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68화 (68/343)

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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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기와 검의 교전. 묵직하게 부딪치는 감각에 몸을 틀었다. 상단을 향한 베기가 막혔다면 바로 전환하여 찌르기를.

“흡!!”

그마저도 화극의 창대에 막혔다.

몇 번의 교전이 이어졌다.

처음 여포와 부딪쳤을 때만큼의 힘은 느낄 수 없었다. 그나마도 분명히 강하여 힘으로 뚫기는 무리가 있겠거니 싶었지만, 적어도 압도적인 힘에 그저 무릎을 꿇었어야 했던 그때와는 양상이 달랐다.

몇 번인가 검을 휘둘렀다.

그저 몰아지경.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았다. 전투는 계산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한 발짝, 상대보다 더 빠르게 위치를 잡고 계속해서 몰아붙여야만 했다.

그러나 그 한 발짝을 천하무쌍은 내주지 않는다.

짧은 간극. 저쪽은 긴 장병기를 다루는 것에 비해 이쪽은 상대적으로 공격의 변화를 빠르게 줄 수 있는 검으로 상대하고 있음에도 호각으로 공수가 맞붙었다.

더 빠르게, 정확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휘둘렀다. 아무 생각도 없이. 유효타 같은 것조차도 머릿속에서 지우고는 그냥 본능에만 몸을 맡겼다.

“새끼가.”

처음으로 여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순간 집중이 틀어질 뻔했지만, 성공적으로 다음 공격을 이어나갔다. 빠르게 후려친다. 그것이 안 되면, 어떻게든 상대를 압도해서 정신을 빼놓아야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분명 공세에 나선 것은 나였다. 검을 휘두르며 압박을 가하는 것도, 상대를 수세에 몰아넣은 것도 나였다. 내 검은 오롯이 수비를 버리고 여포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었는데.

어째서 내가 뒤로 물러나고 있는가.

정신을 차리니 벌써 두 발짝인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것은 나였는데, 정작 뒤로 물러선 것도 이쪽이었다.

“거기, 비켜어어어!!”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확인도 하지 않고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빠르게 자리를 굴렀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바닥을 구르며 위를 확인하니 누군가가 창대 그대로 방천화극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게 진짜 죽으려고.”

창대끼리 삐걱대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이 조홍, 아직 죽으려면 멀었지?”

조조의 모습에서 어른이 되면 저런 느낌일까 싶었다. 같은 조 씨인 것을 보아 그녀의 친지일까. 그녀는 인상을 쓰면서 여포와 힘을 겨루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오래 버틸 리 없었다.

여포는 제 화극을 휘둘러 조홍을 바로 밀쳐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조홍은 밀려나면서도 자세를 잡고는 다시 창을 견주었다는 것.

“거기 소년이 호세? 얘기는 몇 번 들었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힘겹게 웃었다.

“소년 소리 들을 나이는 진즉에 지났지.”

땅을 구르며 피했기에 아직 주저앉아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여포는 여전히 목을 까닥이며 우리는 노려보고 있을 뿐.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시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거참, 이 친구도 막 나가네.”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 뒤를 따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녀와 내가 양옆으로 여포를 두드리는 형세가 되었다.

내 검이 화극의 곁가지에 걸릴 때 그녀가 여포의 몸통을 노리고 창을 내지른다. 그걸 여포는 몸을 틀어 피하면서 화극을 휘둘러 조홍을 뒤로 물리면, 그 틈을 내가 다시 파고든다.

겨루는 합의 속도가 더 가팔라진다.

점점 전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에 여포도 미간을 찌푸리면서 점점 화극을 휘두르는 속도를 올린다. 창과 검을 동시에 막아내면서도 제 화극을 휘둘러 공격으로 이어나간다.

그렇게 수 합, 수십 합을 맞붙었다.

점점 밀리기 시작하는 것은 누구인가.

볼 것도 없이 우리가 밀리고 있었다. 원래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인지 조홍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한쪽의 공격이 느슨해지는 만큼,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공격적으로 나서야만 했다.

어깨를 당기고 단번에 내지른다.

여포는 그걸 막아내면서도 창대 끝자락으로 조홍의 배를 가격했다. 한쪽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뒤를 살피어 공격을 이어나가는 모습.

