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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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분명 전장이 가까워졌다는 것. 말을 몰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예전부터 내 귓가에 맴돌았던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고 말에 박차를 가하여 더욱 속도를 올렸다. 전장이 한창인 듯싶으니, 아마 지금 달려나가면 늦지 않게는 합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점점 전장의 모습이 보였다.
가장 먼저 비친 것은 밀리고 있는 조조의 군.
“……여포?”
그것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 여포의 깃발이었다. 저 깃발을 내가 꿈에서도 잊은 적이 없으니, 그건 분명 여포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
조조의 중앙군을 여포가 이끄는 기병이 덮쳐 그대로 밀어내는 형국이었다. 그 양옆을 아가씨의 군과 유비의 군이 밀어내려 하고 있지만, 그 돌파력이 어디 일반적인 군의 것인가.
“꼬마, 너 내려야겠다.”
이미 조조군의 진영이 반으로 갈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포가 거침없이 달려드는 꼬락서니를 보아 금방 무너져도 할 말이 없는 상황.
“아뇨, 아저씨는 지금 기다려야 해요.”
사마의는 내 품 안에서 옷깃을 꼭 쥐며 그리 말했다. 이미 전선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 소녀는 그걸 지켜보라고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전선이 무너지고 있는데. 중앙이 밀리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전군이 밀리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어디 있나.”
“고작 백 기의 기병으로 뭘 하시려고요?”
소녀는 그리 말하며 피식 웃었다.
그것이 비웃음처럼 보여서, 그런데도 아무런 반박의 근거를 찾을 수 없어 이만 빠득빠득 갈게 되었다. 확실히 고작 백 기의 기병을 몰고 나선다고 하더라도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군을 운영하실 거예요? 마음이 조급한 것은 알겠지만, 지금은 참으셔야 해요.”
사마의가 손을 뻗어 내 손을 붙잡았다.
“가장 긴급한 상황에 최적의 공격을. 소수의 병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싶으시면 싫어도 참으세요.”
고작 백여 기의 기병.
소녀의 말은 분명 합리적이었다. 지금 달려간들 그저 큰 파도에 휩쓸릴 조각배가 될 따름이니, 지금은 기회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았다.
“…나, 오래는 못 참는다.”
“그래도 참아요.”
협소한 가도를 내달리는 여포의 기병은 막강했다.
순식간에 조조군의 심부까지 한달음에 파고드는 돌파력. 저걸 막아내지 못해서 그 당시 나도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것인데.
아가씨의 군은 좌측에서 어떻게든 중앙의 군을 받치려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하려고 애쓰고 있겠지.
“아저씨는 동탁군의 진격이 막혔을 때. 그때 비로소 움직여야 할 거니까, 지금은 참고 지켜보세요.”
기병의 핵심은 결국 기동력과 돌파력에 있었다.
사마의의 말을 얼추 이해할 수는 있었다. 여포가 이끄는 기병대가 멈췄을 때 비로소 아군이 기동력을 무기로 삼아 그대로 뚫어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그때까지 아군을 방패막이로 삼고 관망하라는 것과도 다름이 없는 일.
조바심을 억누르며 전선을 지켜본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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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은 분명 형양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동탁이 준비했던 모든 매복을 물리치고 앞서 선행하던 서영의 군을 착실하게 밀어내면서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 모든 것이 연합군에 유리했었다.
그 붉은 기마가 달려오기 전까지는.
“여포가 왜, 어째서 여기에…!!”
소연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가 아는 역사나 게임과는 달랐다.
여포는 기본적으로 동탁의 호위, 혹은 직속 군단이었기에 원래라면 본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향하고 있을 동탁과 함께 있어야 했을 터였다.
게다가 여포 자체가 항장 출신이기에 저렇게 단독으로 군을 이끌게 했던 적이 없었다.
그녀가 이끄는 병주군은 동탁이 아닌 여포를 따르는 군이었으니, 그걸 감독하기 위해서라도 여포 단독으로 군을 몰게 했던 적이 없을 텐데.
역사가 틀어졌다.
진소연이 역사를 바꾸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그녀가 이 세계에 내려온 이후로 최대의 도박을 내걸었을 때,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역사가 틀어졌다.
어째서일까.
