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76화 (76/343)

7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엇갈리는 밤 운이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매에는 웃음기가 서려 자상하게 느껴지는 시선을 보내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했던 말이 가시처럼 가슴팍에 박혀서. 그것이 너무나도 아파, 차마 마주 보며 웃을 수가 없었다.

“무슨 헛소리를.”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녀가 조용히 내 이마를 꾹 눌러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겨우 들었던 고개가 다시 그녀의 허벅지로 돌아갔다.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거짓말.”

그녀는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가 그렇게 감정을 동요할 일이 아가씨 말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미 다들 알고 있을걸요? 방삼 씨도 대장이랑 잘 좀 말해보라고 그러던데요.”

이런 시발.

나도 모르는 새 물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단 말인데. 방삼이 이것도 차라리 내게 먼저 말을 꺼낼 것이지, 그걸 애한테 대신 말하는 건 무슨 심보냐.

“그런 거 아니다.”

“거짓말.”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그렇지만 운이의 그 또렷하게 향한 시선을 치울 수도 없던바, 그렇게 한동안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눕히고는 눈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잠시 침묵 속 결투를 이어갔을까.

“어휴, 졌다. 내가 졌어.”

고집으로는 얘를 누가 꺾을까.

게다가 사실 속내를 말하자면 영 틀린 일도 아니다. 물론 아가씨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설레발을 떨고, 거기에 자괴감을 느꼈을 뿐.

“아가씨, 맞죠?”

“맞다, 맞아. 어휴.”

그리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어디선가 단 향기가 났는데, 어디서 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냥 마음에 드는 향기에 살짝 눈을 감았다.

“무슨 일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재미없는 내용일 것이 분명한데.

그렇지만 그녀의 표정은 무조건 들어야겠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말로는 묻는 어투지만, 표정만 보면 넌 대답해야만 한다고 이미 답을 정해놓은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걸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별거 아니다. 그냥 좀….”

다시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보면 이건 꽤 부끄러운 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괜히 착각하고, 혼자서 충격을 받은 씁쓸한 남자의 최후가 아닌가. 살면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 파장은 더 큰 것만 같았다.

“별거 아닌데 사람이 이래요?”

운이는 그리 말하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머리를 매만지듯 부드럽게. 그 가녀린 손길이 머리카락 사이로 두피를 스치며 지나가는 감촉이 좋았다.

“입맞춤까지 받았다면서요.”

그러고 보면 운이에게도 상의를 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무산됐지만, 그날 밤의 일을 그녀는 아직 잊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냥, 그런 얘기지.”

말하고 싶진 않았다.

더 얘기해봐야 내 치부만 들추는 꼬락서니. 잊으려고 술을 마셨는데 오히려 그걸 타인 앞에서 까발려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가슴에 묻으려 했던 일인데.

“말해봐요. 나는 벽이라고 생각하고, 벽이 싫으면 대나무라고 할까요?”

“이리 따듯한 벽이 있겠냐.”

뺨에서부터 그녀의 체온이 전해졌다. 허벅지의 부드러운 감촉까지 전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마저도 전부 생생하니 전해지는데 이게 무슨 벽인가.

내가 그리 입을 다무니 한동안은 조용했다.

그녀는 줄곧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드는 손길이 두피를 쓸고 지나갔다.

“…너도 참 진짜.”

항복이다.

이런 분위기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냥, 내가 착각했어. 내가 너무 나댔다고. 딱 그런 얘기야. 그게 부끄러워서, 그래서 아가씨를 어떤 낯으로 볼까, 그게 고민이라서. 그래서 그랬던 거야.”

거기까지인 얘기였다.

별거 아닌 이야기. 소싯적에는 여자 몇 울리고 다닌 천하의 호세가 어찌 이리 숫처녀처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발만 동동 구른다는 말인가.

진소연.

그녀는 자꾸만 날 이상하게 만들었다.

“멍청이.”

운이는 그리 말하며 내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었다. 쓰다듬던 손길 그대로 갑작스레 움켜쥐는 통에 빳빳하게 당겨지는 두피에서 통증을 느꼈다.

“아, 야야. 아프….”

그 뒷말은 이을 수 없었다.

입이 막혀버렸다.

머리카락을 잡혀 얼굴을 강제로 위로 향하게 한 채, 강압적으로 입술을 막혔다. 입술을 막는 건 같은 입술이라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술에 취해서인가. 얼굴이 더욱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술 냄새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나나 그녀나 술 하나는 진탕 마셔 재꼈다. 그 숨결에도 술의 향기가 배어있는 것이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코와 코가 스쳤다. 거기서 나오는 숨결이 서로 얽히고 있었다. 조금씩, 숨쉬기가 버겁다고 느낀 순간.

“으읍, 읍!!”

입술을 비집고 혀가 들어왔다.

그녀의 혀가 내 치아를 톡톡 두드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것마저 비집고 들어와 입안에서 춤을 추었다. 숨결만이 아니라 혀까지도 얽히는 상황. 방금 마셨던 죽엽주의 향기가 느껴졌다.

말캉한 혀가 마구잡이로 입안을 유린한다.

