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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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잃은 연주.
황건적은 겨울이 한창임에도 그 기세를 유지하며 연주 전체에 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미 대다수의 군현은 방위수단을 잃거나, 아예 항복해버린 곳도 있을 정도로 엉망인 상황.
“맹덕, 복양에서 전문이다.”
하후돈은 그리 말하며 죽간을 건넸다.
조조의 유일한 불안으로 남았던 것이 복양이었다. 당장 방위군은 오천밖에 내어주지 못했는데, 그에 비해 그곳으로 몰린 황건적만 해도 십만을 훌쩍 넘는다는 첩보를 받았기에 더더욱 불안했던 것.
죽간에는 다양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간추려 요약하면 단 두 글자.
“대승이라는군.”
“질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대승? 그게 가능한가?”
퇴각하는 적의 후미를 쳐 치중의 반절 이상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회군하여 공세를 가하는 황건적을 막아내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흩어지거나, 그런데도 남았던 이들은 이윽고 시체까지 뜯어먹는 대참사를 기록하며 대패시켰다고 적혀있었다.
“퇴각하는 적을 구태여 공격하면서 완전히 꺾어버렸다는군. 이건 진궁이 생각할만한 책략은 아닌 것이, 그 남자의 전략도 아니다.”
조조는 그 둘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 그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복양에서도 그런 대승을 기록했다면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동아현에서는 태산과 제북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을 황건적을 대파했다. 복양에서는 십만이 넘는 황건적을 대파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니, 전사한 유대와도 사뭇 비견되는 행보였다.
이 모든 승리는 조조라는 이름을 연주에 널리 알릴 터.
“원양. 우선은 군을 쉬게 하도록.”
“응? 바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 물음에 조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주자사가 전사한 뒤, 그 남은 잔병은 제북상 포신이 이끌었다지? 그렇다면 그가 직접 본인에게 도움을 청할 때까지는 기다림이 옳다.”
제북상 정도라면 연주 내에서도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고, 그런 이가 직접 그녀를 추대하게 해야 했다. 그러려면 잠시 시간을 끌며 상대를 안달이 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는 좋다. 이대로만 진행한다면 연주는 차지하겠으나, 문제는 다음. 연주로 몰아넣은 황건적을 다시 몰아내야 하는데….”
“숫자가 제법 된다던데.”
“예봉만 꺾으면 된다. 그들이 연주에서 어슬렁거리는 것도, 사실상 아군이 퇴로를 막았기 때문이다. 한 번만 꺾는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태산 너머로 도망치겠지.”
문제라면 그 예봉만 하여도 수만은 되리라는 것.
“진소연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태산 일대에서 이미 황건적 무리 여덟을 격파했다더군. 내 솔직히 군승을 얕보고 있었는데, 전공 하나만은 아군 중에서도 제일이다.”
심지어 조조군에서 가장 용병이나 무예로 으뜸이라는 조인조차도 뛰어넘은 전공. 조조도 그녀가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단기간에 이만한 전공을 세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복양에서는 전호, 태산에서는 진소연인가.”
나쁘지 않았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이번 연주 내 토벌전에서 진소연 계파가 너무 큰 공을 몰아서 세웠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확실히 조정이 필요했다.
두 사람 모두 예상 이상의 전공을 세웠으니 마땅히 그에 합당한 예우는 해주나, 조금은 견제할 필요를 느꼈다.
단지 지금 당장은 그들을 한직으로 미룰 수도 없는 것.
“진소연에게 따로 파발을 보내도록. 태산 일대의 적을 토벌하는 즉시 군을 남하하여 임성군 항부현 일대로 이동할 것을 명하라.”
“응? 제북상을 기다린다더니?”
“그쯤이면 제북상도 본인에게 엎드릴 것이다.”
아마 길어도 보름 이내로 제북상은 자신을 찾으리라고 그녀는 내다보았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군을 움직이며 황건적을 포위하는 형태로 군을 움직이는 게 맞았다.
진소연의 군은 경장 위주로 기동력이 빠르면서도 1년 넘게 전장에서 시간을 보낸 정예병이었다. 거기에 조운이라는 걸출한 맹장에 진소연 본인도 전체를 보는 식견을 길러가고 있는 지휘관.
부족할 것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동아현의 병력과 복양에 남은 전호의 병력을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녀는 지도를 바라보며 황건적이 주둔한 거점 몇인가를 꼽았다.
