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97화 (97/343)

9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동군 전투 저 멀리서 기마병이 돌격하는 것이 보였다.

호세는 저 멀리서 싸우고 있을까. 시선을 돌려보면 흑산적의 측면을 돌파하는 호세의 기병대, 그리고 조운이 2군을 이끌고 정면에서 적을 막아 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군, 이 뒤는 어떻게 할까요.”

사마의가 나란히 서서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처음 동군에 발을 들인 이후로 한 달이 지났다.

왕굉은 과연 예상했던 대로 군을 이끌고 나왔다가 목숨을 잃었고, 아군은 다시 황하를 건너 흑산적의 토벌에 나섰다. 조조는 군을 두 갈래로 나누어 내가 이끌던 군과 자신이 이끄는 군으로 나누며 빠르게 흑산정의 토벌을 명한 것이 지금.

상황은 나쁠 것이 없었다.

“일단 본대는 대기. 상황을 지켜봐야 해.”

보병끼리 얽혀 싸우는 지역은 가도였는데 그 폭이 다소 협소했다. 구태여 아군 본대까지 밀어 넣어 지휘에 혼선을 끼칠 바에는 아군 장수의 역량을 믿는 것이 나았다.

저 멀리에서는 미리 빙 돌아갔던 호세가 성공적으로 적 측면을 말 그대로 분쇄하고 있었다. 과거 무력 78이던 장수는 어디로 갔던가.

그 눈 내리던 산에서 만났던 우리.

많은 게 바뀌었다.

막 이 세계에 떨어진 나와 조그마한 산적 패거리의 두령이었던 호세. 조운도 그랬고, 방삼도 그건 마찬가지. 여기에 사마의까지 포함해 모두 시작은 달랐지만, 어느덧 하나로 모여 군을 지휘하는 이들이 되었다.

“두 장군 모두 나쁘지 않네요.”

“나쁘지만 않아?”

그 말에 사마의가 픽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고예요. 이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전과죠. 아저씨야 진즉에 본 것이 있으니 알았지만, 조운 장군도 어디서 밀린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는 장수네요.”

다시 황하를 건너고 지금까지 총 세 번의 전투가 있었다. 흑산적은 왕굉을 죽인 뒤로 동군을 약탈하기 시작하여 저마다 뭉치지 못했고, 그것을 각개격파하며 군을 이끄니 꽤 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전승.

말 그대로 압승에 가까운 전과를 올렸다.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전장에서 부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선 두 장수 모두 어디 다치는 것이 힘들 정도인데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아군은 기존에 도적을 규합하여 뭉친 군체였다. 그것에 규율을 입히고 정규군의 형태로 전환하여 그것을 조운과 호세가 이끈다.

기존에도 전투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전술이라는 색채를 물들여 그걸 최고위급 장군들이 이끌게 하는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었다.

“이걸로 끝내야지.”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소모했다.

조조에겐 당장 시간이 모자랐다. 연주까지는 집어삼키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 선에 섰다고 말할 수 있는바, 지금 원소가 공손찬과 흑산적에게 발목을 잡힌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서는 안 됐다.

“그나저나 주군도 이런 전략을 생각해내시네요.”

사마의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전략이라고 해도 군을 나누어 현대 전술 교리에서도 전해지는 망치와 모루, 조운의 보병대를 모루로 두고 호세의 기병대를 망치로 하여 적을 두드린다는 기본적인 전술이었다.

이건 전략이라고 말할 이유도 없을 건데.

“설마 동군을 방치할 줄은 몰랐어요.”

소녀는 그리 말하며 미소를, 조금은 비웃는다는 느낌마저 드는 웃음을 짓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보랏빛 눈동자가 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설명했을 텐데. 왕굉이 아군을 거절했으니, 아군은 우선 북상하여 만약에라도 넘어올 흑산적에 대비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바꾼다고.”

“그런 변명에 넘어가는 건 아저씨 정도일 걸요?”

그 사람은 당신을 의심할 줄 모른다면서 소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조금 신경이 쓰여서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손에 쥔 지휘봉이 파르르 떨렸다.

“…불만이니?”