본인과 유비가 합류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전력의 차이가 컸다. 비록 매복을 물리치고 서영의 군도 몰아내고 있었다지만 저 멀리에 주둔하는 군에 비하면 그 격차는 여실했다.
적어도 동탁은 이 정도의 전력 차가 난다면 구태여 여포를 단독으로 운용하진 않을 터. 적어도 진소연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탁의 책사인 이유가?
동탁 제1의 모사. 그라면 충분히 이 상황을 만들어낼 지혜도 있었으며 동탁에게 받는 신뢰도 있었다. 게다가 역사에서도 그는 여포를 높게 평가하는 바가 있었으니, 그가 주장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니, 아니지.”
소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원인을 찾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선봉에 섰던 조조의 군은 찢겨 나갔다. 그 군의 장이었던 조인은 어떻게든 몸을 피한 모양이었지만, 여포의 기병대는 너무 여유롭게 돌파를 거듭했다.
그대로 여포가 조조에게 다다르는 꼴을 볼 순 없었다.
“조운, 지금 당장 군을 전진시켜.”
“명, 받들겠습니다.”
좌익의 군이 갑자기 중앙에 합류한다고 하더라도 군의 배치만 꼬인다. 서로 소속이 다른 군이 좁은 지역에서 얽히고설킨다면 오히려 그 단단함을 해칠 우려가 있었다.
소연은 차라리 군을 앞으로 움직여 여포의 측면을 치기로 했다. 그렇게 움직인다면 조조군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여포를 포위할 수 있었다.
“방삼은?”
“아직 외곽에서 병력을 수습하고 있을 거예요.”
“당장 불러들여.”
세부적인 명령의 전달은 방삼도 충분히 역임할 수 있었다. 조운에게는 단지 그녀의 명령을 하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아줘야만 했다.
“어쩌면 네가, 아니지. 너는 지금 바로 여포를 막기 위해 중앙으로 가줘야 해.”
지금 모인 연합군 내에서 여포를 저지라도 해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하후돈과 조인, 관우와 장비. 그리고 조운까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모두 활용해야만 했다.
“명령이시라면 따르겠지만…, 제가 자리를 비우면 아가씨의 신변을 지킬 수단이 없어져요. 그걸 감내하실 수 있으시다면.”
“해야지.”
이 전장에 선 모두가 목숨을 걸고 있었다.
거기에 소연 본인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사실은 정말 싫지만, 지금 당장에라도 안전한 길로 빠지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이제는 물러설 수 없었다.
“조운. 너는 지금 당장 조조가 있는 곳으로 달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여자를 죽게 두어선 안 돼.”
이에 조운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조의 대장기가 위치한 곳으로 말을 몰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가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소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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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온다.
조조에게 있어 여포라는 여자는 제법 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과거 동탁의 편을 드는 척하며 암살을 시도했을 적에도 여포는 항상 그녀를 의심했다.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여자일까.
그녀가 느끼기에 그건 조금 달랐다. 적어도 조조가 느끼기에 여포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것이 아닌, 짐승이 인간의 탈을 쓴 것만 같았다고 해도 무방했다.
짐승이기에 강한 여자.
“조인은?”
“일단 물린 거 같긴 한데?”
조홍은 그리 답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서영만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팠다. 그것을 겨우 밀어냈는가 싶었더니 이젠 여포를 앞에 세우고는 그 뒤를 받치는 형태로 아군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기세는 가히 노도의 기세라고 불러도 좋을 것.
“언니야, 일단 언니는 뒤로 물러나자.”
조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그녀가 물러난다면 군에 혼란을 불러올 것이 뻔했다. 앞으로는 천하무쌍이 달려들고 있는데 지휘관이 도망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소리였다.
“자리를 지켜라.”
“아, 진짜 고집.”
그렇지만 조홍 역시 그녀가 왜 버티려고 하는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버텨내지 않으면 그대로 군 자체가 붕괴할 우려가 있음도 이해하고 있었으니.
단지 지금 이 상황은 정말 위험했다.
“원양을 불러들여라. 좌익과 우익 또한 잘 움직여주고 있으니 문제는 없다. 여기서 여포를 막는다.”
여기서 여포를 잡을 수만 있다면.
조조는 그리 생각하며 군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앞에서는 한 번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본 선봉이 쫓기면서도 아군을 향해 합류하고 있었다.
