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사수관 공방 사수관을 마주한 손견군의 진영은 조용했다.
반복된 전투에서 승리만을 거뒀다. 연전연승. 사수관 바깥에 진을 치고 있던 호진의 군을 패퇴시키고 그의 목을 쳤고, 뒤이어 출진한 화웅의 군마저 격퇴.
그 뒤에도 차례차례 사수관 바깥에 포진했던 동탁군을 모두 물리쳤으니, 동탁군은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여 사수관으로 도망쳤다.
대승이었다. 완벽한 대승. 이만한 대승도 없었고, 이제 바깥에서 방해하는 동탁군도 없으니 사수관을 공략하는 일만 남았다. 그랬었던 것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손견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치중은 아직이더냐.”
“예, 장군.”
그의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감히 적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든 대승이었다. 동탁군을 차례차례 격파하였고, 그 역적의 군대는 이제 사수관에 박혀 감히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손견의 군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식량이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다만 식량이 없어서야 군도 움직일 수 없었다. 굶은 군대가 공성전을 치를 수 있을 리도 만무.
불패의 기세로 동탁군을 무찌르던 손견군은 현실에 발목이 잡혀 움직임을 멈췄다.
“원술 이 개새끼가! 부를 때는 뭐든 해줄 것 같더니!!”
손견의 부장이던 정보가 가슴을 치며 외쳤다. 평소 성격이 털털하여 쉬이 분개하던 일이 없는 그마저도 제 주군을 앞에 두고서 욕설을 내뱉었다. 다른 이들도 손견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 뿐. 마음은 같았다.
그를 지켜보던 손견도 차마 그를 제지할 수 없었다. 마음은 그도 같아서, 이런 상황에서 치중이 늦어진다는 것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뜨릴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군의 장군이 그리 쉬이 분노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손견은 한숨만을 내쉬었다.
“치중이 늦는다면, 지원군은 아직이라더냐?”
“그, 그것이. 아직 부대의 편성이 아직이라는 답변밖에.”
사수관 바깥에서 진을 꾸리던 동탁의 군세는 모두 무찔렀다. 이제부터는 진짜 공성전을 시작해야 할 판국인데, 그러기엔 손견군의 숫자는 다소 부족했다.
“향후 사수관 자체를 공략하리라고 분명히 일렀음에도 이런 대응을 보인다라.”
손견은 제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 픽 웃었다.
치중도 안 보내, 그렇다고 지원군이 오지도 않는다. 싸우라고 보냈기에 죽을힘을 다해 역적의 군을 물리쳤더니 이렇게 고립무원에 내던져졌다.
“장군. 지금이라도 군을 물리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있다가는 전부 떼죽음입니다.”
손견은 제 부장 정보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도 알지 않는가. 전쟁은 기세다. 한 번 저들을 눌렀을 때 확실히 잡지 않으면 저들에게 정비할 기회를 주는 꼴이다.”
“하오나.”
“역적 동탁을 침에 있어 어찌 제 몸 하나 건사하려 들겠는가. 분명 피치 못할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전령을 다시 보내보거라.”
당분간은 버틸 수 있었다. 극히 일부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 군량을 어떻게든 나누고 나눈다면야 며칠은 버틸 수 있었다.
며칠까지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니면 좋겠군.”
손견은 그리 말하며 책상을 제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전쟁은 손견 본인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천하의 명운을 건, 한이라는 나라의 종묘사직을 건 전투.
이런 전투가 몇 협잡배의 손에 놀아난다면.
그는 더 이상 기대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
일주일이 지났다.
그간 그렇게 기다리며 전령을 보냈지만, 연합군 본진에선 그 어떠한 지원도 오지 않았다. 치중도, 지원군도.
사실상 연합군이 손견군을 저버린 모양새.
“이런 시발!! 개 같은 새끼들!!”
정보는 이미 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군량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동안 손견의 군은 군량 배급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심심찮게 탈영자까지 나기 시작하는 판국. 손견은 미간을 찌푸리며 영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술. 결국에는 이렇게 나오는가.”
속이 뒤틀린다. 당장에라도 원술이 앞에 있으면 때려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손견은 이 군의 장군이자 이들의 대장. 그는 결코 경거망동을 할 수 없었다.
