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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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는 무슨 생각인가. 이런 시기에….”
조조가 먼저 혀를 차며 말을 꺼냈다. 그 옆을 나란히 걷던 소연도 그 부분에서는 다소 쓰게 웃으며 반박하지 않았다.
호세에게 조조가 접근했다는 것이 다소 껄끄러웠다.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으니,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원소의 호출은 다소 의외였다.
안 그래도 원소가 기주목 한복과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제후를 초빙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복에게 세력을 모은다고 느끼게 하여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게요.”
의미를 모르겠다.
소연이 아무리 미래의 줄기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세한 것을 전부 알고 있지는 않았다. 이 시기면 한창 한복과 정치적인 줄다리기를 이어나갈 때일 터.
“그대는 원소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와중에 느닷없이 치고 들어오는 조조의 질문에 소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의도 같은 것을 파악할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무슨 의도일까. 소연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지금 시기라면 조조는 원소를 어떻게 생각할까? 앞으로도 조조는 한동안 원소의 휘하에서 종군할 터였다.
그렇지만 형양에서의 모습은.
“대 원가의 핏줄이시면서 발해태수시지요.”
소연은 말을 아꼈다. 무언가 칭송하는 미사여구를 택하는 대신 그에 대한 지극히 사실만을 말하며 몸을 감추기로 했다.
아직 조조에게 속내를 전부 밝힐 수는 없었다.
“그렇지. 그는 발해태수지.”
그렇기에 더욱 우스운 일이었다. 적어도 조조는 그리 생각했다. 아무리 제 명성이 높다고 한들, 고작해야 일개 발해태수에 불과한 것이 원소였다.
그런 그가 황제를 새로 추대하겠다니.
본래라면 천하가 비웃어야 할 것을, 그놈의 명성이 뭐라고 사방에서 그를 지지했다. 한의 녹봉을 먹던 자부터, 십상시의 패악질에 물러났던 이들까지.
사방에서 원소를 지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가 생각하기에 천하가 이렇게 무너져내린 사태에는 분명 원소의 책임도 있었다. 낙양에서 십상시를 토벌할 당시 하진을 꼬드겨 경거망동만 하지 않았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
“그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
그 고결한 남자도 결국에는 권력을 위해 제 몸에 진흙을 펴 바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건 아주 예전부터, 사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과거부터 그런 남자였을 수도 있었다.
소연은 그 말에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조조 또한 답을 원하여 꺼낸 말이 아니었기에 그저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서 원소군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러고 보니.”
소연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제 휘하에게 다소 과분한 것을 주셨더군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넘기듯 가벼운 어투였다. 평소였다면 조조도 그냥 넘겼을 말이지만, 그 어투 어딘가에 날이 선 느낌을 받은 조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과분이라. 그렇게 볼 수도 있는가.”
그걸 짚고 넘어가고 싶었는가.
그녀는 소연의 태연한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견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움직임이 어색했다. 표정도 애써 웃는 티가 나는 것이 우스웠다.
“허나 본인의 목숨이 고작 검 한 자루에 비할 바는 아니지. 하여 그에 맞는 보답을 했을 뿐. 그대가 그리 신경을 쓸 일은 아닐 텐데?”
이에 소연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아뇨, 그만한 보물을 받았는데 어찌 입을 싹 닦을까요. 하다못해 감사의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사는 그가 했다. 그대가 재차 할 필요도 없지.”
조조가 생각하기에 지금 소연은 명백하게 소유권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조금 아니꼽다 느낀 그녀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여기서 소연은 살짝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조조가 누구인가. 인재에 대한 욕심은 누구보다 질척이는, 당장 관우와의 일화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제 마음에 드는 이를 가지려 드는지 알 수 있었다.
아직 호세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렇지만 만약 그가 조조라는 여걸의 마음에 들었다면. 그래서 진심으로 조조가 그를 빼앗으려 든다면?
전제조건은 일그러지지 않았다.
소연은 애당초 어느 군주 중 하나를 지지할 생각이었고, 그렇다면 조조를 선택하겠노라고 이미 정해둔 상태였다. 어차피 나중에는 같은 군주를 모시게 되리라면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제 휘하의 그가 다소 부담을 느끼는 듯하여, 그래서 혹여 조공께 실수라도 저질렀을까 하여 언질을 드렸습니다.”
그녀는 그리 말하고도 살짝 흠칫했다.
왜 자신은 조조를 밀어내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걸까. 사실 조조의 성질을, 그리고 그녀가 장차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잘 보이려 드는 것이 맞았다.
원소는 그 수명이 짧아 한계가 명확한 군주.
나머지의 군주들은 당장 조조와 비교해도 터럭만도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가장 천하에 가까운 영웅이 누구냐고 꼽으면 십중팔구로 조조의 이름을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인데.
“부담이라. 뭐, 그리 생각하더라도 좋지.”
조조는 그런 소연의 태도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부담스럽다? 그만큼 그녀 본인이 그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을 수 있으니 나쁠 건 없었다. 설령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지금은 천천히 알아가는 단계였다.
그가 진짜인지, 아니면 그냥 진짜처럼 보였던 모종의 무언가인지. 만약 그가 정말로 위대한 영웅으로 발돋움을 한다면 그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을 위한 사전준비에 불과했다.
“그대에게 쓸데없는 부담감을 준 듯하군. 그러나 진정 구명에 대한 대가로 건넨 것이니 그대는 너무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
“예, 거듭 감사합니다.”
속으로는 조조 당신을 어떻게 믿겠냐고 백 번을 넘게 외친 그녀였지만, 겉으로만은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아내었다.
그 뒤로는 서로 말을 아꼈다.
