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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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손견이라면 함께하리라 생각했다.
현 연합군에서 제1의 공적을 올린 남자. 예전부터 동탁과 마찰이 있다는 건 유명했다. 게다가 손견 자체도 과거 십상시에게 자금을 대고 관직을 샀을 정도로 가문의 명예와 관직에 목마른 인간.
이런 인간이 동탁 토벌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성공한다면 앞으로의 미래를 보장하는 동탁의 목을 거절할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미안하군. 아군은 당분간 낙양에서 움직일 수 없네.”
“…어째서지?”
그녀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백성들에게 구휼을 베푼 것은 좋지만, 군량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네. 게다가 내 직속인 원술 후장군께서 별도의 명령을 내리지 않으셨으니 내 어찌 홀로 나가겠는가.”
그러면서 손견은 손짓으로 무너져내린 황궁을 가리켰다. 참혹한 현장은 손견군이 수습하고 있었음에도 미처 가려지지 않은 비극이 남아있었다.
“동탁을 잡는 것은 좋으나, 지금은 먼저 돌봐야 할 이들을 돌볼 필요가 있네. 미안하지만 아군은 낙양의 수습에 매진하며 연합군을 기다리겠네.”
“……그러한가.”
조조는 이에 별다른 반론을 제의하지 않았다.
손견의 말은 얼추 일리가 있었다. 적어도 낙양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혹은 동탁에게 끌려가지 않았던 이들을 수습할 필요성이 있기는 했다.
필요성은 있었다만, 그것이 동탁을 토벌하는 것보다 우선시되는가. 조조는 여기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적어도 손견이라는 맹장이 갑자기 정치가처럼 행동하는 것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으나 별다른 반론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저희도 맹주의 조서를 기다리는 것이.”
그걸 지켜보던 소연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 조조에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손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니 손견 역시 고개를 숙여 그것을 받는다.
“…맹주의 답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가.”
조조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 사실을 긍정했다.
이미 사수관을 돌파한 뒤 전령을 보내두었다.
연합군은 언제 도착하느냐에 대한 질문과 아군이 동탁의 후미를 공략해 움직임을 저지하겠다는 진군에 대한 허가를 받기 위해서.
“그러면 저도 일단 제 군으로 돌아가 볼게요. 그들의 피로도 다소 신경이 쓰이고, 어떻게 되었건 정비는 필요하잖아요?”
유비가 쓰게 웃으며 한 발짝 물러났다.
조조도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분간은 낙양에서 체재하게 될 터. 그렇다면 우선은 강행군의 여독을 풀어주는 게 우선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물론 이런 지옥에서 여독을 풀 수 있다는 전제 하에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조조 본인은 이런 지옥도에서 마음을 놓을 정도로 심줄이 굵지 않았다.
이리 가는구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여.
조조는 눈을 감고 황궁에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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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들과 헤어져 군으로 돌아온 진소연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예상대로 손견은 먼저 낙양에 도착하여, 아마 옥새를 손에 넣은 듯싶었다.
조조는 여전히 형양으로의 진군을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고, 유비는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항상 웃음는 사람이 웃고 있는 이유는 뭘까.
과거 호세는 그리 말하며 영 떨떠름하게 여겼던 것이 이제는 나름대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쓴웃음이나마 지으며 자신의 군으로 물러갔으니까.
과연 그녀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웃었을까. 그 쓴웃음의 본의는, 그녀는 어째서 마지막까지 낯빛을 굳히면서도 애써 웃었을까.
진소연에게는 그녀의 감정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현 상황에서 유비보다 중요한 건 진소연 본인의 행보였다. 직접 군을 이끄는 장으로서, 사실상 형양으로의 진격은 자살과도 같은 것.
그렇지만 움직이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방삼.”
그녀는 탁자에 팔을 기대고 멍하니 있던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턱수염을 북슬북슬하게 기른 남자가 그 부름에 고개를 번쩍 치켜드니.
“…어, 예?”
차마 불릴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다소 당황한 낯빛으로 소연을 바라보았다.
물론 조운에게 묻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지능 스텟은 그녀가 더 높은바, 조금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지만.
“이 상황. 어떻게 생각해?”
방삼은 호세와 오랜 기간을 어울린 남자였다. 이 군은 사실상 호세가 세운 것과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이 중에서 호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방삼밖에 없었다.
소연은 그 의견이 듣고 싶었다.
“어, 뭡니까. 그 조조라는 장군이 말했던 진군이요? 나쁠 거 없지 않습니까? 황제만 구하면 천하가 바로잡히는 거라던데.”
