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91화 (91/343)

91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전호, 그리고 호세 그 뒤로 별다른 일은 없었다.

몇 번인가 전풍이 보낸 사람이 오기야 했으나, 기껏해야 밥이나 한 끼 같이 하자는 목적. 당연히 응할 이유가 없기에 돌려보냈다.

아가씨는 별말 하지 않았다.

전풍이 그런 식으로 말을 꺼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적 제의라도 보아도 무방한 것을, 아가씨는 네가 약속을 먼저 깰 리가 없다며 시원하게 웃어넘겼다.

물론 다른 이들도 그 얘기를 전해 들었다.

방삼이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수준. 사실 출생의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고, 기구한 인생이란 것은 천하에 널리고 널린 일이었다.

운이도 마찬가지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구태여 숨긴 것은 아니나 반응이 이렇게들 시원스러우면 조금 얼떨떨한 느낌도 있었다. 물론 이 일로 시선을 달리하고 보라는 건 아니었지만, 다들 생각보다 너무 시원스레 넘기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도 참 기구하네요.”

사마의 역시도 적당히 흘려넘기는 것은 마찬가지.

마침 짐을 옮기는 것을 부탁하고 싶다기에 따라가던 차에 소녀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뭐, 그렇지.”

세상에 기구하지 않은 삶이 몇이나 되겠나. 어떤 의미로 보면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를 따라오는 사마의의 인생도 제법 기구한 것이었다.

말로는 사마 가문과 아가씨를 잇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종종 사마의의 언행을 보면 사마 가문을 썩 좋아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신을 군과 거래하여 팔았다고 증오하는 걸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는데.

“아저씨는 정말로 문관이 되긴 싫은 거죠?”

“그렇다니까.”

얘도 참. 혹시 사마의는 내가 문관이 되는 것을 바라기라도 했을까? 분명 저번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을 때 일축했던 기억이 있는데.

“뭐냐. 내가 문관 하러 떠나는 걸 바라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조금 슬플 것 같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법 친근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상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그런 거 견딜 수 없었다. 그 슬픔과 약간의 배신감을 주먹에 담아 당장에라도 이 꼬마의 양 관자놀이를 꾹 눌러버릴 의향은 충분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소녀는 손사래를 쳤다.

“그런 재미없는 전개를 제가 바랄 리가요.”

“아니, 사람 잘 되는 걸 재미없다는 건 좀.”

너 인성 괜찮아? 어디 아픈 거 아니니?

진즉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참 골때리는 계집애다. 그것이 못내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니 소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런 게 아닌 건 알잖아요? 당장 자기 주군에게 눈이 멀었으면서, 그딴 한미한 문관 자리에 앉았다고 아저씨가 행복해질 거 같아요?”

“아니기는 하지.”

어차피 받아들일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전풍은 말했다.

칼은 잠깐의 정복을 이루고 붓은 백 년의 역사를 통치한다.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문관이었다. 실제로 다스림을 행하는 것은 붓을 쥔 이였고, 무관은 기본적으로 검으로 그 기반을 닦는 이들에 불과했다.

백정이라 불려도 큰 틀림은 없겠지.

언젠가 칼을 내려놓아야 할 날이 온다.

그렇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계속 나아가야만 할 때지, 결코 현실에 안주하여 주저앉을 시기가 아니다.

“그런 시시한 짓, 설마 진짜로 의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가 용서 안 해요. 아저씨가 그딴 시시한 사람으로 전락하다니,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올 지경이야.”

“거참. 지도 붓 쥐고 있는 주제에.”

물론 그런 의미로 시시하다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소녀의 과민반응이 웃겨 손을 뻗어 그 보랏빛 머리카락을 거칠게 흩뜨렸다.

“아으, 머리 정리한 건데!”

“내가 정리한 건 아니라서.”

그러니 사마의가 또 그 고사리만 한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고 내 옆구리를 툭툭 친다. 아프지는 않지만 조금 간지러웠다.

“쯧, 하여간 두고 봐요.”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웠던 사람이 딱히 없어서, 그래서 그냥 웃어주고는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왼손으로 들고 있는 이 상자, 죽간이랑 서적이 담긴 것 같았는데도 생각보다 제법 묵직해서 손이 아려왔다.

