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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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잠이 오지 않아 밤잠을 설치리라 예상했지만 이게 웬걸. 머리를 베개에 기대어 눕자마자 바로 기억이 끊겼다.
생각보다 피곤했던 걸까.
막사의 천막을 걷고 나오니 저 멀리에서 조운과 눈이 마주쳤다. 살짝 눈 밑이 거뭇거뭇한 것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일까. 괜스레 미안해졌다.
“아, 오라버니….”
운이의 기운이 좀 부족한 것이 보였다.
“잠이라도 설쳤냐? 그러게 내가 얼른 들어가서 자라니까는.”
그리 말하며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눈 밑이 거뭇한 것이 티가 났다. 진즉에 들어가서 잘 것이지, 괜히 옆을 지킨다고 무리했구나 싶어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어유, 이 멍청한 것.”
그리 말하며 운이의 머리카락을 세게 흩뜨렸다. 방금 씻고 나온 것인지 머리카락에서 옅은 물기가 느껴졌다. 조금 차갑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나쁜 감촉은 아니었다.
“아우, 좀! 하지 말아요!”
“음마? 이 계집애가 또 왜 이래?”
갑자기 왜 그리 성질을 부리고 그러냐. 조금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그녀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면서 입을 삐쭉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 속도 모르면서.”
아니 잠을 못 잤으면 못 잤지 왜 이리 까칠한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운이가 생각보다 까탈스럽게 구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방삼이가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 대장!! 대자아앙!!”
숨을 헐떡이면서도 이리로 미친 듯이 달려온다.
“큰일, 큰일 났수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그러니 방삼이가 몇 마디 하려다 숨이 막혔는지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헐떡이며 숨을 골랐을까.
“연합군이 흩어지기 시작했다오!!”
“……뭐?”
연합군이? 어째서.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아직 사수관을 점령했다는 기별조차 듣지 못했는데 이리 갑자기? 관문조차 채 뚫지도 못했으면서 벌써 흩어진다니?
“무슨 소리냐, 아니. 아니다. 아가씨는?”
“안 그래도 지금 본영에서 대장이랑 조운 대장을 부르라고 하더이다. 갑자기 전령이 온 것이라 지금 상황이 복잡해졌소.”
“알겠다. 조운! 당장 무장하고 준비해라.”
그러니 조운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막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방삼! 일단 병사들 다 준비 시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최대한 빠르게 무장시키고 전투태세 갖추도록 전해.”
“알겠소.”
그리 답변을 들으며 내 막사를 향해 나아갔다.
연합군이 흩어졌다. 이것이 해체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지부진했던 전선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함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다른 공격로를 찾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으나.
조금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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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랐다.
소연은 그리 생각하면서 제 엄지손톱을 살짝씩 이로 깨물었다. 답답한 심정을 담아 조금씩, 그러면서도 눈은 하내 인근을 그린 지도에 향해 있었으니.
연합군의 위치가 변한다면 그 위치는?
그녀가 아는 게임의 정보도 여기서는 도움이 안 됐다. 거기서는 단지 군이 움직여 하내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고만 나왔지, 어느 군이 어떤 진로를 잡고 움직였는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골치 아프네.”
소연은 작게 중얼거리면서도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원소가 이리 갑자기 연합군을 흩뜨릴 리가 없었다. 그는 맹주. 이번 연합군의 성공은 그의 공적이기도 할 것인데, 사수관이 무너지기도 전에 벌써 군을 물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흩어졌다는 것은.
무언가의 돌발적인 상황.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소연은 숯을 연마하여 분필 비슷하게 만든 것을 가져와 지도에 그림을 그렸다.
사수관을 거점으로 하여 주변으로 펼쳐진 연합군.
그들이 움직일 법한 동선을 그린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그들이 어떤 성향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으며 원술과 그 계파는 아마 남쪽으로 향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아가씨!!”
전호가 막사의 천막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따르는 조운. 방삼이 보이지 않는 것에 살짝 의문이었지만 우선 소연은 그들에게 빈 의자를 가리켰다.
그렇게 자리에 앉은 그들을 향해 소연이 입을 열었다.
“원소가 이 인근으로 군을 돌렸어. 맹주가 먼저 군을 물린다는 건, 사실상 중심을 잃어 각지로 흩어지게 됐다는 걸 의미하고.”
“아니, 갑자기 왜!!”
그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 동탁은커녕 낙양으로 향할 관문 하나조차 함락시키지 못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맹주가 먼저 군을 돌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지 않았다.
“이대로면 연합군이 해체되는 거 아닌가? 원소는 대체 왜? 아가씨. 뭔가 아는 게 있는 거 아니요?”
“연합군은 해체되지 않아. 원술은 손견을 필두로 내세워 대곡 인근으로 우회하여 진군하고 있고, 타 제후도 군을 아예 물리지 않았으니까.”
전호는 손견이 움직였다는 말에 다소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손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 사수관은 어찌 되는 거요?”
“그쪽에는 조조 분무장군과 고당현령 유비가 아직 남아있어. 섣불리 움직이려 하지는 않겠지만, 아직은 괜찮을 거야.”
“고작, 그거밖에?”
전호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쳤다.
열여덟이라는 제후가 모여놓고, 정작 두 제후만을 남기고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리였다. 사수관이라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포기하면서까지.
여포가 그리도 겁이 나던가. 사수관의 험준함이 그리도 두렵던가.
전호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제후는 맞소? 한나라의 녹봉을 받는 이들이 그래도 된다고 합디까?”
“아마 원소가 보급에 압박을 받은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먼저 군을 물릴 이유가 없지.”
