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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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복양 성주라는 직함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사실상 그것도 방삼이에게 성주 대리라는 직함을 내주고는 연주성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
아무래도 무관의 손이 부족하다는 것 같은데, 정작 연주성에 있으면서 이렇다 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맡은 기억은 없었다. 그냥 병사의 조련이나, 가끔 조인 장군이랑 전술에 대해 떠드는 정도?
가끔 조홍 장군이랑 술도 마시고, 종종 조조가 부르는 연회나 식사, 술자리 등에 엮여 잠깐 시간을 할애하는 정도일까.
생각해보면 연주성에 있으면서 아가씨나 운이, 사마의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부 조가네 인물들이랑만 어울린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이 그리 깊어요?”
“아니, 할 일이 없잖아.”
거리를 거니는 길.
운이는 연주성에서 치안대장도 겸직하고 있었기에 적당히 거기에 어울릴 겸, 최근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도 있어 함께 도심지를 걷고 있었다.
“이럴 거면 그냥 복양에 있을 걸 그랬나.”
“에이, 그러면 저랑도 못 보잖아요.”
그리 말하면서 내 어깨에 손가락을 대고는 꾹 누르고 문지른다. 애교 부리는 게 조금 어이도 없지만, 그래도 나 좋다는 여자 싫다고 할 남자 어디 있을까.
“치워라.”
“칫.”
싫다는 건 아닌데, 밖에서 이러는 건 좀 그렇잖아.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그런가, 연주성에 머무른 이래로 운이는 종종 이렇게 꼬리를 치는 느낌으로 계속 들러붙어서 애교를 부리기 일쑤였다.
아, 혹시.
“너 설마 또 내 거기 보고 싶.”
맞았다.
순식간에 옆구리에 꽂히는 깔끔한 일격에 숨이 멎었다. 정확하게 옆구리, 그것도 갈빗대와 골반 사이에 꽂히는 주먹에 몸이 옆으로 꺾이는 기분이었다고. 아니, 진짜로.
“진짜, 그렇게 못된 말만 할 거예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손을 털었다.
“오랜만에 봐서 좋다는데, 남자가 진짜.”
그러면서도 못내 싫다는 기색이 아닌 것이, 살짝 부끄럼을 감추는 느낌으로 툴툴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걸 내 옆구리를 때리지 않고 말했더라면 더 좋았을 건데.
아직도 호흡이 돌아오질 않는다고.
“꺼으, 허으. 내가 잠깐 까먹었다야.”
네가 나보다 셌지.
그냥 가볍게 툭 치는 느낌으로 손목 탄력만 쓴 것 같은데도 미친듯한 타격감. 맞는 쪽에서는 진짜 헛바람을 삼키며 숨이 잠깐이나마 멎는 기분이었다.
“진짜, 그렇게 자꾸 심술궂게 굴 거예요?”
“알았어. 거참, 애가 진짜 농담도 못 하나.”
그냥 평소 하듯이 장난 좀 쳤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오랜만에 만났으니 조금은 다정하게 굴기를 원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냥 손을 잡았다.
분명 나랑 같은 무관인데도 다소 부드러운 피부는, 퍽퍽하니 흉만 잔뜩 진 내 손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건 그냥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까?
“읏.”
먼저 손을 잡히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운이의 볼이 살짝 빨갛게 달아올랐다. 고작 손을 맞잡는 거로 뭘 그리 빨개지나.
전에 훨씬 더한 것도 했으면서.
그렇지만 아직 풋풋한 소녀의 감성이 남은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너무 익숙해져 삭막해지는 것보다야 이렇게 살짝 서로의 간격에 얼굴도 붉히는, 가까운 듯 먼 감각은 이것대로 좋았다.
아직 꽃이 완전히 지지는 않아서 나름 길거리마다 적당히 꽃 몇 송이가 피어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물론 일반 백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니 그렇게 화려하게 꾸민 것도 아니고, 그저 어쩌다가 자란 꽃들이지만. 오히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그런 소소한 풍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기를 되찾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많은 황건적의 침공에 피난을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는가 하면, 기존에 남았던 사람들까지. 그런 사람들이 서로 손을 모으고 힘을 합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썩 기분 좋은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바쁘냐?”
