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형양전투 말을 몰고 나아갔다. 낙양이 바로 코앞이었으니, 근처로 가면 갈수록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그것은 분명 처참하게 불타고 무너져 이제는 도시라는 기능조차 마비된 폐허였다.
“저게 낙양이라고?”
“동탁이 화려하게도 저질렀네요.”
내 품에 안겨 같이 말에 타고 있던 사마의가 혀를 찼다. 살짝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미간까지 찌푸리는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낙양의 참사는 점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화마에 다 타들어 간 건물. 곳곳에선 여전히 비명이,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그 목소리의 숫자는 결코 사방에 즐비한 시체의 숫자를 넘지 못하니.
“보지 마라.”
소녀의 눈을 가렸다.
저 멀리에 손견의 군으로 보이는 이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너무 방대한 지역에서 벌어진 참사에 손이 모자란 느낌이 들었다.
아가씨는 어디에 있을런가.
당장 눈에 보이는 군은 손견군밖에 없었다. 반대편일까. 아니면 성 내부? 일단 천천히 말을 몰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나가는 길에 수많은 시체를 보았다.
손견군이 수습하면서 모아둔 시체 더미가 사방에 즐비했다. 아직 채 수습하지 못한 시체가, 사방에 죽은 사자의 껍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죽음이 눈앞에 존재했다.
검을 쥐지 않은 이들이었다. 죄가 있다면 낙양에 살던 죄밖에 없는, 그저 살아있다는 게 죄라면 죄일 뿐인 사람들의 마지막이 이 낙양을 구슬프게 장식하고 있었다.
“…아저씨.”
눈을 가리고 있어 자세한 내막을 모를 사마의가 그 조그마한 손으로 내 허벅지를 매만졌다. 그것이 간지러웠기 때문일까.
작게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가자.”
추모는 나중이다. 애도는 다음이다. 한없이 억울했을 그 죽음에 고개를 숙이는 건 지금 할 일이 아니었다. 그 추모는, 그 한 많을 이들에게 바칠 애도는 동탁의 목을 베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옳았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말을 몰았다. 그 뒤를 백여 기의 기병이 따른다. 그렇게 낙양 내의 가도를 거쳐 황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잔해물 인근까지 도착했다.
그동안 보인 깃발은 오로지 손가의 깃발뿐.
아가씨나 조조, 유비의 깃발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소식을 들으면 그들인 진즉에 낙양에 도착했어야 정상이었을 시간.
사마의는 그 모습에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더 골치 아프게 돌아가네요.”
“뭐가?”
소녀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요. 일단 황궁으로 가요. 거기에 아마 손견도 있을 테니까, 그라면 뭔가 좀 알고 있는 것이 있겠죠.”
일부러 하동 인근으로 내려 달려왔기에 연합군보다는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손견의 군만 낙양에 남았다는 건 어쩌면.
“일단 가면서 생각하자. 그게 맞겠다.”
묘한 불길함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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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선두로 이끄는 군은 형양의 가도에 들어섰다. 슬슬 저 멀리에 동탁의 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그들 역시 이곳을 전장으로 선택한 것이 분명한 상황.
“언니야. 내가 보기엔 여기가 교두보 같은데?”
저들이 구태여 이 지형에 자리를 잡은 이유.
조조가 보기에도 그들은 이 자리에 매복하여 연합군의 진격을 끊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단지 수적으로 우위를 잡을 터인 동탁군이 전면전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는 것은.
“놈들은 그저 추격을 털어내고 싶을 뿐이다.”
어느 정도는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동탁군은 지금 과도한 전력을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낙양에서 약탈한 재화와 강제로 이주시킨 백성들을 옮기기에도 손이 모자랄 터. 그런 상황에서 추격군에 전력을 투자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거라면 가능했다.
“좌익과 우익에서는?”
“벌써 대비는 마쳤다던데.”
조홍의 말을 들은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교두보였다. 아군이 동탁군을 붙잡고 싶다면 일단 이 협소한 가도를 돌파할 필요가 있는바, 지금 이 국면만 헤쳐나간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전투였다.
