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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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 아직도 고민하십니까?”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여인 중 하나가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며칠 전부터 계속 지도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다소 염려가 섞인 질문.
원소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봉기. 너의 직언에 따라 군을 움직이고는 있다만 생각보다 움직임이 너무 더디다. 국의의 반란도, 공손찬의 움직임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군.”
한복의 수하 국의가 평소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는 걸 착안해서 그에게 반란을 제안했던 건이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그것은 원소의 참모진 중 하나였던 봉기가 제안했던 일로, 한복의 눈을 먼저 가리기 위한 책략이었으나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있었다. 조금 더 늦어진다면 슬슬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는 상황.
이에 곽도가 먼저 손을 들고 나섰다.
“아직 기다리셔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예상하던 대로 풀리는 것은 아닐 터. 국의는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인간입니다.”
“너도 그리 생각하는가?”
그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곽도 그녀는 원소의 최측근이며 예부터 그를 섬기어 중용 받는 봉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 최적의 선택이었다.
봉기는 곽도의 변론에 미소를 지었다.
“의외네요. 당신이라면 반대하리라 생각했는데.”
“저도 사리분간은 할 줄 압니다.”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한 사람의 총애를 갈구하는 몸이기에 서로를 쏘아본다. 원소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말릴 이유는 없었다. 제 아랫것들이 신임을 얻기 위해 지략을 짜내겠다면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으니까.
대신 그는 지도를 보며 현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업에서 한복 휘하 국의가 반란을 일으켜만 준다면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공손찬에게는 이미 사람을 보냈으며, 원소 본인도 업으로 진군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
마지막 한 조각이었다.
여기서 국의만 제대로 반란을 일으켜준다면 원소에게 드디어 구명줄이 내려오는 것. 그것이 아니더라도 공손찬이 움직인다면 틈은 벌어지겠으나, 그것은 완전하지 못했다.
거기에 원소는 만일을 대비해 국의를 회유하기 위해 근래 연을 맺은 전풍도 보내두었다. 한복에게 한직으로 밀려난 사람끼리 마주하는 것이니 효과는 있으리라.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
더욱 완벽한 상황을.
더욱 공고한 입지를.
원소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확실한 승리뿐이었다.
“전풍 그자가 제대로 움직여줄까요?”
곽도에게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전풍이라는 자는 기본적으로 기주 출신의 호족이었다. 기주 기득권의 전복을 원하는 원소를 굴러온 돌이라 여길 수도 있었다.
“그는 내 의견에 동의했다. 내게 따르겠다고도 했고, 넓게 보아도 현 한복이 단지 현상유지에도 못 미치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사실. 명예도 지지도 내가 앞서는데, 따르지 않을 이유는?”
전풍은 현 천하의 모양새를 다잡을 인물을 원하였다.
그렇기에 원소는 그 인물상을 전풍에게 주었다. 그것뿐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에게 비전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를 설득했다.
게다가 그는 십상시에게 질려 관직을 내려놓은 청류파 출신. 청류파 대다수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데, 전풍이라고 원소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재주가 뛰어나 계략이 있는 인물이라고 하니, 일단은 기다린다. 어차피 그도 만일을 대비한 장치일뿐인데, 무얼 그리 걱정하는가?”
“알겠습니다.”
그 말에 곽도가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불길함은 무엇인가. 그녀 역시 전풍이라는 남자를 두 눈으로 확인했었다.
대쪽같은 남자.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는 분명 언젠가는 원소와 큰 충돌을 빚을 터이고, 기주에서 나름대로 명망이 있는 이가 나중에 원소를 거역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곽도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곽도. 설마 주군의 의견을 못 믿겠다는 건가?”
“그런 건 아니다마는.”
봉기의 말에 그리 답하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꺼림칙한 감정이 남았다. 원소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그 둘을 바라볼 뿐.
자신을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여인들을 어찌 싫어할까. 저들이 저렇게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반목하면 할수록 그 지혜는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기다려보지.”
