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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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은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었다. 형양전투 이후로 모든 것이 꼬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역사를 바꾸려고 움직였던 전투.
거기에서 아군은 결국 패했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결국 전쟁에서는 패했다. 최종목표였던 동탁을 놓쳤으니 그걸 어떻게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이후, 정확히는 연합군이 해체된 직후부터 조조가 자꾸 전령을 보내오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앞으로 조조가 어떻게 움직일지 대충 예상이 가는 상황에서 이런 태도.
“쯧.”
그녀는 손에 쥔 죽간을 던졌다.
어차피 조조와는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있었다. 조조 휘하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는 분명 앞으로 계속 승리해나갈 입장이었고 원소는 제 수명이 발목을 잡을 것이었다.
단지 소연은 무언가 마음에 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을, 그렇지만 확실하게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일단, 움직여야겠지.”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을 지새울 수는 없었다.
원소는 곧 기주를 공략한다. 그렇다면 소연은 그걸 뒤에서 받쳐도 좋았고, 아니면 조조와 동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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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슬한 흙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곧 봄이 온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아직은 차갑게 식은 흙바닥의 차가움에 몸이 떨렸지만,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정확히는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허억, 후아. …너 진짜 세긴 하네.”
혀를 내둘렀다. 조운은 정말 강하기는 강했다. 그것이 여포만큼 강하냐고 묻는다면 분명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내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오라버니도, 강하신데요.”
그녀도 숨을 헐떡이긴 했지만, 적어도 나처럼 바닥을 기고 있진 않았다. 유효타를 전혀 못 넣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내가 맞은 유효타가 훨씬 많았다.
아직도 허벅지가 저렸다.
“후우. 오라버니는 다 좋은데, 상대 움직임이 빨라지면 수비적으로 돌아 들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야 양상을 바꿀 수가 없잖아요?”
“그건 몰랐네.”
그냥 몸이 움직이는 대로,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을 선택한다고 했던 것이 다른 사람이 보면 그리 보였을까.
본능에 맡겨 몸을 움직였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이길 수 없다고 느끼면 최대한 수비를 선택하며 빈틈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나보다 강한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우, 오늘은 못하겠다.”
더 하다가는 진짜 숨을 거둘 지경이었다.
“수고하셨어요.”
후들거리는 손으로 땅을 짚으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방이 욱신거린다. 방삼이는 이런 걸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녀석도 집념 하나는 알아줘야겠다.
“괜찮아요?”
운이는 제 손에 천을 쥐고 내게 다가왔다. 언제 저런 걸 준비했나 싶어서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말하려던 찰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좋은 것을 보았으면 응당 찬사가 필요하지.”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조조가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 뒤에는 하후돈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고, 조홍이라던 여인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구, 조조 님은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억지로 몸을 일으키니 요통이 몰려왔다. 운이는 잽싸게 내 뒤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조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았다. 분명 그대가 오른쪽 허벅지를 두들겨 맞을 때부터인가. 아, 중반에 배를 얻어맞고 쓰러지던데, 몸은 괜찮은가?”
“아, 예. 뭐 몸은 괜찮죠.”
운이도 손속을 두었으니 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오른쪽 허벅지를 맞을 때부터면 거의 처음부터 직관했다는 소리인데, 그걸 저리도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어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다.
“볼일이 있으시면 아가씨에게 가시면 될 것을, 사람 두들겨 맞는 게 뭐가 재밌다고 그리 지켜보십니까요.”
“어허, 이 친구. 말이 좀 까칠하네?”
조홍이라고 했던가.
당시 여포와 싸우느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던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지만 표정 자체는 웃음기가 가득한 것이, 딱히 책잡으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그는 원래 이런 이다.”
조조가 그리 말하니 조홍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야 있지. 게다가 우리 언니야 살려준 남자인데, 그런 말투 하나로 뭐라고 하는 것도 어른스럽지 않지?”
“쯧, 자렴. 너는 조금 더….”
“에베베, 하여간 고지식하긴!!”
하후돈이 그녀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자마자 바로 혀를 내밀며 등을 돌린다. 조금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할까, 초면부터 저렇게 희극 하나 찍고 있으니 영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땐 미처 못 물어봤는데, 저 황금투구는 대체 뭔가? 무슨 투구가 저리 휘황찬란하냐. 딱 봐도 죽기 좋아 보이는 투구가 심히 눈에 걸렸다.
그녀도 그 시선에 눈치를 챘을까.
