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전호, 그리고 호세 연은 이어지는 것인가.
구태여 이어질 필요도 없던 것이, 하필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이어질 것이 뭐람.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데, 정작 이런 말을 전하는 아가씨는 또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이제야 아가씨가 말을 머뭇거린 이유를 알겠다.
“그게 가문의 검이라고? 하이고 참나.”
그런 귀한 걸 왜 어머니 손에 있나? 귀물이면 알아서 잘 건사할 것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어디에건 팔아버리는 것인데.
“그는 전호가 자기 아들이라던데.”
“아들? 우습기는. 절대 아니요.”
애당초 나는 전 씨의 성을 쓸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의 아들이라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만큼은 그는 내 아비가 아니었다.
딱히 그에게 원한은 없었다.
예전에는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껄끄러운 상대일 뿐. 단지 왜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었는가만이 유일하게 거슬릴 뿐이었다.
“아들이 아니라고?”
아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풍은 아가씨에게 전호를, 이 나를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우스운 소리였다. 물론 그에게 원한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말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
“그치. 씨앗이 다른데 어떻게 아들인가?”
“…실수했네. 미안해.”
뭘 또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러나.
“별거 아냐. 신경 안 써도 돼. 이미 지난 일이니까.”
어머니에게는 어땠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별거 아니었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리라. 전풍에게도 다소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어머니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지, 나 개인만을 놓고 본다면 그저 그런 일에 불과했다.
“그냥, 치정에 얽힌 문제가 있었을 뿐이니까.”
전씨 가문에 시집을 온 어머니가 어느 날 괴한에게 강간을 당하였다. 그것을 어떻게든 쉬쉬하려 했으나, 결국 임신을 해버렸고 당시에 낙양에 있던 전풍은 그녀를 데리고 몇 년을 같이 살았지만 결국에는 내쫓았다.
몇 년이나 같이 살아준 것은 정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그 덕분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던 부분이었고, 설령 친 아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런 부분에서는 다소 감사의 인사를 표할 수도 있었다.
단지 나만을 내치면 될 것을 왜 어머니까지. 그런 원한은 조금 있었으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얼추 해소된 것.
물론 만나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아가씨가 그렇게 말하는 걸 봐서는….”
“검의 주인을 만나고 싶다더라.”
그럴 거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아가씨가 이리 어렵사리 말을 꺼낼 이유도 없었을 터. 내 사정 때문에 아가씨만 난처하게 된 꼴이었다.
“미안하게 됐소.”
“그건 신경 쓰지 말고.”
그녀는 그리 말하며 검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 전씨 가문의 검. 아가씨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행동을 결정하라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아가씨는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걸까.
하지만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냥 줘버리쇼. 검 주인은 죽었다고 해.”
“정말로 괜찮겠어?”
안 될 것이 뭐 있나. 사람 죽는 거 쉽다. 그냥 적당히 그 검의 주인은 죽었고, 적당한 이가 물려받았던 검이라고만 한다면 그만이 아닌가.
아가씨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는 살짝이나마 웃는 얼굴로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어머니에게는 죄송할 따름이지만, 전씨 가문의 검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을 것은 아니었다. 이게 맞았다. 유품 하나 지키지 못한 것은 죄송하나, 저것만큼은 아니었다.
얼추 이야기는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 의자를 뒤로 밀었을 때였다.
“누구 마음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적어도 익숙한 음색은 아니었다.
중후하게 낮은 음색의 목소리. 뭔가 굉장히 꼬장꼬장할 것만 같은 이미지가 순간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아가씨의 표정이 굳는 것을 보았다.
“전호냐.”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솔직히 말하면 등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아비에게 얼굴도 보이지 않을 참이더냐.”
“누가 아비라는 거요.”
그 말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 천하가 참 좁아.”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가 싶었더니, 저번에 방삼이와 함께 지나가던 차에 잠깐 보았던 중년의 문관이 거기에 서 있었다. 그 역시도 살짝 표정을 구기기는 마찬가지.
“너였느냐. 호세라던 남자가 전호, 너였구나.”
“누가 전호요.”
그런 이름 버린 지 오래였다.
애당초 전호라고 불릴 이유가 없는 것이, 어머니는 진즉에 돌아가셨다. 전풍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 내가 왜 전씨인가.
“소연 장군. 자리를 비켜주시겠소?”
“누구 마음대로.”
사실 이리도 거칠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소 삐딱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목소리에 날이 선 것이 느껴졌다.
해묵은 감정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지만 이건 그가 무례한 것도 있었다. 멋대로 얘기를 엿듣고서는 허락도 없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이 자리의 주인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니.
이건 전혀 예의가 아니기도 했다.
“호세.”
아가씨는 작게 읊조리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게 뭘 말하는지 알아먹지 못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었다.
“알겠수다.”
결국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는 전풍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종종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삐걱대는 경첩의 소리, 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문이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그였다.
“여태까지 뭘 하고 있었느냐.”
“그냥, 인생 살았지요.”
단둘이 남겨지니 말을 함부로 하기도 뭣하여 다시 존댓말로 변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지금이 식사 중이 아닌 것만이 유일한 위안거리인 것이, 만약 뭘 먹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바로 체했을 정도로 거북하기 그지없었다.
“그냥이라는 말은 없다.”
