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8화 (28/343)

2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반동탁 연합 모든 제후가 떠났다. 남은 건 아가씨와 나, 원소와 그 뒤를 따르는 작은 체구의 여자. 몇 번인가 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대화를 나누진 않았던 여자다.

아마 이름은 곽도라고 했던가. 원소가 낙양에 있을 적부터 챙기던 자신의 모사라고 소개하는 걸 듣기 했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원공.”

“일단 앉지. 대화란 무릇 서두를수록 설익는 법. 과실과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소연 장군은 달리 생각하는가?”

정말 제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다.

자고로 이런 상사가 제일 골 때린 부류였다. 제 하고픈 대로 아랫것들을 다루면서도 괜히 체면은 중시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얘기가 길어지고 아랫것들은 피곤해지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아랫것이 우리였네? 아주 개새끼였다.

“원공께서 자리를 권하시는데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아가씨가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원소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나야, 뭐. 그냥 호위역할에 불과하니 그 옆에 서 있을 뿐이지.

솔직히 이게 영 만만한 일도 아닌 것이, 서 있다 보면 다리 아프다.

이건 어떻게 된 것이 단련을 안 했던 어릴 적에도 아프더니 지금도 아프다. 다를 게 없다. 인간은 역시 오래 서 있으라고 만들어진 생물이 아닌 것 같았다.

“소연 장군께선 내 어찌 불러 세웠는지 짐작이 가는가?”

원소가 능글맞은 얼굴로 소연 아가씨를 바라본다.

분명 그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어째서 난 저게 단순한 웃음으로 보이지 않는 걸까. 선입견이 생긴 것이라고 하기엔 소연 아가씨의 표정도 살짝 딱딱하게 굳었다.

왜 불렀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미친놈아. 점쟁이가 아니고야 대뜸 불렀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것 같냐? 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아마 손견 장군의 일이시겠지요. 혹여 저희가 그 뒤를 받치길 원하시는 건가요?”

“…호오?”

응. 소연 아씨는 점쟁이가 맞았다.

원소도 확실히 여기서는 놀란 듯, 그 능글맞은 얼굴에 살짝이나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도 이내 지워지고 웃는 낯짝으로 돌아간다.

“좋군. 역시 자네와는 얘기가 빨라. 조금 더 얘기를 해보려 했으나, 이렇게 요점을 파악하고 있는데 말을 돌리는 건 우아하지 않지.”

그러더니 제 손에 진 찻잔을 살짝 들이킨다.

“혹여 원공께서는 손견의 군대에 무슨 일이 생기리라 예상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무슨 일이라. 흠, 그렇군. 생길 수도 있겠지.”

원소가 처음으로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런데 어투가 조금 이상했다. 아가씨와 조조의 말대로라면 원소는 분명 손견의 분전을 응원함이 옳지 않은가?

“생길 수 있다 하심은.”

“이보게 소연 장군.”

하니 원소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 머리에 쓴 두건마저 푸니, 흩날리는 금발을 정리조차 하지 않아 그 긴 금발이 원소의 얼굴마저 가린다.

“워, 원공!? 이게 무슨…!!”

뒤에 서 있던 곽도가 당황하여 원소에게 다가가려 하니 원소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접근을 막는다. 그동안에도 시선은 오롯이 소연 아가씨에게서 떠나질 않는다.

무슨 속셈이냐, 원소.

저도 모르게 손이 허리춤에 매인 검으로 뻗어졌다.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하다 싶어, 정말 생각하기도 전에 검을 뽑을 뻔했다.

진정하자. 원소는 지금 당장은 우리를 내치지 않는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아는가?”

원소에 질문에 소연은 고개를 숙였다.

여기선 차마 그에게 대들면 안 될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 황금이 고고하던 제 껍질을 던지고 그 기세를 드러낸 것이니.

며칠 굶은 범을 만난다면 과연 이런 기색일까.

“6년상? 우습지. 그건 단지 연극이었어. 겨울만 되면 내 손발이 찢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것 또한 그들에겐 우습지 않은 일이었지.”

그는 제 양손을 쫙 펼치며 우리에게 보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찾았고, 또 감시했는지. 그들은 단지 영웅을 원했을 따름이야. 하여 내가 그걸 맞춰주니 그제야 나를 영웅으로 추대했지. 모든 건 그걸 위한 연극이었다.”

원소는 이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가장 큰 행보를 연극이었노라 말했다. 물론 그 근간에는 우리가 이걸 퍼뜨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겠지.

만약 퍼뜨린다고 해도 아무 소용도 없으리라는 확신도.

