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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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은 형양의 가도를 지나 동탁군과 마주하는 방향으로 진을 쳤다. 서로 전투를 벌일 생각은 없는지 침묵을 지켰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묘한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아가씨, 화 좀 풀라니까?”
“멍청하긴. 화 안 났거든?”
무슨 화가 안 났는가.
지금도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칠 생각도 안 하고 있으면서, 입으로만 화나지 않았다며 둘러대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녀는 분명 아직도 화를 내고 있었다.
형양 가도의 전투를 마친 이후.
아가씨는 내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왜 여포와 또 싸웠는지를. 물론 하나하나 설명은 했지만, 그것에 아가씨도 분명 납득은 했지만.
그런데도 아가씨는 그 이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것이 조금 슬프기도 해서 멋쩍게 웃으며 아가씨의 곁으로 다가갔다.
“거참. 나도 어쩔 수 없었다니깐?”
“알고 있어. 네가 제때 안 달려왔으면 졌을 수도 있는 전투였으니까. 분명 큰 공적을 쌓은 것만은 확실하지.”
“그러면 왜 화를 내냐니까는.”
이 말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금 저 멀리에서 아군이 부지런하게 군영 내를 돌아다니며 정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계속 보강을 거듭하는 것은 옳았다.
나도 다시 재차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 찝찝한 기분을 해소하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일단, 나도 준비하러 가볼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꼭 부르쇼. 그리고 요즘 잠을 잘 안 잔다고 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잠은 꼭 주무시고.”
수면을 해치는 건 건강을 잃는 지름길.
그리 말하고 돌아가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았다. 아가씨는 등 돌린 내 옷깃을 꾹 잡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걱정하게 하지 마.”
“…노력은 해볼게.”
내 마음처럼 쉬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 주군이 걱정하지 않게 하라고 명하신다면 그에 따르는 게 맞는 일이지.
군영은 여전히 혼잡했다.
거기에서 우리만 아무런 말도 없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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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양의 전투 이후 수일이 지났다.
그간 연합군은 태세를 정비하고 동탁군과 마주하기를 계속했으니. 조조는 원소에게 보낸 전령이 돌아오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은 묶었다.
아군이 이렇게 버티고 있는 이상 동탁의 군도 행군을 늦출 수밖에 없었으니. 여기서 연합군만 제대로 합류해준다면 충분히 동탁의 목을 노릴만한 상황이었다.
그걸 놓칠 정도로 원소가 멍청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조조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제 막역지우였던 원소를 높게 평가했다. 정치적인 행보는 파격적이고 사람의 인망을 얻는 능력도 탁월한 남자. 그렇기에 순식간에 저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였다.
그런 유능한 남자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랬는데.
“뭐라 하였는가.”
“…맹주께서는 빨리 회군하실 것을 명하셨습니다. 또한 이번 경거망동에 대한 일은 불문에 부치겠으니 분무장군은 당분간 자숙을 하고 있으라고…….”
조조가 손짓하여 전령에게 다가올 것을 명했다. 그리고서는 그 손에 잡힌 죽간을 빼앗아 한 글자씩 읽어나가고, 다 읽고도 다시 한번, 또 한 번 읽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 쓰인 말은 도무지 못 받아들일 말들뿐.
원소는 퇴각하라는 명령과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말. 자숙하라는 말과 함께 사태가 혼란하여 연합군을 움직일 수 없다고 적어두었다. 제후 간의 전투로 교모가 살해당했다던가.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런데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에서 조조는 도무지 이해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황제를 바꾸겠다고. 원소가? 황제를.”
지금의 황제는 동탁이 세운 위천자이니 제대로 된 황제를 모시고 천하를 안정케 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충정이 될 것이니. 당장 동탁에게 신경 쓰기에 앞서 내실을 단단히 다지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맹덕.”
그걸 지켜보던 하후돈이 씁쓸히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 전쟁을, 이 연합군을 그녀가 얼마나 중히 여기였는지,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지도.
그런데 그 결말이 이런 것이라면.
“다 나가라.”
“맹덕.”
“다 나가라 하였다!! 명령을 듣지 못하겠는가?”
조조가 신경질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하후돈이 먼저 눈을 감고 나가니, 그 뒤를 따라 휘하 제장들이 전부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조조.
“……원소. 너는 권력의 괴물이 되었구나.”
