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72화 (72/343)

7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군웅 난립 오랜만에 아가씨가 막사에서 나왔다.

그간 계속 안에서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드디어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흰 피부가 햇볕을 쬐지 않아서 그런지 더 창백하게도 보였다.

“아가씨!! 이게 얼마 만이요?”

“어제도 봤거든?”

그야 어제 식사를 옮기면서도 보기야 했지. 그렇지만 제 발로 걸어 나온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은가? 항상 안에만 박혀있어서 슬슬 걱정되던 차였다.

“앞으로는 좀, 예? 자주 나오고 좀 하쇼.”

“말은. 알아서 잘하고 있어.”

소연 아가씨는 그리 말하며 입술을 삐쭉였다.

그 분홍색 입술을 보니 또 온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따듯했던 그 날, 그 시간. 생각해보면 그 뒤로 바로 사수관에서의 일이 터지고, 결과적으로는 아가씨와 대면하여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흐지부지 넘어갔었지.

지금이라도 묻고 싶었다.

그때 아가씨는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혹여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냐고. 그렇지만 그런 질문을 건네는 것도 다소 우스웠다.

“그래서, 뭐 얼추 생각은 정리가 되셨소?”

“적당히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걸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기 시작한 계절. 따스한 햇볕을 쬐며 오랜만에 단둘이서 길을 걸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여유로움을 가지며 산책 비슷한 느낌을 냈다.

“따듯하네.”

“그러게나 말이요.”

겨울의 끝자락. 사실상 봄의 초입인 계절이라 그런지 따스한 바람이 느껴졌다. 봄은 본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계절을 싫어하지 않았다.

여기에 꽃까지 피기 시작할 즘엔 술 한 동이를 들고서 산으로든 강으로든, 꽃놀이를 가 실컷 술이나 퍼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을.

아직 꽃내음이 만연할 정도로 봄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즘이면 다시 전쟁이 벌어지겠지. 이미 사방에서는 군사적 마찰이 빚어지고 있었다. 동탁 또한 여전히 건재하여 제 위용을 뽐내고 있었으니.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가씨.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요?”

“우선 원소에게 붙어야지.”

우선은.

그녀는 그리 전제를 깔았다. 그렇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될는지. 솔직히 나는 대세를 읽는 능력이 없었다.

원소? 대단해 보이기야 했지만 그뿐.

솔직히 그보다 더 나은 제후가 천하에 수두룩했다. 당장 기주목 한복의 지원이 없다면 원소는 버틸 수 없었다. 서주목 도겸조차도 그보다 많은 군을 이끌고 있었다.

여기서 원소를 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는 그것을 모르니 아가씨에게 무언가 조언을 건넬 방법도 없었다.

나는 아직도 모자랐다.

문득 고개를 내리까니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가 보였다. 무리는 어디 가고 한 마리가 열심히 입에 무언가를 물고 움직이는 모습. 그것이 왠지 모르게 나와 비슷하다 느껴 웃음이 나왔다.

“뭐야. 왜 웃어?”

“아니, 별거 아니요.”

그저 개미 한 마리에게 동질감을 느꼈다고 어찌 말할까. 그냥 웃어 얼버무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고 맑은 봄날의 하늘.

“아가씨는 군주가 될 생각은 없으쇼?”

“…뭐?”

가끔 생각하고는 했다. 아가씨가 관직을 얻고 군을 이끌며 이윽고 천하를 평정하는 모습. 한나라는 어차피 저 혼자 일어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응당 이 혼란을 평정해야만 했고, 그것이 아가씨라면.

그런 미래를 상상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네. 지금 날 지지하는 명사는 아무도 없어. 명분도 없고 관직도 없지. 명가 출신인 것도 아니고 지지하는 세력도 없는데, 혼자 일어서는 건 무리야.”

알고는 있었다.

이 천하가 얼마나 고인 물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바. 그렇지만 그런 미래를 꿈꾸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차라리 저런 속이 시커먼 이들의 천하가 될 바에는….

“뭐, 그렇긴 하겠네. 아가씨가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원소처럼 명사들이 줄줄이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고.”

“…맞는 말인데, 좀 그렇네?”

아가씨가 주먹을 쥐고 내 팔뚝을 후려쳤다.