“퇴각하자. 밤사이에 최대한 추슬러라.”
“당연히 그래야죠.”
정보는 손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은 싸울 수 없다는 게 이미 모든 장교의 공통된 이해였다.
제아무리 용맹한 병사도 먹지 못하면 싸울 수 없다.
이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니, 최대한 아군의 목숨이라도 추스르는 것이 맞았다. 결국 손견은 사수관 공략을 코앞에 두고 퇴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후라는 것들이 제 잇속을 챙기겠다고 군을 움직이지 않으니, 한나라를 재건할 생각은 아무도 없었나 보군.”
손견은 그것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몇백 년의 역사를 지닌 한나라가, 그것에 충성한다는 고관의 제후들은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했다.
어쩌면 한나라는 이미 망조였던 걸지도 모르지.
그는 그리 생각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꽉 깨문 어금니가 아려왔다. 문득 그가 손을 내려다보니 손바닥에 핏방울이 몽글몽글 솟아나고 있었다.
“별도리가 없군.”
어쩔 방법이 없다. 이 이상 버틸 방법도 없었다. 더는 싸워야 할 도리를 느낄 수가 없었다.
한평생을 살면서 이리도 좌절감을 느낀 적이 있던가.
손견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랬던 적이 없었다. 미숙했던 약관의 시절에도, 설령 저보다 강한 이에게 얻어맞았던 어린 나이에도 이만한 좌절감, 이만한 무력함은 느낄 수 없었다.
“소란을 떨지 마라. 아군의 퇴각이 들통이라도 나면 저 동탁의 개들이 언제 물고 늘어질지 모를 일. 최대한 서두르되, 결코 들켜서는 안 된다.”
이제 남은 건 패전처리뿐이었다.
손견의 군은 용맹하고 강하니, 이번 전투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경험하지 않았다. 분명 그가 이끄는 군은 사수관을 단숨에 함락시킬 기세로 적을 몰아쳤다.
그럼에도 졌다.
한 번도 전투에서 진 적이 없는데도, 그런데도 패전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게 손견은 너무나도 분했다. 평생 흘려본 적이 없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그만큼 분했다.
“그러면 원술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보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제 주군을 향해 말했다. 지금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원술에 대한 분노가 거셌다.
“정보. 지금은 군의 일이 먼저다.”
“조무!! 그렇지만 원술은 우리를 배신했다! 이건 중대사가 아닌가!? 원술에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면 손견님을 장차 누가 대우하겠나!!”
살짝 호리호리해 보이는 여장수 조무와 덩치가 산만 한 정보가 서로 의견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조무는 그저 묵묵히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단조롭게 말하고, 이에 정보가 분개한다.
둘 다 손견을 따라 오랫동안 전선을 돌던 이들.
손견은 누구의 손도 들 수가 없었다. 확실히 지금은 군의 일이 급선무이나, 원술에게 어떻게 나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중요하긴 마찬가지.
다들 옳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 모두는 손견의 의사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정보. 너무 흥분했다. 머리를 가라앉혀라. 손견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거늘, 그건 너의 경거망동이다.”
“승리가 눈앞이었다! 코앞에서 역적을 잡을 기회를 놓친 거야! 뭐가 한나라냐, 뭐가 제후냐!! 손견님! 명만 하신다면 원술을 치는 것도….”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손견이 손을 들었다.
“그만. 정보, 그건 너무 앞서갔다.”
아무리 머리에 피가 돌았다고 하더라도 원술을 치는 것만은 아니 되었다. 어떻게 되었건 결과적으로 원술에게 의탁한 것은 손견 본인이었다.
사세삼공 원가의 후계자라는 이름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소가 있다고 한들 그는 얼자. 노비에게서 나온 그는 생각보다 호족이나 명가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원술의 세력 역시 손견이 도모하기엔 다소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미 형주자사를 베어 한 번 실수를 범했다는 것. 여기서 원술까지 친다고 한들 누가 손견의 진정성을 알아주고 명예를 존중할까.
“조무의 말이 옳다. 지금은 군을 물리는 것이 급선무. 원술에게 어찌 항의할까에 대한 부분은 차차 논의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주군.”
