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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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은 결국 양면에서 닥쳐오는 공세에 이겨내지 못하고 항복해버린 것인데, 결과적으로 그는 분위장군이라는 잡호장군에 명해졌으나 실권 없는 직책이었기에 사실상 은거 상태로 전락해버렸다.
그리고 아군의 경우에는.
“어머? 호세 동생.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
“조홍 장군.”
“얘도 참, 이제는 같은 식구인데. 응? 누나라고 불러보렴. 싹싹하게 굴면 누나가 용돈도 줄 수 있는 데에?”
조홍이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이 꼴을 보기 싫어서 어지간하면 조조의 세력권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을, 결국에는 붙잡히고 말았다.
“동생, 누이는 너무 슬프네? 이 부자 누이는 동생을 이리 어여삐 여기는데, 동생의 마음이랑은 조금 거리가 있나 봐?”
“아닙니다.”
“아이참, 적당히 말 놓으라고 했지.”
“싫습니다.”
잘못 말 놓으면 어떤 꼴을 겪을 줄 알고.
이렇듯, 아군은 업에 입성한 이후 조조군과 세력을 합쳤다. 사실상 병합되었다고 보아 무방한 것이, 아가씨는 그날 우리에게 그리 말했다.
앞으로는 조조를 따르겠다.
반대하는 사람은 거수하라고.
물론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내부적으로 잡음은 있었지만, 정작 우스운 것은 운이나 방삼이, 하다못해 사마의도 그러시라고 따랐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그 꼬마는 성깔머리를 봐 반대하지 않을까 했던 것이, 오히려 순순히 그것이 나을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야 뭐.
솔직히 대접도 안 해주는 원소보다야 계속 호의를 표했던 조조에게 가세하는 편이 다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긍정하는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리하여 같은 군이 된 것은 좋은데.
조가의 인간들, 하나같이 귀찮기 그지없었다.
“자렴.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냐?”
그 꼬락서니를 지켜보던 하후돈이 껄껄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괴롭히는 거로 보이면 말리면 될 것을, 저 양반은 꼭 말리지도 않을 거면서 말만 저런다.
“에이, 이게 무슨 괴롭힘이야. 그렇지?”
“그럼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당장 꺼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아군의 유지비 중 이 여자의 지분이 상당 부분 있었기에 그럴 수만도 없었다.
물론 원소가 급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조금 짜다. 그러다 보니 별도 운영비는 조홍의 사비에서 지급되고 있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당장 쌍욕을 쏘아붙일 건데.
“물주님 대접하는 게 조금 시원찮아. 응?”
“그럴 리가 있습니까요.”
본능적으로 손바닥이 비벼졌다.
아니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생계비의 일정 이상을 책임지는 부호님이 꼽을 주면 당연히 웃는 낯으로 비벼야지.
“오라버니.”
“…말하지 마라.”
지금까지 묵묵히 내 뒤를 지키고 있던 운이가 겨우 한 마디 꺼냈다. 평소의 호칭인데 왜 지금만큼은 촌철살인에 준하는 무언가로 느껴지는 걸까.
인생이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후흥, 나쁘지 않은 하루였어. 자, 이제 가봐. 언니가 부른 거지? 빨리 안 가면 언니가 불호령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붙잡은 것이 누군데.
“오라버니, 가요.”
이를 벅벅 갈고 싶을 때, 운이가 내 팔을 끌어안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말랑하게 팔에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상황.
“어휴, 나도 얼른 남자라도 만들든가 해야지.”
“자렴. 네 성질을 받아줄 남자가 얼마나 된다고. 어차피 눈만 높아서 죄다 걷어차던 그 악동은 어디로 가고?”
“어머. 원양이라면 난 괜찮은데?”
“꺼져라.”
뒤에서 들려오는 만담은 최대한 무시했다.
저런 거 신경 쓰면 안 된다. 잘못 말려들었다가는 시간을 잡아먹는 귀신이 되어 내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갈 악마였다.
그렇게 그들과 거리가 멀어진 뒤에야 운이는 내 팔에서 손을 풀었다. 따스하던 온기와 말랑하던 감촉이 떨어져 나간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오라버니는 여자한테 너무 물러요.”
운이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었다.
“틀려. 이건 물주한테 약한 거야.”
“거짓말. 어지간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오해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난 딱히 여자라고 하여 무언가 더 잘해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주변에 좀 어려운 여자가 많을 뿐이지, 딱히 여자에게만 수그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
“못 믿겠어요.”
그녀는 여전히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것이, 조금 전 붙잡혀 있었던 상황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분홍색 입술이 자기과시를 하며 매력적인 색을 비추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믿을래?”
“입마…, 아, 아니에요.”
말을 뭐라고 꺼내려는가 싶더니만, 이내 고개를 홱 돌리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충 예상이 가서 웃기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날 이후 그런 식으로의 접근을 자제하려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해해줘야지.
“야, 같이 가!!”
“오라버니가 느린 건데요.”
우스운 소리를. 당장 귓가가 살짝 빨개져서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게 빤히 보이는데.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이미 알몸도 다 보인 사이고.
물론 사람은 저마다 다른 것이니까.
“빨리 가는 건 좋은데, 너 혼자 먼저 도착해도 할 거 없지 않냐? 거기 분위기 되게 딱딱할 건데.”
“…윽.”
그러게 진작에 같이 갈 것이지.
* * *
“최대한 빠르게 원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해요.”
소연은 당당하게 지도를 가리키며 그리 말했다.
