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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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질 리도 없는 현실.
“이게 낙양이라고…?”
한의 200년 정수가 모인 도시였다. 낙양은 이 천하에서 가장 발전했으면서도 유서 깊은 역사를 제 몸에 품은 현 제국의 수도였다. 누구에게나 선망의 도시이며 천하의 권력이 모인 곳이었거늘.
“장군. 이건 좀…….”
손견이 품은 황망함은 그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이끌던 부하도, 그 아래 병졸들도 모두 느끼고 있던 것.
낙양만을 보고 달려왔던 이들이다.
황제 폐하를 그 역적의 손에서 구해내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 생각하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걸 마중하는 것이 이 잿더미로 변한 수도라는 것은 너무나도 비참했다.
“동탁, 이러려고 내게 손을 내밀었느냐….”
손견은 그 목소리를 억눌러가며 분노했다.
대곡에서 낙양 인근으로 진군하던 당시에 찾아왔던 동탁의 사자. 양가가 화친을 맺고 사돈지간이 되자던 그 의견을 일언지하로 거절했더니, 그 모든 게 이걸 위한 것이라면.
어이가 없으면 목소리도 채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손견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분통을 터뜨리고 싶어도 목 한가운데가 막혀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정보. 군을 모아라. 낙양을 우선 수습해야겠다.”
“장군. 동탁은 어찌….”
그 순간 저 멀리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제 어미를 목놓아 부르고 있지만, 이런 처참한 현장에서 저 아이의 어미를 살아있으리라 장담할 수가 없을 것.
“…수습하자.”
“알겠습니다.”
결국엔 손견의 군이 진군을 멈추고 낙양의 수습을 시작했다.
생존자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여 모자란 군량으로 최대한 구휼을 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손견에겐 그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선행이 쌓이고 쌓인다면 결국 돌고 돌아서 자신의 명예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령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찌 우는 아이를 그냥 보고 지나칠까.
“하이고, 동탁 이 빌어먹을 역적놈.”
정보는 그의 옆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참사인가. 적어도 정보는 낙양 공략에 대해 걱정을 했지, 이런 뒷수습으로 골머리를 앓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놈을 서량에서 죽였어야 했다.”
손견은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당시 변장과 한수가 난을 일으켰던 지역. 손견이 기억하는 동탁은 오만불손하고 제 군만을 아끼는 행태로 토벌에 혼선만 주던 이였다.
그걸 그때 거기장군 장온에게 동탁의 처형을 주장했었던 것도 손견 본인인 것을, 그는 그때 동탁의 처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었다.
그때 죽였어야 했다.
이 악적을, 천하에 둘도 없는 동탁을 그 자리에서 죽였어야 했다며 손견이 먹먹해진 가슴을 두드릴 뿐이었다. 그걸 죽이지 못했기에 낙양이, 천하가 이 사달이 났다.
“이 개 같은 새끼를 그때 죽였어야 했어…!!”
“장군. 개 불쌍하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보가 그리 말하면서 손견의 어깨를 두드렸다. 장군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전우였던 그였기에 할 수 있는 행동. 이에 손견이 옆을 돌아보던 차에 또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금수를 어떻게 훌륭한 강아지와 비교하시오? 내 장군 그리 안 봤는데. 이번 건 조금 실망이요.”
그쪽에서는 한당이 씩 웃으면서 다가온다.
태평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손견이 순간 화를 내려다가 이내 주먹을 내렸다. 그도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 이 울분을 이리 터뜨려야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이들은 그걸 말해주고 있었던 것.
“그래, 내가 실수했다.”
실수했다.
이 분노는 오롯이 동탁을 향해야만 하는바. 적어도 그가 만든 난장판에서 홀로 분개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니.
“우선은 낙양을 수습하고, 나머지는 그 원가의 도련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나.”
구휼로 군량미를 풀었다. 어차피 더 나아갈 여력도 없을뿐더러 일단은 상관인 원술의 허가도 없이 더 진군하면 그 꼬장꼬장한 원술이 어떤 행패를 부릴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쯧, 참으로 답도 없어.”
손견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가 어찌 돌아가려고 저런 역적이 날뛰는데, 그걸 타도하자고 모인 것들도 썩어빠진 놈들밖에 없었다. 그것이 손견에겐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낙양의 거리를 수습하라 명하고 손견은 일부 병력을 이끌고 황궁으로 향했다.
