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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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빌어먹을 역적놈들을!! 봉선, 봉선은 어디있느냐!! 내 당장 군을 이끌고 직접 저 버러지들을 모조리 도륙 낼 것이다!!”
당연히 동탁은 길길이 날뛰었다. 화웅이라면 서영과 함께 동탁의 쌍두마차라 불리던 장수. 그리 쉬이 죽을 남자가 아니었고, 그리 쉬이 죽어서도 안 되는 장수였다.
“장인어른, 조금 진정하시지요. 지금 낙양 인근에 백파적이라는 것들도 날뛰고 있는 판국이라서 너무 쉬이 군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요.”
“이유! 그러면 저 치들이 날뛰는 걸 보고 있으라는 소리냐!? 화웅까지 죽었는데! 사수관까지 함락당하면 바로 코앞이 낙양이란 말이다, 이놈아!!”
“그건 알고 있지만요.”
그리 말하며 이유는 제 머리를 긁적였다.
화웅의 죽음은 분명 이유에게도 예상외의 사고였다. 그는 그 강맹한 무용으로 유명하나 전세를 읽고 나설 때와 멈출 때를 아는 남자였다. 이유의 계산으로는 쉬이 죽어선 안 되는 남자였는데.
“지금 움직이면 백파적이 움직입니다. 아직 저희는 그 도적놈들을 일소하지도 못했습니다요.”
“쯧, 그 뭐랬지? 곽태였던가?”
동탁의 말에 이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건적의 잔재들이 백파적의 이름을 걸고 사예주와 병주 인근을 습격하며 호시탐탐 낙양 인근까지 노리고 있었다. 한 번 토벌을 명했지만, 오히려 패배했던 만큼 이들에 대한 접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일단 적당한 관직 하나라도 던져주면 되는 거 아니더냐? 일단 저 무도한 역적놈들 먼저 물리친 뒤에 처리해도 안 늦지 않느냐.”
“흠. 미봉책으론 나쁘지 않을 수 있겠사오나, 혹여나의 사태도 있으니까 말입니다요.”
이유는 그리 말하며 제 수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동탁은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웃을 뿐. 그가 아는 이유는 항상 제 수염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기묘한 책략을 내놓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동탁이 제 가족으로 맞이하면서까지 섭외한 인물로는 가장 믿을만한 인물이었으니.
“흠, 흠. 흐으으음? 흠. 흠?”
단지 생각할 때마다 저 지랄 좀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동탁의 개인적인 바람이었으나, 유능하다면야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렸을까.
“아, 그렇네요. 이겁니다요.”
이유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동탁이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유에게 다가가니 그는 신나서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천도하시죠! 장안으로 가는 겁니다요!”
“…엉? 이건 뭔 개떡 같은 소리를….”
동탁이 다소 아연실색하여 말을 흐리니 이유가 고개를 쳐들고는 더 신나라 목소리를 높였다.
“장안으로 가면 됩니다! 어차피 여기 낙양놈들이 저희한테 계속 이를 갈고 있는 것도 빤히 보이고, 백파적에 역적 연합군에. 머리 아프시죠?”
“그, 그렇긴 하다 마는.”
그러니 이유가 입이 찢어져라 웃는다.
“그러니까 장안입니다! 거기는 어차피 저희 구역권이잖습니까요! 게다가 그 역적 연합군이나 백파적은 장안까지 밀고 올 여력은 없습니다요! 특히 연합군은 말이죠!!”
어째서인가는 묻지 않았다. 동탁은 첩보에 관련한 모든 것은 이유에게 전담했었기에 이유가 그렇다면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유의 말은 동탁이 생각하기에도 얼추 모양새가 맞는 부분이 있었으니.
“좋다! 천도를 준비하자. 일단 사수관으로 나와 봉선이 출전해서 시간을 벌 터이니, 너는 그동안 천도의 준비를 빡세게 준비해라. 알겠냐?”
“물론입죠, 장인어른!”
이유가 거수경례를 하며 답하는데 그 모습이 꼭 생쥐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느낀 동탁이 한 차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참. 어차피 버릴 거라면 말이다.”
“예입?”
이유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동탁이 그 모습에 씩 웃으며 그의 어깨에 올린 손에 꽉 힘을 주었다. 살짝 아플 정도로 힘을 주며 동탁이 말하길.
“어차피 버릴 거라면, 있는 건 다 챙겨서 가는 게 맞는 거 아니겠느냐?”
“하옵시면?”
“돈 있는 새끼들 다 죽여서 재산 회수하고, 어. 그렇네. 황릉이건 뭐건 돈 될 묫자리는 다 파내. 그리고서 적당히 낙양을 싸그리 박살 내면 저 역적놈들도 차마 우리를 쫓진 못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종묘사직의 역사. 그 상징인 황궁과 낙양을 너무나도 쉬이 부수고 약탈하자는 동탁의 말에 이유는 잠시 표정이 멍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한나라의 수도.