“동탁이 추격을 예측하지 않을 리가 없어. 매복이 있건, 적군이 있건. 아마 난전을 강요당할 거야.”
소연의 말에 방삼이 다소 미간을 찌푸렸다.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천하고 나발이고 얘기는 별개였다. 적어도 그에게 천하의 안녕이고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러면 안 하면 그만이…, 아니지. 대장은 이리 생각하지 않겠지.”
방삼은 하던 말을 끊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길 확률은 얼마나 되오?”
“적어.”
비록 역사와 다르게 자신이, 혹여나 유비까지 가담해준다면 다소 승기는 오를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동탁군과 아군의 격차는 컸다.
게다가 동탁군은 이미 자리를 잡고 준비를 하고 있을 터. 미리 준비하고 있는 매복과 기습을 모두 떨쳐내고 나서야 비로소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는 전장이었다.
“쯧, 조운 대장은?”
그는 고개를 돌려 조운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이런 문제에선 자신보다 그녀가 더 나으리라는 판단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공사 망라하고 그의 상관과도 마찬가지인 것.
“저는 나아가는 것과 멈춰 서는 것. 둘 다 옳다고 봐요. 두 가지 모두 의가 있으니, 남은 건 아가씨의 결정뿐이죠.”
“하이고, 참.”
물론 방삼 개인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그런 사지에 왜 들어가야 하냐고 거절하고 싶었다. 고전하게 된다면 또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 뻔한데 어째서 나아가야 하는가.
그렇지만 제 대장이라면 분명.
"이번 한 번, 이길 수만 있으면 천하가 다시 바로잡히는 거요? 그 아가씨가 말했다던 등 따습고 배부른 세상이 완성되는 거요?"
“확신은 못 해. 그렇지만 적어도 난세가 짧아지긴 하겠지. 그것도 비약적으로.”
소연은 고민하고 있었다.
역사를 따라가면서 이득을 얻음도 좋지만, 여기서 평화를 얻을 수만 있다면. 피를 볼 일이 적어지고, 모두가 다시 제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있다면.
어차피 해야 했던 일을 조금 더 열심히, 진심으로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소연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전선에는 그녀 홀로 나서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목숨이 걸린 결단은 먼저 그들의 동의를 얻고 싶었다.
과거에는 그저 손가락질로 부렸었으나, 지금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
매정함을 잊었다.
이건 과연 소연 자신에겐 독인가, 득인가.
그건 진소연 본인에게도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천하에 난세가 격화되면 될수록 이런 물러터진 사고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하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날 그가 질렀던 비명이, 그 탄성이. 눈물에 젖은 비탄이 귓가에 생생히 맴돌고 있었다. 그건 아직도 그녀의 안에서 완전히 소화되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고민과는 별개로 방삼도 한참 고민했다.
더 옳은 선택이라는 건 없었다. 그가 보기에 멈춘다면 일신의 안전은 지킬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고, 나아가자니 당장 제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하아. 난 모르겠네.”
결국은 방삼이 양손을 들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난 이런 문제에는 젬병인 것이, 그렇지만 적어도 아가씨가 뭘 고르건 절대 탓하지는 않을 테니까.”
선택지를 오롯이 주군에게 맡긴다.
그렇기에 그 선택에 따른 결과도 감수하겠다. 그것은 그가 제 대장인 호세에게 취했던 자세이기도 하며, 누군가를 따르는 이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후회하지 않겠어?”
“배때기에 창 꽂히면 후회는 하겠지.
그렇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살아있는데 어째서 미리 후회할까. 방삼에게 미래라는 것은 언제나 어둡고 불투명한 미지 그 자체였고, 그렇다면 제 대장이 그리 믿고 따르는 여자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소연은 그리 말하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누군가에게 신뢰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무겁고 두려운 일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이 모든 무게를 호세가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어깨에 짊어지고, 그런데도 단호하게 판단하고 나아간다는 것은. 그 짊어진 무게에,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생명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이리도 고단한 일이었다.
“…그래. 유비를 만나야겠어.”
천하를 평화롭게 만들어 폭력이라는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그것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진소연이라는 사람이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힘과 명분이 필요했다.
그것이 평화로 연결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을 채 확답할 수 없다는 것만이 답답할 따름. 미래를 아는 그녀에게 패전을 뒤집으라는 것은 어두운 바다를 이정표 없이 거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슴 한편이 술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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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어떻게 할 거야?”