“그런데 전가와는 아예 연을 끊을 생각인가요?”

그 말에 시선을 돌리니 사마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꼬는 거라면 꿀밤이라도 한 대 놓아줄까 했는데 그런 투는 아니었다.

“연이고 자시고,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쪽은 아들이라고 한다며요?”

“멋대로 그러는 거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마는, 구태여 내가 그 놀음에 놀아날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홀로 살아왔는데 그들과 연을 맺어 무슨 득이 있겠는가.

“도움은 될 거 같은데요.”

사마의는 그리 말하며 내 허리에 손을 얹었다.

“전가라면 기주 내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가문이에요. 비록 지금이야 세도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원소의 득세로 다시 권세를 되찾을 건데요.”

“아서라.”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아가씨가 만약 기주에서의 세력을 확장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내게 전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 악물고 가서 비빌 용의는 있었다.

정말 싫지만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알겠다고만 했다. 딱히 전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게 정말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내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아저씨에게는 분명 힘이 될 건데요. 적어도 호족 가문의 적자라고 한다면, 어느 부분 무시당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무관에게 그 개인의 세력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아가씨가 날 지지하고 있는 동안에 이 군에서 내 세력이라는 것은 필요치 않았다.

“뭐, 아저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생각보다 순순히 받아들이네.”

이에 사마의가 다소 싱글거리며 웃었다.

“그야 주인공은 밑바닥이 어울리니까.”

주인공.

얘기의 줄기를 이어보면 그건 나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 소녀는 나를 가리켜 주인공이라 칭하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모든 걸 가진 사람은 재미가 없어요. 처음부터 완벽한 인간? 거기에 무슨 흥미가 동할까요. 안 그래요?”

이걸 동의하느냐고 묻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물론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조금 아니꼬운 면이 있었다. 완벽한 인간은 내가 생각해도 다소 거리낌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오는 것도 좋아요. 아저씨는 제가 가꾸어드릴 테니까. 부족하고 모자란 주인공이 아득바득 운명에 저항하며 성장하는 이야기, 꽤 취향이거든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아서라. 현실을 무슨 소설 보듯이 보냐? 그거 병이다.”

“그럼 저는 옛날부터 병인가 보죠.”

하여간 한 마디도 안 지려는 부분이 어린애 같다는 건데, 이 소녀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옛날부터 느낀 건데 이 꼬마도 조금 맛이 갔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하여간 맛 간 꼬맹이.”

“천재는 원래 범인의 이해를 얻지 못하는 법이죠.”

원래 천재라는 것이 다 이런 부류의 인간이라면 아무래도 난 영 천재와는 친하게 지내지 못할 것 같았다. 사마의 하나로도 이렇게 피곤한데, 이게 서넛 이상이 모여서 빽빽 떠든다고?

어우 시발.

그런 현실은 감당할 수 없었다.

“뭐, 사실 어차피 곧 동군으로 원정을 떠나야 할 거니까, 아마 떠난 뒤로는 당분간 전가와 엮일 일도 없을걸요? 적당히 참고 계세요.”

“동군이라.”

가면 앞으로 또 전쟁의 연속이겠지.

흑산적이 최근에 연주 동군 인근과 기주 방면에서 자꾸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아마 조조와 아가씨는 그 시기를 노려 동군에 자리를 잡으려 들 터.

“쉬는 날은 다 갔구만.”

그걸 생각하면 다소 한숨이 나왔다.

“무인이 전쟁을 껄끄러워하면 어떡해요?”

“멍청이. 네가 그러니까 꼬마라는 거야.”

전쟁은 껄끄럽기 이전에 두려워해야만 하는 법이었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누군가가 죽는다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게 인간성이라는 것이었다.

“전 아직 잘 모르겠네요.”

“조금만 더 크면 알게 될 거다.”

그러니 사마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소녀는 앞으로도 더 많은 커야만 했다. 가끔 어린아이의 잔혹함은 순수한 만큼 더욱 무서운 부분이 있었다.

아직은 인명의 소중함을, 타인을 배려한다는 걸 모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것이 커서도 계속된다면 곤란했다.

“알겠어요. 하여간 잔소리는.”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응? 조막만 한 계집애가 말이야. 이런 오빠 마음을 네가 알기나 하겠냐?”

“하여간 아저씨가 주책이야.”