제아무리 세가 약해졌다고는 해도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 제국에서 가장 발전한 수도를 싹 다 약탈하고 불태우자는 말에 이유도 잠시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끼리끼리라는 것.
“그거 좋네요!! 아아아아주 좋습니다요! 당장 실행에 옮깁죠! 하는 김에 그 깐깐한 문무백관인지 하는 것들의 모가지도 몇 따놓겠습니다요!”
“그래. 넌 일 처리가 참 깔끔해서 좋다. 역시 우리 가족답다. 쯧, 그에 비해 봉선이라는 년은…….”
동탁이 그리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을 때였다.
“으으응? 나 불렀나, 아저씨?”
붉은 머리카락. 사납게 느껴질 정도로 뾰족한 이를 그대로 드러내며 웃는 여인. 그렇지만 눈은 웃음기 하나 없이 제 갈색 눈으로 뚫어져라 동탁을 노려보고 있으니.
그녀가 바로 여포 봉선.
이 시대 최고, 최강의 무장이라 이름 높은 여인. 천하무쌍이라는 단어를 주장하니 그 아무도 반론하지 못했다는 시대의 용장이자 맹장.
그런 그녀가 동탁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으니.
“여, 여장군님 오셨습니까요!!”
이유는 대뜸 고개부터 숙이며 바로 인사를 올렸다. 여포는 힐끔 그것을 바라봤으나,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동탁에게 시선을 맞추니.
“흥, 왔으면 제 애비에게 인사나 할 것이지. 아저씨가 뭐더냐?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꼬박꼬박 인사 박으라고 안 하더냐, 이 망아지 같은 것.”
그는 여포의 시선에도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으며 다시 상석으로 돌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에 이유는 살짝 당황한 듯 여포의 안색을 살피며 긴장하기 시작한다.
여포는 동탁의 행동에 고개를 치켜드니.
“흥, 아버지는 개뿔이. 자식 취급이나 하고 그런 말을 하시던가. 맨날 뭔 일 터지면 부르는 주제에. 응?”
이내 노려보던 표정을 풀고 웃는 낯으로 동탁을 대한다. 비록 말에는 가시가 잔뜩이었지만, 그런데도 여포는 웃으며 동탁을 대했다.
동탁이 그 모습에 마주 보며 웃으니.
“망나니 같은 계집이. 헛소리 할 시간 있으면 얼른 병장이나 준비해라. 화웅이 당했다더라. 네가 오랜만에 날뛸 전장을 마련해주마.”
“아니, 누굴 날뛰고 싶어 미친년으로 보시나.”
그러니 동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유가 보기엔 그것이 썩 비꼬는 표정으로 보여 안절부절못할 때.
“틀렸느냐, 딸년아?”
이에 여포가 웃음으로 화답한다.
“틀리지는 않았지. 개 같은 아저씨.”
“아비라 부르라 했거늘.”
동탁이 짐짓 진중한 태도로 말을 꺼냈지만, 여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병장인 방천화극만 쓱 챙겨서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다소 무례한 태도로 자리에서 떠나는 여포의 등을 바라보며 동탁이 혀를 끌끌 차니, 그제야 이유가 고개를 들고 동탁을 바라보았다.
“자, 장인어른!! 어찌하여 여포를 계속 홀대하시는 겁니까요! 저 여자는 저희가 반드시 포섭해야 하는 대상입니다요!!”
이유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여포는 이런 취급을 받아선 안 됐다. 당장 낙양에서 동탁에 대한 반감을 억제하는 요소 중 하나가 여포라는 강대한 무장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버티기 있기 때문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뿐이랴. 그녀가 이끌고 있는 병주 출신의 병사들은 여전히 동탁군에 한 자리를 차지하며 그 규모가 강대했다.
아무리 동탁이 황실근위대나 낙양의 방위군을 모조리 흡수해 세를 불렸다지만 여포가 역심을 품는다면 그것은 가장 큰 우려할 것이었다.
그러나 동탁은 이런 이유에게 고개를 젓는다.
“흥. 제깟 년이 뭘 어쩌겠다고 그러느냐. 이미 주인을 한 번 바꾼 년이, 게다가 그 정원도 아비라 불렀다지? 하여 나도 그년에게 딸이라는 자리를 주었으니, 제가 여기서 날 또 배신할 수 있겠더냐?”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동탁은 단호하게 말했다. 여포는 짐짓 제 무력만 믿고 날뛰는 망나니처럼도 보이지만 실은 제 평판에 꽤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던 동탁은 냉큼 그녀를 딸이라 부르며 여포를 가족으로 맞이했으니, 만일 여포가 동탁을 배신한다면 천하가 그녀를 비웃을 것이다.
