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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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침을 삼키며 전방을 주시했다.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기마의 투레질도, 그 앞에 있는 붉은 말도, 가장 선두를 달리는 그 무장도 전부 뚜렷하게 보였다.
저게 천하의 맹장, 천하무쌍 여포.
저 멀리에서 군이 쪼개진다. 여포가 이끄는 기마와 소수의 기마가 이리로, 그리고 나머지가 중앙에 있는 유비의 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양면을 동시에 공략할 셈인가.
“대장, 저것들 지금 군을 반으로 나누는 거요?”
시선은 돌리지 않고 고개만을 끄덕였다.
적이 움직임은 확실히 중앙으로 향하는 군의 숫자가 더 많았다. 여포가 이쪽을 향해 달리는 대신 소수의 기마를, 대신 나머지 기병 전부를 중앙으로 돌리는 모양새였다.
“여포가 이쪽이니까 아마 중앙군을 다수로 쳐부수는 동안 여포가 이쪽을 묶어두려는 생각, 아니. 아니지. 그게 아니다.”
여포를 고작 시간 벌이용으로 쓸 리가 없었다.
“아마 중앙군을 공략하는 사이에 여포는 우리를 쪼개고 중앙과 합류해서 양면으로 공격해서 중앙을, 그리고 우익을 공략할 생각이겠지.”
“거의 절반 이상이 중앙으로 갔는데, 그런데도 우리를 돌파하겠다는 생각인 거요?”
얕보였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여포는 본인의 힘이라면 소수의 기병만을 이끌고도 우리를 쉬이 공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후회하게 해줘야지.”
그리 말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준비는 만전. 옆을 치고 들어올 구석은 전부 막았다. 아무리 기병대라 하더라도 수레까지 세워 막은 곳을 뚫을 리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치고 들어올 것인데, 전방은 이미 밀집 방진을 구성하며 목책까지 세워뒀다. 이미 창과 극으로 모든 병력 무장시킴으로 기병대에 저항할 준비는 끝났다.
“아가씨는.”
“진영 중앙으로 빼두었소.”
그러면 됐다.
조운은 미리 진 우측으로 배치해서 여차할 때 여포를 상대할 비장의 수단으로 준비해두었으며 방진의 구축 또한 만전.
아가씨는 그간 죽간을 계속 읽어오면서 진법과 전술을 공부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누구보다 빠르게 방진의 수정안을 제시하며 이 진영을 만전 그 이상으로 갖추었다.
어차피 밀고 들어올 구간은 정면밖에 없다.
한정된 장소, 한정된 입구에서 방진을 짜둔 군이라면 제아무리 육중한 군마를 이끄는 기병이라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물론 최전방에 선 보병들의 희생은 따르겠지만, 밀집된 방진을 짠 보병을 밀어내는 추진력은 언젠가 반드시 그 밑바닥을 보일 터.
저들을 단 한 번이라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그때부턴 아군이 한정된 상황에서의 수적 우위를 살릴 수 있었으니.
“막을 수 있다.”
“이러고도 못 막으면…, 뭐. 죽어야지 별수 있나.”
방삼도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제 손에 쥔 창이 떨릴 정도로 꽉 붙잡고 있었다. 살면서 몇 번의 전장을 이놈과 같이하면서도 저만한 숫자의 기병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지휘관으로서, 천하무쌍의 맹장을 상대로.
“방삼아. 우리 존나게 출세한 거 같지 않냐? 1년하고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 어디 돈 많은 인간 잡아다 털어먹고 살았는데 말이다.”
그러니 방삼이도 씩 웃는다.
“그러게 말이요. 그렇게 비루하게 살던 놈들이 이 많은 인간을 이끌고 전장에 나선다는 것이, 참 뭐라고 할지.”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그 조그마한 산에서 백 조금 넘는 남녀가 뭉쳐 살면서 칼을 갈고 도적질을 하며 살았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이런 전장에 나서고 있다.
“구해야 하는 건 황제, 상대는 천하무쌍의 맹장. 우습지. 참으로 우스워. 우리가 무슨 영웅도 아닌 것이, 싸우는 꼬락서니는 영웅의 전장이구나.”
“그러면 말이요.”