“설마요. 가장 완벽한 계책이라고 생각했는걸요? 가장 방해되는 것을 치우면서 구원자로 군림할 수 있는, 조조가 동군을 잡음 하나 없이 차지할 가장 완벽한 계략이잖아요.”

그러면 왜 그런 말을 꺼내는 거야.

장차 게임 내에서 스테이터스로는 조조와 비견될 최상위급 책사. 그래서 그런지 이 어린 소녀의 행동거지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는 만족해요. 행동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구태여 멈출 이유가 없죠. 빠르고 확실하게, 피해조차 최소화한 전략에 딴지를 거는 건 멍청이일 걸요?”

소녀는 그리 말하며 짐짓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있잖아요. 아군에 멍청이가 한 명.”

누굴 말하는 건지는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마의가 어떤 의도로 말하는 건지도. 이 소녀는 온현에 있을 적부터 유독 호세를 잘 따르는 아이였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한 달간 흑산적을 방치하면서 동군은 사실상 그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당장 군을 이끌고 진격하면서 폐허가 된 고을을 몇이나 봤던가.

사마의는 그것을 꼬집고 있었다.

“너라면 어떻게 했겠니.”

“저라도 당연히 이렇게 했겠죠. 가장 빠르고 간편한 길을 놔두고 구태여 돌아갈 이유가 없잖아요?”

돌아갈 이유가 없다.

나도 그리 생각했지만, 그 이전에 이 소녀의 머리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그걸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정작 같은 행동을 취한 내가 그것을 지적해도 될까.

이미 흑산적과의 전투는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호세가 이끌던 기병대는 적의 측면을 관통하였고, 흐트러진 적의 대열을 조운이 이끄는 보병대가 덮친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마의의 말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둘러댔지만, 조금 돌아가는 방법을 취했다면 구태여 동군을 희생양으로 바치지 않아도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아군의 피해가 컸으니까. 게다가 부족한 시간을 쪼갤 수도 없었기에 이런 전략을 쓴 것.

후회하지는 않았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주변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으니까. 동군 병력이 흑산적과 전투를 치르며 전력을 깎아냈기에 이리 수월하게 전투를 마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는 건 위선이었다.

신조차도 못할 일을 현대인이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대인은 신이 아니었고, 상태창을 볼 줄 아는 정도로 모든 걸 해내겠다는 건 오만이었다.

“아저씨는 조금 답답한 구석이 있어요. 매번 인간적인 면모를 추구하느라 손해만 보고 살잖아요? 그런 면에서 주군이 이리 나서면 저야 만족이죠.”

소녀가 웃었다.

그것이 순수한 미소로 보이지 않는 건 내가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이번 전쟁으로 약탈당한, 죽어 나간 민간인의 피해는 상당했으니까.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해.

모든 이들을 구한다는 건 오만이고 위선이니까.

그게 한나라의 진소연이 정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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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치고는 다소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정원을 거닐고 있던 여인은 그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는 것을 한 손으로 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멀리 쌓여있던 낙엽이 또 흩어지는 모습은 장관이었으나, 다시금 그것을 정리해야 할 그녀에게는 고역일 뿐이었다.

“조조, 그 사람이 동군을.”

그녀는 며칠 전에 왔던 서신을 떠올렸다.

한때 연이 있었던 여자에게서 온 서신. 자신이 동군을 잡을 터이니, 다시 한 번 일을 같이하지 않겠느냐는 다소 뜻밖의 제안.

그녀는 아직 거기에 답하지 못했다.

조조.

영웅이었다. 황건적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 십상시를 토벌했다. 게다가 동탁에게서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아 성공이 약속되었음에도 그를 암살하려 했던 여자.

그것이 실패하니 각지에 전문을 돌리어 반동탁 연합군을 결성하는 포석을 닦고, 모두가 주저할 때 마지막까지 동탁을 추격하려 했던 인물.

그렇지만 조금 찝찝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도 여백사를 죽이던 조조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의형제라며 그리 극진하던 이를 의심하여 죽인 일.

그것에 어쩔 수 없이 동조했던 그녀에게는 아직도 조조라는 인간이 영웅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영웅이라 불렀다.

