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43화 (43/343)

4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천하무쌍 여포는 제 눈앞에 있는 남자가 거슬렸다.

이미 왼쪽 어깨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부상을 입혔다. 검도 이미 부러졌고 이제는 서 있는 것도 고작이라는 듯이 헐떡이는 남자.

그러나 화극을 휘두르면 어떻게 된 것이 용케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그 경로에 부러진 검을 갖다 댔다. 모든 힘을 다해 휘둘렀다고 하기는 뭣하지만, 적어도 저런 산송장이 막을만한 위력을 아닐 것인데.

그런데도 그는 그걸 어떻게든 비켜내면서 서 있다.

완전히 비켜낸 것은 아니었다. 화극을 쳐냈다고는 하나 그 경로를 살짝 비튼 것에 지나지 않아 결국에는 제 몸을 조금씩 베이고 있었으니 딱 치명상만은 피하는 수준.

“진짜 끈질기네.”

여포는 그리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다시 한번 오른쪽 상단에서 사선으로 내리그으며 휘둘러 보아도 그걸 제 부러진 칼로 빗겨냈다. 완벽하게 빗겨낸 것은 아니라 우측 허벅지에서 피가 터졌다.

그녀는 전호가 껄끄러웠다.

처절하게 싸우는 그 모습. 이제 고작 10합 내지 15합 정도일까. 시간으로 치면 이제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본래라면 이렇게 질질 끌 전투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힘도, 속도도, 기량도.

모든 부분에서 여포는 압도적으로 전호를 능가했으니 본래라면 가볍게 썰었어야 정상인 상대였다.

그런데도 단 한 번.

딱 한 번의 치명타가 부족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치명타만은 막아내는 모습. 제 몸의 안전을 도외시한 방어는 짐짓 처절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으니. 여포는 그 모습에 적잖이 마음이 동했다.

“하아.”

여포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허옇게 서린 입김이 겨울바람을 타고 흩어져간다.

아직 전호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니 여포는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녀 본인도 분명 저랬던 시절이 있으니까.

죽고 싶지 않아서, 강해지고 싶어서. 그래서 그냥 무턱대고 창부터 쥐고 싸우러 나갔던 적이, 저보다 강한 상대에게 죽기 직전까지 갔던 적이나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붙잡힐 뻔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처절하게 버티는 그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차라리 단번에 죽였더라면 이런 감정은 느끼지 않았을 것인데. 이 악물고 쓰러질 것처럼 부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는 모습이, 죽지 않겠다고 이를 악무는 모습이.

“쯧.”

그녀는 혀를 가볍게 찼다.

이런 상대는 죽이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어린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으니까. 그래서 몇 번인가 그런 이들을 살려준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여포에게 있어 가장 귀찮고 번거로운 강적이 되어 돌아왔다.

죽여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세상이라는 건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죽이는 것이 옳았다. 설령 그것이 고깝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런데도 죽이는 것이 맞았다.

여포가 방천화극을 높게 치켜들었다.

한 번에 죽일 생각으로 치켜든 방천화극. 전호는 그걸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여포가 동작을 크게 하면서 빈틈이 군데군데 보였지만, 그걸 노리고 달려들 힘조차 없었다.

검이 부러진 순간부터 사실상 그의 몸은 진즉에 한계에 다다랐다. 움직이려고 해도 더는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저승 가면 날 원망하라고.”

이 여포 봉선을.

그녀는 그리 말하며 치켜든 방천화극을 내리치려 했다. 전호는 온 힘을 다한 여포의 공격을 막을 수단이 없었으니 사실상 이걸로 끝이었다.

“…미안하오.”

약속, 못 지켰네.

그는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떨궜다. 어차피 전해지지 않을 말. 어차피 닿지 않을 마음이었다.

기도하자. 앞으로 진소연의 앞날에 빛이 있기를.

전호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럴 것이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처음 그 방천화극에 맞고 날아갔을 때부터 이미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건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단지 그런데도 조금의 시간을 벌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여포의 앞에 서서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미 그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팔다리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니, 이미 혼미해진 정신으로 눈을 감으며 그 뒤를 그릴 뿐.