방삼이는 그리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영웅, 되어보쇼. 대장이라면 가능할 거 같은데.”
“그랬으면 좋겠다마는.”
일단 그 모든 것도 여포를 막고 난 뒤에야 이뤄질 얘기였다. 막아내지 못한다면 비극의 한 줄로 기록될 따름이니, 서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영웅 한 번 되려면 승자가 되어야지.”
그저 반란군 중 하나로 남을까, 나름 중요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영웅으로 기록될지는 모두 이번 결전에 달린 일이었다.
아니, 고작 영웅이라는 이름 따위가 아니더라도.
“죽기는 싫잖아?”
“그건 그렇지.”
서로 얘기하는 동안 저 멀리에 있던 기병대가 인근까지 도착했다. 무지막지한 기세를 풍기며 달려오는 걸 보면 확실히 기병이 왜 그리 강한지 새삼 실감이 가는 장면이었다.
물론 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깃발 하나를 치켜들었다. 녹색 깃발은 아군 중에서도 과거 활을 다뤄본 적이 있는 이들만을 모은 부대에 내리는 명령이었으니, 후방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 저마다 열을 맞추고 늘어서기 시작했다.
“궁수는 전부 활을 걸어! 꾸물대면 죽는다!”
그리 외치며 전방을 향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여전히 적 기병대는 무시무시한 속도와 기세를 유지하며 아군 진영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으니.
아직이다. 아직, 조금만 더.
기병의 움직임은 확실히 빨라서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몇 번인가 전쟁에서 활을 잡아본 적도 있지만, 이렇게 대군끼리의 전투는 처음이었기에 다소 곤란한 면이 있기야 했다.
그렇지만 얼추 예상은 가능하다.
치켜든 손을 내렸다. 그러니 방삼이 주위에 깃발을 흔들며 신호를 주고, 그와 동시에 빗발처럼 화살이 쏘아졌다.
“계속! 계속 쏴라!!”
방삼이 그리 외치면서 주변을 닦달했다.
쏘아진 화살은 얼추 비슷하게는 기병대에 떨어지니 몇 기병이 쓰러져 떨어지는 꼬락서니가 보였다. 여기서 여포까지 같이 맞는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럴 리도 없나.”
그렇게 쉽게 흘러갈 리가 없지.
언제나 그렇다. 요행이라는 것에 기대어도 삿된 희망일 뿐. 그것은 결국 손에 쥔 모래알처럼 자연스럽게 제 손을 떠날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자기 손으로 잡아채야지.
저마다가 미친 듯이 활을 걸과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쏜다. 손가락 끝자락이 짓물러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행동을 반복했고, 한 명이라도 더 죽여 두어야 우리가 살았다.
몇몇 활에 맞아 쓰러지는 기병이 보였다.
그리 큰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적에게 피해를 거듭하여 강요할 수 있었다. 이걸로 됐다. 이렇게 조금씩 적의 기세와 힘을 깎아 먹을 수 있다면야.
“전열!! 거창!”
밀집한 방진의 대형은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다. 미리 대 기마용의 장창까지 배급하였으니, 미리 병장기를 흔쾌히 양보해준 원소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까.
그럴 리도 없지.
아군을 이런 사지에 몰아넣은 것이 다름 아닌 그 원소님이시니까. 고작 병장기 몇 빌려주는 건 도의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것이었다.
“대장, 이제 시작이요.”
방삼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그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 멀리에 있던 붉은 말을 탄 장수가 바로 인근에서 그 흉흉한 기세를 잔뜩 풍기고 있었으니.
적 기병대는 이미 아군 인근까지 접근했다. 그 땅 울림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어차피 피할 곳은 없었다.
아군에게 자리에서 물러서지 말고 버티라고 재차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물러서도 죽음이니, 그렇다면 차라리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버티라고 외치며 아군의 깃발을, 아가씨의 성씨를 적은 깃발을 대차게 흔들었다.
무조건 버텨야만 했다. 어떻게든 단 한 번의 돌격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때부터는 좁은 지역에서 큰 부피를 차지하는 기병보다는 밀집 방진을 꾸린 아군이 수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자, 이 여포의 상대는 누구냐아아아아아!!”