보랏빛 머리카락의 작은 소년, 장비가 제 누이를 향해 눈을 치켜뜨며 그리 물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안 봐도 뻔한 것.
유비는 쓰게 웃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걸 말이라고…!!”
“장비.”
그가 분통을 터뜨릴 즘에 관우가 옆에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장비라고 그녀의 심정을 어찌 모를까. 단지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암울하여, 제 분에 이기지 못했을 뿐.
“…미안해.”
“걱정하지 마. 이 누이, 동생이 칭얼거린다고 대뜸 화낼 정도로 막 나가는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장비는 그것이 싫었다.
제 누이가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웃음이 싫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그 미소에 따스함을 느끼고, 그리하여 그녀를 어미와 다름없이 여기며 따르게 된 것이니까.
단지 유비가 누군가에게 얕보이는 것이 싫었다.
저리 웃고 다니니 사람들은 가끔 그녀가 무슨 짓을 당해도 웃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한때는 왜 그리 웃고 다니냐고 화를 낸 적도 있었다. 분명 처음으로 얻은 관직에서 감독관을 두들겨 팼을 때였지.
그때 그녀는 이리 답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서 웃는 거란다, 라고.
장비에겐 그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마 또 다른 누이인 관우 역시도 그것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으리라.
“일단 언니. 조조가 언니까지 포함해서 같이 동탁을 추격하려는 것 같기는 하죠?”
“그렇겠지. 눈빛이 아주 사람 잡아먹을 것 같더라니까.”
유비는 그리 말하면서도 조조의 심정을 다소 이해할 수 있었다. 유비가 본 조조라는 인물은 영웅에 한없이 가까운 여자였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있었다. 아군을 돌볼 줄도, 용병에 있어 기본을 지키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여야 할 시기를 아는 것도. 그녀가 걸어온 업적까지 전부.
그 모든 것이 그녀를 영웅이라 부르고 있었다.
적어도 유비의 기준에서 조조라는 사람은 분명 영웅이 맞았다. 시대의 충신이며 불의에 참지 않는 고고한 학자. 그러면서 군을 다룸에 있어선 자비가 없는 만고의 영웅.
그렇지만 이번 건만큼은.
“아마 위험할 거 같아요.”
“알지.”
동탁도 멍청이가 아니라면 추격에 대비를 안 했을 리가 없었다. 손견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니, 설령 진소연이 합류한다고 하더라도 수적으로 열세가 될 것이 뻔했다.
그렇지만.
“얘들아. 내 사랑스러운 동생들아.”
그녀는 팔을 뻗어 그들의 목에 손을 얹고는 살짝 끌어당겼다. 그렇게 제 동생들을 끌어안은 유비가 작게 속삭이듯, 그러나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우리 지금까지 많이 고생했지.”
아련한 추억이었다.
황건적을 잡겠다고 그 어린 것들이 뭉쳐서 군을 꾸리고 전쟁에 나섰던 일. 겨우 받은 관직에서도 결국 쫓겨나고 범죄자가 되어 천하를 전전했던 일까지.
모든 것이 아련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번 한 번.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조금만 더 노력해볼 생각은 없을까?”
유비는 자기 손으로 부드럽게 두 남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결코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가족이라고 부르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건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흥, 우리가 언제는 고생 안 했던가?”
장비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언제건 언니의 등만을 따를 거에요.”
관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화답했다.
유비는 그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이 못 미더운 누이를 따라 이리도 고생했던 이들에게 또 다른 고생길을 안겨주는 것이 너무나도 슬펐지만, 그렇지만 이 전쟁에서만 승리한다면 자신들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뒷배가 없다고 얼마나 무시를 당했던가. 가문이 미천하다고 얼마나 설움을 겪었던가.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죄를 뒤집어쓰니, 그 얼마나 억울했던가.
“그래. 여기서만 이기자.”
유비의 뒤에는 그 공손찬이 있었다.
이제 적어도 유비를 뒷배 없는 이라고 모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더 고생하여 승리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정말로 이 세 남매가 바라던 천하가 찾아온다.
“그럼, 마지막까지 힘을 내볼까?”
그녀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그녀 본인만이 아는 것. 관우와 장비는 그 웃음에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세 남매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한동안 그리 웃었다.
지옥을 배경으로.
그 웃음은 당분간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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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현재 급하게 낙양으로 진군 중
#진소연은 스스로 미래를 한 번 바꿀 것을, 그리고 힘을 얻고자 하는 갈망 두 가지를 동시에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 이 작품의 주인공은 분명 호세가 맞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선작 6000을 돌파하였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