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86화 (86/343)

8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기주의 패권 전쟁 이후 원소는 그대로 북진을 거듭하여 업의 남쪽으로 한복을 포위하는 포진을 취하였다. 이미 기주에서 최대한 빠르게 긁어모았던 기주 방위군이 전멸한 이상, 당장 원소의 군을 막아낼 병력이 있을 턱도 없었다.

북쪽에서는 저 멀리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공손찬.

남쪽에서는 업을 포위하고 있는 원소.

진퇴양난에 빠진 한복이 어떤 선택을 할까. 아가씨는 항복할 거라고 내다봤지만, 사실 나로서는 영 어떨까 싶은 부분도 있었다.

그들이 잃은 병사는 어디까지나 외정으로 내보낼 수 있는 병력일 뿐이었다. 그나마도 살아 돌아간 병사들도 있을 것이고, 기본적인 업의 방위군도 있었다.

“사마의. 넌 어떻게 생각하냐.”

이번 일로 조금 껄끄러워질 것이 걱정되어 소녀를 옆에 끼고 돌아다녔다. 게다가 이런 문제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면 곧바로 수정안을 제공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어떤걸요? 업이요?”

“한복이 항복할까?”

그 질문에 사마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상식적으로는 힘들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한복은 최대한 버티려 들 거예요. 어차피 원소군의 치중에는 무게감이 없다는 것을 주변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데, 그냥 버티기만 한다면야 원소 정도는 일소할 수 있어요.”

“그렇겠지.”

물론 원소 나름대로 무언가 손을 썼다는 소리를 듣기야 했지만, 그것만으로 상황을 낙관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물론 원소야 당장 온 천하의 지지를 받는 정치계의 괴물로 성장하였으니, 내부에서 호응만 한다면야 문을 열 수도 있겠죠.”

“그거 요컨대 도박이라는 소리 아니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가. 내가 생각하기에도 다소 불안한 요소가 있다 싶은 것이, 결국에는 확률 놀이를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조금 더 완전한 것을 원하지만, 사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에 있을까. 이번 일도 결국 원소에게는 도박이었다. 성공한다면 천하에 이름을 날릴 군웅으로 성장하겠지만, 실패한다면 그저 그런 이로 역사서에 기록될 뿐.

“내 일도 아닌데 똥줄이 다 타네.”

“아저씨 일이 맞거든요?”

알고 있다. 그냥 직접적으로는 내가 얻는 이득이 없으니까 해본 소리를, 그렇게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볼 필요까지야 있을까. 하여간 성질도 까칠하기는.

저 멀리에서는 아직도 원소의 군이, 그리고 그 옆을 조조의 군과 아군이 버티는 식으로 업성에 대해 무력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

여기서 만약 공손찬이 근방으로 발을 디디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겠지만, 다행히도 공손찬은 아직 기주 근방에서 넘어올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아군도 넉넉한 상황은 아니니까.

“공성전은 힘들겠지?”

“물자가 없어요. 업이라면 적어도 한 달. 길면 반년 이상까지도 봐야 하는 장기전인데, 적어도 원소는 그걸 감당할 물자가 없어요.”

이대로 시간만 가면 말라 죽는다.

이건 아군 내에서 공통으로 표하고 있는 의견이었다. 최근 원소군의 병졸들이 다소 거칠어지는 것도 그런 면모일까. 저번에도 조조군의 병졸과 패싸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대로 계속된다면 상황은 더 꼬일 수도 있었다.

그 전에 항복해준다면 좋겠는데.

“뭐, 아저씨가 신경 쓸 건 아니지 않아요? 여차하면 그냥 떠나자고 제의나 하죠. 어지간한 영토를 잡는 것도 좋고, 아니면 하내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얼씨구? 고향이라면 질색을 하더니?”

그 말에 사마의가 씩 웃는다.

“어차피 그들은 힘이 없어요. 제가 먼저 군을 이끌고 규합하겠다 하면 어떡하려고요? 거기서 세력을 키워 왕광을 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어우, 아서라 아서.”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일국의 태수와 싸울 전력이 가당키나 한가. 똑똑한 주제에 무슨 그런 허황한 말을 하는가 했더니, 표정 자체는 제법 진지해 보였다.

“진심인데요.”

“진심이면 더 하지 마.”

“여차하면 사마 가문의 이름을 빌려서라도, 그 근방에서 천천히 힘을 기르는 건 어느 정도 눈가림을 할 수 있을 건데.”

