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93화 (93/343)

9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전호, 그리고 호세 오기는 싫었다.

그렇지만 와야만 했던 곳.

전풍의 집은 조금 작은 장원을 꾸리고 있었다. 본적이 거록이라고 들었으니, 아마 원소에게 종사하면서 적당한 장원을 구한 것이 아닐까.

시종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자니 저 멀리서부터 소녀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키는 사마의보다 조금 큰 정도.

그래 봐야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었을 뿐인 여아였다.

“흥.”

그 소녀는 콧방귀를 뀌면서 이쪽을 한 번 흘기고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뭐야, 저건.”

“전풍 어르신의 따님이십니다.”

그는 그리 말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저런 딸도 있었구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그가 다른 부인에게서 딸을 하나 얻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흐릿한 기억으로나마 어린 아기의 손을 잡았던 기억이 났다. 아기의 옹알거림이 신기해서, 동생이 생겼다는 것이 즐거워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에 불과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니, 시종이 한 방앞에 서서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식탁이 있고 음식이 나열된 것을 보아 여기인가.

전풍은 가장 상석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와라.”

“예.”

적당히 답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전풍은 그런 나를 보더니 손짓으로 빈자리 하나를 가리켰는데, 그 앞에는 적당한 상차림이 놓여 있었다.

“갑작스럽구나. 올 줄 알았더라면 미리 상차림에 신경을 쓰는 것인데.”

“됐습니다. 식사는 조금 내키지 않네요.”

게다가 이 이상 과하게 차려 봐야 체하기밖에 더할까. 안 그래도 이 방에 들어선 이후로 쭉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턱도 없지.

“안 드느냐?”

“식사는 하고 왔는지라.”

이런 자리에서 식사? 예의상으로라도 한 수저 들고 싶었지만, 정말 농담이 아니라 체할 것만 같아서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그도 그 이상 권하지는 않았다.

“그래, 갑자기 방문하였으면서 식사도 거절하는 걸 보면 무언가 할 얘기가 있는 것이지?”

빼빼 마른 손이 눈에 들어왔다.

전풍도 식기에서 손을 놓고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소 왜소한 체격이지만, 그 이상으로 무언가 압박감이 느껴지는 사람.

이런 사람이었던가. 내 기억에는 조금 더 근육이 있고 체격도 큰 사람으로 남았었는데, 어릴 적의 기억이라 그런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저 마른 손가락에서 시선을 돌렸다.

“저 업 떠납니다. 그걸 이르고자 왔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위에 올려진 식기가 그 충격에 떨면서 저마다 소리를 내는 것이 조금 청아하게 들렸다.

놋쇠라서 그런가.

그런 쓰잘머리 없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무슨 헛소리냐.”

“헛소리가 아닙니다.”

전풍의 시선을 정면에서 마주했다. 갈색 눈동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그 위로는 살짝 희끗희끗하게 흰머리가 자란 회색 머리카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런 말을 하러 왔느냐.”

“예. 이번에 공손찬이 움직이고 원술이 움직입니다. 그 기회를 흑산적 놈들이 놓칠 리도 없지요. 그 토벌에 나설까 합니다.”

“……조조냐, 진소연이냐.”

그는 그리 말하며 눈을 치켜떴다. 명백하게 노기를 품은 모습으로 노려보는데, 단박에 누구의 명령인지부터 확인하는 태도가 제법 인상적이었다.

제법 날카로운 부분이 있는 남자였다.

“두 분 모두의 의향이지요.”

“…합리적이기는 하다. 어차피 그들은 원소군에서도 겉도는 이들. 차라리 그들이 먼저 흑산적에 대처해준다면, 원공께서도 다소 움직이기 쉬워지겠군.”

딱 거기까지 말하고는 픽 웃는다.

“그래, 조조가 바라는 게 무엇이더냐?”

“아무것도요.”

“바라는 것이 없는 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원소군의 중추에 파고들 생각도 않으면서 군을 유지하는 것이 의아하다 싶었는데, 원정을 나가겠다?”

전풍은 그 말을 끝마치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조금씩 웃음기는 크기를 더해가더니, 이내 끌끌하면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한동안 그리 반복해서 웃었을까.

“크흐흐흐, 우습구나. 아주 우스워.”

그는 어느새 웃음기를 싹 지워버렸다.

“조조는 제 세력을 가지는 것이 목표더냐.”

표정의 반전이 너무 격하지 않은가.