아프긴 해도 예전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과거와는 달리 힘을 빼고 때리는 느낌이어서 나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이건 확실히 우리의 거리가 좁혀졌다고 봐도 될까.

그걸 생각하면 살짝,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일단은 원소를 따라가는 방향으로 이해하면 되겠수? 그러면 사마 가문은 어떻게 하려고? 원소를 계속 따르면 그쪽 가문을 돌볼 여력이 없을 건데.”

“하내에 남은 군은 어차피 원소 계파의 군밖에 없어. 왕광도 아직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까, 적당히 영역표시만 해줘도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러더니 아가씨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정작 가장 원하던 건 얻었으니까.”

“원하던 거?”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얻은 것이라면 사마 가문과의 연결고리와 사마의라는 꼬마 하나 정도인데.

사마의라는 꼬마를 아직 아가씨는 모를 터였다.

그렇다면 사마 가문이 그렇게 중요한 곳이었나?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기에 그저 고개만 갸웃거리다 이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저 멀리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소연 아가씨가 그리 말하며 본인 허리춤에 묶여있던 검을 꺼냈다. 분명 저번에 헤어지기 전에 내가 그녀에게 던졌던 검.

“이거, 돌려주는 걸 잊고 있었네.”

그녀는 그리 말하며 그 검을 내게 내밀었다. 한 번도 쓰지 않았는지 검집에도 흉 하나 남지 않은 것을 보며 쓰게 웃었다.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되는데.”

어차피 내 손에 있어도 쓸 일이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저것이 그녀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나은 사용처이지 않을까.

“그냥 네가 써도 되는 검이잖아.”

“말했잖소. 아까워서 못 쓴다고.”

못 쓰는 것은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네가 쓰는 것, 이…?”

아가씨는 그리 말하며 살짝 시선을 낮추더니, 이내 내 허리춤에 매인 검을 보고는 살짝 시선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조조에게 받은 청강검을 아직 허리에 찬 상태였던가.

“새로 검이라도 장만했니?”

겉으로만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이니, 아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이해는 했다. 솔직히 내 곳간 사정으로 이런 검을 장만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 조조가 주덥디다.”

“…왜?”

여기서는 아가씨가 살짝 낯빛을 굳혔다.

“아니 뭐, 그때 형양에서 한 번 구해줬다고. 그게 고맙다고 주던데. 나쁜 검은 아니기도 하고, 적당히 잘 쓰겠다고는 했지. 뭔가 잘못됐나?”

뭔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여 자연스럽게 위축됐다. 아니 뭐, 선물 정도는 받아주면 그만이었는데 운이도 그렇고 소연 아가씨도 그렇고 뭔가 다들 반응이 떨떠름했다.

“그 검, 제법 명검 같은데. 이름이라도 있어?”

“청강이라고 하던데?”

이에 아가씨가 침묵을 지켰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표정에 차라리 받지 말 것을 그랬나 싶기도 한데. 그렇지만 단순한 호의라면 그냥 받으면 그만이 아닌가?

“또 왜 그러쇼? 내가 뭐 실수했나?”

“아니, 아니야. 별거 아니야. 뭐, 조조가 널 나쁘지 않게 봤다면야 나쁠 건 없지. 응. 조조랑은 관계를 맺어두어 나쁠 건 없으니까.”

담담한 척 말하고는 있지만, 어딘가 어투에서부터 자기 자신이 납득하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어딘가 어색하게만 느껴져서 입을 열었다.

“조조와 무슨 일이라도 있수?”

이에 아가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별거 아니야. 그냥, 조조는 자기 사람을 많이 늘리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혹시나 해서 그랬을 뿐이야.”

“별 이상한 걱정도. 내가 고작 검 하나에 넘어가겠어?”

호의는 받으면 그만이었다. 저쪽도 호의라고 했으니 그냥 받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호의 이상의 대가를 바란다면, 그때는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혹시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나?”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그러더니 그녀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당분간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원한 것이 아닌데. 그냥 조금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리고 가능하면 그때 온현에서의 일을. 그날의 일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이럴 거면 차라리 받지 말 걸 그랬나.

그렇게 한동안은 또 침묵이 이어졌다. 아까와는 다른 어색한 분위기가 몸을 근질거리게 했다. 무언가라도 얘기를 꺼내서 화제를 전환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의무감마저 들었다.