운이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려 했으나, 이내 몸에 힘이 풀렸다. 억세게 내 머리채를 잡은 그녀는 한동안 그렇게 입을 맞추고는 혀를 엮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코만으로 숨쉬기가 슬슬 가빠질 무렵에야 드디어 입술이 떨어졌다. 가느다랗게 이어진 실이 그녀가 고개를 들면서 점점 늘어져, 이내 끊어지는 것이 보였다.

“……죄송해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머리채를 잡던 손을 놓았다.

“비겁한 거 알아요.”

“너, 무슨.”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대체 왜, 아니 언제부터.

머리가 따라가지 않으니 생각도 이어지질 않는다. 그저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뺨, 떨리는 입술과 눈매만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가 얼마나 아가씨를 생각하는지 알아요. 틈이 없을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러니까 욕심 안 내기로 했어요.”

그리 말하며 내 뺨에 손을 얹었다.

“그러니까. 받아달라는 말은 안 할게요.”

그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야 나는 운이가 어찌 생각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으니까. 어쩌면 그녀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용서해달라고도 안 해요. 앞으로 있을 일, 앞으로 제가 품는 마음. 전부 받아달라고도 안 할 거예요. 책임도 필요 없어요.”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시선은 올곧게 하여 마주하고 내 뺨을 붙잡으니, 운이는 그저 단호하게 내게 선언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왜일까.

그 말이 어찌 이리도 애처롭게만 들릴까.

“그냥, …하룻밤의 일탈이라고만 생각해줘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내 뺨을 양손으로 붙잡고 천천히, 그렇지만 정확하게 입술을 가져오고 있었다.

다시 마주하는 입술.

따스하게, 부드럽게. 그렇게 맞닿은 그것은 이번에는 혀를 통하지 않고 단지 입술만을 비비며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대체 언제 이 아이가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을까. 나는 몰랐다. 전혀, 꿈에서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편한 동생, 나보다 유능한 아이. 그냥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야 내 시선은 전부….

“…괜찮겠냐.”

입술이 떨어졌을 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말하고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뭐가 괜찮냐고 물어봤는지, 나는 그녀에게 무얼 바라고 어떤 걸 해주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냥 그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직도 술기운에 취해 머리가 멍했다. 당장 내쉬는 숨에서는 술의 독한 향기가 세게 남아있었다.

“괜찮아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 물어봤는지 알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냐. 나도 모르는 질문에 그리 당당하게 답하면 곤란하다. 시야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얼굴만은 또렷이 보인다.

모르겠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니, 그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숨이 가빠오는 것만이 느껴졌다. 헐떡이듯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느다란 어깨의 선.

이 아이는 이리도 가냘팠다.

“오라, 버니….”

그녀도 숨을 가쁘게 고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남녀 간에 이런 분위기, 이런 떨림을 느끼고도 움직이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운이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었던가.

“애초부터 아가씨랑은 그런 관계, …아니었어.”

그리 말하며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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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제법 달이 밝았다. 호세, 아니면 전호라고 하는 것이 좋을까. 순간 그녀의 안에서 그의 이름이 헷갈렸지만, 역시 아직 호세라는 이름이 조금 더 익숙했다.

그는 달을 좋아했다.

별도 좋아하고 달도 좋아한다던, 밤하늘에 심취한 젊은 청년의 모습을 속에 그렸다. 그는 가끔 복잡한 일이 있을 적에는 항상 밤중에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했다.

본인은 아마 모르겠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입을 모아서 그가 풍류를 즐기는 감수성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하리라.

“너 때문에 복잡해. 너는 알까?”

그녀는 하늘에 대고 그리 물었다.

누구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속내를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에만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당장 그의 고백 같은 무언가도 소연의 안에서 채 소화되기 전이었는데.

그 복잡한 심경을 담아 한숨을 내쉰 것이다.

문득 소연은 그가 보고 싶었다.

현실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는데, 그것을 이런 영문모를 세계에서. 그러나 이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도 현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기 자신을 재촉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질 않으니까.

여기를 게임이라고만 납득해버리면, 정작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신은.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그들을 단지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을 내주어버렸다.

그걸 생각하며 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물러만 설 수는 없었다.

“앞으로 나가야지.”

소연은 저 자신에게 재촉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언제까지나 겁쟁이 진소연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모두가 나아가고 있었다. 방삼은 제 무력함을 깨닫고는 피나도록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운 역시도 병법에 관련된 서적을 뒤적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호세 역시도.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했던 모든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발전하고자 노력하여, 그 성과를 쥐려 하고 있었다.

겁쟁이 진소연. 대한민국의 진소연.

이제는 그들과도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그의 마음에도 답을 내릴 수가 없었으니까.

밤바람은 제법 싸늘했다.

곧 봄이라고 하거늘, 아직도 밤바람만은 지극히 차가웠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니, 어딘가 가슴이 술렁거리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묘한 두근거림.

“쯧, 별꼴이야.”

소연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래 너무 복잡한 일이 꼬리를 물고 찾아오니 마음이 복잡해져, 그래서 감수성에 조금 매몰되었다고 느낀 소연은 작게 숨을 내쉬면서 등을 돌렸다.

내일부터는 다시 군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일찍 잠을 청하기로 정한 그녀는 그 가슴에 술렁이는 묘한 불안감을 억누르며 막사로 돌아갔다.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면서.

온 지상을 비추는 달빛만이 남아 그 뒷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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