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55화 (55/343)

55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백파적 백파적의 상세한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약 이천 가량으로 보인다는 보고를 확인했다. 도적치고는 상당히 많은 숫자.

단지 이 근방에 연합군이 이리 많이 포진했는데도 어째서 하내를 공격하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해할 수가 없네.”

약탈을 노린다면 차라리 병주나 하동 인근을 공략하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현 하내군 인근은 결코 만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뭘요?”

사마랑이 떠나고 다시 표정을 밝게 편 사마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등락의 차이가 조금 커서 적응은 되지 않았지만, 가정사는 어쩔 수 없겠거니 하고 넘기고 있었다.

“그 백파적이 하내를 노린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도 구태여 연합군이 이리도 많은 하내를?

“아마 이름값 때문이 아닐까요.”

사마의는 침착하게 그리 말하며 눈을 감았다. 생각에 잠긴 투로 몇 번인가 엄지와 검지를 비비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미소를 짓는다.

“백파적에도 계파는 많다고 들었어요. 여기서 하내 연합군 중 하나라도 잡을 수 있다면, 제 명성을 단번에 끌어올려 두령급에도 오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이유라면야.”

고작 이천으로 하내까지 넘어온 이유도 납득은 가능했다.

그렇지만 왜 구태여 이 온현을. 아니, 오히려 이천이기 때문에 이 온현을 노린 것이겠지. 연합군 중에서 가장 세력이 적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군이었으니까.

“납득은 간다. 현재 온현에 배치하고 있는 군의 숫자는 오백. 타 제후와 비교해 건드리기 쉬운 부분은 있겠지.”

“게다가 아저씨도 있으니까요.”

“나?”

내가 뭐라고 그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벌써 백파적까지 여포와 대등하게 싸웠다느니 하는 그 헛소리를 들었나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일 것인데.

사마의는 그런 내 표정을 살짝 비웃듯 웃었다.

“병주에 기반을 둔 이들이 호세라는 이름을 모를 리가 없다니까요? 저번에 말 안 했던가요?”

듣기야 했지만 그게 뭐 대수냐 싶었다. 솔직히 말해 여포와 싸운 걸 맹주 차원에서 포장해준 것까지야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지만.

“장연의 흑산적이 꽉 쥐고 있던 병주에서 단기간에 세력을 불리고 흑산적 이대목까지 격파. 그 뒤에 연합군에 합류하여 그 입지를 굳혔다는 건 개천에서 용이 난 것과도 같아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그 모든 걸 설계했던 것도, 방침을 정해서 행동으로 명한 것도 소연 아가씨야.”

“하지만 행동한 것은 아저씨 아닌가요?”

그렇기야 했지만, 그 시기를 정한 것도 아가씨였다.

당시 장연이 우리의 확장세를 방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그리하여 날 움직이게 만든 것도 전부 그녀의 업적이었다. 진소연이 아니었다면 난 절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니.

기껏해야 아직도 도적질이나 간간이 하면서 그렇게 지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가 그리 대단하다면 그건 다 진소연의 업적이다.”

내 이름값이 올라간다는 걸 이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가씨가 대단하다는 방증이기도 하였으니, 오히려 좋다.

“대단한 충견 납셨네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이는 사마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작고 따듯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머릿결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그건 네가 아가씨를 몰라서 하는 소리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파적이 그 정도 규모로 온다고 하면 그건 확실히 중대사였다. 아군의 준비는 끝났다고는 해도 그 숫자가 오백 정도.

“어디 가시게요?”

“일단 사마준 어르신을 봬야지. 여차하면 연합군에 지원을 요청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움직여야….”

“안 돼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마의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심지 곧은 시선을 내게 향하는 그 어린 소녀의 말에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연합군에 지원을 요청하는 건 악수일걸요. 여기서 도적 토벌에 손을 벌린다는 건 그들에게 개입의 여지를 줄 우려가 있어요. 아저씨가 지금까지 쌓은 명예도 전부 날아갈 거라고요.”

“명예야 뭐 별거 있겠느냐마는.”