전풍은 조금 전까지 웃고 있었던 사람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표정을 굳히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주름진 얼굴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런 말도 필요 없다.”

그는 그리 말하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이번 준동은 규모가 다르다. 그들이 뭘 원하건 내 알 바는 없으나, 거기에 낀다는 것만은 반대다. 넌 남아라.”

너무 칼같이 끊는 분위기에 어이가 없었다.

이 아저씨는 아무래도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딱히 그의 동의를 구하러 온 것도 아니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었다.

“이건 통보입니다. 그냥 이렇게 되었다고 알려드리고자 왔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시지요.”

아가씨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에 왔을 뿐이었다.

적어도 언젠가 그와 적으로 마주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기다리게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어 그걸 전하러 왔을 뿐.

허가를 받고자 온 것이 아니었다.

“가면 죽는다. 흑산적이 우습게 보이던가?”

“그런 당신은 저희가 우습게 보이시는지?”

고작 도적이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흑산적은 분명 그 세력이 컸고, 황건적이 대두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쭉 전란을 겪으며 경험을 쌓은 강병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아군도 마찬가지였다.

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이가 없구나. 조조인지 진소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입지를 키우겠다고 불나방이 날아드는 꼬락서니인 것을. 혹여 그 애처로운 몸짓에 호기심이라도 동했느냐?”

“그 정도로 어린아이는 아닌지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탁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면!!”

저 얇은 팔뚝에서도 이런 힘이 나오던가. 내 앞에 놓였던 상차림마저 흐트러질 정도로 센 힘으로 탁자를 내리친 전풍이 콧김을 내뿜으며 시선을 건넸다.

“왜 죽을 길을 고르느냐?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철부지도 아닐 터. 쉬운 길을 놔두고 왜 구태여 어려운 길을 택해, 왜!!”

구태여 답하지는 않았다.

설명할 재간도 없었을뿐더러, 내 이유를 설명한다고 해서 그가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한결같이 내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고, 반대로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완벽한 수평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만 일어나지요.”

내 용건은 모두 끝났다. 더 할 말도 없었고, 한다고 하더라도 상호간의 대화가 이어지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이런 결말이었다.

그래도 아가씨가 말했던 부분은 지킬 수 있었다. 적어도 나를 가족이라고 떠들던 이들에게 내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어긋났던 관계였다.

엇갈림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풍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구태여 그에게 말을 걸 이유가 없으니,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려 바깥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호세라고 자칭하고 다닌다지.”

등 뒤로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예.”

“멍청한 것.”

얼굴을 보지 못하여 그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분명 조롱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호랑이의 기세? 멍청하기는. 네 이름의 호는 범을 뜻하는 호가 아니라 맑다는 의미로 맑을 호. 그리하여 전호다.”

“그랬수?”

“앞으로는 전호라고 자칭하고 다녀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언가가 내 등 뒤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호패가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이, 전풍이 손을 뻗은 모습이 보였다.

“군의 지휘관이라는 놈이 언제까지 성도 없이 살 생각이더냐. 가문을 이용해라. 적어도 이름은 가져가라.”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패를 쥐었다.

전호.

자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히 전씨 가문임을 증명하는 호패였다. 이름의 뒤가 텅 빈 것이 다소 신경이 쓰였다. 나중에 따로 호세라고 적어둘까.

전호 호세.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아직은 전호라 자칭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언젠가는 군의 규모가 커질 터. 점점 세력이 불어난다면 호세라는 이름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감사히 받겠수다.”

어느 순간부터 경칭이 생략되었으나 그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품에 넣은 호패의 묵직함이 묘하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감사하면 네 주인에게 일러라. 세력을 가꿈은 좋으나 결코 원공에게 대적할 생각하지 말라고 전해. 그는 앞으로 더욱 거대해질 터. 욕심을 부림은 좋으나 과욕은 제 목을 죌 거다.”

“원공은 공손찬부터 이기고 오셔야지.”

그러니 그가 픽 웃었다.

“공손찬? 이미 유주자사에게도 경원시 당하고 있는 그를 이르느냐? 힘은 있으나 쓸 곳을 모르니 백성에게도 원성이 자자한 무지렁이가 원공을 당할 수 있겠느냐.”

전풍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수저를 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밥이 넘어가나 싶어 어이도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태연자약한 모습이 어울리는 남자이기도 했다. 우습지만, 나는 저 사람의 저런 모습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나도 전해야만 하겠지.

“그러면 나도 한마디만 합시다.”