소연의 머릿속에선 실수했다는 생각만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었다. 조조에게 이런 태도로 접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지만 순간 울컥했던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왜 울컥했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소란스럽군.”
조조는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무언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군중이 모여 호들갑을 떠는 것이 보였다. 소연도 그녀의 말에 따라 시선을 돌리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조조는 원소가 보냈던 전문이 떠올랐다.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 남자가 그리 확언하는 일은 별로 없었기에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지간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남자가 직접 공언하여 재미있는 일이라고 공언하는 부분에서 묘한 불길함도 느꼈다.
“조금 서두르지.”
그녀는 그리 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연도 그 뒤를 따라 조금 걷음을 빠르게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다가갈수록 소란이 또렷이 들렸으니, 그건 분명 환호성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대체 무슨 일이.
“…오! 나의 벗, 아만 아닌가. 거기에 무성장군까지.”
야외에 설치된 상석 끝자락에서 원소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검은 도복을 입고 다리를 꼬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녀들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너무 늦었군. 안타깝게도 희극은 벌써 막을 내렸으니, 그 뒤풀이라도 보고 가겠는가?”
원소는 이 광경을 뒤풀이라고 말했다.
소연은 머리가 아파져 왔다.
그의 아래에 설치된 거대한 처형장. 사방에서 그것을 둘러싸고 환호하고 있었다. 저 멀리에 보이는 것은 제후의 무리인가.
그들 역시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정작 그걸 지켜보던 소연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소. 이건 무슨 짓인지?”
오로지 조조만이 낯빛을 딱딱히 굳혔다.
“아만. 왜 그리 화가 났는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저기에 죽어있는 자는 황실에서 파견한 인물로 보이는데, 혹여 본인의 눈에 장애가 온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알려줬으면 좋겠군.”
다소 언성을 높이는 조조에게 원소가 미소로 화답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되려 기쁘다는 느낌으로 웃는 것을 본 소연도 살짝 낯빛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너의 눈은 정확해. 네 눈에 흐림이 있을 리가 없지.”
“내가 흐리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흐려진 것은 그대의 판단인 듯하군. 묻지. 이 꼬락서니는 대체 무엇이지?”
조조는 제법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저 복식은 딱 보아도 황실에서 파견한 사자였다. 그것을 이리 공개적으로, 사람을 모아 개처럼 처형한 것이다. 그걸 희극이라고 보며 주변에 보이며 비웃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반역이었다.
“아만, 아니 조조. 왜 그리 화를 내는가? 정통성도 없는 꼬마가 두려운가? 이것도 결국 그 난신의 명을 받은 동탁의 사람이 아닌가.”
“그래도 황실이다.”
조조는 한 발짝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천천히, 그렇지만 정확히 그가 있는 상석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원소는 그런 그녀를 보고도 그저 미소를 지을 뿐.
“지금의 사태를 수습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유주자사를 황제로 받들어 모시는 것임을 명석한 너라면 이해하지 못할 리도 없을 텐데?”
알고 있던 일이었다.
조조도 그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동탁 토벌전은 실패했다. 아직 동탁이 건재한 상황에서 그의 꼭두각시로 변한 황실을 따른다는 것은 동탁의 손속에 놀아나겠다는 소리일 뿐이었다.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그걸 그대가 말하는가.”
“이 원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
어차피 현 황실은 그 구실을 할 수 없었다.
사방으로 찢어진 군벌들은 점점 힘을 키울 것이고, 각자가 세력을 부풀리는 난세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그것은 더 가열하게 변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새 황제를 옹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빠르게 난세를 평정하고 군을 몰아 동탁까지 없앨 수만 있다면, 그것이 작금의 상황에선 가장 좋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름 아닌 원소가 저리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그에게 독설을 퍼붓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조공.”
소연은 그런 조조의 팔을 붙잡았다.
어느덧 과열될 뻔하였던 분위기에 소연이 살짝 나서 조조의 팔을 붙잡았다. 이에 조조가 살짝 고개를 돌렸고, 시선을 마주친 소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원소를 거역해서는 안 됐다.
이미 소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관동 일대의 제후가 모인 곳에서도 이 결정에 납득하고 따르겠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미 군중의 민심은 원소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은 숙이세요.”
소연이 원소에게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어차피 각 제후마저 황실의 사자를 처단하는 것에 동의하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원소 이전에 저들 전부를 척진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알고 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소연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대세는 원소에게 기울었다는 것쯤은 이미 옛적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단지 조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저 모든 일의 원흉과도 같은 이가 저리 영웅처럼 거들먹거린다는 것. 그리하여 제 과실을 덮으려 한다는 것.
거기에 하나를 더 꼽자면.
저 상석에 앉은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
그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조는 고개를 들었다. 원소는 여전히 그녀를 향해 웃는 낯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군중에서의 대세는 분명 원소였다.
“인정하겠다. 현 한나라에 의미는 없음을.”
“똑똑한 너라면 그리 말할 줄 알았다.”
그제야 원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 손에 쥔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호쾌하게 그것을 들이키니, 사방에서 원소에게 찬사를 던진다.
“우습군.”
조조는 그것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지금 이 자리에서 관동을 비롯한 제후들은 한의 정통성을, 그 위신을 무시했다. 그것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혼란은 더욱 가속될 것이었다. 그러하면 언젠가는 그녀에게도 기회가 올 터. 지금은 원소가 앉은 상석도, 권력의 중추도.
그 모든 것을 손에 쥘 기회가.
“소연 장군, 아까는 고마웠네.”
이에 소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조조의 낯빛을 살짝 살피는데, 그녀는 아까까지의 분노는 어디로 치운 것인지 제법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소연에게는 다소 의문으로 다가왔다.
조조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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