“팍 씨. 조용히 하세요, 사마 꼬맹이.”

어이가 없어서. 무슨 얘긴가 했더니, 결과적으로는 내부에 파고들어 천천히 힘을 길러 왕광을 몰아내자는 것이었다.

그러기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인력까지야 그렇다 치자.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세간에서 그걸 올바르게 봐줄 리가 없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가씨가 그럴 의향이 없을 거야.”

그녀는 완전하지 않은 일은 행하지 않았다. 물론 이 대목에서 원소의 손을 잡은 것은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아가씨의 행보는 대부분 가능하다 싶은 부분에서만 나서는 경향이 있었다.

안전지향이라고 봐도 옳을까.

“쯧, 아깝네요.”

“아깝기는. 사마 가문이 거절하면 네 손으로 거길 쳐야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아쉽기는 뭐가 아쉬워. 그럴 시간 있으면 가서 물이나 떠와.”

“저한테 물 수발이나 들라고요?”

원래 전장에서 어린이는 그렇게 심부름이나 하면서 배우는 거다. 물론 그녀가 그런 취급을 받을 이는 아니었지만, 뭐 어쩔 건데. 지금은 내가 더 군권이 강한 것을.

“응, 너 아직 신입이야.”

“두고 봐요.”

소녀는 이를 빠득 갈면서도 정말 물을 뜨러 가버렸다. 물론 이를 갈았다고는 해도 표정이 험악한 기색은 없었으니, 반쯤은 장난이라는 걸 사마의도 알고는 있겠지.

그렇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근래 사마의가 했던 발언. 그걸 생각하면 이 어린 천재의 기를 다소 꺾어줘야겠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어딘가 조금 막 나간다는 느낌.

천재라고는 해도 아직 어린이였다. 그 재능에 취해 더 멋대로 굴기 전에, 이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천천히 기를 죽이는 것이 맞았다. 그러지 않으면 저 아이가 커서 나중에 어떻게 될까.

시선을 돌려 업을 바라보았다.

높은 성벽을 올린 거대한 성. 확실히 천하에서 부유함이라면 손가락으로 꼽히는 기주목이 부임하는 치소가 있을 만한 이유는 충분한 성이었다.

한고비를 건너면 다시 한고비가.

생각해보면 산을 뛰쳐나오고 나서 편하게 일을 진행했던 경험이 별로 없었다. 당장 흑산적부터 시작해서 반동탁 연합군, 여포. 거기에 이젠 원소에게도 목줄이 잡히려 하고 있었다.

그것이 다소 답답하기도 했지만, 인생 편하게만 굴러가는 법이 없다는 건 이미 옛날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부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를.

조타수는 아가씨였다.

그녀의 바라보는 길이 부디 올바른 길이기를 바랐다.

* * *

소연은 의자에 앉아 조조와 마주하고 있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 삭막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침묵만이 감도는 분위기에 그녀가 살짝 답답함을 느꼈다. 엉덩이를 살짝 움직이며 자세를 고치는 흉내를 내지만, 그렇다고 이 분위기가 사라질 리도 없었다.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일로.

저번에 호세가 말했던 바를 토대로 생각하자면, 조조는 그의 앞에서도 대놓고 원소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종종 드러냈다고 들었다.

조조 정도나 되는 군웅이 그리 허술하게 티를 내고 다닐 리가 없었다. 그것은 그래도 된다는 확증이, 그것이 아니라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소연은 그 의중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고 있었다.

“소연 장군.”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조조였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다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소연을 보며 살짝,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것에 불과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 감정표현이 그리 다양하지 않은 그녀에게는 그것도 나름 큰 감정의 표현이라는 걸 소연도 얼추 알고는 있었다.

“본인이 부른 이유, 예상이 가는가.”

소연은 여기서 고민했다.

얼추 예상은 간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에,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렇게 치고 나올 줄은 몰랐다는 것이 다소 의문이긴 했다.

혹여 다른 문제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조조의 정확한 속내를 모르는 이상, 섣부른 말은 자제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었다. 혹시라도 잘못 엮인다면 그 뒤처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여기서는 숙여야만 했다.

괜한 말로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됐다.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건 이 자리에서 구태여 졸속으로 정할 필요도 없는 일.

그렇게 소연이 다짐했을 무렵.