“어머? 이 투구가 탐나니?”
어느새 잽싸게 투구를 벗은 그녀가 내게 다가오며 황금투구를 흔들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것이 심히 눈에 거슬렸다.
“이거 가지고 싶니~?”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거리는 황금투구에 눈길이 갔다.
아니 딱히 원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저렇게 쓰기만 해도 이목을 집중시켜 딱 죽기 좋아 보이는 투구를 누가 원한다고….
“피, 필요 없수다.”
“어머? 그러면서 눈은 계속 돌아가는데?”
아니다. 이건 그냥 황금이라서, 비싸 보여서 눈길이 갈 뿐. 절대 탐이 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저거 팔면 꽤 비싸 보이긴 하는 것이, 조금…….
“조홍, 그만하도록.”
“네입.”
그러니 그녀가 그 투구를 홱 치운다.
“흠? 뭔가 아쉬워 보인다만.”
“그런 거,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아쉽기는 했다. 투구의 기능이나 성능을 떠나서, 가져다가 팔면 비싸게 팔릴 거 같지 않은가. 솔직히 있던 돈도 전부 군에 때려 박아서 좀 가난하기도 하고. 아니 뭐, 탐나지는 않지만.
“…오라버니.”
뒤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구태여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괜히 돌아봤다가 운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기라도 한다면.
어우, 싫어.
“내 그대에게 준비할 선물을 조금 착각했는가.”
그녀는 그러면서 손에 쥔 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집부터 무언가 때깔이 나는 것이, 제법 명검처럼 보이는 것을 집어 든 그녀가 이내 그것을 내밀었다.
“뭡니까요?”
“청강검. 제법 잘 드는 검이다.”
아니, 검의 이름을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맹덕. 설명이 너무 짧아.”
“아, 그런가.”
옆에서 하후돈이 말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의천과 부부 검이기도 하지. 나쁜 검은 아니다. 의천에 비교해도 나름 잘 드는 면이 있는 것이, 가지고 있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터.”
“아니, 그 설명이 아니라….”
이내 하후돈이 한숨을 내쉬는데, 한숨은 나도 내쉬고 싶었다. 뭐지? 그래서 이 검을 준다는 건가? 그런데 왜 주는지 이유도 모른다. 그저 검을 내밀고 있는 조조만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
“맹덕은 저번 형양에서의 전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검을 선물하는 거다. 받아둬라. 그거, 생각보다 진짜 명검이니까 받아서 나쁠 건 없지.”
“그러하다.”
결국은 하후돈이 다 설명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조조가 가슴을 내밀며 콧김을 뿜었다. 역시 이상한 여자였다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검을 선물한다는 건 의외였다.
그동안 이 여자에게 좋은 소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는데. 되려 괴물이라느니 폄하하지 않았던가.
“괜찮겠습니까요?”
물론 검을 선물로 준다면 나쁠 것은 없었다.
지금 쓰는 것도 솔직히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당장 어머니가 준 검을 아가씨에게 맡겨두긴 했지만, 그건 애당초 아까워서 쓸 생각도 없던 것.
“본인의 목숨보다 중한 검은 아니니 개의치 말라.”
그야 물론 자기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기는 하지만. 애당초 어차피 구해야 했던 것을, 이렇게 보답이랍시고 선물을 받는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흠, 그대는 본인이 무안해하는 걸 보고 싶은가? 생각 이상으로 나쁜 남자로다. 그렇게 수많은 아녀자를 울리고 다녔음이 보이는군.”
“누가 울렸다고 그러오!?”
그리 말하며 일단 건네는 검을 받긴 받았다.
무게는 제법 나간다 싶긴 하지만, 애당초 아무 검이나 쥐고 다녔던지라 나름 적응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길이도 내가 쓰던 검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적응에 고전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거, 감사합니다. 잘 쓰겠수다.”
“그럼. 이 의천과 부부 검이다. 그만큼 명검이니, 혹여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부러뜨린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야.”
아니 그럴 거면 대체 왜 줘?
부담감만 잔뜩 안겨주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할 일은 전부 마쳤다. 돌아가자.”
“잘 있어, 좋은 친구~!!”
조홍은 마지막까지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었다. 하후돈도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리니, 이내 그들은 천천히 진영 바깥을 향해 걸어나갔다.
“거, 조심히 가십쇼!”
그러니 조조가 손을 들어 한 번 흔들어준 뒤 완전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뒷모습만을 하염없이 지켜보다 이내 그녀가 준 검을 향해 눈을 돌렸다.