물론 황궁 역시 바깥과 다를 것이 없었고, 오히려 돈이 되는 것을 집중적으로 약탈했기 때문에 그저 불만 지른 거리보다 훨씬 심한 감이 있었다.
“바깥은 그래도 사람이라도 있었는데, 여긴 진짜 지옥이요. 와, 동탁 미친 새끼. 여기가 황궁이라는 걸 모르나?”
한당은 그리 말하며 아직도 나는 매캐한 냄새와 시체가 썩어가기 시작하는 냄새에 코를 막았다.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시체의 꼬락서니를 보면 할 말도 없어진다.
특히 가장 심한 것은 궁녀의 상태.
방금 눈앞에서 지나친 궁녀의 경우에는 아예 옷까지 다 벗겨져 봉긋한 가슴을 내놓은 채 음부에는 작대기 서너 개가 꽂혀있었다.
그런 시체가 사방에 즐비했다.
오롯이 시체뿐이었다.
“황제의 궁에 남은 것이 시체와 다 타 무너져버린 황궁뿐이라. 하,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진짜…, 정말로 가지가지 하는구나. 가지가지, ……동타아아아악!!!!”
여기는 황궁이었다. 적어도 예우를 다하지 못할 것이라면 모욕만은 하지 말아야 했다. 나라의 녹을 먹고 그만큼 세를 키운 이가, 이것이 말이 되는가.
손견은 어금니가 부러질 기세로 이를 갈았다.
“군을 퍼뜨려 수색하라고 명해라. 어떻게든 최대한 생존자를, 그게 아니더라도 황가의 인물이라도 찾아내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리면서도 손견은 재차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낙양이 이 꼬락서니가 된 것을 보고도 연합군이 계속 유지가 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그들은 전부 낙양 수복만을 생각하고 있을 터인데.
“동탁은 아마 홍농 방면으로 갔겠군.”
그렇다면 목적지는 아마 장안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전한의 수도. 거기라면 동탁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일 근거가 생기는 곳이었다. 손견은 결코 동탁을 경시하지 않았다.
그 남자라면 최대한 사리에 맞는 행동을 하리라고, 그렇다면 목적지는 결국 장안이라고 생각했다.
“장군, 장안이라면….”
“너무 멀다. 잡으려면 지금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미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는 점이었다.
이건 정보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거기까지 향하기에 관문만 두 곳을 거쳐야 하는데 거리도 멀다. 지금 뒤를 잡으려니 연합군의 본대는 아직 후방에 있을뿐더러 손견에겐 그걸 추격할 여력도 없었다.
“장군. 연합군이 유지가 될까요?”
“모르겠다.”
손견은 진심을 담아 그리 말했다.
지금껏 손견이 보아왔던 연합군의 실체는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저마다 나서려고는 하지 않으면서 공만을 추구하니, 이것이 진정 그 제후라 불리는 고위직의 명문가의 인간들이 맞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렇게 다시 한숨이 터질 때.
“자. 장구우우우운!!”
병졸 하나가 달려왔다.
“무슨 일이더냐?”
“그, 그것이. 우물에서 이상한 시체를 발견했는데, 그 시체와 함께 다소 이상한 보따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뒤로 병사는 다소 횡설수설하며 말을 이었다.
그도 한당이 악귀 같은 얼굴로 재촉했다며 말을 버벅거렸다. 그만큼 당황할 일인가. 손견은 다소 의문이 들면서도 그 물건이 무엇이기에 한당이 그러는가 다소 궁금증이 생기었다.
“내가 가보겠다.”
손견은 그리 말하며 그 우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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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 진소연, 유비가 이끄는 연합군도 낙양에 도착했다. 손견보다는 늦었지만, 그나마도 연합군 중에선 누구보다도 빠르게 도착한 이들도 낙양의 참사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가 낙양이라고요?”
진소연은 옆에 있던 조조에게 반문했다.
그녀도 알고는 있었다. 낙양을 불태우는 미래를, 동탁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는 그 수도의 미래를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참사는 상상을 불허했다.
“……네, 맞아요. 여기가 낙양, 이었어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조조를 대신해서 유비가 대답했다. 그녀도 몇 번인가 낙양에 와보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녀가 기억하던 낙양은 절대 이렇지 않았다.
탁현에서 매일같이 짚신이나 만들어서 팔던 어린 시절, 누구보다도 낙양을 꿈꾸고 황족에 동경했던 어린 소녀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뒤에 황건 토벌에 공을 세우고 직접 방문했던 낙양은 어떠했는가. 유비가 기억하던 낙양은 그 천하 어느 곳보다도 풍요롭고 윤택한, 돈과 권력이 흐르는 천하의 중심이라 이를만한 거대한 수도였다.
