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10화 (110/343)

110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청주발 황건 도당 바람이 불며 연분홍색으로 핀 복사꽃이 가지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잔잔한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며 싸한 소리를 냈고, 그 와중에 한 송이씩 떨어지는 연분홍 꽃봉오리.

복양 관청 뒤뜰에는 제법 여러 그루의 복사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예전 복양 성주의 취향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봄날을 맞이하면서 개화. 살짝 달짝지근한 꽃향기가 장원 전체를 메우는 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벌써 봄이 되었다.

아군이 복양에서 황건적을 완벽히 무너뜨린 이후, 조조의 요청에 따라 병력을 차출하여 제음군으로 진군했었다.

진궁 선생은 제음에서 별다른 일 없이 대치만 하면 될 거라 했는데, 실제로 전쟁은 산양군 일대에서 치러졌다.

조조가 이끄는 본대는 압도적으로 적의 예봉을 꺾었다. 거기에서 취한 황건적의 수급이 무려 수만이나 된다고 하니, 얼마나 큰 승리였는지는 그 수급의 숫자가 증명했다.

그 이후 황건적들은 빠르게 퇴각했다. 연주 내로 흩어진 이들은 주내의 방위군이 정리했고, 큰 무리를 지어 도망친 이들은 태산 일대를 거쳐 다시 청주로 퇴각했다.

그렇게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대장, 또 꽃놀이요?”

한창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흐드러진 꽃을 관람하고 있자니 등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구태여 돌아보지 않고 잔에 든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날이 좋으니까.”

손에 쥔 술병을 기울였다. 잔에 따라지는 소리가 맑고 투명하게 울리고 있었는데, 그런 사소한 것도 기분이 좋았다.

겨울날의 전쟁은 끝났다.

처절하고 지독했던 전쟁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 따스한 햇볕 아래로 푸른 식물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꽃은 이리도 흐드러지게 피어 절경을 맞이하고 있었다.

“거참, 나도 좀 따라주쇼.”

마침 누군가 오지 않을까 싶어 잔을 넉넉히 준비하고 있었기에, 적당히 손에 집히는 잔을 방삼이에게 던졌다.

전쟁 이후의 느긋한 시간.

누군가는 죽었더라도 남은 이들은 살아야 했다.

복양에서 전투를 벌이던 황건적 중 거의 만 단위에 달하는 이들이 굶거나 추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미루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죽은 것인데, 그렇다고 하여 같이 죽어줄 수는 없었다.

방삼이가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돌렸다.

“안주는?”

“그런 게 어딨어.”

꽃이 이리도 아름답게 피었다. 그렇다면 이 운치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안주 중에서도 가히 최고라 이를 수 있을 것을. 안주 같은 것은 오히려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었다.

“쯧, 하여간 술꾼 다 되셨구만.”

그리 말하면서도 술잔을 내미는 꼬락서니가 나와 퍽 다르지 않았다. 그는 내게 술꾼을 논하기 이전에, 본인도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

“프하아! 이거 쓰네. 뭐요?”

“나도 몰라. 그냥 관청 창고에 있길래 깠다.”

“아니 그럼 못해도 석 달은 지난 거 아니요? 용케 이런 걸 마실 생각을 했구만. 아으, 써. 이걸 안주 없이 어떻게 마셨수?”

“술은 묵힐수록 향을 더한다잖아.”

그 말에 방삼이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 바깥으로 침을 뱉었다. 향은 개뿔이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는다.

그렇게 둘이서 계속 술잔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잔잔한 바람이 부니, 머리카락이 바람에 스쳐 찰랑거리고 있었다.

조금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시고 있을 때.

“어머? 여기가 연회장이었네요.”

“하아…, 아직 일이 산더미인데.”

진궁 선생과 사마의도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진궁 선생님은 그나마 웃기라도 하지, 사마의는 아예 표정 자체에 짜증이 잔뜩 서렸다.

“이게 뭐 연회장입니까요.”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이 앉을 공간을 만들었다. 사마의가 끝까지 노려보는 통에 시선 처리가 조금 곤란했다.

“사람이 좋고 풍경이 좋으면 그것이 연회죠. 마지막으로 술마저 좋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그 부분은 어떤가요?”

“글쎄요. 야 방삼아, 어떻냐?”

그새 얼굴이 빨개져서는 이쪽을 돌아보는데, 눈도 살짝 풀린 느낌이었다. 아니 이제 고작 두 병 비워놓고 왜 저리 취했어.

“으응? 아니 쒸이벌, 이거 존나 독해유.”

고개를 흔들면서 방삼이가 인상을 쓰고 있었다.

확실히 녀석이 예전부터 술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었지. 인상은 무슨 산적두목 같아서, 술을 동이 채로 들이킬 인상이면서도 정작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못 마시는 것은 아니나 많이는 못 마신다는 느낌.