이미 그녀는 한 번 배신한 전적이 있기에 더욱.
“크하하!! 사위는 언제나 걱정이 많아서 탈이야! 어차피 저런 년은 적당한 작위 몇 개 던져주면 그걸로 끝이거늘! 되었다. 아무튼 외정은 걱정하지 말고, 내부 단도리나 잘하고 있으란 말이다.”
“아, 아으…. 여포는 아니 되는데 말입니다요….”
이유는 그리 말하면서도 그 외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아직 여포가 배신하리라는 정황은 없었기에. 그렇기에 이유는 그저 눈을 감았다.
어차피 할 일은 많았다.
이유는 제 장인어른의 실력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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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그대로 궁을 나와 제가 있는 병주군의 병영으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 그녀는 제 가슴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기분에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짜증.
그녀는 제 감정에 솔직하게 답했다. 이건 짜증이었다. 동탁에 대한 짜증, 처지에 대한 짜증, 자기 자신에 대한 짜증.
“누님, 무슨 일입니까?”
저 멀리서 장료가 달려왔다. 희멀겋게 생긴 한족 놈이지만 제법 싸울 줄 알아 곁에 두었더니 슬슬 머리 꼭대기로 올라오려는 망할 놈. 그녀는 자연스레 혀를 찼다.
“꺼져. 별거 아니니까.”
“뭐가 별거 아니요? 동태위님께서 불러서 간 거 아니요? 왜. 그 배불뚝이 아재가 또 지랄하더이까?”
그래도 내 아버지라는 사람인데.
그녀는 그리 반박하려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알고 있었다. 동탁과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저 가족이라는 명분은 자신을 묶기 위한 동탁의 얄팍한 술수라는 것도.
정원과 마찬가지였다.
그도 자신을 딸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지만 언제든 내치려 하고 있었다. 그게 진저리치게 싫어서 동탁에게 넘어왔더니 동탁도 마찬가지인 인간이었다.
여포는 고개를 들어 장료를 바라봤다.
“야, 넌 날 왜 따라오냐?”
갑자기 주제에서 벗어난 뚱딴지스러운 질문에 장료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그야 세니까.”
“개새끼.”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럴 기분도 아닐뿐더러,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여포는 강했다. 그건 여포 본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걸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그녀의 무기였으니까.
그런데 돌아보니 그녀도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자신의 편이 없다.
지금 따라오는 병주의 군도 결국에는 자신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따르는 이들은 결국 그 무예를 동경하여 따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상사도 자신을 그저 인간병기로밖에 보지 않는데, 정작 부하들도 자신의 무예밖에 보질 않는다.
“난 대체 뭐냐? 응? 장료 이 개새끼야.”
장료는 난처하게 머리를 긁었다.
아까부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더니, 이제는 제가 누구냐고 묻는다. 장료가 보기에 여포는 겨울 추위에 단단히 미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답하지 않으면 또 건방지다고 두들겨 팰 것이 뻔한바. 장료는 최대한 웃는 낯으로 답하기를.
“누구긴. 천하무쌍, 최강의 무인 여포지.”
“……그래. 난 여포지. 천하무쌍, 여포.”
그녀는 자조하듯 웃으며 그리 말했다.
여포는 천하무쌍. 최강의 무장. 여포 봉선은 누구보다 강한 자. 그렇기에 여포였고, 그렇기에 봉선이다. 그 외의 것은 그녀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 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싸웠을 따름인데. 그저 하루를 살기 위해서, 남보다 강해지면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뿐인데.
그러면 언젠가는 자신을 인정하고 대우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간 여포는 사라지고 천하무쌍 여포만 남아버렸다. 그녀는 그게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진저리치게 소름이 돋았다.
“어릴 땐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한숨을 내쉬니 허연 입김이 나온다.
싸늘하고 차가운 날씨. 병주의 오원군. 이민족과 도적이 판치고 조정의 손길이 닿지 않던 그곳보다 춥진 않았지만, 어떤 의미로는 낙양이 그 오원군보다 더 추운 느낌도 들었다.
그녀는 그랬다.
어째서일까. 오원군에서는 제대로 된 인간 대우도 못 받았는데. 그런데 그때가 오히려 더 인간답게 살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추웠다. 그녀는 살면서 지금까지 따듯한 느낌을 느낀 적이 없으니, 어릴 적 그 차디찬 오원군의 칼바람에 뼛속까지 얼어붙은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사계절이 겨울처럼 느껴질 리가 없으니까. 여포가 느끼기에 세상은 언제나 겨울이었으니.
여포 봉선.
그녀의 겨울은 아직 지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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