유비에게 있어 낙양은 보석 그 자체였다.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러나 그것에 매료되면 결국 그 힘에 취해 타락하고 마는. 유비는 의병장이었을 당시 황궁과 낙양에 경외와 두려움을 품었었다.
언젠가는 본인도 저 위치에 가고 싶다는 향상심. 그렇지만 묘한 불쾌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정도로 낙양은, 황궁은 대단했었다.
“…동탁. 드디어 일선을 넘는구나.”
조조가 바깥으로 소리가 샐 정도로 이를 갈았다.
낙양을 기억하던 이라면 누구나 이 참사에 황망함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누구보다 황궁과 권력을 눈에 익혔던 그녀에게 이 광경은 단순한 황망하다는 감정으로 끝날 리도 없었다.
진정 한이라는 나라가 이리 끝날 셈인가.
조조는 그리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검을 쥐고 있는 이상,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이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조금…, 서둘러야겠소.”
떨리는 목소리로, 그간 표정 변화도 거의 없던 조조가 진심으로 미간을 찌푸린 모습에 진소연과 유비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야 할 이유에 대해선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이 참상을 보고 가만히 넋 놓고 있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낙양으로 진입하니 손견의 군이 낙양 내를 수습하고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맹덕. 얼굴 좀 펴.”
하후돈은 조조의 옆을 줄곧 따르며 그리 말했다.
평소에는 얼굴에 감정표현을 좀 섞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것이, 이제는 너무 일그러진 표정에 짐짓 두려움까지 느꼈다. 이러다가 조조의 얼굴이 평생 악귀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남을 까봐.
그는 그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걱정하지 말라.”
조조는 그리 말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걱정하지 말기는.”
염병할.
하후돈은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면서도 그 뒤를 따랐다. 지금도 흉신악살 저리 가라고 할법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어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인가.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소연과 유비.
“…조금, 어이가 없네요.”
평소 항상 웃음기를 잃지 않던 유비라고 할지라도 이 광경을 눈앞에 두고 웃을 수는 없었다. 그 황실이, 그 웅장하던 낙양이, 이 한나라의 수도가. 모든 것이 한 명의 남자가 망친 것이었다.
그것은 촌수가 아득히 멀어 황손이라 논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는, 그렇지만 본인은 분명 황실의 핏줄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있던 유비에겐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사람 타는 냄새가 이런 거네요.”
소연은 다소 담백하게 감상을 늘어놓았다.
사실 그 말을 제외하고 더 할 말도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고 해야 할까. 잘못된 지도자를 만난 국가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절실히 실감하고는 있었지만, 이 풍경에 감정을 몰입할 수가 없었다.
현실이라고 생각되질 않는 참상.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제법 평화로웠다. 적어도 이런 미친 참극이 보도될 일도 없었으니, 그녀에게는 이게 말 그대로 생전 처음 보는 참상이었다.
전쟁에는 이제 슬슬 익숙해질 무렵도 되었다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껏 이 세상에 내려와 다양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했었다. 호세가 제 입으로 사람의 멱을 물어뜯을 때는 아무리 냉정하려고 해도 결국엔 주저앉았다.
그 뒤로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민간인의 피해는, 전쟁이랑은 느낌이 다르네요.”
소연의 독백에 유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구태여 답변하지는 않았다. 당장 시선을 돌리면 사방에 무참히 창에 찔려있는 시체가, 건물에 깔려 같이 불타버린 시체가 즐비했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죽음을 반쯤 각오하고 나서는 곳이었다. 이런 민간에서의 피해와 비할 바는 아닐 것이, 이들은 단지 이곳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죽어 나간 것이다.
이들은 결국 힘이 없어 살해당한 것이었다.
소연은 그걸 생각하면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자신도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자 했다면.
만약 그때 군을 모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도적을 규합하여 군벌로 성장하려 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일개 백성의 위치에 만족해 살아가려 했더라면.
어쩌면 이들과 같은 운명에 놓였을 수도 있었다.
싸우는 것이 두려워서, 현실과 다른 세계가 두려워 도전하는 것을 그만두고 안주하려 했다면. 진소연이라고 이런 꼴을 당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진소연이 약자인 동안에는 언제나 계속 반복될 고뇌였으며, 항상 걱정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결국엔 힘이 필요했다.
이 참극은 그녀의 그런 발상에 불을 지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