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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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계속 병상에 누워 잠만 자다시피 해서 그 뒤의 경과는 나중에 방삼이의 입으로 따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여포는 살아서 도망갔다더라.
중앙에서 싸우던 제 군을 물려서 미처 포위를 마치지 못한 연합군의 빈틈을 그대로 뚫고 나갔다던가. 방삼이는 이를 까득 깨물며 분에 겨워 거의 울먹이다시피 했다.
의외로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대신 화를 내줬기 때문일까. 방삼이는 내가 병상에 누워있지만 않았어도 당장에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서 연합군의 욕을 했을 것이, 아무래도 날 배려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전투로 아군의 사상자는 천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정확한 숫자는 아직도 파악하는 중이라고.
그중 1번대의 사망자는 63명. 그간의 전투로 죽고 죽어, 이제는 정말로 15명밖에 남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분노조차 일지 않았으니 그저 공허한 느낌이었다. 물에 떠다니는 듯한 기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을까.
“아가씨나 운이는.”
“둘 다 큰 부상은 아니요. 제일 심했던 건 대장이야. 왼쪽 어깨는 자칫 잘못했으면 뼈까지 베일 뻔했어.”
안 그래도 몸이 지끈거리며 아팠다. 이게 3일 내리 잠만 자서 느껴지는 통증인가 했더니 죽기 직전까지 갔던 영향이었던가.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가 멍했다.
다른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이, 그저 눈을 감고 싶었다. 쉬고 싶었다. 이만한 탈력감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몸에 힘이 빠졌다. 구태여 힘을 낼 이유가 있을까도 싶은데.
방삼이 내 손을 꼭 움켜잡았다.
“대장. 긴 말 안 하겠소. 우리 그만합시다.”
“…뭐?”
그는 눈을 감았다. 내 손을 잡은 방삼은 분명 떨고 있었다. 그것이 분노일까 슬픔일까. 그도 아니면 공포? 그 내막까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방삼이는 격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 느낌이었다.
“우리, 많은 걸 했소. 많은 걸 보았고 많이도 싸웠지. 이번에 대장은 그 천하무쌍이라는 것과 싸워보기도 했으니, 참 멀리도 왔수다.”
방삼이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너무 서글프게.
“많이 죽었고 많이 다쳤소. 같이 다니던 놈들의 태반이 죽었어. 대장도 지금에야 살아있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 않수.”
자조적인 웃음. 그 표정에서 다소 불안한 기류를 느꼈다. 다음으로 이어질 말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가서, 그것이 듣고 싶지 않아 방삼의 손을 마주 잡았다.
“…방삼아.”
“그만합시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들을 수밖에 없는 말.
그리 말하며 눈을 감아버리는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말을 해야 그가 납득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것인데.
“아가씨는 어디냐.”
“말 돌리지 마쇼.”
못된 놈. 제 대장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좀 알아먹기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방삼이는 여전히 시선을 또렷하게 나와 마주치고 있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라. 난 안 가.”
“…진심이요?”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을 꺼내서, 구태여 쓰라릴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어. 아가씨의 목표 하나를 위해서, 내 목표를 위해서. 지금 멈추면 그 얼간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이잖아.”
구태여 우리 애들로만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이 초개처럼 흩어졌는가.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었다.
전부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대장. 그 아가씨가 대단한 사람인 건 알겠소. 그 도적 패거리에서 시작했던 여자가 이제는 장군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방삼이는 그리 말하며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 여자는 봉황이요. 우리 같은 뱁새가 따라가려다가는 다리가 찢어질 건데, 대장은 그걸 감내할 수 있겠수?”
“에라이 잡놈아. 제 대장에게 뱁새가 뭐냐?”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소연은 고작 1년하고 조금 넘는 기간 만에 장군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비상설직인 데다가 원소가 임시로 하사했을 뿐인 잡호장군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고작 백여 명의 도적단에서 거기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원소와의 대화에서 제가 원하는 걸 쉬이 얻어가는 모습에선 소름이 돋았다. 여포와 일전을 겨룰 당시에도 미숙하기는 했지만 분명 그 괴물과 무기를 맞댔다.