보기 좋은 것과는 별개로, 기존에 남은 사람들과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 그런 이들이 점점 돌아옴에 따라 복잡해질 것이고, 그러면 분명 치안을 담당하는 그녀에게는 달가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리 묻자마자 운이가 손사래를 쳤다.
“어휴, 말도 마세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토지나 건물의 소유권 분쟁부터 시작해서, 아예 전문적인 도둑들까지 성행했다니까요?”
“그럴 거 같더라. 어떻게, 내가 좀 도와주랴?”
“오라버니도 병사 조련이 바쁘지 않으세요?”
바쁘기는. 어차피 주로 담당하는 것은 조인 장군이었다. 나야 적당히 곁다리 같은 느낌으로 그의 일을 돕는 정도여서 기본적으로는 제법 한가했다.
“아가씨도 최근에 조공과 어울리는 것 같으니 나도 딱히 할 일이 없거든. 진궁 선생도 요즘은 바쁜 거 같고, 사마의는… 요즘 코빼기도 안 비치네.”
그러고 보니 근래에는 사마의를 본 적이 없는데.
최근까지만 해도 내가 분양받은 장원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더니 최근에는 소식도 없었다. 그래 봐야 며칠이기는 한데, 항상 보던 아이가 안 보이니 조금 적적한 것도 사실.
“주군도 최근엔 바쁘시죠.”
운이는 그리 말하며 살짝 시선을 피했다.
아직도 아가씨에게 죄책감 같은 걸 가지고 있던가.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쓸 것 없다고 그리 말했는데도, 정작 나와 단둘이만 있으면 소연 아씨를 신경 쓰고는 했다.
그런데 잠깐만.
“응? 주군?”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운이가 아가씨를 주군이라고 불렀던가. 예전에는 분명 나랑 마찬가지로 아가씨라 불렀던 것 같은데, 근래에는 꼬박꼬박 주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저희 군의 주인이니 맞지 않아요? 아, 물론 조공 밑에서 같이 일하는 신세이니 이제는 호칭을 바꾸는 게 나을까요?”
“주인이라.”
못 본 사이에 제법 그래도 아가씨를 따르게 되었구나 싶었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 그런 변화는 오히려 나로서는 반겨 마지않을 일이었다.
소연 아씨도 이번에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는데, 정작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안타까웠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소연 아씨가 무관처럼 행동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직접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거기에 참견할 이유는 없었다.
“앞으로 더 클 사람이니까.”
이미 조조가 연주목이 되었고 아가씨는 별가종사사가 되었다.
연주 내에서도 관직의 힘만으로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고관이면서, 주로 조조와 함께 주내를 순찰하거나 일을 토론하는 등의 관직.
기본적으로 주목의 뒤를 잇는 관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작 2년 만에 여기까지 왔다. 나는 한 성의 성주가 되었고, 그녀는 아예 주목의 심복이 된 셈.
“오라버니가 성주인 것만 해도 놀라운데.”
“그러게나 말이다.”
게다가 그 방삼이 놈이 성주 대리?
옛날이었으면 헛소리 말라고 경을 쳤을 건데. 허구한 날 배나 벅벅 긁어대던 그 한량이 성주 대리이질 않나, 그런 놈들을 끌고 다니던 내가 성주가 되었다.
게다가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우리 애들도 이제는 어엿하게 군에서 소소하게나마 역할을 맡아 봉급을 받고 있으니.
“그러면 말이에요.”
그녀는 꼭 맞잡은 손을 잡고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면서 잡았던 손을 당겼다. 살짝 먼저 앞서가는 그녀에게 끌려가는 느낌으로 한 발 내디뎠다.
“오늘은 기념으로 식사라도 하실래요?”
“식사? 좋기는 한데.”
어차피 집에는 나 혼자였다.
애초에 누군가의 보필이라던가 시중을 받는 것도 영 떨떠름했던 터라 조조가 내려준 사람은 전부 물렸다. 그러니 마음은 편한데, 반대로 식사 같은 것도 혼자 해결해야 하니 언제나 사다가 먹는 것이 전부.
