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38화 (38/343)

3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천하무쌍 적토마에 오른 여포가 한 번 시선을 돌리며 그 앞에 모인 수십 만의 대군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많기도 했다. 끝자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마득한 숫자의 군대.

그 손에 쥔 방천화극을 한 번 움켜쥐었다.

제아무리 인중여포라 불리는 그녀라 할지라도 이만한 대군을 상대로 선 적은 없었다.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보이는 것은 인산인해이니 확실히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긴장감을 느꼈다.

이것이 머릿수가 가지는 힘.

“하핫.”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머릿수의 힘은 위대했다. 감히 항거할 의욕을 없앨 정도의 대군. 십만을 넘는 이십만에 가까운 대군은 결코 농담으로라도 가벼이 여길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이길 수 없나?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제아무리 수십만이면 어쩌랴.

어차피 저들은 내 뒤꽁무니도 따라오지 못할 것인데.

수십만은 확실히 커다란 벽이었다. 끊임없이 몰려들 인간의 숫자를 생각한다면 결코 우습게 여길 머릿수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한 번에 상대할 인간의 숫자는 정해져 있었다.

여포는 단지 그걸 여러 번 반복하면 그만이었다.

“장료! 당장 기마 몰고 튀어와라!!”

“어, 어!? 누님!?”

여포가 먼저 적토마를 몰고서는 선행하여 적진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 장료가 같이 가자며 아군에게 출진을 명했지만, 여포는 이미 연합군의 바로 코앞까지 도착했으니.

“나를! 이 여포를 죽일 인간은 누구냐!!”

연합군의 앞쪽 진영을 지키던 왕광의 군에 여포가 침입했다. 그녀가 몰던 적토마는 그들이 세운 목책을 너무나도 유유히 뛰어올랐고, 그녀는 순식간에 왕광의 진영에 진입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병사들이 혼비백산할 무렵, 그녀는 그저 적토마를 몰며 사방으로 화극을 휘두르는 하나의 병기가 되었으니.

마른하늘에 빗물이 내렸다.

그녀의 진로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비바람을 위한 제물이었고,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핏빛 빗물이 내렸다. 그 중심에 있는 여포를 어찌 인간이라 부르겠는가.

주위에 있는 병졸이 비명을 지르며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저건 뭐냐!? 뭐냔 말이다!!”

한편 왕광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제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비벼보아도 여포 혼자서 아군 진영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 꿈일 리도 만무했으니.

그것은 죽음이었다.

한번 방천화극이 휘둘릴 때마다 몇 명이나 되는 이들이 죽었다.

그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만으로 주변의 병사들이 혼비백산하여 모두 여포에게서 물러나려고만 하니, 이내 여포를 막아서는 병사들이 없어졌다.

“뭐냐? 이것들이 쫄아가지고. 안 덤비면 내가 간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던 여포가 다시 한번 적토마를 몰고 돌진하기 시작. 그녀가 열어놓은 길을 장료가 수천의 기마를 끌고 뒤따랐다.

“누니이이이임!! 천천히 좀 가라고오오오오!!”

그는 제 언월도를 휘두르며 저 멀리 인파에 둘러싸인 여포를 향해 외쳤다. 그런 장료를 힐끗 바라본 그녀가 주변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적토. 조금만 기다릴까?”

그러니 투레질을 하며 콧김을 내뿜는 적토마.

“그치? 우리는 멈추면 안 되는 거야.”

짐승의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는데, 그런데도 여포는 적토마의 투레질을 보고는 또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하니.

“시바아아알! 다 꺼져!! 누니이이임!! 같이 가!!”

여포의 뒤를 쫓는 장료와 그의 기마대가 눈에 불을 켜고 여포의 뒤를 쫓으려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그녀를 막아서지 못하니 그들도 있는 힘껏 적을 쳐낼 수밖에.

그렇게 여포와 장료가 이끄는 기마대는 한 차례 연합군을 휩쓸었다. 천하무쌍 여포와 맹장 장료가 그렇게 한참을 휘젓고서야 겨우 사수관으로 퇴각했으니.

그 뒤에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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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에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만큼 그걸 절실하게 떠올린 적이 없었다. 저기 다 짓밟힌 꼬락서니를 봐라. 수천의 기마를 이끄는 여포라니, 당장 여포 하나만 해도 괴물인데.

“대장. 왔수다.”

이번 여포의 공격이 물러간 이후 주변을 둘러보라고 보냈던 방삼이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조금 침울한 목소리였기에 얼추 예상은 가지만.