뭐가 됐건 얼마 남지 않았다.
원소는 그리 말하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가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대상은 전풍이나 국의, 한복도 아닌 공손찬이었다. 결과적으로 기주를 얻기 위해서는 그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그 이후에 그를 당해낼 수 있을까.
우선 나아가야지.
원소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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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년 4월 중순.
기주목 한복의 휘하 국의라는 장수가 반란을 일으켰다. 근 한 달 가까이 벌어졌던 반란은 결국 한복의 승리로 끝났고, 그 사이 원소는 병력을 북진.
천하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병주에서 넘어오던 흑산적의 무리와 장양까지도 격파하여 그 세력을 흡수하며 점점 더 세력을 늘려 가기 시작했다.
한복의 휘하 장수의 반란으로 눈을 가리고, 그 틈을 노려 대범한 군사작전으로 원소는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금 대군을 이끄는 수장으로 거듭났다.
물론 그래 봐야 아직은 기주목과 맞먹는 군은 아니지만, 적어도 숨통이 틔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인 성과였다.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소녀는 바둑판에 백돌을 놓으며 그리 물었다.
어차피 아군은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 원소군의 뒤를 지키면서 여차할 때를 대비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철저하게 방치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 오랜만에 사마의와 또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번에도 흑돌, 게다가 다섯 수를 물려준 상황에서의 대국.
“뭐가?”
“지금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원소를 따르는 이유요.”
그건 아가씨가 생각할 일이었다.
확실히 원소는 우리를 다소 경원시하기는 했다. 그냥 머릿수를 채우는 용도? 적당히 데리고 다니는 들러리? 뭐라고 해도 좋은 취급은 아니었다.
같은 잡호장군이었던 조조를 대우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 물론 그들은 어릴 적부터의 우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분명 차별이었다.
“나야 모르지.”
그리 말하며 상단에 흑돌을 두었다.
확실히 다섯 수를 앞서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제법 사마의를 압박하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내 공세를 끊어내기에 급급한 상황.
“그러기에 내가 다섯 수까진 아니라고 했지?”
“…제법 늘었네요.”
돌이 반상을 두드리며 들리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서로 주고받으며 돌을 놓고,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여 그것을 차단하는 행위.
나름 머리 회전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의 공방을 나누었을까.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이해할 수 없어요.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구석에 몰린 원소를 지지한다고 남는 것이 없어요.”
사마의는 내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반상을 바라보았다. 백돌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말을 거는 것이 다소 우스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군의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다.
이미 다수의 병사가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방삼이마저도. 운이야 아직은 지켜볼 따름이라며 말을 아끼고는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된다면 원소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부하들은 짜증이 쌓을 터였다.
“원소가 기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겠냐? 그러면 뭐, 적당히 한 자리라도 내어주지 않겠어?”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그럴 리가 있나.
애당초 그렇게 중용해줄 것이었다면 진즉에 우리에게도 신경을 썼겠지. 지금의 원소는 사실상 진소연의 군은 방치하다시피 하면서 간간이 전령만을 보내어 명령을 내리는 수준이었다.
만약 정말 원소가 기주를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콩고물은 기대하지 못하겠지. 기껏해야 현령일까?
물론 대외적으로 아가씨는 현장이었기에 조금은 작위가 오른 거긴 한데, 고작 그런 것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왜 원소일까요. 천하에 널린 것이 제후인데, 왜 구태여 천대받으면서까지 위기에 몰린 원소를 따르는 거죠?”
사마의는 반상 한가운데에 돌을 놓았다.
“아저씨가 그렇게 따르는 사람의 생각을 전 이해할 수가 없네요. 지금이라도 여길 떠나서 연주로, 그게 아니면 청주라도. 어디건 지금보단 나을걸요?”
“원소가 그리 불안하냐?”