“이미 원소는 기주를 차지했어요. 아직 장악에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그것도 시간문제죠. 공손찬은 당장엔 움직일 수 없지만 언젠가는 움직이려 들 터. 지금이라도 벗어나지 않으면 수 년을 붙잡혀 있어야만 해요.”
“그렇지만 명분이 없다.”
조조가 그리 말하며 지도를 가리켰다.
“공손찬은 현재 발해 인근에 군을 주둔시키고 있지. 거기는 본래 원소가 차지하고 있던 영지. 이건 언제든 공격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그렇겠죠. 거기에 이 천하에서 원소가 험한 꼴에 직면하는 걸 누구보다도 좋아할 이가 거기에 합류할 거고요.”
소연이 손가락으로 남양 인근을 가리켰다. 원술의 본거지인 그곳에서 현재 손견을 필두로 한 원술의 군이 대대적으로 모병을 개시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
원술과 공손찬이 손을 잡는다면?
지금 현재의 원소로는 다소 버티기 힘들 수 있었다. 물론 역사를 아는 소연은 결국 승자가 원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걸 대놓고 피력할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조조를 주군으로 삼기로 한 이상, 조조는 최대한 빠르게 연주로 가서 군사력을 키우고 내정을 정비해줘야만 했다.
“명분은 충분해요. 원술이 준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군의 태수 정도에 부임시켜달라고 청한다면 원소도 그걸 가벼이 생각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러나 공이 부족하다. 태수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나름의 공적이 있어야만 할 것인데, 그렇게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막 봉합하는 과정인 원소 휘하의 체계가 어지럽혀진다. 그걸 원소가 눈뜨고 지켜볼 리도 없을 것인데.”
이 부분은 소연에게도 다소 곤란한 부분이었다.
본래 역사라면 앞으로 1년은 걸린다. 그것이 아쉬웠다. 고작 1년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9년 뒤에는 삼국의 정세를 가르는 관도대전이 열린다.
물론 소연의 기억으로 올해 말에는 동군과 위군. 그러니 복양 인근과 업 인근까지 흑산적이 대대적으로 공습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시기만 기다린다면 동군태수의 자리는 조조의 차지. 거기에 연주에 있을 진궁을 포섭한다면 연주 전역을 차지하는 것은 2년 안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아쉽네요. 시간이 금인 것을.”
“조급해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껏 계속 패하고 패했던 본인이다. 잠시의 기다림이라면 못할 것도 없으니, 오히려 그대가 더 걱정하는 모양새군.”
“그야 그렇죠. 저는 조조라는 사람에게 모든 걸 걸었으니까. 말했잖아요? 날개가 되어드린다고.”
그 말에 조조가 픽 웃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소연은 분명 그녀가 호세라는 무장에 지극히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지지해주겠다는 것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붉은 눈동자가 소연을 응시했다.
살짝 떠볼 셈이었지만, 그 이전에 소연의 대답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 여자는 무슨 대답을 할까. 이미 한 달 정도 지내면서 소연도 조조의 관심 대상에 어느 정도 눈이 뜨였을 무렵일 터였다.
“제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세상에 자기 자신의 것이 어디에 있는가. 살아보니 그렇더군. 뭐든 자신의 것이라 자부하던 것도, 사실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런 상황을 제법 보았다.”
“자신이 있으시다면요.”
소연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왜 모를까. 조조가 은은히 호세에게 관심을 표하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이성으로서의 호감인지, 아니면 그녀 특유의 인재욕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뭐가 되었건 쉽게 내줄 생각은.
아예 내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소연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첫 기둥이기도 했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도 기댈 수 있는 거목이었다.
“제법 말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누군가가 눈을 띄워주신 덕분이죠.”
두 여자가 살짝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비록 적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호의적인 감정이 섞인 것도 아닌 미묘한 상황.
조조는 이제 욕심에 눈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소연은 자신의 것을 빼앗길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이 문제는 가볍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진지하게 물고 늘어진다면 서로의 감정이 상할, 더 나아가서는 군의 화합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게 서로가 잠시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나 왔수…, 다.”
시발.
비록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누가 보아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옆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던 조운도 그 분위기에 바로 합죽이가 되어 고개를 떨군 상황.
소연은 시선을 돌려 이제는 호세의 등 뒤로 숨으려는 듯이 몸을 움츠린 조운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조운은 점점 그녀의 앞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호세에게는 더욱 의지하고 있는 모습.
저 계집애도 수상했다.
물론 그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고, 딱히 결혼한 것도 아니기에 어떤 관계가 되었더라도 상관은 없지만.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묘하게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조조는 오히려 그 모습에 입꼬리를 올렸다.
“호세, 조운. 이리 오도록.”
그녀는 빈 의자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참으로 우습고도 즐거웠다. 이만한 여인들이 한 남자를 응시하는 상황이 우습지 않으면 무엇이 우스울까. 당시 그 어렸던 아이가 장성하더니 매력 하나는 확실히 개화한 듯싶어 웃음이 나왔다.
“군의를 시작하지.”
조조는 최대한 웃음기를 감추고는 지도를 가리켰다.
공손찬이 주둔한 세 군데의 거점. 그것을 받아치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한 원소는 최대한 시간을 벌려 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시선은 지도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것을 보고 있더라도 모두 생각까지 공유한 것은 아니니. 문득 호세는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위가 쓰린 기분을 느꼈다.
그는 이런 분위기가 참 질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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