조홍은 결국 그걸 마지막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진짜 존나 세네, 시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해서 아무 말이나 던지며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여포와 겨루면서 숨도 제대로 고를 시간도 없었다. 턱밑까지 올라온 숨을 어떻게든 고르면서 검을 쥐었다.

“천하무쌍을 그럼 딱지치기로 얻었겠냐, 병신아.”

그녀는 방천화극을 견주며 고개를 까닥였다.

저 뒤편에서는 아직도 전쟁의 한창이었다. 우리 기병대는 성공적으로 적 내부를 가르며 말을 몰아 뚫어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된다.

“후우우….”

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번. 벌써 이걸로 여포와는 두 번째 맞대결이었다. 그때와 다르게 상대에게 불리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천하무쌍은 천하무쌍이었다.

그때의 절망과 공포는 아직 잊지 않았다.

발 끝자락에 힘을 주었다. 발가락 하나하나에 지면의 단단함을 느끼며 여포를 향해 검을 견주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감각도, 털끝 하나까지 뻣뻣이 솟을 만큼 긴장되는 이 시간도.

전부 여기서 끝내겠다.

“여포오오오오!!”

다시 땅을 박찬다.

달렸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창대에 막히는 것은 당연했다. 반대로 몸을 틀러 우측 하단에서 올려붙이는 공격도, 중앙으로 내지르는 공격도 전부 막힌다. 당연히 예상했던 것이기에 바로 다음 공격으로 이어간다.

중간중간 여포의 화극을 피하며 공격을 주고받았다. 과거에는 힘에서, 속도에서. 모든 부분에서 그녀에게 밀렸기에 완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만큼의 압도적인 차이가 없었다.

적어도 지칠 대로 지친 여포는 이쪽을 완벽히 압도할만한 신체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합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전투를, 시간을 끌기 위한 교전을 반복한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여포의 목을 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야 당연히 그녀의 목을 쳐 위령 패에 올리고 싶은 것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친 여포 상대로도 열세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때만큼 압도적이지 못하다뿐이지 나보다 빠르고 강한 것은 확실했으니.

그렇다면 승리라도 가져가야만 했다.

교전을 반복하면서 아군이 다시 일어날 때를 기다려야 했다. 달려오면서 보았던 좌군과 우군은 빠르게 치고 올라가면서 동탁군을 포위하려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이 새끼가, 자꾸 시선을 어디다…?”

여포는 드디어 제 주변을, 저 멀리에 있던 동탁군의 상황을 돌아보았다. 이미 내가 몰고 왔던 기병으로 한 번 들쑤셔진 틈을 빠르게 양 측면의 군이 두들기고 있는 상황.

“안 가봐도 괜찮나?”

여기서 죽이고 싶었다. 만약 더 싸우겠다고 하면 그때는 진짜 죽을 각오로, 그렇지만 여포를 죽일 각오로 싸울 준비가 되었다.

“하, 시발. 너 운 좋은 줄 알아.”

“운 아닌데.”

모든 건 사마의와 의논했던 대로였다.

분명 적 선봉은 여포가 맡았을 것이니, 그걸 버텨내며 아군의 기병으로 적을 두드린다. 그렇다면 분명 틈이 벌어질 것이니, 정상적인 지휘관이라면 분명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결국 여포도 퇴각할 수밖에 없노라고.

사마의는 그리 말하면서 내게 여포를 막을 것을 권했다. 당신이 영웅이 되려면, 저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만 한다며 씩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쯧, …서영 영감!! 발 빼자!!”

여포가 먼저 등을 돌렸다.

드디어 여포가 먼저 등을 돌렸다. 하마터면 조조라는 수장을 잃을 뻔한 전투였던 것을 어떻게든 이겨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보내면 조금 섭섭하지 않은가.

검을 역수로 쥐었다. 여포는 잽싸게 제 적토마에 올라타고 있을 때였으니, 그 등을 노리고 있는 힘껏 검을 던졌다.

그걸로 죽어주면 최상인 것을.

“큭!!”