“입지도 불안한 작자가 아군을 있으나 마나인 존재로 취급하고 있어요. 화도 안 나요? 물론 아군이 있으나 마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방금 그 말에 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이 꼬마가 알기는 할까.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반상에 돌을 올리고는 날 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수를 안 두느냐고 지적하듯이.
“어휴, 하여간.”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흑돌을 집고 문질렀다. 아직 우세해 보이는 반상에서의 흑돌이었지만, 점점 밑으로 치고 나오는 백돌의 움직임이 거슬렸다.
“아무튼. 진소연 아가씨의 행보는 이상해요. 아저씨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요. 안 그래도 승률이 적은 판에 돈을 걸었는데, 정작 돌아오는 배당금도 작아요. 이런 도박을 하는 멍청이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나.”
“아가씨는 멍청이 아니다.”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였다.
물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딱히 원소에게 받은 은혜도 없었던 것을, 왜 여기까지 따라가야만 하는가. 그건 나도 생각하고 있는 공통적인 의문이었다.
물론 그 남자가 명망이 있기는 했다. 꽤 많은 명사에게 지지받고 있는 원소는 정치적인 입지만을 놓고 본다면 현 중원 누구도 그 남자보다 나을 사람이 없었다.
“그거 콩깍지예요. 알아요?”
사마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그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아가씨는 언제나 옳은 결정을 했으니까. 나는 그걸 밑에서부터 받치는 역할이었으니까.
“일단 기다린다.”
“좀, 지금이라도 의견을 건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대로면 저희 군도 말라 죽을걸요? 그래선 군을 일으킨 의미가 없잖아요.”
소녀가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차라리 아저씨가 차지하세요.”
“뭘.”
무언가 싸한 느낌에 반상으로 향했던 시선을 돌렸다. 사마의의 보랏빛 눈동자가 정면에서 나를 마주하고 있었는데, 어딘가 그 눈빛이 요사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면, 아저씨가 군을 이끌면 되는 거잖아요. 당장 이 군에서 진소연을 진심으로 따르는 이가 어디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움직였다.
생각하기도 전에 주먹을 쥐고 바닥을 내리치는 나 자신이 있었다. 나무로 된 바닥과 주먹이 부딪쳐 크게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반상 위에 올린 돌까지 충격에 위치가 흔들릴 정도로, 주먹이 얼얼하게 아려올 정도로 세게 내리쳤다.
“그 이상은 주제넘은 발언이다.”
“……알겠어요. 사과할게요.”
“사과할 대상이 없는데 해서 무얼 할까? 앞으로 다신 그러지 마라. 그걸로 됐어.”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이런 분위기면 더 대화하기에도 껄끄러운 감정이 남을 터였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바둑판을 힐끔, 그리고 시선을 돌려 사마의를 바라보고는 이내 등을 돌렸다.
“미안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아이에게 화를 낸 것은 조금 너무했나 싶어 입맛이 썼다. 무슨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도 알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뇨, 괜찮아요. 그런 사람인 거 알고 있었어요.”
그런 사람이라니. 어린아이에게 무턱대고 화내는 사람은 아닌데? 이게 무슨 중상모략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사마의가 작게 웃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화를 자주 냈던가?”
생각해보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마의를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로 대하지 않은 느낌도 있었다.
말하는 것이 어른스러워서, 대처라던가 행동거지에서 나보다 나은 점도 있어서.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동등한 성인으로 대했던 감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소녀를 막 대했다면, 그건 분명 사과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소녀는 마지막까지 웃으며 내게 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어딘가 내키지 않는 구석은 있었지만, 이런 어색한 분위기에서 다시 대화를 이어가기에도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그럼 먼저 실례할게. 미안했다.”
“괜찮다니까? 아저씨도 참.”
배시시 웃는 사마의를 뒤로 하고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소녀의 미소는 분명 그 나이 또래처럼 웃는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간 너무 사마의를 어린아이로 대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지.
어린아이라면 말실수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을.
앞으로는 조금 반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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