“어머, 그럼 저도 한 잔만 받아볼까요?”

진궁 선생은 언제 가져갔는지 잔 하나를 내밀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사마의는 그 모습이 아니꼬운지 아직도 뚱한 표정을 짓는데, 그렇다고 어린애한테 술잔을 들이밀기도 뭣했다.

술병을 기울였다.

“미안하네. 네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마땅한 주전부리도 없다야. 어떻게, 술은 좀 그렇고 물이라도 따라줄까?”

“됐네요.”

소녀는 그리 말하며 자리를 옮겨 내 허벅지를 깔고 앉았다. 살짝 묵직한, 그렇지만 한 사람의 무게라고 하기에는 다소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어머, 이러니까 꼭 아버지와 딸 같네요?”

“누가 딸인데요, 누가.”

사마의는 발끈했지만, 그렇다고 내 허벅지에서 내리는 것도 아니어서 꼭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승강이를 벌이는 느낌이었다.

“아이고, 자자. 선생님요. 그러면 애 엄마가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이 꼬맹이도 저같이 일자무식인 놈을 아비로 두긴 그렇지 않습니까요?”

그리 말하면서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러면 아이 엄마는 제가 할까요? 마침 저도 사마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자식도 있겠다, 그러면 전호 장군님이 남편인가요?”

그녀는 그리 말하면서도 주책없다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사마의는 아예 눈이 불을 내며 진궁 선생님을 바라보는데, 이 꼬마는 조금 독점욕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말을 질색했었다.

“제가 너무 모자랍니다. 술이나 받으시죠.”

“전호 성주님은 아무래도 자기를 너무 낮게 평가하시네요. 이 정도면 얼굴도 잘났고, 성격도 모난 구석이 없는 데다가 능력도 괜찮은데.”

그 말이 마치 자기 자식을 자랑하는 어머니의 그것처럼 느껴져 못내 머쓱한 기분에 술병을 들었다.

“너무 띄워주지 마십쇼.”

그렇게 높이 날다가 떨어지면 아프다.

술병을 들고 살짝 흔들었다. 이런 주제로 더 얘기하다가는 조금 골치가 아파질 것 같아서 그랬는데, 그녀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내밀었다.

쪼르르 하며 잔을 채우는 술. 청아하게 투명했지만, 아무래도 오래 묵은 술이라 그런지 다소 독한 향기가 퍼졌다. 그것도 풍미라 생각하면 나쁘지야 않겠으나, 그래도 문관인 선생에겐 다소 독할까 싶은 것.

“선생님도 독하면 드시지 마세요.”

“이 정도는 문제없어요.”

술잔을 부딪쳤다. 잘 빚은 토기여서 그런지 제법 투명한 소리를 내며 맞대고는 입으로 가져가 한 번에 털어 넣는데, 확실히 독한 술이어서 그런지 식도부터 싸한 쓰라림이 느껴졌다.

의외로 진궁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괜찮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인다. 술에는 제법 강했나 싶었을 때, 오히려 술잔을 내밀며 코웃음을 쳤다.

“봤죠? 전 문제 없다니까요.”

“방삼아, 넌 어떻게 생각하냐?”

고개를 돌리니 이제는 아예 바닥이랑 몸을 겹친 방삼이. 아예 얼굴은 시뻘겋게 물들이고는 꺽꺽 트름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술의 진한 향이 여기까지 진동을 했다.

“나, 나는 무리요. 이거 시부래, 사람 마시라고 있는 술이, 아니잖소…? 여, 엄병. 나 좀 내버려 두쇼.”

그러더니 아예 배를 깔고는 누워버린다.

“어으, 술 냄새.”

사마의는 아예 코를 틀어막으면서도 내 허벅지에서 벗어날 생각도 없이 그대로 몸을 기울여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술 냄새나요.”

“그야 아까부터 마셨으니까.”

방삼이도 저러지만, 나도 꽤 오래전부터 마시고 있어서 제법 독한 냄새가 배었을 건데. 마시고 있는지라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독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먼저 들어가도 돼.”

“싫어요.”

사마의는 오히려 옷 앞섬을 꼭 붙잡고는 고개를 파묻었다.

“정말 딸과 아버지 같네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소녀는 그리 말하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는데, 진궁 선생은 그것이 못내 우스웠는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살살 흔들었다. 더 따르라는 말로 이해하고 다시 술병을 드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어허, 이 누님을 빼놓고 술자리니?”

또또 사람이 는다.

“아이고 장군, 어서 앉으시지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술자리에 따돌리는 건 좀 열이 받거든? 우리 동생, 앞으로 나한테 잘 보여야 할 건데 이러기야?”