한 번 검집에서 뽑아보니 명검인 티가 나기는 했다.
“정말 폭풍 같은 여자네요.”
그제야 조운이 입을 열었다.
그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말로 자기 할 말만 던지고는 금세 떠나버렸다. 그것이 못내 우습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해 조금 어지럽기도 한 것.
“게다가 부부 검이라고 왜 그렇게 강조한대요?”
“뭐, 그런가 보지.”
부부 검이라나. 뭐, 원래 한 쌍으로 만들어진 검은 부부 검이라고 부르고들 했으니까. 괜히 압박감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선물로 받은 것이면 잘 쓰면 그만이었다.
어쨌거나 검을 뽑았으니 한 번 휘둘러 보았다.
균형은…, 이 정도면 완벽했다. 대충 휘둘러도 날이 세워졌다는 느낌이 확 드는 것이, 어지간한 초심자가 다뤄도 충분히 역할을 다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좋은 검이네.”
몇 번 더 휘두르며 간극을 잡았다.
무게는 평소 다루던 검에 비해 다소 무겁기도 했지만, 이 정도는 적응할 수 있었다. 애당초 싸우다 보면 땅에 떨어진 무기도 쥐고 싸우는 판국에 이만한 검이면 불평하기도 힘들지.
“…마음에 드시나 봐요.”
운이는 웬일로 뺨을 부루퉁하게 부풀렸다.
“뭐냐, 부럽냐?”
거참, 아무리 부러워도 그렇지. 대놓고 낯빛을 어둡게 하고 검을 바라보기는. 그것이 못내 우스워 검을 검집에 넣고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런 게 아니고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뭔데?”
“그냥, 그 있잖아요.”
무언가 주저하는 듯한 느낌. 그러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이쪽을 향해 애써 미소를 지었다. 꾸민듯한 미소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별거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좋다면 그걸로 됐죠. 뭐, 공짜라는데 사양할 거 있나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입을 꾹 다문 모양새로 보아 재촉해도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허리춤에 꽂았다.
나도 천생이 무인이라는 걸까.
산적이었던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명검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다소 들뜨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흐흐, 흐흐흐. 이거 나쁘지 않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과거 내 악몽이었던 여자가 나를 인정했다는 것. 도무지 사람 같지 않아 보였던 여자가 내 공로를 인정해준 것이었다.
괴물처럼 보였던, 그만큼 뛰어나 보였던 여자가.
“어휴, 어린애 같기는.”
운이가 뒤에서 뭐라고 꼽을 주는가 싶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다소 힘까지 주며 내 어깨를 꾹 쥐었다.
“오라버니. 조심해요. 세상에 공짜라는 건 없어요. 특히 저런 사람에게는요. 뭔가 바라는 게 있을 거니까, 그런 것만 조심해요. 네?”
“알고는 있어.”
물론 나 같은 것에게 무언가를 바라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운이가 하는 말도 분명 일리가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자니 허리춤이 매어둔 검이 조금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묵직하게, 마치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
“에잉, 밥이나 먹으러 가자.”
몸을 움직였더니 배가 고팠다. 쓸데없는 잡념을 떨치기에도 식사만 한 것이 없었다. 그리 말하며 조운의 손을 이끌고 막사로 향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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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를 벗어나 말에 오르기 전에 하후돈이 입을 열었다.
“맹덕, 저 검 아끼던 것이 아니었어?”
과거 그녀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던 두 자루의 검 중 하나. 그것은 분명 조조가 애지중지하며 가꾸던 검이었다. 무인이 아닌 조조가 아끼고 가꿀 정도의 명검.
사실상 보물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니.
“투자다.”
그 질문에 조조는 시원스레 답을 내놓았다.
그것이 하후돈에게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건 이해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별도로 다른 것을 주어도 그만이 아니었던가.
“무얼 위해?”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말에 오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하후돈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최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그도 그녀를 따라 말에 올랐다.
오로지 조홍만이 야릇한 미소를 흘릴 뿐.
“우리 원양, 여자 마음을 너무 모르네.”
“무슨 헛소리를.”
조홍과 하후돈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슬슬 해가 떨어져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시기.
그녀는 붉은 석양에 시선을 맞추었다.
“더는 욕심을 참지 않기로 했으니까.”
아무것도 참지 않으리라.
그녀는 오랜만에 상쾌히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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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코멘트 하나하나 정성들여 읽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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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순둥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