“거참, 꼬치꼬치 캐물으시는구만요.”
답하기는 쉬웠다.
전쟁터를 전전하며 무기를 잡고 전장을 굴렀다. 인간 백정 노릇을 하다가, 도적으로까지 전락하여 산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
간단하고 단순한 삶이었다.
그 삶에 구체적으로 묘사할 서사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답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어째서인지 입술이 채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닭살이 곤두서는 느낌. 긴장했을 때와 매우 흡사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또 그것과는 무언가 다른, 말로 설명하기 굉장히 모호한 기분이었다.
내 삶이 부끄러운가를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자부심을 느낄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도 없는 인생이었다. 누구나가 그렇게 사니까. 나도 아가씨와 만나기 전까진 그렇게 살았다.
아마 어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그러리라.
내가 그렇게 인간 백정 노릇이나 하고 살았다는 걸 말해서, 그래서 이 남자가 어머니에 대해 이상한 생각이라도 품는 것이 너무 싫어서. 그래서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되었다. 말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내뱉게 하는 것만큼 얼간이 같은 짓도 없지.”
그는 그리 말하고는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둘둘 말린 죽간.
“이게 뭡니까?”
전풍은 답하지 않았다. 직접 읽으라는 의사표명인 것 같아서 죽간을 묶은 실을 풀고 천천히 글씨를 읽어나갔다.
“글은 읽을 줄 아는구나.”
“대충은.”
“네가 어릴 적부터 머리는 좋았지.”
헛소리는.
계속 글씨를 읽어나가니, 죽간은 임명장이었다. 정확히는 업현의 승으로 임명한다는 문구. 승이라면 분명 관청에서 내부 기관을 관리하는 하위 문관이었다.
물론 그것도 현의 규모마다 달랐다. 업이라면 사실상 기주목의 처소가 있는 성의 관청에 등청하는 것이니 직급은 낮더라도 결코 나쁜 위치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이게 뭐요?”
“보면 알지 않느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턱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언제까지 칼이나 잡고 살 테냐. 내 그 정도의 관직을 마련할 힘은 있다. 거기에서부터 천천히 문관으로 시작해라.”
“이게 무슨 미친 소리요?”
전풍은 지금 내게 관직에 오르라고 하고 있었다. 아가씨도 아직 잡호장군의 패밖에 가지지 못했는데, 사실상 군정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유명무실한 것. 그것을 전풍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보고 관직에 오르라는 것은.
“아가씨를 버리라고?”
“누가 그리 말했느냐. 그저 언제까지 칼을 쥐고 살 수는 없지. 전가의 적자라면 응당 학문을 갈고닦으면서 지혜롭게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시발 지금 누가 전가의 적자야?”
탁자가 크게 울렸다.
위에 얹어졌던 것들이 흔들리면서 방 안에 둔탁한 타격음이 크게 울렸다. 주먹이 얼얼했지만, 그것보다도 지금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헛소리할 거면 꺼지쇼.”
“말이 험하구나.”
“어릴 적에 키워준 정을 봐서 대우를 해드리려 했더니만, 이런 미친 소리나 하고. 애당초 내가 왜 댁 자식이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것을 빤히 알면서 말이야.”
그는 그런 말을 듣고도 안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내 말이 모두 끝날 때까지 눈을 감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 태도가 오히려 사람을 더 열 받게 하는 것을 그는 알기나 할까?
“진소연을 따름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천천히 눈을 뜨는 전풍.
“요즘은 조조와 어울린다지. 그 둘 모두가 이미 중앙 권력에서는 다소 동떨어진 인물. 게다가 다들 군을 이끌고 칼이나 잡는 무관이 아니냐.”
“지금 무관 무시하오?”
“곁에 있는 힘이 당장 얼마나 거세다고 한들, 결국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붓이다. 그 칼이 잠깐의 정복을 이룬다면 붓은 백 년의 역사를 통치한다.”
전풍은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찾아오마. 좋은 대답을 기대하지.”
“내가 댁 아들이 될 일은 추호도 없을 건데.”
“바뀔 거다. 그 생각도 언젠가는 세월의 풍파에 꺾일 테지. 한순간의 미망은 짧으나 영광은 영원하다. 그걸 기억해라.”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제 할 말만 하고는, 게다가 임명장은 그대로 놓고 휙 떠나버렸다. 그는 당당하게 나를 아들이라 칭하며, 전호라고 부르면서 이런 쓰잘머리 없는 죽간이나 던져놓고 간 것인데.
“시발.”
죽간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밟았다.
한 번으로 부러지지 않는 것이 짜증 나서 몇 번이나. 그렇게 잘근잘근 짓밟고 또 짓밟아 겨우 산산이 부술 수 있었다.
“개 엿 같은 소리를.”
화가 확 치밀었다.
아들이라 부르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강압적인 태도는, 대놓고 전가로 포섭하려 드는 저 행동에는 무언가 꿍꿍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씨 가문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시발 소금 어딨어.”
그 귀한 것을 낭비하기에는 조금 아까웠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이 기분이 가실 것 같지를 않아 방안 샅샅이 뒤지면서 소금을 찾았다.
결국은 못 찾아서 더 화가 났다.
정말로, 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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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코로나도 조심하세요!!
특히 코로나는 조심하세요! 마스크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