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은 짓궂은 느낌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장을 한 번 둘러보더니 내 맞은편으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제가 왜 장군한테 잘 보여야 합니까?”

“우리 언니가…. 뭐, 이건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 말하며 조홍이 고개를 돌렸다. 술잔이라도 찾나 싶어서 빈 잔을 하나 드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으, 요즘 안 그래도 몸이 쑤셨는데 나쁘지 않네. 복숭아 꽃도 예쁘게 폈는데 꽃놀이 겸 술자리라고 생각하면 되나?”

“나쁘지 않죠.”

그러는 사이 진궁 선생도 잔을 내밀었다. 조홍도 잔을 내밀고 있었고, 정작 내 잔도 비어있었다. 보통 이런 건 좀 낮은 사람이 따르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경력도 그렇고 원래 직위도 그렇고 전적으로 내가 좀 모자랐다.

이래서 출세를 해야 하는 건가.

“거, 조홍 장군께선 좀 알아서 따라 드시죠.”

“동생. 자꾸 그러면 돈줄 끊어버릴 거야?”

충성.

그러는 와중에 바람이 불었다. 흐드러지게 핀 복상 꽃이 그 바람에 나부끼며 한 송이, 사르르 떨어지며 내 술잔 안으로 쏙 들어왔다.

연분홍빛으로 환하게 핀 꽃.

그걸 보니 왠지 모르게 소연 아씨가 떠올랐다.

아씨는 아직도 연주성에서 조조를 따르고 있었다. 아마 곧 진궁 선생이나 조홍 장군도, 아마 상황에 따라서는 나도 연주성으로 거점을 옮길 수도 있었다.

미리 그곳에 있을 소연 아씨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운이랑 잘 지내고 있을까. 아마 그 계집애는 소연 아씨의 눈치나 보고 있겠지.

최근 아가씨를 안 만나고 벌써 석 달이 지났다.

이 자리에 아가씨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리도 아름답게 핀 꽃나무 아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풍경을 상상했다.

“동생? 팔 떨어져.”

“아, 예. 알았다고요, 좀.”

봄바람은 꽃내음을 싣고 잔잔히 불고 있었다.

*****************************

어두웠다.

창호에는 천막까지 쳐, 빛조차 잘 들지 않는 어두운 방. 이불을 붙잡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또 시작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요즘 항상 혼자 있으면 손이, 그걸 넘어 몸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조금 힘을 주어 진정시킬 수 있었는데.

“…춥네.”

이제는 봄이 됐는데도 방은 싸늘했다.

아직 밖은 밝을 테니까 기분 탓이겠지. 그렇지만 등골까지 오싹하게 느껴지는 이 감각은 도무지 내 기분 탓이라고만 넘길 수 없었다.

소름마저 돋을 정도로 싸늘한 추위에 이불을 잡고 목 언저리까지 끌어올렸다. 폭신하게 몸을 덮는 이불의 감각. 몸 전체를 감싸는 느낌에 다소 추위는 가셨지만, 그런데도 몸 전체의 떨림은 멈추질 않았다.

밖에서는 이러지 않아서 다행이지.

앞으로도 조조의 뒤를 따르며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적어도 천하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적어도 관도대전이 끝나지 전까지는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런 와중에 몸을 떤다는 건 대외적인 시선으로 보아 결격사유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심리적인 영향일까.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적어도 호세나 다른 이들과 같이 다니던 때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건지도 모른 채, 그저 하염없이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부여잡으며 고개를 떨궜다.

“보고 싶다.”

지금쯤 넌 복양에 있겠지.

거기서 뭘 하고 있을까. 조금은 내 생각도 해주고 있을까. 그러면 정말 기쁠 거 같은데. 그렇지만 지금 이런 내 모습을 차마 보여줄 용기가 없어서, 그래서 복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봄날인데도 왜 이리 추울까.

떨리는 몸에 두른 이불을 꼭 부여잡았다. 고개를 파묻고 눈을 감았다. 심리적인 것이 원인일까 싶었지만, 그걸 알아도 이 떨림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아직도 추웠다.

계절은 변했는데, 내 계절은 아직 겨울인 채였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이걸로 드디어 쬬가 연주자사가 되며 연주에서 황건적 전투도 마감했습니다!!!

새로운 일러스트가 나왔습니다. 진궁 마망입니다!!

이번에 조아라에서 돈 들어오면 빠르게 사마의 일러스트도 제작 부탁드릴 예정입니다.

소연 아씨에게는 조금 아픈 파트. 그렇지만 글은 점점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마의 일러를 나중에 뽑는 이유는... 사마의는 조금 더 공들여서 뽑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ㅠㅠ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좋은 한가위셨기를 바라며, 내일 봽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