그리 말하며 소녀는 그 종종걸음을 서두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가끔 보이는 사마의의 무심한 모습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잔혹함일까.

가끔 사마의는 인명이라거나 타인에 대해 차가울 정도로 무심해질 때가 있었다. 그런 부분은 조금 신경을 써줘야만 한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아저씨? 안 따라와요?”

“…금방 간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저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자면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똑똑한 아이니까, 점점 커가면서 배워나갈 수도 있겠지.

게다가 언제 다시 사마 가문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런 부분에서 잔소리한다고 어떻게 변할 거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곧 전쟁은 다시 벌어질 터였다.

아가씨가 말하길 이번 동군 전투를 시작으로 아군이 자리를 잡을 거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전투가 있을 것이고, 점점 천하에서도 격한 전투가 연달아 벌어질 거라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저씨! 좀 빨리 걸어봐요.”

“알았다고. 거참, 재촉하기는.”

소녀의 재촉에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계절은 한창 뜨거운 여름이 되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이 따갑게 느껴져, 오른손을 이마에 얹어 햇빛을 막으며 고개를 들었다.

화창하던 날씨에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

“쉽지 않군.”

전풍은 책상에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양손으로 이마를 받치며 한숨을 내쉬는데, 그런다고 그 복잡하던 속내가 진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있어 근 한 달간은 즐거움과 슬픔, 안타까운 애절함이 공존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시간이었다.

“아버지, 걱정이 깊어 보여요.”

그의 곁에서 그 옆을 지키는 소녀가 한 명.

전풍은 애써 고개를 들어 딸을 바라보았다. 짙은 회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소녀. 아직은 어린 나이여도 언젠가는 전가의 일원이 될 자신의 딸.

“별거 아니란다.”

전풍은 애써 웃으며 그리 말했다.

딸에게는 이리 부드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어째서인지 전풍은 제 아들에게만 가면 언제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연스러움이라는 걸 잊은 사람처럼 언제나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것.

“그 사람 때문이죠?”

“네 오빠란다.”

그러니 소녀가 살짝 인상을 썼다.

“아직 본 적도 없는걸요.”

“네가 아주 어렸을 때, 너를 보면서 웃어주었단다. 자기에게도 동생이 생겼다면서, 그러면서 해맑게 웃던 아이였다.”

그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자면 전호는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피로 엮인 관계도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전풍은 그의 어미를 사랑했고 전호를 아꼈다.

그랬었던 것이.

“많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그는 너의 오라비다. 앞으로는 그 사람이 아니라 오라버니나 오빠라고 불러주어라.”

“그치만 그 사라, 오빠가 거절했잖아요?”

전풍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성난 모습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이를 꽉 깨물던 모습.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면서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던 전호의 모습은 아직도 그의 망막에 깊게 박혀있었다.

“이 애비가 조금 실수를 해서 그렇다.”

그리 말하며 전풍이 웃었다.

소녀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모르는 것이 없었고, 자신에게 언제나 따듯하게 대해주던 것이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저리도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 모르겠어요.”

그리 말하며 고개를 홱 돌리는 딸의 모습에 전풍이 쓰게 웃었다. 만약 그날, 자신에게 조금 더 힘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전풍에게 남은 유일한 회한.

“돌아올 거다. 그때는 웃으면서 받아주거라.”

걱정은 하지 않았다.

원소가 기주를 차지한 이상, 그리고 자신과 저수가 그 기주 토박이의 정점으로 우뚝 선 이상 원소는 자신들을 결코 경시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자리만 잡는다면.

“힘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뭔지 아느냐?”

아직 어린 딸에게는 다소 어려울 질문. 당연히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을 어물거리는 것을 본 전풍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바로 권력이란다.”

비틀린 미소.

전풍은 그가 언젠가는 전가의 이름을 받아들일 것을, 하여 이 가문으로 돌아올 것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 본인도 그랬었으니까.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오늘 몸상태가 영 좋지 못하여, 어떻게든 써보려고 했으나 완성된 것은 한 편 뿐입니다. 송구합니다. 내일 보충하여 업로드 하겠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PS_여포의 캐릭터 일러스트도 진행 중입니다!!

이번에는 팬아트 그려주셨던 개미인간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진심으로 많은 감사 드리는 바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