영웅 조조가 진궁 선생이라며 극진하게 장문의 글을 보내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조금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영웅 조조.

그렇지만 진궁은 그녀를 영웅이라 부르기를 망설였다.

진궁이 보기에 조조라는 인물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뭐든 짓밟고 나아갈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세상에서는 그것도 영웅의 모습이라고 부른다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것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밑을 돌보지 못하는 자에게 영웅이라는 말은 다소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자기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확실히 출사하고자 한다면 조조라는 선택지는 썩 나쁘지 않았다. 그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기도 했다.

망설임이 생겼다.

“참 푸르네, 하늘도.”

진궁은 작게 혼잣말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은 여지없이 푸르르고 높았다. 맑디맑은 그것은 말 그대로 창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

한나라의 상징인 창천은 오늘도 푸르고 맑았다.

“조조를 주군으로 삼는다면.”

그러하면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동군의 태수로 부임한다면 분명 공손찬과 우호 관계인 연주자사 유대와 갈등을 빚게 된다. 원소가 아직 공손찬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조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내심 갈등하면서도 이미 조조를 주군으로 삼은 뒤의 일을 그리고 있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쥔 빗자루를 내려놓았다.

여백사의 일은 분명 최악이었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천하에 조조만한 의인도 드물었다. 그것에만큼은 진궁 본인도 동의하는바, 그렇다면 다시금 그녀를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짐도 싸야겠네.”

다소 바빠지겠다며 진궁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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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군에서의 모든 전투는 막을 내렸다.

조조의 군은 성공적으로 동군까지 침입했던 모든 흑산적을 격파. 진소연 역시 별동대를 이끌면서 각지로 흩어진 흑산적의 잔당 세력을 성공적으로 물리치면서 조조는 드디어 동군에서의 입지를 완벽히 다질 수 있었다.

동군의 만인이 조조를 지지했다.

동군태수는 이미 죽고 없는 상황에서 동군의 관병들은 흑산적에게 패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반전시킨 조조는 그들에게 있어서 구세주나 마찬가지인 것.

“우습지 않은가?”

조조의 질문에 소연은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딱히 질문에 답을 원한 것도 아니었던 조조는 고개를 돌렸다. 가는 길마다 동군의 백성들이 꽃을 흔들거나 던지면서 아군을 찬양한다.

자신들의 피해를 나 몰라라 버려둔 것인데도 그것을 모르는 백성들은 그들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며 기뻐하고 있었다.

“연주자사 유대는 공손찬을 지지하는 이. 그러니 원소는 본인을 동군의 태수로 삼는 상소를 올리고 이 지역을 맡기겠지.”

“그렇겠죠.”

“그대가 그리 말하던 영지가 생기는 것이다.”

소연은 조조에게 가담하기로 결심을 굳힌 날부터 계속 조조에게 빠르게 행동할 것을 권고했다. 조조 당사자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조바심을 내던 소연이었는데, 정작 동군을 얻었음에도 그녀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아직도 갈등하는가?”

“이미 마음은 굳혔어요.”

저 멀리서는 호세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방삼이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있으며, 조운은 그런 그에게 칠칠치 못하다며 구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할 터였다.

자신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소연은 본인을 다잡았다. 현 체제를 부수기 위해서는 피해도 따르는 법.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평정하여 피해를 끝내는 것만이 그녀가 과거 호세에게 했던 약속을 실천할 유일한 길이었다.

“언제까지나 이상을 논할 수는 없으니까요.”

최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일을 끝마쳐야만 했다. 소연은 그것만이 세계에 평화를, 그에게 말했던 이상을 실현할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처음 보았던 그대와는 영 딴판이다마는.”

“마음에 안 드시나요?”

조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들 리가.”

그녀 본인도 자신의 이상을 꺾었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소연의 말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행군하는 아군 주변에는 동군의 백성이 군중을 이루며 아군에게 환호하고 있었다. 꽃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고, 병사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이도 있었다.

소연은 눈을 감았다.

그런 풍경은 그녀에게 있어 가시와도 같은 것.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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