“제음군과 산양군. 두 군으로 황건적이 말머리를 돌렸을 것이니 복양에서는 제음으로, 아군은 그대로 남하하여 대야호를 돌아 산양으로 가는 것이 옳은가.”
제음군은 서쪽, 산양군은 동쪽으로 서로 맞붙은 군이었다.
그것을 남진한 복양의 군대가 대치하고, 마찬가지로 동아현의 본대가 남하하여 적의 위쪽에서 대치. 진소연의 군은 태산에서 남하하여 산양군의 동쪽에서 산양을 압박한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복양의 병력이 숫자가 적어 대치 이상의 성과를 요구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
“어차피 살길을 열어주기는 해야 하니….”
임성군 방면에 배치한 진소연의 군이 산양의 우측을 압박할 것이고 조조의 본대가 산양을 정면으로 부순다. 산양 일대의 황건적이 위험에 처하면 제음군 일대의 황건적도 산양으로 합류하겠지.
그렇다면 남은 잔당은 복양의 병력으로도 충분할 터.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계속 깃발을 옮겼다. 생각을 거듭하며, 더욱 완벽하게 적을 몰아낼 방법을 찾는다. 손톱을 세워 지도를 톡톡 두드리면서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지도에 그린 판도대로라면 적은 산양으로 몰릴 터. 제음은 전호의 군으로 잔당을 몰아낸다고 가정했을 때, 산양군의 군만 조조와 진소연이 격파할 수 있다면.
“동평을 거쳐 태산 방면을 통해 청주로 도망치겠군.”
이렇게 군을 배치할 경우 산양에서 태산 방면으로 향하는 북동쪽 길이 열린다. 그쪽을 통해서라면 자연스럽게 황건적 무리도 청주로 다시 퇴각할 수 있을 터.
“가능하다.”
단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조군이 황건적을 말 그대로 압도적인 기세로 한 번 이상은 이겨야 한다는 것.
“원양. 아군이 황건적에게 질 것 같은가?”
“숫자에 따라 다르겠지.”
그는 그리 말하며 잠시 침음을 흘렸다.
“뭐, 세배 차이까지는 이기지 않겠나?”
“그걸로 됐다.”
어차피 그녀의 군이 상대할 적은 산양에서 삐져나온 수만의 예봉이었다. 그것만 꺾으면 안 그래도 추위와 피로, 잦은 전투에 지친 황건적은 알아서 퇴각하리라 판단했다.
여기에 제북상이 이끄는 연주의 잔병까지 합친다면.
“이길 수 있겠군.”
그녀는 그리 말하며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웠다. 비록 연주 일대가 큰 피해를 보았지만, 어차피 멀쩡하게 전부 삼킬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동군의 태수에서 순식간에 연주의 주인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피해는 필요한 것.
“움직일 때가 왔다.”
원소는 최근 공손찬과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하북 일대의 판도를 바꾸었다.
비록 한 번의 승리로 공손찬이 고꾸라질 일도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북 최강자로 군림하던 공손찬도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라고 증명한 것.
그 남자는 결코 한 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건 조조 본인이었다.
원소는 이미 저 멀리 앞서 나가고 있었다. 이미 저 멀리 뒤처진 것을 다시 뒤집으려면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며 따라잡아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은 필요한 일.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그녀의 눈동자와 비슷한 핏빛으로 물든 세계. 저 눈밭을 붉게 물들인 핏물은 갈 곳 잃어 대지에 스며들겠지만, 그런데도 아직 모자랐다.
이번에는 황건적의 피를.
그들의 시체를 태산처럼 쌓아 그곳에 왕좌를 올린다.
한 주를 차지한다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천하의 향방을 놓는 쟁패를 벌일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그들의 피륙을 제물로 하여 제단을 쌓고, 그 위에서 천하의 향방을 가린다.
그녀는 그 핏빛처럼 새빨간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함박눈을 펑펑 쏟던 먹구름이 개어 푸른 하늘이 모습을 비쳤다.
창천의 하늘.
한나라의 상징이기도 한 것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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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일대에서 황건적의 보급이나 퇴로를 확보하던 군은 소연이 이끄는 군에 의해 얼추 정리가 끝났다. 총 다섯 번의 연전을 치르며 연달아 승리하니, 남은 황건적은 저마다 흩어져 도망가버렸다.
완벽한 승리라고 칭해도 좋을 것.
“조운, 피해는?”