“그래, 다른 쪽 애들은 뭐라고 하더냐?”

“난리도 아니지.”

방삼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상까지 찌푸리며 그리 말하니 살짝 걱정도 됐다. 그만큼 여포의 인상과 그녀가 이끄는 기마대의 위용은 굉장했으니까.

“벌써 겁에 질린 놈들이 태반이요. 일단 둘러본 곳이 왕광이랑 공융, 그리고 또. 뭐 아무튼 서너 곳을 둘러보았는데, 저걸 어떻게 이기냐고 벌벌 떠는 놈들도 있더이다.”

“하, 수고했다.”

그리 말하며 방삼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이런 상황에 타군 진영까지 가서 분위기를 살피기가 썩 달가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고맙기도 했다. 좋은 소식이었으면 더 고마웠겠지만.

“오라버니, 어쩔 수 없잖아요.”

조운도 그리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뭐, 말도 안 되네요. 차라리 아까 아군 장수를 베던 게 그나마 조금 약해 보였을 정도예요.”

알지. 나도 봤으니까.

그건 죽음이었다. 과거 단 한 번 그 무용을 눈에 담을 기회가 있었는데, 여포는 그동안 훨씬 강해져 있었다. 당장 그 빨간 머리가 제 적토마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피바람이 이는데.

그건 전장의 사신과도 같았다.

인간은 모두 생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 그 죽음은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기에 누구도 그것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여포는 그 죽음이었다.

“운아. 너라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

“…열 번 정도는 어떻게든. 그 뒤로는 잘 모르겠어요.”

조운은 평소의 저답지 않게 표정을 어둡게 물들이며 침울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그걸 어찌 탓할까. 오히려 저걸 상대로 그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게 더 대단하다.

처음 운이를 봤을 땐 얘도 충분히 강하다 싶었는데, 관우나 여포 같은 맹장들을 보니 세상은 역시 넓다는 걸 실감했다.

“대장. 이거 이러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니요?”

“큰일은 이미 났지. 이미 나버렸어.”

십만을 넘어 거의 이십만에 다다르는 대군이었다. 이 연합군이 비록 통솔체계가 완벽하게 잡히지 않았다고는 하더라도 그 숫적 우세가 어디로 가진 않는다.

무려 이십만에 다다르는 대군이었다. 여포는 그만한 대군이 버티고 있는 곳을 고작 몇천의 기병대로 휩쓴 셈이었다.

아예 전열에 선 군영은 다시 설 수도 없게 박살을 내고서도 별다른 큰 피해도 없이 유유히 자리에서 벗어난 건데 그게 큰일이 아니고 뭐가 큰일일까.

“연합군 내에서 여포라는 존재가 각인되어버렸다. 저걸 만나면 살 수 없다는 공포의 상징으로, 저건 인간이 아니라고 각인됐단 말이다.”

강인한 무장은 그것만으로 전술이 될 수 있다고 아가씨가 그랬었다. 그녀는 오원군에 있을 당시 내게 그것이 되라 일렀으니 아직도 기억하고 있던 말이었다.

분명 아가씨는 내게 그랬었던가.

“장수 하나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지만, 전쟁의 흐름까지는 뒤바꿀 수는 있다. 하, 이제야 무슨 말인지 절절히 실감이 가네.”

덧붙여, 그 당시 아가씨가 내게 얼마나 무리한 것을 주문했는지도 새삼 실감이 갔다. 그 인근의 공포로 군림하라고?

공포로 군림하는 건 저런 걸 말하는 거다.

“전초전은 완전히 패배네요. 고작 수천의 기마에 연합군이 그대로 패배했어요. 오라버니, 우린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

운이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아군은 아직 후방에서 뒤를 받치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직접 여포와 맞상대를 할 일은 없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면 누가 감히 연합군의 전열을 맡으려 들까.

나라도 손사래를 치고 거절하겠다.

저걸 보고도 전열에 서겠다는 제후가 있다면 진심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야 할 수준인데.

말이 안 나온다. 알게 모르게 우리도 여포의 무용에 기가 질렸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걸 이긴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최소한 저걸 막을 수라도 있겠느냐 묻는다면.

“…하, 저건 진짜 답이 없네.”

너무하잖아.

무엇보다 가장 너무한 것은 이십만에 육박하는 거대한 군체에 단기로 달려드는 여포의 배짱과 그 무예였다. 그런 여자가 이끌고 있으니 어떤 병사가 죽음이 두렵다고 달리는 걸 멈출까.