여포는 그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잽싸게 방천화극의 창대 끝자락으로 그걸 빗겨냈다. 그렇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니, 어깨 근처를 검에 베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내가 그 여포에게 피를 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를 빠득 갈더니 이내 적토마를 몰고 저 멀리 물러났다. 저 멀리를 보니 서영이라는 인물 역시 조운과 싸우는 것을 멈추고 퇴각을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으니.

한고비는 넘겼나.

“아이구, 이보쇼. 죽었수?”

저쪽에 널브러진 조홍이란 사람에게 가 뺨을 톡톡 건드렸다. 흰 피부에 진흙이 잔뜩 묻어 다소 볼썽사납기는 했지만 숨은 분명 붙어있었다.

“아, 아직…, 살아있거든……?”

“다행이구만.”

동탁군이 드디어 물러가기 시작했다. 아군에서 추격을 개시했지만 그리 멀리 이어가지는 않겠지. 당장 저 멀리에 진을 치고 있는 동탁군이 움직일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어이, 조조 님. 그때의 빚은 갚았어.”

그날.

여포에게 죽을뻔했던 날의 빚은 이걸로 갚았다. 그걸 재차 확인시켜주니 조조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한 전쟁이 또 막을 내렸다.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저 멀리에서 조운이 이리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녀석도 고생깨나 했는지 온몸에 흙먼지를 묻히고 있었다.

“오라버니!! 어떻게 오라버니가, 아니 그것보다 몸은요!? 이쪽으로 여포가 왔었는데, 아니 대체 왜 그 몸으로 전쟁터를 와요!?”

“한 가지씩 말해라.”

운이가 내 왼팔을 부여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려 보니 그새 왼쪽 어깨의 상처가 또 벌어졌는지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왠지 도중부터 아프더라니.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하내는….”

“거긴 어떻게든 했다. 일단은 쉬어. 전쟁 끝나고 얼마 안 됐다. 일단은 쉬고 나중에 얘기하자. 아가씨는?”

“본대에서 지휘를 맡고 계세요.”

그 말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그 아가씨가 벌써 지휘관의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말이지. 예전과 비교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옛날에는 사람 모가지에도 겁을 먹었던 여자가 벌써 이리도 성장하는가.

물론 그것이 인간적으로도 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있었다. 자고로 인간은 전장과는 조금 동떨어져 지내는 것이 맞았다.

전장은 언제나 인간은 미치게 하니까.

괜히 무관들이 천시받는 것이 아니었다. 전장을 오래 구른 이들은 다들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 백정이라고 무시를 받는 것도, 그들이 사람을 죽이면서 어딘가 내면이 틀어진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아가씨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는 소망이 있었다. 물론 이런 시국에 그게 가능할 리도 없었지만.

“그래. 일단 아가씨를 뵈러 가자.”

동탁군도 이렇게 물러났으니 당분간은 재차 공습을 가하지는 않을 터. 일단 아가씨를 만나서 상황을 보고하고 그 뒤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 생각하고 등을 돌렸을 때,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얹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조조가 내 어깨를 붙잡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뭡니까?”

“…아니, 아니다.”

싱겁기는.

조조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어깨를 쥔 손을 풀었다. 묘하게 손가락에 힘을 주었기에 살짝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무슨 할 말이 있던 것이 아닌가?

“몸조리 잘하쇼. 어깨, 그거 계속 움직이면 잘 안 아물더이다.”

“그대의 어깨처럼?”

그녀가 손가락으로 내 왼쪽 어깨를 가리켰다.

백파적과의 전투에서 한 번 터지고 얼추 다시 아물던 것이 이번에 또 터졌다. 벌써 바깥으로도 보일 정도로 핏자국이 흥건한 그것을 보며 머쓱하게 웃는다.

“뭐, 그렇지.”

“그런가. 주의하지.”

그녀는 그리 말하며 등을 돌렸다. 이쪽도 적당히 고개를 숙이며 조조에게 멀어져 아군 진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조운은 그저 내 옆을 지켰다. 사방에서는 전투 이후의 뒷수습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 둘만이 유유자적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서로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으면서, 그저 한 발짝씩.

“오라버니.”

조운이 내 소맷자락을 쥐었다.

“오늘, 멋있었어요.”

“그러냐.”

뭐가 멋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멋있다고 해주니 고생했던 것이 다소 보답받은 느낌이 들었다. 고작 그런 말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픽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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