌. 분명 아무렇지도 않을 일인데. 그냥 친한 둘이서, 서로를 남매라 생각하는 둘이서 같이 노닥거릴 뿐이잖아.
자신에게 되뇌며 몇 번을 다그친다.
그렇지만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자꾸만 뜨거워지는 얼굴이 그것을 거부했다. 저 광경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 이제 가자고 좀. 언제까지 있을 거야?”
“…알았어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운은 전호의 손길에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져가는 그들의 등을 바라보며 소연이 한 발짝 나왔을 때.
“에, 에엣취이이이!!!”
그녀의 바로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큰 소리로 기침을 터뜨렸다. 주변까지 전부 들릴 만큼 큰 목소리에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저 둘이 여길 보기라도 한다면.
소연은 그리 생각하며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정작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맞잡은 상태로 웃고 떠들면서 길을 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어딘가 못내 찝찝한 기분.
“…내가 왜.”
그냥 친한 의남매가 저렇게 지낼 수도 있잖아.
동요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라 더 마음이 동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소연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뒤를 밟고 있었다.
그 이유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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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제법 맛있었다.
솔직히 그간 항상 군에서만 있었던 탓에 운이가 하는 밥을 먹어본 적도, 그럴 기회도 없었는데 이 계집애가 생각보다 요리를 잘하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진궁 선생님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선생님은 다 좋은데, 제발 식사에 풀때기를 안 올렸으면 더 좋았으리라. 대체 왜 식사에 풀때기가 올라가는 건지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높으신 분들은 구태여 풀이라도 뜯는 습성이라도 있나?
“맛있었어요?”
운이가 싱글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밥상에 팔꿈치를 대고 양손으로 턱을 받치면서 이쪽을 바라보며 웃는다. 솔직히 좀 괴롭히고 싶은 마음에 맛없었다고 하려 했으나, 그러기엔 정성이 잔뜩 들어간 식사여서 그냥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으면 말로 해줘요.”
“맛있었어.”
그러니 운이가 살짝 볼을 부풀리는 것이.
“과거형 말고요.”
맛있었다고 해도 난리네.
여전히 턱을 괴고는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 맑은 눈동자가 이쪽을 응시하는 모습에 살짝 시선을 돌렸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맛있어. 됐냐?”
못내 그리 말하니 이제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후흐, 이거 기분 좋네요.”
“시끄러.”
왜 자꾸 사람 낯뜨겁게 하는 건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 계집애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를 골려 먹으려 들었다.
물론 그간 자지니 뭐니 하면서 놀려댄 업보도 있어 그러려니 한다. 솔직히 저러는 게 조금 귀엽기도 하니까.
그러는 사이 그녀는 밥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금 도와줄까 했는데, 구태여 손을 흔들며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그냥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식사 후 뒷정리를 마치고는 그녀가 술 동이를 들고 다가왔다. 내려놓는 소리가 묵직한 것이, 지금에야 느끼는 건데 확실히 크고 양이 많은 것을 사들이긴 했다.
“그러면 한 잔 드셔야죠?”
“밥도 다 먹었는데?”
“밥을 다 먹었으니, 이젠 술로 채우는 거죠!”
왜 그렇게 술에 집착하냐.
예전에는 그렇게 술 관련된 소리를 안 하더니, 얼마 전부터 종종 술 마시자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랬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술 동이를 꺼내는데, 자신감 있게 말해놓고 이런 말을 꺼내기는 뭣하긴 하지만.
“그거 다 마실 수는 있겠냐?”
“네?”
아니 솔직히 사람이 어찌 둘이서 저 한 동이를 다 비워. 저게 생각보다 양이 가득 차서 운이가 내려놓을 때도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양이 많았다.
“혹시, 쫄려요?”
“미쳤냐?”
당장 잔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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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씬 퇴고 작업에 있는데 갑자기 현타가... 윽...!!
설문 하나 올려뒀습니다. 많은 참여는 차후 일러스트 행방을 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