확실히 연합군의 개입은 달갑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합군이 아군에 간섭하지 않은 이유는 원소 휘하 계파였다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작금에 이르러서 온현에 손을 뻗치지 않는 이유는 아군의 공적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머릿수로 친다면 여포를 막은 피해로 이제는 채 삼천도 아니 되는 군세. 휘두르려 한다면 얼마든 휘두를 수 있는 병력이었다.

“쯧, 제후의 개입은 귀찮지.”

소연 아가씨도 관직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관직으로 밀고 들어온다면 당해줄 수밖에 없는 신세. 그건 아군에게 있어 결코 달가운 간섭은 아닐 것이니.

“마찬가지로 사마 가문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안 돼요. 어차피 도움도 안 될뿐더러, 여기서 밑지고 들어가면 잡아 먹힐걸요?”

그도 그런가.

제 가문에 대해 좋은 말을 꺼내지 않는 사마의의 모습에 다소 의문도 느꼈지만, 일단 그런 걸 떠나서 말 자체는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결국에는 아군끼리 해결할 문제였나.

“그래, 꼬맹아. 네 말도 이해는 간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아군은 저 백파적에 비해 숫자가 적었다. 내 왼쪽 어깨도 완치된 것이 아니기에 완전한 상태로 전장에 나서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단 확인을 할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한 규모나 그 강함은 직접 보지 않고서야 알 도리가 없었다. 사마 가문의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군을 이끄는 것은 나였다.

왼쪽 어깨가 아직 저렸다.

부상자가 전쟁에 나선다는 것만큼 머저리 같은 일도 없는 것이거늘. 그렇지만 나서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적어도 적을 파악하고 나서 생각할 문제였다.

“어디 가시게요?”

내가 일어나니 사마의도 같이 따라서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어라. 그냥 놈들 정찰하러 갈 뿐이야.”

“저도 가요. 비록 경험이 미천하다고 할지라도 병법서에는 능통한 부분이 있어요. 아저씨를 따라가서 득을 드렸으면 드렸지, 손해를 끼칠 일은 없을걸요?”

어린아이는 전쟁터에 발을 들이는 것이 아닌데.

그러나 사마의는 꿋꿋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제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나도 이 계집애가 어린아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재능과 학식이 제법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아저씨의 눈으로는 파악할 수 없던 부분을 잡아드릴 수도 있어요. 전쟁에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 아니어요. 그냥 데려가 보기만 하세요.”

“아서라. 애들은 전쟁에 끼는 것이 아니야.”

내가 알고 있었다.

애들은 전쟁에 끼어선 안 됐다. 그래서는 안 돼. 전장이 어떤 곳인데? 인간성이라고는 한 줌도 남지 않은, 오로지 폭력과 학대. 인간의 원초적인 광기가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하물며 사마의는 그 당시 나보다도 어렸다.

“확인만 한다니까요. 만약의 일이 있다면 아저씨가 절 지키면 그만이잖아요? 이번엔 확인만 하러 가신다더니 뭐가 그리 무서워요?”

“뭐가 무섭냐고?”

손을 뻗었다. 그 소녀의 가느다란 어깨에 오른손을 얹었다. 약하고 가냘픈 신체. 아귀에 힘을 주면 단숨에라도 부러뜨릴 수 있을 법한 약하고 무른 신체였다.

“…아저씨?”

사마의가 이상한 것을 보는 시선을 보냈다.

“뭐가 무섭냐고 그랬더냐.”

우스웠다. 이런 어린아이가 마치 세상을 다 산 것처럼 떠드는 것이 우스웠으며, 이런 아이보다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대어 볼까 생각했던 나 자신도 우습다.

이 소녀는 전쟁을 몰랐다.

“나는 전쟁이 무섭다.”

전쟁은 두려운 것이었다.

높으신 분이나 명문가의 자제라는 이들은 그걸 몰랐다. 단지 제 욕심과 영예를 위해서라면 피를 흘릴 각오가 있노라고 외칠 뿐인 쭉정이뿐.

사람이 그리 쉬이 죽어 나가는 곳이 전장 말고 더 있던가?

인간의 목숨이 초개와 같이 버려지고, 인간성이 바닥을 기며, 인간 그 자체의 가치가 그것보다 싸게 여겨지는 곳이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진심이에요?”