그녀가 이끄는 기마대는 강했다. 여포가 강한 만큼, 여포가 앞으로도 천하무쌍으로 있는 한, 그들은 어디까지고 앞으로 나아가겠지.

아마 밟히는 건 연합군이 될 거고.

“오라버니, 너무 걱정은 마세요. 아마 연합군 수뇌부에서도 대처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인데, 조만간 뭐라도 대책을 내놓겠죠.”

운아. 하나도 안심이 안 된다.

“높으신 분들이야 아랫것들 갈아넣는 것 말고 뭘 더 알겠냐. 기껏해야 인해전술로 상대 기마대를 묶는다는 것밖에 더 생각하겠어?”

“그건…, 그렇지만요. 그래도요….”

운이가 몇 마디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제일 우스운 것이 무엇인가 하니, 솔직한 말로 나도 여포를 막는 방법으로는 인해전술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걸로도 여포를 잡을 수 있을까도 애매한 상황.

차라리 고강한 무장들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될 법도 했지만, 애당초 그런 장수가 아군에 있었더라면 진즉에 여포를 묶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당장 화웅에게도….

화웅.

“유비.”

순간 번뜩이면서 유비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왜 그녀의 이름을 잊고 있었지? 적어도 그녀는, 그녀의 두 남매 중 하나인 관우는 절정의 무를 뽐내며 화웅을 일도양단한 장수가 아닌가.

“관우라면 어쩌면. 그런데 그 연합군 제후들이 마궁수인 관우에게 그런 요직을 맡기려 들까. 아니, 가령 그렇다 하더라도.”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관우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적어도 조금 전 여포의 극에 목이 달아난 두 명보다야 낫겠지. 그녀라면 여포를 막아낼 방파제로는 제격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유비의 병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과연 유비가 제 소수의 병력을 앞세워 그 여포가 이끄는 기마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에 동의할까. 설사 관우가 그걸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기마대를 막을 저력이 유비에겐 없었다.

게다가 유비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북평태수 공손찬의 휘하이며 대리였다. 공손찬의 위명을 생각하면 그녀에게 대놓고 명령할 수도 없는 노릇.

“관우가 나서려 할까요?”

운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나서준다면 최고겠지만 안타깝게도 고당현령이 군을 끌고 왔다고 한들 몇이나 끌고 왔겠는가.

“모르겠다. 그런데 그거 말고는 정말로 다른 수단이 생각나질 않아.”

애당초 이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을 들이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유비가 거절한다고 하면 끝인 이야기. 무엇보다 제후들이 유비를 기용하지 않는다면 그걸로도 끝인 이야기였다.

고당현령이라는 미비한 직책을 가진 이에게 그런 중대사를 맡긴다는 걸 과연 원소가, 설사 맹주가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제후들이 용납할까.

“대장, 저기 아가씨가 오시는데?”

“슬슬 끝났나보네.”

저 멀리에서 아가씨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걸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조금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일까.

“어이, 아가씨!!”

한달음에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다가와서 보니 그녀의 안색이 정말로 안 좋았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봤던 소연 아가씨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낯빛이 어둡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슨 일이라도 있소?”

무언가 불안했다.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그런 의문과 의심을 최대한 지우면서 그녀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도 들긴 했지만, 그걸 최대한 무시하면서.

“…호세.”

“왜,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쇼.”

그러니 그녀가 입을 꾹 다문다.

“아 대체 뭔데 그래.”

사람 답답하게 하지 좀 말지. 그녀가 입을 다물면 답답해지는 것은 우리였다. 실제로 내 뒤에서 방삼과 조운도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도 뭔가 불안한 기색을 느끼긴 했겠지.

나도 지금 막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최악인 상황이기도 했으니까, 제발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었고.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드디어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유비가 전열에 서기로 했어.”

“유비라면, 관우가 서는 거 아니요? 뭐, 확실히 그거라면 타당하긴 하지. 유비가 어떻게 그걸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거라면 다행인 거 아니요?”

그녀가 이걸 쉽사리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러면 여포에게 대항해볼 수단이 생긴 것이니, 그렇게 낯빛을 어둡게 할 일도 아니었는데.

그런데도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으니.

“……우리가, 유비의 좌익을 맡게 되었고.”

…아, 그렇지. 역시 그렇지.

뭔가 아가씨의 낯빛부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은 했어. 괜찮아. 아예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다. 혹시나 우리를 전열에 세우게 될 상황이 생기리라는 것도 예상은 했었으니까.

괜찮아.

“하아…….”

세상 참 쉽질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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