대단한 사람이기야 하였다.
아마 그녀는 내가 없더라도 계속 승승장구를 이어가겠지. 나 같은 천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재능이니까.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뒤를 따르고 싶은 것이 죄는 아니었다. 이 목숨을 불태우더라도 따라간다는 게.
그것도 죄란 말인가?
“대장, 내 그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방삼이 그렇게 말하며 뜸을 들었을 때였다.
“말을 너무 막 하시는 거 아니에요?”
조운이 막사의 천막을 걷으며 그리 말했다. 어깨에 천을 둘둘 두르고 있으면서도 나보다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나와 방삼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오라버니가 얼마나 한 것이 많은데. 아가씨는 오라버니 없으면 안 돼요. 호세라는 사람은 우리 군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건 당신도 알잖아요.”
“조운 대장.”
방삼이는 그리 말하며 조운을 흘겨보았다. 인상까지 찌푸린 것이 지금 조운의 방문이 썩 달갑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방해하지 마쇼. 이건 우리 가족끼리의 대화요.”
“저도 가족인데요?”
방실거리면서 방삼이의 말을 받아치는 운이는 썩 보기에도 꽤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아마 상대하는 쪽의 화를 돋울 느낌인 것이, 실제로 방삼의 얼굴도 잔뜩 구겨졌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대장, 진지하게 생각하쇼. 이대로 가면 대장 목숨도 장담할 수가 없어. 난 그 꼬락서니는 못 보오. 죽는 것보다는 개똥밭을 구르는 게 낫다던 건 대장 아니요!”
조운은 그걸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선은 마주쳤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단지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것은 내게 직접 말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삼아.”
오른팔은 그나마 멀쩡했기에 살짝 손을 움직여 그의 손을 잡았다. 거친 손. 나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더러운 손이었다.
“난 못 간다. 이미 내 모든 걸 그 여자한테 바쳤어. 내가 움직이는 모든 이유를 그녀에게 받았어. 내가 목표로 한 꿈도, 이상도, 희망도. 전부 원래는 내 것이 아니었어.”
“진짜 죽을 수도 있소.”
그 말에 한 번 피식 웃어주었다.
“그러면 뭐, 저승에서라도 기도해야지.”
“미쳤수?”
미쳤냐고? 그야 미쳤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여자를 따라가나. 내가 예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애당초 전쟁터에 칼 쥐고 서는 놈들은 다 미친놈뿐이라고.
나는 그것보다 조금 더 미쳤을 뿐이다.
“반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것은 분명 사랑은 아니었다. 존경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렇지만 인간 그 자체에 반한 것은 사실이니 그것을 숨겨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하, 시발.”
결국 방삼이 고개를 돌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다가 왼쪽 어깨가 작살났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신음을 흘렸다.
“난 모르겠소. 알아서 해.”
그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막사 바깥으로 나가려는 그 뒷모습. 묻고 싶진 않아도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
“떠날 거냐?”
이에 방삼이 코웃음을 쳤다.
“흥, 내가 가면 누가 댁 뒷바라지를 한다고.”
그는 그리 말하며 천막을 걷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 사람, 정말 오라비밖에 모르는 사람이네요.”
그걸 지켜보고만 있던 조운은 방삼이 떠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슬쩍 다가와서는 방삼이 앉았던 자리에 앉는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그거 알아요? 방삼 씨는 많이 강해졌어요. 그 흑산적과의 전투 이후로 많이 절치부심을 했는지. 뭐, 제가 잘 가르친 것도 있고요.”
그리 말하며 배시시 웃는 꼬락서니하고는.
그녀는 그리 말하면서도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 파란색 눈으로 날 빤히 바라본다. 그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손을 쓰다듬기 시작하니.
“그러니까 죽지 말아요.”
운이는 그리 말하며 제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쓰다듬고는 이내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넣으니, 손등을 잡고 깍지를 끼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녀의 손은 제법 따듯했다.
“안 죽는다.”