아가씨는 원소는 제 행보 하나하나가 일종의 연극이자 의미를 담고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그 말에 과장이나 부족함은 없었다.

그는 확실히 연기자였다. 시정에 널린 이들과도 별 차이는 없을 진저, 단지 차이라고 하면 연극을 하는 위치겠지.

원소는 천하를 배경으로 연기를 펼쳤다.

“원가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얼자? 우스운 소리. 내가 장차 천하를 쥔다면, 그 누가 감히 내 출신에 대해 언급하겠는가? 원술? 그 저능한 놈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니 그런가!?”

그는 점점 격앙되어, 마지막에 이르러선 거의 다그치다시피 하며 아가씨의 대답을 촉구했다. 이 상황이라면 어떤 이라도 감정의 동요가 생길 것인데.

아가씨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 격앙을 받아들였다.

“원공께선 제게 뭘 바라십니까.”

“훗, 그래. 그래야지. 암!! 미천한 출신이 위로 올라서려면 그 정도의 각오는 보여야지! 제 감정을 감추는 것은 옳다! 감정에 휘둘리는 것 따위, 천박하기 그지없으니 위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제 감정을 숨겨라!”

그는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하며 이 자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또한 하나의 연극이라고 가정한다면, 이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원소는 분명 제 감정을 감추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원소의 행동은 정 반대. 그렇다면, 그래. 지금 원소는 아가씨에게 이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제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강자가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원소는 이내 자신의 머리를 살짝 정리하여 두건을 뒤집어쓰고는 자리에 앉았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곽도도 이내 자리에 따라 앉으니 다시금 정적만이 회의장에 맴돌았다.

“좋다. 이 이상 말을 늘어놓는 것도 품위가 없는 일이지. 소연 장군. 이 일은 내 잠시 취기가 서려 실수를 한 것이니 잊어주길 바라오.”

“저는 아직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데 어찌 잊겠습니까.”

“아주 좋군.”

원소가 고개를 끄덕이니 그제야 아가씨는 어깨에 힘을 풀었다.

“하여 말을 잇지. 원술은 분명 손견을 견제할 것이야. 그 망나니는 제 부하가 저를 밀어내고 주목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분명 무슨 사달이 나겠지.”

그는 탁자에 펼쳐진 지도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는 먼저 사수관을 손가락으로 짚더니, 그걸 그대로 훑으며 아군이 주둔한 하내, 그 인근으로 이어지는 협곡을 마지막으로 짚었다.

“그대들은 이곳에서 손견군의 뒤를 받쳐주었으면 좋겠군.”

원소가 마지막으로 짚은 곳은 연합군이 위치한 곳에서 가장 빠르게 사수관으로 향하는 협소한 가도였다.

“손견군의 치중은 그리 넉넉하지 않지. 군량을 차지한 원술이 그 보급에 차질이라도 빚는다면 반드시 손견 태수는 고전을 면치 못할 터, 그러니 그대들이 그 뒤를 봐주겠나?”

충분히 타당한 의견이었다.

저곳이라면 만일 일을 그르친 손견이 도망쳐 오더라도 충분히 받아들이고 그 추격을 물리칠 수 있는 곳. 가도가 협소하니 적도 쉬이 추격하지는 못할 장소였다.

그렇지만.

“…혹여나 원술이 제대로 보급을 한다면.”

“호세.”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그냥 무의식중에 나온 말이었지만 회의장 내부가 그 이상으로 조용했기에 누구에게나 또렷하게 들렸으리라.

당연히 원소도 이걸 들었겠지.

그는 분명 내 말을 들었다. 그러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코웃음을 치니.

“원술은 반드시 보급에 차질을 빚을 걸세.”

너무 단호한 게,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원술, 그는 과연 보급을 안 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못 할 것인가.

혹시 말인데.

정말로 혹시나 해서, 정말 황망한 생각이긴 한데. 맹주라는 작자가 혹시나 선봉의 패배를 바라고 보급을 제 선에서 차단하려 움직인다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겠지?

그러나 원소의 저 표정을 보니 이건 단지 내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원소는 여차하면 진심으로 그럴 생각처럼도 보였으니.

아, 시발. 그냥 산에 있을걸.

“명심하겠습니다.”

아가씨는 원소의 단답에도 그저 고개를 숙일 뿐.

분명 아가씨도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아무렴, 나보다야 훨씬 똑똑한 인사가 원소의 의중 하나 헤아리지 못했을까.

그런데도 아가씨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손견군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적당한, 음. 그렇군. 적당한 선에서 지원을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무슨 말인지는 잘 헤아릴 것이라 믿네.”