조인과 하후돈. 거기에 여차하면 조홍과 조조 본인 또한 나선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좌익과 우익의 군도 그녀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움직여주고 있었다.
“조홍. 가능하겠나?”
“저 괴물을 상대로?”
반 수, 아니 몇 수는 물려준다고 해도 이길 자신은 없었다. 당장 저 멀리서만 봐도 미친 광년처럼 제 화극을 휘두르며 적토마에 박차를 가하는 괴물을 어떻게 이기겠다고 단언할까.
그렇지만 그녀는 웃었다.
“적어도 언니 한 명 살려서 보낼 정도는 가능하겠지? 자효나 원양까지 가세해준다면, 뭐 죽지는 않을 거 같은데?”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조조를 살려서 보내겠다는 의지만큼은 굳셌다. 물론 세상사 의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만큼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반드시 막을 수 있어.”
그렇기에 조홍은 확신했다.
의지만으로 부족하다면 확신을. 적어도 제 주군을 살려서 보내겠다는 확신을 품는다. 저 앞에서 조인이 말을 몰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 원양도 곧 도착할 터.
“언니는 우리가 지켜야지 누가 지켜?”
“그대도 참 멍청하다.”
“물주에게 할 말이야?”
그리 말하면서도 조홍은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제 언니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천하무쌍이라는 무인에게서 느끼던 공포를 잊을 수 있었다.
이것이 조조의 매력일까.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준비는 미흡하지만, 적어도 방진의 진형은 갖추었다. 이제 아군이 버티면서 양 날개에서 잘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겠군.”
누군가에게 기대한다.
조조에게는 낯선 감각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그녀에게도 여포의 갑작스러운 출진은 예상 밖의 사태였다.
그렇지만 여기서 여포를 잡을 수만 있다면.
“전투 준비를.”
동탁을 잡기까지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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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사마의가 말을 걸었다. 내 품속에서 꼬물거리면서도 옷깃을 잡아당기는 모양새가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그 뜻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꼭 이 소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알았다.
“지금이지?”
소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선에 변화가 찾아왔다. 어떻게 막아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동탁군의 기병의 추진력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아가씨의 군과 유비의 군도 착실하게 양 측면으로 기병대를 압박하는 모양새. 선두에 섰던 붉은 기마의 천하무쌍은 수명의 장수와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려라.”
그리 말하며 사마의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번쩍 들어서는 지면으로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소녀를 지킬 호위로는 우선 두 명을 붙여주면 될까.
“조심하셔야 해요.”
“알다마다.”
“어깨, 아직 다 안 나았잖아요?”
아직 피가 묻어나오기는 했지만, 당장 움직이려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었다. 허리춤에는 검을, 말에는 여분의 창 몇 개를 묶어 준비를 마쳤다.
“조심할 테니까, 너도 얌전히 있어라.”
그러니 자기가 어린아이냐며 소녀가 칭얼거렸다.
안타깝게도 사마의라는 소녀는 어린아이가 맞았다. 그런데도 어른인 채 재는 것이 못내 우스워서 가벼운 헛웃음을 한 번 흘렸다.
주변을 돌아보면 저마다 창을 곧추 쥔 이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작 백여 기의 기마.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세에 영향을 끼치기엔 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가자. 여포가 2차전을 신청했는데, 받아줘야지?”
생각해보니 저번 전투의 복수가 아직이었다.
게다가 저곳에선 분명 아가씨도 고군분투를 다하고 있을 터. 떨어지고 벌써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었다. 그녀는 무사할까. 이번에 재회하면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할까.
아마 멋대로 움직였다고 화부터 내지 않을까.
그것이 못내 우스웠다.
진소연의 짜증 정도야 항상 감내하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또 그 싫은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머리도 아팠지만, 그것도 전부 이 전투를 이겨낸 뒤에 따라올 일이었다.
“자, 가자!! 전쟁이다! 아군 제외하고 전부 다 죽여라. 내가 허락한다.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동탁의 개들은 다 죽여라!!”
말에 박차를 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창을 쥔 팔에서 묘한 떨림을 느꼈다. 고양된 것인지 공포인지 모를 진동을 느끼며 앞으로, 더욱 앞으로.
형양으로 진군을 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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