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7화 (27/343)

2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반동탁 연합 이틀 뒤. 모든 제후들이 하내에 집결했다.

다소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연합군의 회의는 꽤 오랫동안 이어져, 그중에선 고성이 오가는 일도 종종 있었으나 결국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제북상 포신의 처우도 마찬가지.

군을 사사로이 움직여 군에 패배를 안긴 포신을 결국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처벌이나 제재도 없이, 그냥 그렇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분명 원소에게는 뼈아픈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그 누구도 이런 사태를, 포신 본인도 이렇게 대패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끝낼 수만은 없었다.

이번 사건은 명백하게 맹주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었고, 이런 일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할 수 없는 종이호랑이 맹주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었다.

물론 맹주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발해태수. 함부로 제북상을 건드릴 수도 없었을뿐더러, 건드리려 해도 다른 제후들의 견제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기야 했다.

결국에는 그에게 공으로 과를 씻으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원소의 입장이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원소의 그런 처신에 원술은 비웃으며 말하길.

“흥, 맹주라는 이가 어찌 이리도 군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래서야 군의 기강이 바로 잡히겠는가?”

우스운 것이, 정작 원술을 중심으로 반 원소파의 제후들이 가장 먼저 포신을 감싸고 돌았으면서도 저런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원술을 포함한 이들은 이런 중대한 사안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맹주에게 대체 어떠한 의의가 있냐는 식으로 떠들고 다녔으니, 연합군 맹주 원소의 지위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결과.

포신의 패배는 연합군 수뇌부에 치명적인 내분을 불러왔고, 대다수의 연합군이 적병을 만나보지도 못했음에도 이미 지휘체계는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파벌의 형성과 대립.

이것이 정의를 부르짖으며 역적 동탁의 토벌을 대의로 걸고 한자리에 모였던 제후들이 벌이고 있는 실질적인 전쟁이었다.

동탁 잡으라고 모였더니 저들끼리 싸우는 꼬락서니 하곤.

“아가씨.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까요?”

물론 당연히 안 된다고 하겠지만, 정말 기분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짐 싸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척박하던 병주 땅이 그립기는 또 처음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조용히 하렴.”

아가씨도 내심 마찬가지였나보다.

이게 참,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 잘나신 분들이 모인 곳이 이리도 개판이 되는 것을 보면 사실 인간은 개와 비슷한 동류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마저 들었다.

물론 아무리 연합군이 개판이라고 해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개라는 것은 아니었으니.

“장사태수 손견! 맹주께 청하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건장한 체구, 머리에는 군청색 두건을 두른 것이 전형적인 무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때까지 서로 말다툼을 하던 제후들도 그 순간만큼은 그의 움직임에 주목하니, 순식간에 장내가 한없이 고요해졌다.

장사태수 손견.

황건적의 난부터 이름을 날린 맹장. 고난을 헤쳐나가 충의를 이루었던 고고한 용사이며 천하에 제 이름을 널리 알린 용맹한 영웅 중 하나.

한 번쯤은 눈에 담고 싶던 것이 이렇게 이뤄졌다.

이런 자리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렇게라도 보니 확실히 그는 용사였다. 천하의 맹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기백인 것이, 당당한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확실한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부디 제게 선봉을 맡겨주십시오. 최선의 수를 다해 저 악적 동탁군을 무찌를 것이니, 그 공을 여러분에게 바치는 것으로 제 소임을 다하게 해주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고도 한동안 장내가 조용했다.

특히 원소는 정면에서 그를 맞이해 한동안 골똘히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수밖에 없긴 한 것이, 손견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원술의 수하였다.

그런 이에게 선봉을 줘 자칫 큰 공이라도 세우게 된다면 원술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것이었고, 그건 원소에겐 좋은 일이 아니었다.

원소가 그렇게 잠시 고민을 하던 차.

“흥, 손견!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나서는가!”

오히려 원술이 그에게 성을 내며 자중을 권했다.

왜? 제 수하인 손견이 저렇게 나서 공을 세우면 오히려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지금 원술의 행동은 다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원소가 드디어 얼굴에 미소를 띄우니.

“흠. 좋소. 손견 장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내 어찌 허락하지 않을 수 있겠소. 단지 그대만 보내는 것은 마음이 아프니, 내 친히 그대에게 치중을 몇 지원코자 하는데. 어떠시오?”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갔다.

상관인 원술이 손견을 견제하고 정적일 원소가 그를 지원한다. 이는 본디 내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일이었는데, 손견과 원술의 사이가 돈독하지는 못한 건가?

“아가씨, 이게 무슨 일이요.”

도와줘요 아가씨! 내 머리는 이미 한계다!