“그, 그러고 보니 말이요! 제법 날씨가 따듯해졌지?”

“그러네.”

대화의 주제가 잘못되었다. 멍청한 놈, 날씨는 아까 이미 나눈 대화가 아니냐. 조금 더 색다른, 아니 뭐, 다른 주제 없나?

이런 근질거리는 느낌은 정말 질색이었다.

“…아가씨.”

조금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저 자신이 듣기에도 낮게 깔린 목소리에 낯선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 말이라는 것은 계속 이어졌다.

“그때, 온현에서 말이요.”

정말로 듣고 싶었던 것을.

지금까지 빙빙 돌아오면서 구태여 아가씨와 만나 대화를 하려 했던 이유를, 단 둘이서 만나고 싶었던 이유를 입에 담았다.

“그때…….”

조금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주제에 넘는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 여자를 내가 탐한다는 것이, 감히 마음에 품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지만.

만약 그때의 의미가 진정 그런 의미였다면.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 이상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 섞여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머리가 나빴던가.

“만약 아가씨가.”

“아냐.”

무언가 더 말을 이으려던 찰나에 아가씨가 고개를 들었다. 살짝 볼이 빨개져서는, 그렇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런 게 아니야.”

그녀는 그리 말을 자르고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발은 지면에 붙어버린 것처럼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붙잡아야 할까.

그렇지만 움직이지 않는 발을 어떻게 강제로 뗄까. 뭐라고 하면서 그녀를 붙잡아, 어떤 말을 소연 아가씨에게 건네야 할까.

조금 답답한 기분이었다.

가깝다 느꼈던 거리가 조금, 멀어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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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은 발걸음을 빨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호세가 언젠가 그런 것을 물어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때 자신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건 그녀 본인도 몰랐다.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어디에 홀린 것처럼?

어떤 말로도 그때의 기분을 설명할 수 없었다.

게임 세계에 떨어져서, 이제는 일 년 하고도 반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당장이라도, 내일이라도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보낸 시간이 벌써 그리도 흘렀다.

그는 소연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받쳐온,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신에게 진지한 마음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그녀가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데, 아직도 이 세계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는데.

그런 진지한 마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 전호 」

통솔력 - 81

무력 - 86

지력 - 77

정치력 - 69

매력 – 89

지금이라도 그의 상태창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 상태창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이 세계를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게 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딘가 게임만 같아서, 지금 느끼고 보는 것 모든 것이 현실과 같은데도. 이 상태창이라는 것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서.

아직도 마음 한편에선 이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디선가 자꾸 이 풍경을 자꾸만 거짓된 것이라고,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녀는 내심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분으로 살았었다. 누군가와 엮이지 않고, 그저 그 인물의 지표만을 보며 행동했다.

이런 마음으로 그의 진지한 마음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소연이 느끼기에 그것은 어쩌면 모독에 가까웠다.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참, 어이가 없지.”

아직도 그녀는 제 마음을 몰랐다.

확신이 없었다. 그를 보면 살짝 심장이 떨리는 느낌이 있었다. 어딘가 소름이 돋는 느낌이기도 하면서, 살짝 몸이 달아오르는 이상한 기분.

그러면 이건 사랑일까.

그녀는 그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아직 소연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게 얼마나 걸릴지도, 대체 왜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세계를 게임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 편해진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야지만 사람의 죽음에도 덤덤해질 수 있었으니까.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대담하게,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건 언제였을까. 아마 그녀가 처음으로 보았던 전쟁에서, 그 전투에서 호세가 제 이로 사람의 목줄을 씹어먹을 그때부터였으리라.

그 광경은 아직도 그녀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적응해? …오히려 멀어졌는데.”

소연은 그 사실이 우스워서 픽 웃었다.

게임으로 느끼면 적응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 세계의 잔혹함에서 그저 눈을 돌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눈을 돌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그의 상태창은 그녀의 눈에 아른거렸다. 소연은 문득 머리가 아파지는 걸 느끼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봄이 오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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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가씨도 슬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러면서도 이제 진짜 군웅할거의 시대가 개막할 타이밍입니다.

10편 안에 야스 나옵니다.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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