이 상황에서 구태여 새로운 황제를 추대한 이유가 뭘까. 조조가 생각하기에 그건 너무나도 뻔했다. 본인이 제2의 동탁이 되겠노라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잡기 힘든 동탁을 잡아 영웅이 될 바에는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고 그의 곁에서 권세를 누리겠다는 생각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을까.
환멸스러웠다.
이 세상에 진정 천하를 생각하여 움직이는 이가. 한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움직이던 이는 결국 아무도 없었다는 소리였다.
그것이 조조에게는 너무나도 우스웠다.
“끄흐, 끄흐흐흐. 흐흐, 흐하하하하아아아아아!!!!”
웃음은 비명으로, 이내 절규로.
조조는 그리 한참을 웃었다. 웃으면서 울었다.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로잡고 싶었다. 거기에 조조라는 이름이 남는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다른 욕심도 전부 삼키고, 그저 그것만을 생각하고 움직였다.
조조라는 여자는 그것 하나만을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는 이러했다. 언제나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목숨을 걸고 행했던 일들이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천하를 바로잡고자 했거늘, 언제나 실패하면서도 이 질긴 목숨은 끊어지지를 않았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는데.
목숨까지도 내놓았는데.
그런데도 천하는 그것을 허하지 않으면서 그 목숨마저도 거두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의문이었으며, 반대로 무엇보다 한스러운 것이었다.
“그래, 원소. 네가 그렇게 나오겠다면.”
새로운 황제를 추대한다.
결국에는 동탁을 방치하겠다는 소리와 무엇이 다른가. 지금 동탁을 치면 고난 겪을 수는 있어도 다시 한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천하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지 오래였다.
제후라는 것들이 몇만의 병력을 우습게 이끈다. 그 병사가 다 어디에서 나왔을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지금 이 모든 사태는 결국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혼란을 멈출 생각이 없다면.
원소의 의향은 결국 이 천하의 혼란을 더욱 가속할 것이었다. 현 황실의 명맥을, 그 위엄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제후도 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될 터.
조조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거대한 천하가 갈기갈기 찢겨 분열된 미래. 그것은 분명 수많은 군웅이 난립하여 저마다의 욕심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미래였다.
군웅할거의 시대.
“좋다. 원소 네가 그리 나온다면 본인도 더는 참지 않겠다. 권력을 위해 그대가 피를 흩뿌린다면, 본인 역시도 피를 흩뿌리마. 그 권력을 위하여.”
더는 지킬 것이 없어져 버렸다.
앞으로 천하에 펼쳐질 것은 권력에 미친 늑대들이 벌이는 살육전뿐. 앞으로의 시대는 욕심을 내는 이들만이 살아남는 비열한 군웅의 천하일지니.
“본인도 이제 욕심을 내보고자 한다.”
원소, 그대는 본인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 중얼거리며 조조는 한동안 의자에 앉아 계속 웃기를 반복했다. 망가진 기계처럼, 단지 하염없이 같은 음색으로 웃기를 반복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날.
그녀의 안에 있던 무언가는 확실히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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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 조조의 군을 중심으로 뭉쳤던 아군도 퇴각하기로 정해졌다. 연합군에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도 여기에 남을 이유가 없기야 했다.
동탁을 눈앞에 두고 이리 물러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지.
“아가씨는 여전히 그러냐?”
“네, 오라버니. 아직도 그냥 막사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셔요. 식사라도 좀 드셔야 할 건데. 방삼 씨가 아까도 갔다가 그냥 돌아오더라니까요.”
이 퇴각이 결정되고 아가씨는 막사에 박혀 두문불출을 고수하고 있었다. 아마 아가씨는 이 퇴각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런 그녀가 저리 나온다는 것은 다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이리도 충격을 받았다는 건, 반대로 이 앞이 얼마나 깜깜한 어둠일지.
“이건 동탁 토벌을 포기했다는 거겠지?”
“그렇겠죠.”
운이는 그리 답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상 이번 퇴각으로 반동탁 연합은 끝났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벌써 연합군 본영에서는 내분까지 벌어질 정도로 개판이 되었다고 하던데.
천하를 바로잡고자 했던 군의 최후치고는 너무 볼품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그저 낙양만이 불타버렸을 뿐. 우스운 결말이었다.
“앞으로는 동탁을 잡기 더 어려워지겠네.”
사실상 연합군이 이렇게 지리멸렬하게 자멸했다.
그러면 이제 그 누가 또 동탁을 잡겠다고 나서겠는가. 현 천하에 단일군벌로 동탁과 겨룰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것은 유주의 공손찬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는 북방에 있어 동탁을 잡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나머지 중원 인근에 있던 군웅들은 이번 연합군에서 쓰라린 패배를. 패배라고 말할 가치도 없는 내분으로 무너져내렸다.
