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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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밤하늘과 함께 느껴지는 고요하나 다소 싸늘한 밤공기. 슬슬 서리가 내리 앉을 무렵이라 그런지 살짝 습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것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밤하늘은 좋았다. 생각이 복잡하여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마다 가끔 밖으로 나와 그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는 했다.
내 고민 같은 것은 하찮은 것이라고.
그 드넓은 밤하늘이 그리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말을 할 리가 없는 것을 의인화하여 의사를 부여하니 거기에서 안심을 얻는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자고로 인간은 가끔 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한동안 그 하늘을 쭉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 뒤편에서 발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라버니, 아직 안 주무세요?”
부스럭거리는 소리. 겨울 추위에 딱딱히 굳은 흙을 밟을 때 자주 들리는 바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운이가 내게 다가왔다.
“어, 조금.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 이렇게 추운데 바깥을 나돌아다니다가 고뿔이라도 걸려요. 하여간 별난 사람이라니까.”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가 앉아있는 나무 그루터기 옆을 제 발로 쓱쓱 문대더니 그대로 털썩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에헤이, 지지다.”
그리 말하며 그루터기 가장자리로 움직여 운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나, 제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녀는 그리 말하며 웃었지만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바싹 붙인 몸에서 따스한 체온을 느꼈다. 아마 운이도 내 체온을 느끼고 있겠지.
마침 조금 쌀쌀하던 차에 나쁘지 않은 따스함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녀는 내 어깨에 작게 머리를 기대며 나와 같은 풍경을 보았다.
이 시퍼렇게 물든 와중에 빛나는 보석이 즐비한 밤하늘의 풍경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고요했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요.”
운이는 그리 말하며 작게 입김을 불었다. 허옇게 서린 입김이 이내 흩어지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먼저 들어가라. 춥다. 그러다 몸 상해.”
“오라버니가 먼저 들어가면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작게 혀를 내밀었다.
그것이 못내 어이없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귀여운 면이 있어서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지식한 면도 있었지만, 사생활에서는 제법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여동생이었다.
고작 내기 하나로 맺어진 남매 관계였지만 그녀는 정말 성실하게 나를 오라비라 여기며 따르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혈연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관계는 여타 다른 형제자매의 관계에 질 것은 아니었으니.
못내 그것이 고맙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너는 날 언제까지 오라비라 불러주려나.”
“무슨 뜬금없는 소리예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조금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실은 꽤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다.
“언젠가 너와 엇갈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 아니냐. 언젠가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걸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네가 훌쩍 떠나고 싶을 수도 있겠지.”
그럴 때 나는 조운을 만류할 수 있을까.
분명 운이는 나와의 관계를 떠나서 아가씨에게 꼭 필요한 인재였다. 그걸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두는 것이 옳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걸 강요할 수 있는 배짱이 없었다.
“제가 왜 떠나요? 말이 되는 소리를.”
그녀가 뭐라고 하려던 것을 끊었다. 맞닿은 어깨, 그 아래에 있던 운이의 손을 꽉 붙잡았다. 조금은 세게, 살짝 아플 정도로 세게.
“너는 아가씨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잖아.”
사실 이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언젠가는 헤어지는 날이, 엇갈리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딱히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냥….”
운이는 그리 말하더니 잠시 말끝을 흐렸다.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린 그녀가 이윽고 말을 이었다.
“잘 모르겠는 사람이라서요.”
“모르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에요. 그래서 조금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요. 제가 느낀 진소연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이해하기 힘든 사람과는 친해질 수 없다는 말. 운이는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솔직히 말해 나도 아가씨를 그렇게 많이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도 없으며 이해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예지에 가까울 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있기에 타인과 소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제 1년 넘게 그녀를 보아온 나도 시답잖은 얘기나 종종 나눌 뿐이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한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똑똑하면서도 어찌 사람을 부리는 법을 저리도 모를까.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당장 뒤를 따르는 이는 앞을 걷는 사람만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앞장선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누가 저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하며 따라가겠느냔 말이다.
“이해할 수 없다. 그렇네. 사실 나도 아가씨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너랑 같을 수도 있겠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아가씨를 이해해달라는 말은 못 한다. 당장 나만 해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그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것뿐.
그걸 운이에게 정확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마 그게 나와 운이, 혹은 그들과의 차이였다. 솔직히 방삼이도 그렇고 운이도 그렇고, 대부분이 내게 먼저 일을 묻고는 했다. 난 그걸 아가씨와 상의할 뿐.