“어디서 먹게.”
아무래도 순찰을 담당하고 있으니 사람이 많은 곳도 알고 있겠거니 싶어서 물었는데, 정작 운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씩 웃었다.
“오늘은 제가 해드릴게요! 저도 이번에 작게나마 집 한 채 받았거든요? 거기에서 드실 건데, 혹시 뭐 다른 일정이라도 있어요?”
“아니, 딱히 없기는 한데.”
어차피 조인 장군은 혼자 알아서 잘한다.
예전에 같은 기병대장으로 전선을 누빌 때부터 알아봤는데, 기본적으로 병법이라던가 전략, 병사의 운용법 등에도 통달한 부분이 있어서 가끔은 내가 끼면 거슬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조조도 그렇고, 조씨들은 하나같이 괴물뿐인가?
정작 조홍 장군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거 같은데. 그냥 그 둘이 돌연변이인지, 아니면 조홍 장군이 돌연변이인 건지.
“그러면 어서 가요!! 곧 해도 저물겠다, 빨리 가야죠!”
“아니 뭘 서두르냐.”
해가 저물기는.
아직 해 저물려면 한참 남았다. 물론 슬슬 뉘엿뉘엿 떨어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직 저녁이 되려면 몇 시간인가 더 남았을 텐데.
그녀는 맞잡은 손을 꼭 쥐며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가려던 나도 결국 그 뜀박질에 끌려가듯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두 남녀가 손을 꼭 잡고 달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떻게 보일까.
조금 부끄러웠다.
애당초 왜 수치는 전부 내 몫인가. 운이 이 계집애도 평소에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가 싶더니, 정작 이런 부분에서는 당당하게 사람을 이끈다.
이건 오히려 내가 부끄럼을 타는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까.”
잠깐 멈춘 그녀가 침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그때 마련했던 술이 아직 남았으려나.”
“술? 술도 마시게?”
나는 그냥 밥만 먹는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인 것인데. 운이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며 뭘 그리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투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일 뭐 할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없는데.
뭔가 조금 불안하다. 그러고 보면 그녀와 처음으로 몸을 겹쳤을 때도 술을 걸쳤을 때였다.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녀가 살짝 눈을 치켜뜨는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육식동물 특유의 분위기를 느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운이가 거기까지 말하고는 살짝 입을 가렸다.
뭔가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불쾌한 건 어째서일까. 입을 완전히 가린 것도 아니어서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도 보이는 게.
“오라버니가 술이 많, 이. 약했었죠.”
“뭐 시발?”
누구, 내가?
그때는 조금 심란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술이 몸에 잘 안 받아서 그런 거지 평소라면 그런 양의 술은 문제도 아니었다.
“덤벼. 너 오늘 술 꼴아서 쓰러지는 거 보고 간다.”
“어머, 남자.”
남자 같은 소리 하네.
오늘 죽었다고 복창할 때까지 절대 술잔을 놓지 않게 하겠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맞잡았던 손에 힘을 꽉 주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기대할게요?”
“너 오늘 진짜 죽었어.”
그리 말하며 손을 당겨 그녀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분명 요 계집애의 집이 내 장원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4번 지구였던가.
“술 충분하냐? 더 사갈까?”
“음. 그럼 좀 들렀다가 갈까요?”
“좋지.”
아예 주량으로 끝장을 보려면 얼마 있는지도 모를 양으로는 부족했다. 가끔 이 계집애는 오라비의 위엄을 우습게 아는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한 번 제대로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서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오히려 이 계집애한테 조금 낚인 기분이 드는데. 뭔가, 아 뭔가 좀 놀아났다는 느낌이 가시지를 않았다.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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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궁 선생님 일러가 호평이어서 저도 기쁩니다. 사마의 일러도 제가 돈이 생기면 금방 착수하겠습니다.
후원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이것도 전부 사마의 일러스트 제작으로 투자될 예정입니다!! 펀치, 펀치이이!!
내일은 씬과 함께, 전개를 빼어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