사마의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날 바라봤다.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도, 그러면서도 내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 보랏빛 눈동자에 힘을 주며 나를 바라볼 뿐.

이 꼬마가 날 어떻게 봤는지는 몰랐다.

그간 아가씨와 어울리면서 전쟁에 전쟁, 모든 것이 전장에서의 공적뿐이었으니 어쩌면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겼을 수도 있겠지.

난 전쟁이 무서웠다.

싸우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죽임도 어쩔 수 없다면 행할 수 있었다. 내가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그것마저도 이 공포를 이길 수는 없으니.

인간의 가치가 가장 싼, 사람이 사람처럼 죽을 수 없는 전장이라는 거 자체에 혐오감과 공포를 품고 있었다.

전장을 혐오하는 것을 인간다움이라 믿으면서, 그것을 두려워하길 멈추지 않았다.

“그래. 데려가는 주마.”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가 씰룩이는 것을 느꼈다.

인정했다. 이 소녀는 머리가 좋았다. 연합군에 지원군을 요청하려던 것도, 사마 가문에게 지혜를 빌리려던 것도 전부 실책이자 좋은 의견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깨닫고 가르침을 주었다.

그 모든 것이 이 소녀는 이 어린 나이에도 나보다 식견이 뛰어나다는 방증이겠지. 그건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은 곤란했다.

전장은 어디까지나 무관의 영역. 병사의 영역이고 장군의 영역. 내 아직 무관이나 장군을 자처할 처지는 아니나 병사를 자칭할 정도는 되었으니.

이런 어린아이가 발을 붙일 이유는 없었다.

“대신 넌 절대로 전쟁에 발을 들이지 마라.”

“도움이 될 텐데도요?”

“그래도다.”

그러니 사마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안타깝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그런데도 다소 마음에 든다는 것처럼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양손을 들어 항복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분명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사마의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일까.

적어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사실 거절하면서도 이 자존심 덩어리인 소녀가 반발이라도 했으면 어찌 설득해야 하나 난감하던 차였다. 만약 전쟁에 자신도 출전하겠다고 큰소리라도 쳤더라면.

아마 볼기짝을 두들겨서라도 쫓아냈겠지.

“저도 사리분간은 할 줄 알아요. 제 몸으로 검을 들 수도 없을뿐더러, 활의 시위조차 당기지 못하는 몸으로 전장에 나선다는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러냐?”

난 당연히 자신도 나가겠노라고 막 따질 것 같았는데.

“하여간. 전 분명 처음부터 정찰하러 가는 길에 데려가라는 말밖에 안 했거든요? 아저씨는 제가 전쟁에 나가겠다고 할까 그리 걱정이 됐어요?”

저 표정은 분명 사람을 놀리는 표정이었다.

저거 봐라. 입꼬리를 올리면서 능글맞은 표정을 짓는 것이, 딱 보아도 건수를 물었다는 기쁨이 느껴지는 표정이지 않은가.

그 표정에서 순간 제 오라비를 대하던 사마의와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간 내가 봐왔던 사마의는 이런 능글맞으면서도 어린아이의 감성을 간직한 소녀였으니까.

뭐, 가정사는 제각각이지 않겠나.

다소 이상한 괴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내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사마의가 가정 내 학대를 받는다는 느낌도 아니었고.

어느 쪽이냐면 사마랑이 오히려 이 어린 소녀를 두려워한다는 느낌이었다. 껄끄럽다는 것처럼. 그는 사마의와 대화하면서도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못내 의문은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여간 어른 놀려먹기는 참 좋아해요. 적당히 하고 따라와라. 네가 말하는 대로 같이 가주마.”

“네에.”

사마의는 밝은 표정으로 그리 답하며 내 뒤를 따랐다.

그러고 보면 이 사실을 사마준 어르신에게 말을 해두는 것이 좋을까? 아무리 사마의가 따라오겠다고 했다지만 큰 어르신에게 말도 없이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조금.

“야, 꼬마야.”

“왜요?”

“사마준 어르신에게는….”

순간 사마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말할 필요 없어요.”

너무나도 단호하게 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라 부르며 그리 친근하게 굴던 사람에 대한 말임에도 이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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