그게 부끄러워서 조금 퉁명스럽게 대꾸해버렸다. 평생 살면서 걱정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래서 좀 부끄러웠다.
그것이 조운에겐 다소 웃겼을까?
“푸흡, 안 죽기는요. 그거 알아요? 그 나무 아래에 기대있는 오라버니를 봤을 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정말 다 죽어가는 송장 하나가 있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운이는 그리 말하면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당시의 몰골이 어땠을지 솔직히 잘은 몰랐다. 정신도 없었을뿐더러, 솔직한 말로 그 당시에는 단지 싸워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사람 죽는 거 쉬워요. 얼마나 쉬운데요.”
깍지를 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내 손을 부여잡은 작은 손. 그것은 진소연의 군체에서 가장 강하다는 상장의 손이라기엔 너무 작고 가냘프다. 조금씩 떨고 있는 그것은 분명 소녀의 손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저는 당신 때문에 여기 왔어요. 오라버니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도 귀하다 여길 줄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남을 동정할 줄도, 그들의 입장을 생각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건 인간이면 당연한 거야.”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굶은 사람을 보면 뭐라도 나누고 싶다. 나쁜 사람을 보면 화도 나고,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명복을 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걸 대단하다고 칭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인간성이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조운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천하에서 힘 있다는 자들이 그러는 걸 저는 본 적이 없네요. 천하를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하겠다는 사람도, 약자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어요.”
천하가 각박하니까. 제 삶도 제대로 영유하기 힘드니까 그럴 뿐이다. 대단한 건 내가 아니었다. 이 계집애는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 지금 뭐라고 하지 말아요. 어쨌건 저는 인간적인 오라버니가 좋다는 거니까. 그리고 당장 이 군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오라버니잖아요?”
“언젠가는 소연 아가씨가 맡을 일이야.”
“지금은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은 오라버니가 이 군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아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소연 아가씨가 아니라 오라버니를 보고 따라온 사람들이에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 뺨을 살짝 두드렸다.
“그러니까 죽지 말아요. 다치지 말아요. 이 조운에게 말했던 미래를 그리려면, 제가 원하는 걸 보여주려면 오라버니는 오래 살아있어야 해요.”
조운은 그리 말하면서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맞잡은 손에서 땀이 차는데, 그것이 딱히 불쾌하거나 거북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 온기에 마음이 놓였을까.
“운아, 이 오라비 분하다.”
울컥하고 말았다.
가슴에 쌓인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알아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것이 너무 따듯해서, 조금 싫을 정도로 따듯해서. 그래서 막아두었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우리 애들, 여기서 죽으면 안 됐어.”
“그렇죠.”
방삼이에게도 미안했다.
사실 그 녀석에게 그리 말하면 안 됐다. 그들과 함께했던 세월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녀석들에겐 보여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대장이었으니까. 그들을 이끌었던 책임이, 진소연을 따르게 했던 책임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보여줘서도 안 됐다.
책임을 져야만 했다.
“우리가 희생한 게 결국, 다 개죽음이 됐어.”
여포를 놓쳤다. 그걸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내 가족도, 내 부하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그걸 놓친단 말인가. 그러면 대체 거기서 죽어 나간.
그들은 왜.
“왜 참았어요.”
책임이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울 자격이 없었다.
사지로 몰아넣은 것은 나였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걸 알았다. 그런데도 그들을 이끌었으니, 그들이 죽었다고 해서 내가 슬퍼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선 안 됐다. 슬퍼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넋두리라고 생각해라.”
“멍청한 남자.”
운이는 그리 말하며 내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한동안. 언어조차 되지 못한 무언가를 울부짖었다. 속에 담긴 무언가를 단지 토해냈다. 뜨거운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흘렀다. 가슴이 쓰라렸다.
이번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토해내면 된다. 그러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다신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아가씨에게도 보일 수 없었다. 방삼에게는 더더욱 보일 수 없었다. 하물며 다른 이들에게도 보일 수 없는 그것을, 단지 조운을 벽이라 생각하며 전부 토해냈다.
이번 한 번만.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리기로 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