“차라리 날 믿어. 아가씨를 믿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나를 믿어. 내가 아가씨를 믿으니, 너희는 그냥 나만 믿어.”
그래. 너희가 날 따라라. 내가 아가씨를 따를 터이니.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셈이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이 문제는 아가씨가 스스로 인지하고 바꿔나갈 일이었다.
조금은 속내를 터줬으면 좋겠지만 그건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니까.
“…오라버니는 아가씨를 참 좋아하네요.”
운이는 그리 말하더니 슬쩍 일어났다. 몸을 기대고 있었기 때문일까. 체온이 떨어져 나가 조금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시간까지 밖에서 이러고 계신 거, 혹시 아가씨 때문인가요?”
제법 딱딱한 목소리였다.
순간 낮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따스하고 말랑했던 감촉. 서로의 숨결이 맞닿은 거리에서 눈을 감았던 순간. 제법 나쁘지 않았던 시간.
“그냥,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지.”
앞으로 아가씨를 어떤 얼굴로 봐야 할까.
그런 생각을 조금 하긴 했었다. 물론 아가씨가 내게 마음이 있을까, 같은 상상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앞으로 어떻게 그녀를 접하면 좋을까에 대해서.
“무슨 일, 있었어요?”
운이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지 않아 얼굴까지 보이지 않아 무슨 표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걱정해주는 느낌이라기엔 다소 느낌이 이상한데.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그리 말했다.
분명 따스한 시간이었다. 그 한겨울이 순간 봄날과도 같다고 착각했을 정도로. 이렇게 들뜬 이유도, 밤에 잠들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거기엔 사랑과도 같은 감정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이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렇지만 말해봐야 바뀔 일도 아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거짓말이네요.”
운이는 그리 말하며 제 손가락을 뻗어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니 추위로 살짝 달아오른 볼, 그리고 조금 찌푸려진 미간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 있던 거죠?”
“……어.”
하여간 계집애가 감도 좋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어휴, 또 뭔데요. 이상한 말 하다가 얻어맞기라도 하셨어요?? 요즘엔 안 그러시나 싶더니 또 그런 일로 꽁해진 거예요?”
누가 들으면 내가 항상 이상한 소리만 하고 돌아다니는 푼수로 알겠다. 평소에 이 계집애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입맞춤.”
“네?”
다시 묻지 마라. 귀찮, 아니. 정확히는 부끄럽다.
사실 숨길 일까진 아니었다. 구태여 숨길 일도 없었고, 생각해보면 운이도 같은 여성이니 어쩌면 조언이나 상담 비스름한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입맞춤, 당했다고.”
그 뒤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까까진 느끼지 못했던 거북함. 어느새 운이는 내 뺨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그녀는 그 말에 살짝 당황했는지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그, 그런 일이 있었어요? 조금 당혹스럽네요.”
“당혹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당혹스럽기론 내가 제일이지. 갑작스레 입맞춤을 받았다. 포상이라고 하긴 했으나 그런 일이 있었던 직후다 보니 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가씨가 날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래서 말인….”
“어우, 날이 좀 춥네요.”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제 손을 마주 잡고는 그리 말했다. 살짝 당황한 기색도 있는 것이 조금 수상해 보일 정도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오라버니! 죄송한데 조금 쌀쌀해졌네요.”
그러더니 먼저 들어가겠다고 하고는 순식간에 자리를 떠났다. 거의 도망치다시피 하며 순식간에 자리를 떠나는 그녀의 등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좀 춥긴 한데.”
그렇게 춥다고 느낄 정도였나?
다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 춥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본디 이런 건 개인차가 있는 것이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인 것도 마찬가지. 전부 느끼기에 따라 다른 부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쌀쌀했다. 확실히 옆에 앉았던 조운이 없어서 그런지 조금 춥다는 느낌도 들었다. 춥다며 먼저 들어간 조운의 심정도 다소는 이해가 간다.
들어갈까.
아직 졸음이 몰려온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말 잠들지 않다가는 이대로 날밤을 지새울 판국이었다. 졸리지는 않더라도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긴 해야 하는 상황.
아직 뒤숭숭한 마음을 끌어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하늘은 여전히 새까맣게 물들었으나 달은 제법 기울어 있었다.
작게 하품을 하며 막사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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