적당함을 유달리 강조하더니 이내 원소도 자리에서 일어나겠다고 하며 곽도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곽도는 잠깐 허둥대던 것을 제외하면 그저 묵묵하게 그의 뒤를 지킬 뿐.

그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지나쳤다.

그렇게 그들이 막사에서 나가기 직전. 원소가 한 번 우리를, 소연 아가씨를 돌아보며 씩 웃으며 말하기를.

“소연 장군. 혹시 사수관의 다른 이름이 호뢰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원소는 그저 질문을 던질 뿐. 아가씨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막사의 천막을 걷고 먼저 나가버렸다. 그 뒤를 따르던 곽도는 우리를 돌아보며 말한다.

“원공의 말을 허투루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그들이 자리에서 벗어났다. 마지막까지 원소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떠나갔고, 막사는 드디어 정적을 찾았다.

아가씨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축 늘어졌다.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미안하오.”

나도 설마 거기서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솔직하게 사과하는 게 맞았다. 만약 원소가 대뜸 말을 꺼낸 내게 불쾌함을 느꼈더라면 판이 조금 꼬일 뻔했다.

아무튼 뭐, 잘 지나갔으면 그만 아닌가.

“거, 그러면 우리는 손견 장군의 뒤를 봐주면 되는 거요? 그거라면 쉽지. 난 솔직히 이런 정치판은 질색이야.”

“…거기도 매한가지야.”

아가씨는 그리 말하면서 내 팔을 이끌고는 지도 앞으로 데려갔다. 영문도 모르고 거기까지 끌려가니 아가씨는 사수관의 위치와 우리가 주둔할 거점을 짚었다.

“거리가 어때?”

“뭐, 군을 이끌고는 하루 정도는 걸리겠구만.”

아무래도 연합군의 본영은 동탁의 갑작스러운 기습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하내 깊숙이에 자리를 잡았다.

사수관과 연합군 본영과의 거리는 당연히 멀었다. 우리가 주둔하는 곳도 당장 어느 정도 가깝다고 할 뿐이고 우리도 손견의 본대와는 조금 떨어져서 배치하게 될 터.

그렇지만 하루라면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닐 것인데.

하루라면.

“아가씨. 설마하니 묻겠는데, 원소는 손견이 뭐 잘못되기를 원한다는 말이요?”

설마 그럴 일이 있겠나 싶긴 한데. 이 반응도 그렇고, 원소의 어정쩡한 대꾸도 그랬다. 게다가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구태여 뒤를 지킬 필요도 없었다.

손견과 함께 행동해도 문제가 없는 일인데.

“얼마 전에 겨우 알았어. 손견이 아무래도 형주자사를 건드린 모양이야. 그는 원가와도 연이 깊고 원소를 지지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하아, 이런 건 게임 스토리에도 없었다고.”

게임은 또 무슨 소린지. 하여간 이 아가씨는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한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요컨대 아가씨의 말을 빌리자면 손견이 원소계의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아닌가. 그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잉? 그럼 손견은? 원소는 손견이 죽길 바란다는 거요?”

그렇게 물으니 이건 또 고개를 가로젓는다.

“적당히라고 했잖아. 하아. 여기서 호뢰관을 언급해? 우습지. 호세야. 너는 호로관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니?”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애당초 나는 호뢰관이라는 지명도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하여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로관. 뜻을 풀자면 호랑이를 가두는 감옥.”

손견의 별명이 분명 강동의 호랑이였다.

아가씨는 진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채 주체하지 못한 그것이 아가씨의 기분을 대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소는 손견이 죽지는 안되, 결코 승전하는 걸 원하지 않아. 최대한 고생을 하여, 그 군세가 꺾였을 때나 도와주라고 말한 거야.”

“거참, 이젠 하다 하다 사람 목숨으로도 정치질을 하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군중에서의 정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이해도 못 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그렇지만 전쟁까지 정치적 이념에 휘말릴 이유는?

그곳에 선 병사들은? 그 목숨의 값은?

아가씨는 자조스레 웃었다.

“정치는 원래 사람 목숨을 가지고 하는 거야.”

반박할 말도 없었다. 있었지만, 그것을 아니라고 부정할 근거로는 부족했다. 그냥 울적한 기분이었다.

손견이라 했나.

그만한 용사도 결국 정치의 손길은 피해갈 수 없었다. 전쟁을 함에 있어 식량이 없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아무리 용맹한 집단이라고 해도 배고픔은 이길 수 없었다.

그건 인간인 이상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것이니.

그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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