주위로 뻗은 수풀과 산세는 분명 빽빽했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면 막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물론 적에게 위치를 내어주고 시작하는 불리한 전투였지만, 조조는 이길 수 있는 전투에만 임했던 적은 없었다.
하물며 거기에 걸린 것은 천하의 행방.
다소의 무리는 감수해야만 했다.
“전군에 명하라. 진군 속도를 올린다. 놈들을 끌어낼 필요가 있겠지. 조인에게는 특히 빠르게 진군을. 대신 하후돈에게는 진군 속도를 늦추라고 명하라.”
“그러면 자효가 고립되지 않을까?”
조홍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복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바. 그런데 구태여 선봉을 빠르게 돌출 시켜 자칫 본대와의 연결고리가 끊기기라도 한다면 그건 오히려 선봉이 전멸당할 우려가 있었다.
“조인을 믿어라. 그는 쉬이 지지 않는다.”
조조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조인은 비록 경험이 살짝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적어도 그녀가 이끄는 이들 중 누구보다도 용병에 있어서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가 제 능력을 발휘한다면 적이 몇이 몰려온다고 해도 쉬이 질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매복을 대처할 수 있는 면적을 넓혀야 했다.
군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 이음새를 공략당한다면 이보다 곤란한 참패도 없으리라. 그저 버티기를 목표로 한다면 차라리 뭉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으나.
“기억해라, 조홍. 아군의 목적은 매복에 단지 견디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격파하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하이고, 또 무리하기는.”
조홍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웃었다.
그래, 이래야 내 주군이지.
그녀에게 조조는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할 존재. 그런 이가 이리 단호하게 승리를 장담하며 나아가는 모습에 어찌 불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에구, 우리 자효만 고생하겠네.”
조홍은 그리 말하고는 말을 몰고 병사들에게 갔다. 지금 조조가 내린 명령에 대한 전달과 갑작스러운 진군에 대해 양 날개를 맡은 이들에게 전령을 보내기 위해 움직였다.
조조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전방에는 아직도 동탁의 군기가 펄럭이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아군보다는 많은 숫자.
그 대군이 칼을 갈고 있는데, 정작 아군은 이 가도 인근에 매복한 적병 모두를 물리치고 나아가야 했다. 상황은 철저하게 그녀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양상.
“마지막이다. 본인이 마지막으로 태우는 불길. 천지신명이 있다면, 그것이 이 천하에 평화를 안기고자 한다면 반드시 승리를 내릴 터.”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전투뿐. 그녀에게 남은 후회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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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소연은 군을 몰고 빠르게 급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좌측면은 방패를 쥔 이들 위주로 가도를 견주며 움직이니, 군이 길게 늘어지며 일렬로 이어지는 방어선이 완성되고 있었다.
“조조도 무식하다고 해야 할까,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이러면 더 넓은 면적으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건데.”
성공한다면야 매복하던 적을 일소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실패한다면 길게 늘어선 병력을 잘게 썰려 수습할 수도 없는 대패를 겪을 것이 뻔했다. 이건 경험이 부족한 소연에게도 너무 명백한 도박으로 느껴지는 것.
“아가씨. 이게 옳은 걸까요?”
조운 역시 그것을 경계했다.
성공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반대로 적의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너무 무모한 수단을 선택했다. 자칫 매복한 적의 병력이 예상 이상으로 많은 경우에는 그대로 궤멸당할 우려가 있었다.
“믿고 따라가기로 했으니까.”
소연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게 맞아. 우린 이 매복을 그저 견디려는 게 아니니까. 저들을 끌어내고 물리쳐야, 그제야 동탁과 정면으로 나란히 설 수 있어.”
수비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적어도 같은 위치에 서서 그들과 마주 본 뒤에는 버티기만 하여도 됐다. 어차피 아군은 적의 발목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군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여기서만큼은.