“어떻게 말하건 그건 그대의 자유지만, 도전해야 할 때는 도전하는 것 역시 영웅이 될 자질 중 하나이다.”

조조는 지긋이 소연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진소연이라는 여자는 무능하지 않았다. 제법 처신에도 능한 면이 있었고, 전투에도 나름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걸었던 행보가 그걸 증명했다.

고작 일 년 만에 두각을 드러낸 것은 손뼉을 쳐줄 수도 있는 부분. 그러나 원소와 군을 동행한 뒤부터 그녀는 어딘가 수동적으로만 움직이려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의견을 피력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상황에 묻어가려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인생은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지. 그렇지만 도전해야 할 때 멈추는 것은 도태라고 한다. 그것을 유념하고 발언해줬으면 좋겠군.”

네가 뭘 알고.

소연은 제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겨우 참았다. 하마터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를 벅벅 가는 모양새가 될 뻔했다.

그렇지만 분한 것까지는 참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인에 불과했다. 그저 게임으로, 혹은 지식으로. 단순히 삼국지에 대한 것을 미디어 매체로 접했을 뿐인 일반인이었다.

그것을 어떻게든 이끌고 나아가, 사람이 죽는 장면에도 익숙해지면서. 인간성이라는 것을, 혹은 현대인의 감성이라는 것을 깎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그걸 따라가면서 소소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 흐름에 거역하지 않고, 적당한 관료 자리를 얻어 편안한 삶을 지향하는 것에 비난할 부분이?

영웅의 자질?

그런 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소연이 그리 생각하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대가 인간적인 것은 좋다.”

조조가 바라보는 소연은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과감하다 싶을 때는 과감하나, 기본적으로는 본인의 안위를 챙기는 인물. 능력은 출중하나 그것으로 지키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적당한 욕심에 안주하는 인간.

그런 소인도 나쁠 것은 없었다.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오롯이 본인에게 달린 문제. 평소의 조조라면 그것에 참견할 이유도 없었고, 이렇게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을 터.

그렇지만.

“그러나 그리 가만히 있어서는 그대 본인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대를 따르는 다른 이들까지 지킬 수 있을지. 그것까진 장담을 못 하겠군.”

조조는 드물게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놓고 소연을 비웃는 것이었으니, 그것을 소연이 알아채지 못할 리도 없었다. 이렇게 명백한 도발을 던질 정도로 조조의 상황도 썩 좋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필요했다.

자신의 수족이 되어줄 인물, 그녀에게 도움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진소연도 분명 같은 배에 태워 일을 맡긴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인물이었다.

물론 도발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적당히 잘 설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터. 진소연도 원소가 자신을 별거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여 경원시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으니, 그것을 잘 자극한다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대로의 진소연은 적잖이 도움은 되겠으나 그 능력 대비 효율을 뽑아내지 못하리라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조조가 보기에는 영 마뜩잖은 것.

그리고 두 번째.

조조는 개인적으로 진소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움이 되니 포섭한다. 그러나 그 인간 개인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탐나는 보물을 쥐고도 그저 현실에 안주하려는 모습은 다소 불쾌하게 느껴졌다.

보물은 써야 비로소 그 역할을 다하는 것.

“어떤가. 그대는 날아오를 용사인가? 아니면 그저 지면에서 하늘을 우러러볼 토룡에 불과한가.”

도발이다. 넘어가면 안 돼.

소연은 그리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최대한 침착하게,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들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감정을 숨기려고 했다.

조조의 말은 계속 소연의 귓가에 맴돌았다.

본인은 지킬 수 있어도 그 주변을 지킬 수 없으리라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호세의 얼굴이, 그와 함께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당시는 이러지 않았다.

그저 소연은 자기 자신만 지킬 수 있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것이 호세라는 한량과 정을 너무 붙여서, 그래서 어딘가 이상해져 버린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럴 리가 없었다.

“그러시면.”

소연이 탁자를 두드렸다.

“제가 당신에게 날개를 달아드리겠습니다. 그럴 능력도, 가진 지식도 충분하니까.”

소연이 그 붉은 눈을 또렷이 뜨고 상대를 노려봤다. 조조 역시 적안이었으니, 같은 눈을 가진 이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당신은 제게 뭘 해줄 수 있죠?”

“아주 좋다. 이제야 제대로 된 대화 상대가 되었군.”

조조는 미소를 지었다.

소연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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