정보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숙이니 드디어 장내가 진정되었다. 이를 조마조마하게 보고 있던 다른 제장들도 그제야 한숨을 내쉬니.
“뭣들 하는가? 다들 얼른 채비를 갖추지 않고.”
손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사불란하게 손견 휘하 제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빠르게 퇴각할 준비를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손견 또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퇴각할 방향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 장구우우운!!”
제 휘하 장수인 한당이 막사를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서두르는 모습에서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손견이 몸을 돌려 한당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더냐!?”
“저, 적습입니다!! 야습이요!! 동탁의 개들이 지금 미친 듯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빠득.
이가 갈렸다. 손견은 그 분노에 몸을 벌벌 떨면서도 최대한 생각했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방책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숫자는 얼마나 되는 것 같던가?”
“야습이다 보니, 그렇지만 그 소리나 규모로 보아 아군보다 많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선 아무리 손견이라도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작정을 하고 이번 기회에 손견을 일소하고자 나온 동탁군.
그에 비해 손견군은 식량 배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가장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상황.
“지금 황개가 맞서고는 있으나 아무래도 역부족일 것 같습니다. 차라리 퇴각을 명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한당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미 야습을 허용했다는 것부터, 아니. 애당초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지조차 못한 시점에서 전쟁은 이미 기울대로 기운 상황이었다.
“…전군, 퇴각을 명해라.”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손견은 사수관에서 패배를 맞이했다. 눈앞에 승리를 두고, 사수관의 함락을 목전에 두고 결국 강동의 호랑이는 좌절하고 말았다.
힘은 있었다. 동탁의 군을 무찌를 힘도, 적장의 목을 칠 힘도. 손견의 군은 분명 정예였고 그 자신도 상당한 맹장이었다.
하지만 그 힘도 결국에는 정치적 이해 때문에 무너졌다.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었으니.
“손겨어어어언!! 손견 이놈아!! 그간 신바람이 났던데, 어디 나와도 한 번 검을 겨뤄 보아라!!”
물밀 듯이 들이닥치는 동탁군은 이미 그 기마로 손견의 진영을 이분할 기세로 밀려 들어왔다. 이미 대열은 역할을 상실했고 그 정예였던 손견군이 무참히 죽어 나가는 상황.
“이 이몽님께서 오늘 호랑이의 목을 거둬주마!”
“하, 이젠 듣도보도 못한 놈까지 내 목을 거두겠다고 설치는구나. 좋다, 오늘 내가 저놈의 목을 걸어 아군의 위령 패에 올리마.”
손견이 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려 할 때였다.
“장군. 몸을 빼셔야 합니다.”
조무는 손견의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미 전황은 뒤집혔고 아군은 동탁의 기병대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말려든다면 손견이라도 죽는다.
“조무!! 내가 저런 잡놈에게 죽을 것 같으냐!!”
“여봐라! 뭣들 하는가! 당장 손장군님을 뫼셔라!!”
그녀는 끝내 손견의 말을 무시하고 아래 병사들에게 명을 내리니, 손견이 발버둥을 치면서도 조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조무!! 에잇, 이거 놓아라! 조무우우우우!!”
이미 조무는 제 등에 손가의 대장기를 메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손견이 모를 리가 없었다. 손견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함께 전선을 돌며 등을 맡긴 전우였다.
그녀는 비록 호리호리한 체구를 지녔지만, 그 누구보다 용맹하게 손견의 뒤를 바친 용사였다. 손견의 사석에서는 정보와 한당, 황개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는 막역지우기도 하였다.
병졸이 몇이나 달려듦에도 손견은 발버둥을 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조무의 시선은 단 한 번을 손견에게 돌리지 않으니.
“손가에 명운을.”
그녀는 작게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어차피 조무는 적이 들이닥쳤다 할 때부터 곱게 살아갈 생각을 버렸다. 희생 없이 대업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예전에 버렸다.
그는 위에 서야 할 남자였다.
조무에게 있어 손견은 가장 위대하고 용맹한 장군이었으니. 장차 그가 가는 길을 밝히겠노라고 천지신명께 맹세했다.
오늘이 바로 그 맹세가 지켜지는 날이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