“지금까지 누적된 사상자를 포함하여 삼백 정도는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후방에 있는 부상병은 겨울이라 빨리 낫질 않으니까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근 보름 내내 연달아 전투를 치르니 아무리 조운이라고 하더라도 진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군을 지휘하다가도 격전에선 직접 깃대를 쥐고 전장으로 달린 소연 역시 마찬가지인 일.
“피해가 조금 크네.”
“격파한 적의 숫자에 비해서는 약소하지만요.”
그간 그녀들이 군을 이끌고 무찌른 황건 도당의 무리만 여덟이 넘었다. 다섯 번의 전투로 여덟 무리의 황건적을 격파했으니, 그녀들이 총 무찌른 황건적의 숫자만 해도 일만이 넘었다.
“패잔병들은 전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으니 당분간은 태산 일대도 조금은 조용하겠네요.”
“잠시 병사들을 쉬게 해. 아마 며칠 후면 조조에게 연락이 올 거니까, 그때 진군할 수 있도록 체력을 비축해두는 게 좋을 거야.”
“조조가요?”
아직 전면적으로 황건적을 토벌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태산 일대의 전투를 연승가도를 달린 것도 대단한 공적인데, 그런 군에게 추가로 명령을 내린다니.
조운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마 조조는 이 기회에 아예 내륙까지 밀려온 황건적 전체를 물리칠 생각일 테니까.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황건적 전부를 뿔뿔이 흩어버릴 생각일 거야.”
역사에서도 청주발 황건적은 전부 토벌되지 않았다.
그것이 나중에는 조조에게 항복하여 청주병으로 자리매김하고 그녀에게 누구보다 큰 힘이 되었으니, 이번 전투에서 저들을 전부 궤멸시키려 들 리가 없었다.
물론 그럴만한 병력도 없었다.
“또 전쟁이네요.”
조운은 그리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연도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지금은 움직여야만 했다.
지금뿐일까. 앞으로 못해도 10년 내내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원소는 이길 수 없었다. 적어도 기주 일대는 전부 정복한 뒤에야 진정 위라는 구도가 성립하는 것.
불안요소는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역사보다 빠른 행보로 조조의 세력이 불어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는 어쩌고 있을까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복양 성주로 임명되었을 제 오라버니를 떠올렸다. 그 못난 사람이 벌써 성주라는 것이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그러면서도 못내 만날 수 없다는 게 조금은 그리웠다.
“그러게. 어떻게 전통 하나도 없을까.”
무심하기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손에 쥔 깃대를 내려놓았다.
손은 이미 핏물로 범벅된 것이, 조금 전 전투 직후의 영향으로 손이 떨리는 것을 억지로 힘을 줘 멈추며 고개를 들었다.
아직 코에는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전신이 피에 물든 것처럼, 아무리 씻어도 이 핏물이 풍기는 향기가 지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런 모습으로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조금, 쉬어둬.”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어붙은 흙이 바삭거리는 소리를 냈다.
얼마 전 눈이 와서 그런지 아직도 습기를 머금은 땅에 그녀의 엉덩이가 맞닿았다. 체온에 의해 녹아가는 땅에서 배어 나오는 물기가 조금 차갑게 느껴졌지만, 지금 당장 몸을 일으킬 힘도 없었다.
지쳤어.
그녀는 그리 중얼거리며 고개를 떨궜다.
조운은 그것을 지켜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간 그녀의 주군이자 제 오라버니의 주인인 소연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군을 지휘하고 직접 전선에 서며 세운 공적은 불과 얼마 전까지의 소연의 모습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인데, 정작 발전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전에 오라버니는 그녀에게 말했다.
바뀐다는 게, 발전한다는 게 진정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그 말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지금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진소연은 조금씩 엇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예상 이상으로, 살짝 눈밑이 거뭇하게 피로에 물든 모습은 초췌하다 싶을 정도였다.
“주군, 여기는 좀 차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쉬세요. 이러다가 고뿔이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고요.”
“조금만, 이대로 있을게.”
아직은 찬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너무 차가워서 그런지 조운은 등살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겨울바람이 이리도 차서 그럴까. 그래서 소연도 이리 지쳐버린 걸까.
그녀에게는 다소 어려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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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궁 일러스트도 외주 부탁드렸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개미인간님입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보내주신 쿠폰과 관심은 전부 캐릭터 일러스트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사마의 같은 경우에는... 조만간 돈이 생긴다면 반듯이...
풍족한 한가위 되시고, 모레 뵙겠습니다.
10.2일은 명절 이후의 정리로 휴재가 됩니다.
여러분도 한가위 잘 보내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