여포가 방천화극을 들었다.

드디어 긴 여정이 여운과 아쉬움을 잔뜩 남긴 채 마무리를 짓는다. 그 뒤를 못 보는 것이 아쉽지만, 그는 이미 한계였다.

그때였다.

“칫!!”

여포가 혀를 차며 몸을 빙글 돌려 방천화극을 제 뒤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비명. 여포의 등에 가려지긴 했지만 분명 누군가가 나동그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형님!!”

누군가가 전호의 팔을 끌었다. 그 와중에 여포에게 또 달려드는 인물도 그 방천화극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빨리 일어나!! 벗어나야 한다고, 이 멍청한 새끼야!!”

전호는 떨리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들은 모두 처음부터 자신과 함께하던, 이제는 1번대로서 전호와 방삼의 팔다리가 되었던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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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너희가 왜.”

분명 1번대는 좌측에 배치했었다. 우측에 조운, 좌측에는 1번대. 중앙에는 나와 방삼이. 이렇게 배치를 하면서 균형을 잡고자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포에게 한 명씩 달려드는 이들.

그들은 정확히 여포가 아군을 베는 사이에 그 뒤를 노렸다. 그렇지만 그 천하의 여포가 그런 틈을 용납할 리도 만무했고, 결국 한 명씩 교대로 죽어가는 꼬락서니에 불과했다.

어차피 통하지 않을 것인데, 어째서.

마치 시간을 벌고자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니들 뭐야. 뭐하냐고.”

머리가 아팠다. 피가 너무 빠져나갔을까. 이미 왼쪽 팔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오른쪽 허벅지에서도 피가 계속 흘렀기 때문일까, 점점 머리가 지끈거리며 몸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었다.

“다, 당장 멈추게…, 해. 저거 다 죽는다…!!”

“안 돼.”

내 팔을 끌고 있던 이는 너무 단호히 말하며 내 팔을 질질 끌고 여포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과거 어릴 적에 한쪽 귀를 잘렸기에 짝귀라고 부르던 녀석.

그는 지금도 힘껏 내 몸을 질질 끌고 있었다.

“멈추라고, 이 시발 새끼들아!!”

저게 누군지 알고. 저건 여포다. 너희 같은 무지렁이들 백이 덤벼도 우습게 베어낼 천하무쌍이란 말이다. 너희 같은 것들은….

이건 개죽음이었다. 말려야만 했다.

왼팔은 이미 틀렸다. 오른팔만이라도 억지로 움직여 짝귀 놈의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힘을 줄 때마다 오른쪽 허벅지에서 뿜어지는 피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저들이 어떤 이들인데.

“못 멈추오.”

짝귀는 계속 그리 말하며 내 몸을 끌 뿐. 그 사이에도 여포의 눈을 돌리기 위해 한 명씩 계속 교차하여 여포에게 달려드는 이들이 보였다.

방천화극이 한 번 빛날 때마다 그들 한 명이 죽어 나갔다.

그렇게 한 명이, 또 한 명이, 또 한 명이. 그렇게 줄줄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모습을 결국 참지 못했다.

“멈추라고 했다.”

“못 멈춰.”

그는 아예 내 얼굴을 보려 하지도 않았다.

“멈추라고 했, 크훕…!! …지!!”

말하는 도중에 기침을 터뜨렸다.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지만 그걸 억지로 꾹 참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직이다. 여포야, 아직 내가. 호세가 살아있다.

네 상대는 나였다.

몸을 일으키려 억지로 오른팔을 움직이려 하니 그는 내 팔을 놓았다. 그 틈을 타서 땅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기우뚱하며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짝귀는 그대로 내 멱살을 잡았다.

“못 멈춘다고, 개새끼야!! 말 들어! 대장이란 새끼가 꼴사납게 징징거리지 말라고!!”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그것은 호통일까. 차라리 비명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정도로 악을 쓰면서 그는 내 멱살을 세게 붙잡았다.