“여기서만큼은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공격적으로 나가야만 해. 조조는 그 점을 명확하게 깨닫고 있어.”
차라리 생각 없이 나아가는 것보단 나았다.
물론 조운은 아직도 걱정되긴 했다. 그렇지만 지금껏 틀린 적이 없었던, 적어도 제 오라비가 그리도 믿는 아가씨의 명이기에 딱히 불만을 표할 생각도 없었다.
군은 움직였다.
조금씩 늘어지면서 길게 일렬로 퍼지면서 움직이는 군체는 분명 허점이 많아 보였으니 그걸 매복한 군도 놓칠 리가 없었다.
화살이 한 발.
그것을 효시로 하여 이윽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 드디어 형양에서의 전투는 시작되었다. 본래 역사에서는 패전이었을 전쟁.
그러나 이번에는.
소연은 손에 쥔 방패를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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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이었던 터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확실히 손견군이 수습을 잘 하긴 했는지 적어도 시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말에서 내리고 사마의를 받아 내려준 뒤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손견의 대장기는 어디지?
고개를 돌렸다. 손견이라면 분명 황궁 인근에 일단 자리를 잡고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그 위치를 찾기가 영 쉽지 않았다. 애당초 황궁의 터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넓었다.
저 멀리에서 병사 하나가 이리로 달려왔다.
무슨 용건이냐고 묻는 것이겠지. 실제로 그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소속을 알리며 내 소속과 용건을 묻기 시작했다.
“무성장군 진소연 휘하 행군사마. 호세라고 한다. 이번에 장사태수 손견님을 뵙고 싶은데, 혹여 시간은 되시겠는가.”
“손견 장군님께서는 지금 건강상의 문제로 누구의 면회도 응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 말엔 다소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노도의 기세로 진격했던 손견이 갑자기 앓아눕는다고? 물론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 종종 앓아눕는 병사들이 있기야 했다지만.
“그런가. 그러면 혹여 분무장군님의 군과 무성장군님의 군은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고 있는가?”
“그 두 분과 고당현령님의 군은 동탁의 추격을 위해 서쪽으로 진격을 개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겠다.”
역시나. 불안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렇게 되었다면 구태여 손견을 만날 이유도 없었기에 그를 손짓으로 물렸다. 사마의는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면서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서쪽이면 어딘지 아냐?”
“…홍농. 아마 그 방면이겠죠. 대군이 최대한 빠르게 군을 이끌고자 한다면 그리로 직선으로, 그러면 아마 옹주 인근까지 쉬이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서도 사마의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마음에 걸린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
“왜?”
“이상해요. 손견이, 안 그래도 동탁과는 원한 관계에 있다는 손견이 여기서, 이 황궁에서 멈춰 섰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요.”
뭐, 그거야 나도 생각했던 문제였다. 그렇지만 아프다는데 거기다 대고 왜 안 움직이냐고 따질 수야 있을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을 뿐이지.
“됐다. 어차피 안 움직인 사람을 자꾸 신경 써서 뭘 할까. 일단은 아가씨는 서쪽으로 움직인 것이 맞는 것 같지?”
“…예. 그건 분명하겠죠.”
그러면 남은 건 두 가지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기마 백 기를 이끌고 출진하느냐, 아니면 연합군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서 그 뒤에 어찌 움직이는지 상황을 지켜보느냐.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사마의. 넌 여기서 대기해라.”
이제부터는 직접 전투에 나서야만 했다. 어차피 연합군의 일은 차후에 그들이 도착해서 논의할 문제. 지금은 일단 서쪽으로 나아가 아가씨와 합류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뇨. 저도 같이 가요.”
소녀는 당돌하게 내 손목을 잡아채고는 그리 말하며 눈을 빛냈다. 그 보랏빛 눈동자가 조금 흉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사마의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처럼 제 조막만 한 손에 힘을 주며 내 손목을 꽉 쥐었다. 혹여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소동물처럼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만.
“넌 남아라.”
이제부터는 진짜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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