더는 동탁을 잡을 군웅이 없었다.
“이러면 사실상 동탁의 천하가 아닌가요?”
“나야 모르지.”
황실을 구하고자 했다면 이번 토벌에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연합군의 현 행보는 사실상 한나라를 완전히 포기한 반역분자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사실 그들에게는 한나라는 없는 편이 낫지 않은가?
저마다가 제 지역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통치하는 것이 한나라인데, 그것이 없어진다면 이제 그들을 누가 억제하고 제어할까.
만약 정말로 그들이 한나라를 포기한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연합군은 이십만을 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걸 반대로 말한다면 여기 모인 제후는 적어도 일만이 넘는 사병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이들이라는 방증이기도 했으니.
그것을 제어할 수단이 사라진다면?
“오라버니, 표정 좀 풀어요.”
조운이 곁에서 표정을 풀라며 애써 미소를 짓는다. 그걸 보고 나도 우스워서 한 번 웃기야 했지만, 이 사태는 그저 웃어넘길 사태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불길해서 그래, 불길해서.”
앞으로 평화 따위는 없을 것만 같아서.
그것이 너무나도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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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막사에서 홀로 선 그녀는 제 허리춤에 찬 의천검을 빼 들었다. 하늘에 기대겠노라는 그 검을, 조조는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천하를 쥔다.”
그녀는 그리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모두가 미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현 천하의 주소. 그렇다면 그걸 누군가가 올바르게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 천하를 다시 손아귀에 쥘 난세의 패왕이 필요했다.
만약 그것이 그녀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아, 달콤하구나. 이것은 꿀인가, 혹은 독인가.”
꿀이라면 더 할 나위 없었고, 독이어도 상관은 없었다. 그녀가 느끼는 것이 현실이라면, 앞으로 그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혀야 할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천하를 쥐겠다.
어릴 적 죽었던 욕심쟁이 아만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본디 어릴 적 누구보다 욕심쟁이였다. 가지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가져야만 성이 풀리는 희대의 악동이었다. 그것을 성인이 되고 정계로 나가면서 죽였다고 생각했었던 것이.
“다시 고개를 드는가, 아만.”
다시 한번 욕심을 내려 하는가.
이번에는 한낱 사소한 것이 아닌 이 천하를,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가지고자 욕심을 내는가. 하여 그 모든 것을 씹어 삼킬 과욕이 되려 하는가.
어린 소녀 아만은 미소를 지었다.
조조도 그걸 마주하고 미소를 짓는다.
“원양! 바깥에 있는가!”
그녀의 외침에 막사 바깥에 서서 대기하고 있던 하후돈이 한달음에 천막을 걷고 막사 안으로 달려왔다. 그 안달이 난 표정에서 그가 얼마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있었을지가 상상이 되었다.
“맹덕! 이제 좀 괜찮냐…?”
“그럼. 본인은 언제나 괜찮았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씩 웃었다.
붉은 눈이 빛을 발했다. 하후돈은 그 미소가 다소 요사스럽다는 느낌이 들어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그는 그 감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군을 움직인다. 일단은, 그렇군. 어쩔 수 없이 원소에게는 가야만 하는가. 놈에게는 아직 받아낼 빚이 있으니까.”
“맹덕?”
“그 뒤에는, 그렇군. 일단 원소의 권세에 기대어 군을 확장할까. 아니면 차라리 독립을? 흠. 무얼 선택해도 남는 장사군. 아주 좋다.”
그녀는 불러둔 하후돈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홀로 떠들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들어 하후돈을 바라보았다.
그의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흘렀다.
“원양. 앞으로 우리는 더 커져야만 한다.”
“맹덕, 왜 그래.”
조조가 그 말에 씩 웃었으니.
“천하를 쥐자, 원양. 본인은 앞으로 패왕이 되겠다. 그대는 앞으로 그 패왕의 검이 되어 천하 전체를 씹어 삼킬 용의는 있는가?”
하후돈은 그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조조는 어딘가 망가져 버렸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그렇지만.
“되어주지, 그 검.”
그에게 조조를 버린다는 선택은 불가능했다.
그걸 지켜보던 조조가 만족스레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그녀는 제 머릿속에 있는 모든 가정을 그에게 반복해서 읊었다.
하후돈의 눈가에는 살짝,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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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조조는 애기에요... 지켜줘야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