“당장 제 팔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인간이 무슨 여포야! 다 정했어. 우린 형님 하나 살리겠다고 정했으니까, 댁도 대장이면 우리 의견에 복종하쇼.”

“미친놈들아…, 저게 안 무섭더냐……?”

나는 두려웠다. 저 여포라는 인간이, 그가 든 방천화극이, 그 붉은 머리칼도 갈색 눈동자도 전부. 앞에 서는 것만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 질문에 짝귀는 슬쩍 웃었다.

“우리라고 여포가 안 무섭겠나? 당연히 무섭지. 시발, 저 개새끼. 결국 내 돈도 안 갚고 먼저 가는구만.”

그는 저 멀리서 방금 베인 남자를 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엔 살짝 물기가 서려 있었으니, 당장 저걸 말려야 하는데.

우리는 가족이었다. 비록 피로 맺어진 것은 아니지만, 유대로 맺어진 관계. 기댈 곳 하나 없던 남녀가 모여 서로 형제자매처럼 지냈으니.

그것은 분명 가족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으리라.

짝귀가 눈을 흘기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잖소.”

그는 그 뒤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몸을 다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이상 저항도, 그렇다고 멈추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나무 아래까지 질질 끌려갔다.

짝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그 아래에 몸을 기대어놓고는 제 칼을 뽑아 들며 여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이. 그 뒤를 이어 다른 한 명이.

그들은 나를 위해 죽어 나갔다. 그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며 날 지키려고 했다. 내가 소연 아가씨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면 그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차라리 너희를 데려오지 말 것을 그랬어.

그랬다면 차라리.

“……시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은 아직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른팔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왼쪽 어깨에선 아예 뼈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베였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자 했는데, 아무래도 그들 역시 그리 생각했던가.

또 누군가가 죽었다. 또다시.

그렇게 가족들이 한 명씩 사라졌다.

그 반복이었다. 그들은 여포를 붙잡기 위해 한 명씩 제 몸을 던지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이제 더는 그 광경을 보고 있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던 순간.

“크읏!!”

처음으로 여포가 신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제 방천화극을 던져 날아드는 무언가를 쳐냈지만, 그와 동시에 산산이 깨진 그것에 제 머리를 얻어맞았다.

“……돌? 진짜 하다 하다, 이번엔 어떤 새끼야?”

처음으로 여포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피를 여포가 한 번 손등으로 훑어 닦아냈다. 그녀는 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저편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소연 아가씨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짐승을 잡는데, 도구가 필요한가?”

그녀는 그리 말하며 철로 된 봉을 꺼냈다. 분명 아군 대장기의 깃대였을 철봉. 소연 아가씨는 그 봉을 부여잡으며 여포를 바라봤다.

“덤벼, 짐승아.”

소연 아가씨는 그리 말하며 여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여포는 그 광경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픽 웃었다.

“짐승? 어디 짐승한테 한 번 물려 죽어봐!!”

그녀도 주변에 달려드는 이들을 쳐내며 소연 아가씨에게 달려갔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머리가 채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소연 아가씨가, 왜 저런 걸 들고.

그걸 생각하기도 전에 여포의 방천화극과 아가씨가 쥔 봉이 서로 부딪쳐 큰 파열음을 내며 그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엇비슷하게 겨뤄지는 힘겨루기. 여포의 방천화극과 아가씨가 쥔 깃대가 서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상대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건 또, 뭔!!”

여포가 제 방천화극을 크게 휘둘러 아가씨의 깃대를 쳐냈다. 그리고는 살짝 물러서 방천화극을 한 번 거두며 재정비를 하니, 오히려 아가씨가 먼저 여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부딪침.

깃대와 방천화극은 서로 맹렬하게 부딪치며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진로를 찾기 위한 맞대결을 반복했다.

당장에라도 몸을 일으키고 싶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왜 당신이. 하필이면 당신이 거기서 그러고 있느냐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지금의 내겐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이 가장 두려웠던 것과 싸우는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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