코앞까지 다가온 여포의 외침이 들렸다. 그런 외침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접근한 적의 기병대.
“전원! 창끝을 땅에 꽂아라!! 몸으로 버티고 창날을 곧추세워!!”
그리 외치며 여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투구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아군을 향해 말을 모는 여무장.
순간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들었으니.
결전은 바로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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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은 양 갈래로 찢어진 적 기마대를 바라보았다.
동탁군의 기병대는 모조리 좌익과 중앙으로 몰려 조조군은 당장 전선에서는 한 발짝 물러선 그림이 되었다. 그만큼 중앙의 유비군과 좌익의 진소연군의 부담이 커질 터였지만.
“맹덕. 이걸 어떡하지?”
“흠.”
그의 질문에 조조는 잠시 침음을 흘렸다.
조조가 생각하기에 상대는 분명 중앙에 군을 과하게 몰아넣은 느낌이 있었다. 차라리 좌익으로 향한 소수, 약 천으로 보이는 군대까지 중앙에 투입했다면 모를까 이건 너무 병력의 낭비였다.
어째서일까.
땀 한 방울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리가 뜨거워지니 자연스레 흐른 땀방울이 묘하게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드디어 조조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런가. 저 중앙의 군은 우리를 막을 셈이군.”
“우리를?”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후돈에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의 대장기가 중앙에 들이닥친 군에는 없었지. 그렇다면 좌익으로 향한 군을 여포가 이끌고 있다는 것인데, 왜 구태여 대장이 소수의 군을 이끌어야 할까.”
“음……, 그야 여포가 강하니까?”
“정답이다.”
조조는 그리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후돈에게 있어서 가끔 조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것이, 물어봐 놓고서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연 설명조차 없었다.
“여포가 강한데 왜 군을 나눠. 그냥 강한 군으로 한 번에 돌격하면 끝인 거 아냐?”
그가 생각하기엔 그게 옳았다. 천하무쌍의 무장이 수천의 기마를 이끌고 달려드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광경인지는 이미 저번 1차 접전에서 두 눈으로 목도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그만이 아닌가.
적어도 하후돈은 그리 생각하며 조조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그 의견에는 타당함이 있다면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허나 중앙의 군이 버틴다면 오히려 좌익과 우익이 움직여 포위당할 우려가 있지. 여포는 짐승 같은 여자다. 그렇기에 오히려 본능적으로 사냥감을 쉬이 사냥하는 법을 알고 있다.”
과거 조조가 아직 동탁의 밑에서 낙양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때 그녀는 여포와 종종 만나며 그것이 싸우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중앙을 향한 군은 중앙을 공략함과 동시에 우리 우익의 군을 묶어두기 위한 방패다. 주공은 여포가 이끄는 기마대. 정면에서 싸우는 제 아군을 모루 삼아 좌익과 중앙군을 혼자 힘으로 단번에 쪼갤 생각인가.”
참 얄밉지만 싸울 줄 아는 여자였다.
그 전술은 오롯이 자신의 무를 믿고 있어야지만 실행 가능한 전술이었다. 소수의 주공이 제역할을 못 한다면 그저 각개격파 당하기 십상인 전술.
그렇지만 실행할 수만 있다면 막을 방법도 없다.
아마 자칭이건 타칭이건 천하무쌍이라고 불리는 여포이기에야말로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전술. 여포라는 여자는 정말 싸우는 것 하나에는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조조는 그리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럴 때 자신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은? 패배하지 않는 수단은, 이기기 위한 최선은.
이윽고 그녀가 눈을 떴다.
“하후돈. 병졸 사천을 이끌고 바로 중앙으로 향하라.”
조조의 말에 하후돈이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사뭇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싸우러 나가는 것은 상관이 없었지만, 구태여 군을 나누는 이유가 뭘까.
“문제는 없지만. 맹덕, 넌 어떻게 할 생각이냐.”
하후돈의 질문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길.
“본인은 남은 천의 군사를 이끌고 아군의 뒤를 돌아 바로 좌익의 구조를 행할 생각이다.”
그것이 최선이라는 그녀를 하후돈은 말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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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3편 이상 올려서 확실하게 마무리 짓겠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건강 유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