소연은 그리 말하며 지도를 두드렸다.
“그는 맹주긴 하여도 그 관직은 발해태수. 직접적으로는 기주목 한복의 수하이다 보니 실질적으로 그쪽에서 후원을 받고 움직이는 것과 다를 게 없어.”
“그러면 뭐요? 그 기주목이라는 양반이?”
그의 질문에 소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리 빠르게 원소가 군을 물릴 이유가 없었다. 슬슬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군은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그녀의 계속 지도를 두드렸다. 알고 있는 바로는 머지않아 손견은 대곡을 뚫고 낙양 인근까지 진군할 터. 그렇다면 조만간 사수관은 사실상 텅 비게 되는 셈이었다.
사수관으로 진격하는 것이 옳았다.
그렇지만 당장 그렇게 하기에는 사마 가문과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이는 몰라도 사마 가문은 품어야만 했다.
사마의라는 희대의 걸물을 얻기 위해서라도.
“호세. 군을 준비시켜.”
“이미 방삼이에게 말을 전해뒀어. 언제든 아가씨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요.”
전호의 말에 소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는 제법 눈치가 좋았다. 소연이 생각하기에 그는 스테이터스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장수였다. 적어도 윗사람에게 맞춰 움직이는 면에서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 전호 」
통솔력 - 80
무력 - 85
지력 - 76
정치력 - 69
매력 – 89
스테이터스가 또 갱신되었다.
무력과 지력이, 정치력까지 조금 상승한 모습.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어지간한 A급 장수와도 필적할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인데, 성장 속도가 기이할 정도로 빨랐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무력.
1년을 조금 넘긴 사이에 벌써 7이나 상승했다. 과거 처음 그를 보았을 때의 무력이 78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성장. 특히 이번에 여포와 겨룬 탓일까, 무력은 그 짧은 사이에 2나 더 올라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쓸 수 없다.
“너는 여기 남아있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운, 너는 방삼과 함께 군을 움직일 채비를. 군을 나눌 거야. 사수관으로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해. 호세 너는 여기에서 사마가와 온현 일대를 지키고 있어.”
그러니 조운은 머리를 끄덕였다. 단지 전호만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소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 얼굴에는 불만이 한가득한 것을 소연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만 아니었더라면. 그러면 조금 더 대화를 나누면서 간만에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리 생각했지만, 그러자니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소연 역시 돌발적인 행동이었기에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하던 찰나.
어차피 그는 어깨의 부상이 낫지 않아 군을 이끌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잠시 온현에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 부상 때문이요?”
“그래. 게다가 사마 가문을 지킬 필요도 있어. 너는 당분간은 여기에 체류하면서 상처를 달래는 게 맞아.”
그러니 그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친 환자의 몸으로 전장에 나가겠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었으니까.
단지 지금껏 줄곧 소연의 곁을 지켰는데, 그것을 못 하게 되었다는 것에 작은 상실감이 들었을 뿐.
전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알겠소. 그러면 나는 남는다고 하더라도, 병력은 어떻게 나누실 생각이요? 이쪽에 못해도 삼백 정도는 남겨주어야 할 것 같은데.”
그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다른 제후들이 이곳에 왔을 때, 온현만큼은 진소연의 군이 거점으로 삼았노라고 입이라도 뻥끗하려면 그 정도의 병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백을 줄게. 넌 반드시 여길 지켜야 해. 적어도 사마 가문만큼은 반드시 지켜줘.”
이에 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 가문에는 내가 전통을 넣어둘 테니까, 너도 가급적 사마 가문 인근에 머무르고.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무리는 하지 마. 알겠어?”
“명령 받들겠수다.”
그리 말하니 그제야 소연이 웃었다.
모든 것이 정해졌다. 소연은 조운에게 방삼과 합류할 것을 명하고는 본인도 챙겨야 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소연이 짐을 꾸리면서 들리는 잡음뿐. 조금 어색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고 소연이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다치지 마쇼.”
전호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퉁명스레 그리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지켜주지 못할 것 같으니까, 절대 무리하지 마시라고. 다치지 마. 운이와 방삼이가 있으니 걱정은 않겠지만, 그래도 불안하단 말이요.”
고개를 돌렸기에 소연에게는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소연은 그것이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보지 않더라도 어떤 표정일지는 대충 예상이 갔으니까.
“너야말로. 빨리 몸이나 나으렴.”
“흥.”
그는 마지막까지 제 표정을 비추지 않았다.
소연은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토라진 것처럼 보여 한번 피식 웃고는 자리를 떠났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녀가 향할 곳은 전쟁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는 곳이었으니까.
“어이, 아가씨!!”
그때 전호가 막사에서 그녀를 따라 나오며 제 허리춤에 찬 검을 던졌다. 여포와의 결전 이후 부러진 검을 대신하여 차고 있던 검.
“그거 잘 가지고 계시오. 내 어릴 적에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검인데, 지금까지 아까워서 못 쓰던 거니까. 꼭 돌려주고.”
거기까지 말한 그는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다시 막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연은 그가 던진 검을 바라보았다.
검 자루 끄트머리에 막힌 옥이 눈에 띄었다. 제법 비싸 보이는 검이었으나 그녀는 전호가 이런 검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보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그것은 쭉 관리해왔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그가 최근까지 검의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어머니는 과거에 돌아가셨다고 했던가. 그러면 아마 그는 제 어미의 유산을 자신에게 넘긴 것이었다.
소연은 그 사실에 못내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꼭 돌려줘야겠네.”
그에게 받은 검을 소중하게 쥐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 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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