전풍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수저를 들며 식사를 이어갈 뿐. 그러나 귀는 열려있으니 내 말이 전해지지 않을 리도 없었다.

“내 적이 되지는 마시오.”

발걸음을 옮겼다.

삐걱대는 문을 열어젖히며 뒤를 돌아보았다.

“댁을 죽이면 잠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아.”

전풍은 마지막까지 답하지 않았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전했다. 별도로 사견을 나눌 정도로 교분이 쌓인 것도 아니니, 그 외에 다른 대화가 오갈 리도 없었다.

“건강하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 * *

191년 8월.

가을이 시작될 무렵, 아군은 군을 이끌고 업에서 출정을 나섰다. 목표는 위군에서 날뛰는 흑산적의 제압.

그러나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 미리 황하를 건너 연주 방면으로 향했을 제 동포와 합류하고자 빠르게 기주 땅에서 벗어났다.

사실상 아군이 놔준 것들이었다.

이걸로 아군은 합법적으로 동군을 향해 전진할 명분을 얻었다. 기본적으로 연주는 낙양 바로 옆에 있던 주. 그렇기에 무보다는 문을 중시하는 이들이 많았고, 다른 지방에 비해 병력의 숫자도 적은 편이었다.

“되었다.”

조조는 그 검은 망토를 흩날리며 멀어져가는 흑산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겁만 주어 일부러 연주 땅으로 몰아넣는 계책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호세…, 아니지. 이젠 전호라고 해야 하나?”

“아무렇게나 부르쇼.”

이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도 전호라고 불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불리고 자칭하며 전호라는 이름을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럼 호세라 부르지. 황하를 건너는 순간부터 그대는 따로 기병대를 이끌고 움직여주어야만 한다. 가능하겠나?”

“몇이나 달고?”

“오백.”

오백의 기병 무리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아군에 포진한 기병 숫자가 천을 넘기지 못하니, 반절 이상을 전부 내게 주겠다는 것인데.

“그걸로 뭘 하라고?”

“그대의 기병은 나름 볼만했지. 우리 조인보다도 나음이 있었다. 그 돌파력을 살려, 단번에 복양을 포위한 흑산적을 찢어주었으면 한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에서는 성공적으로 적을 황하 건너까지 몰아냈던 아군이 본대로 합류하고 있었다. 저 멀리에 아가씨의 대장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보였다.

“불가능하진 않지.”

“그럼 그대에게 맡기지.”

그래도 기병이라는 고급 인력을 맡기면서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것은 조금 어떨까 싶었다. 나름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나쁘지는 않았지만.

“괜찮겠수?”

원래 우리가 데리고 있던 기병은 백기. 그것도 저번 전투에서 여럿 상해 이제는 그조차도 못 되는 소수였다. 당연히 나머지는 전부 조조 측 병력일 것인데, 아무래도 너무 쉽게 맡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를 믿는다.”

신뢰라는 건 가끔 무섭기도 하다.

그걸 새삼 느끼며 황하를 바라보았다.

저 건너편이 연주 동군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향할 전쟁터이며, 과거 한 차례 경험했던 흑산적과 다시금 맞붙을 전장.

“긴장되는가?”

“조금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전장을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 건 머저리, 혹은 이미 망가져 버린 정신병자 중 하나였다. 눈먼 화살 하나 잘못 맞아도 죽는 것이 전장인데 긴장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대라면 괜찮다. 청강이 그대의 허리춤에 있는 이상, 이 조조의 기도가 그대에게 닿는 이상 죽을 리도 없을 터.”

“기도? 천지신명 같은 걸 믿고 있었소?”

도무지 그런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뭐라고 할까, 내가 보는 조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자기 자신만을 믿을 것 같은 여장부의 느낌이 있었다.

그 말이 우스웠는지 그녀가 픽 웃었다.

“믿었었다.”

그것이 왜 과거형인지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저 멀리에서는 황하의 강물이 출렁이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배도 곧 수색하는 족족 이곳으로 도착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후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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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의 일러스트와 조운의 일러스트는 각각 제작 단계에 있습니다! 식사가 조금 조촐해졌지만, 그래도 퀄리티가 워낙 두 분 모두 훌륭하셔서 기쁩니다!

전풍과 전호는 다소 애매한 관계입니다.

그들은 조금 더 자주 만났어야 했어요.

tom0131님의 질문에 답하자면, 쬬아가는 키가 작아서 아이같은 잔인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가는 아가니까요...

타이그니님의 질문에 답하자면, 진궁은 현재 연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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