아가씨의 귓가에 대고 살짝 속삭이며 물어보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손짓한다. 하여 귀를 그녀에게 기울였고 그녀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내 귓가에 입을 맞대었다.

“어쩔 수 없지. 원술은 본래 손견의 직속 상관이 아니거든. 제아무리 후장군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남양태수니까.”

확실히 그렇긴 했다.

손견은 장사태수로, 본디 형주에 속하여 그 지배를 받는 관직. 원술이 형주목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에야 아무래도 손견의 직속 상사를 자처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결국에는 이해관계로 맺어져 손견이 원술의 아래로 들어간 동맹 같은 느낌일 터.

“결국 원술은 손견을 잘 다루지 못한 거야. 그러니까 그가 크길 원하지 않고, 그러니까 저렇게 경계를 하는 거지.”

“우습네.”

“우습지.”

그녀와 내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우리가 그러고 있을 때에도 원술과 원소의 대립은 한창 진행 중이었으니. 이제는 원술이 대놓고 제 수하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어찌 헛바람이라 하는가, 동생이여. 그는 훌륭한 역전의 용사. 여기서 공을 세운다면 자연스레 원가의 덕이자 공이 아니겠는가?”

“이, 이익!! 이 얼자 놈이…!!”

결국에는 원술이 공적인 자리에서 얼자라는 발언을 꺼내고 말았다.

세상에 원소가 얼자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차마 발설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원술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터였는데.

“허, 아우야.”

원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점점 원술에게 한 발짝씩 다가간다. 원술은 조금씩 움츠러들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그것보다 원소가 그에게 다가가는 속도가 더 빨랐으니.

원소는 고개를 숙여 원술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분명 뭐라고 하는 것은 같은데 그것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귀가 좋지는 않았다.

단지 원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봐선.

“안 봐도 뻔하네.”

아가씨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저 황금 같은 남자가, 제 품위와 품격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남자가 이런 무례를 용납할 리가 없었다.

“흠, 그러면 손견 장군에게 선봉을 맡기는 것에 반대하는 이는 있는가?”

원소는 정말 천연덕스럽게 장내를 둘러보았다.

당장 원술이 얼굴만 달아올라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으니, 그 누가 원소에게 감히 안 된다고 반박할 수 있을까.

“다들 만족하는 듯싶으니, 손견 장군! 내 친히 그대에게 맹주의 지휘봉을 건네겠소. 만일 누군가가 그대의 행군을 막고자 한다면, 검으로 벤다고 하여도 군법으로 용서할 것이오!”

원소가 짐짓 주변에 엄포하듯이 선언하니 모두가 침묵으로 그에 답했다. 오로지 손견만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지휘봉을 받들며 말하길.

“명, 받들겠나이다!!”

그렇게 아군의 선발이 결정나는 순간이었다.

“흠.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군.”

“아니, 그쪽은 언제 오셨수?”

다들 소리소문없이 다가오는 것에 취미가 들리셨나, 언제부터인지 조조가 우리의 바로 지근까지 다가와서는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얼. 본인은 언제나 기척을 내고 다니고 있거늘.”

그녀가 제 작은 키를 으쓱이며 말한다.

아, 작아서 안 보였나.

솔직한 말로 나는 아직까지 조조가 좀 거북했다. 슬쩍 자리를 비키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아가씨가 내 팔을 꽉 잡아 붙잡으면서 말한다.

“확실히. 이걸로 손견이 공을 쌓는다고 하면 그건 원소의 공이 될 거예요. 그를 이 자리에서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은 원소니까요.”

“반대로 원술은 제 부하의 전공을 막으려한 얼간이가 되겠군.”

아니, 둘이 떠들고 나는 좀 보내주면 안 되겠소?

아가씨는 내 팔을 꽉 잡은 채로 조조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변에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지만 내게는 들릴 만한 목소리였다.

“이래서야 손견이 공을 세우건 놓치건, 원술은 천하의 웃음거리겠군.”

조조의 말에 아가씨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그러면 아마 차라리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려 들 수도 있겠고요.”

“그럴 일은 없어야 할 터인데.”

조조는 저 위 단상, 원소를 향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원술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조조와 아가씨는 원술이 일을 그르칠 것을 염려하는 듯싶었다.

확실히 아군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여기서 선봉까지 잘못된다면, 그건 전군의 사기에도 영향이 가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원술을 잘 모른다지만, 그래도 저 자리까지 올라선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사리 분별도 못 하고 일을 그르칠 일은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 둘이 거의 확신에 가까운 눈빛으로 원술을 바라보니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기도 했다.

그냥 손견이 제발 무사히만 돌아오기를 빌어야 하나.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수?”

적어도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고민하고 있어 봐야 바뀔 것은 없다. 이미 직책도 정해졌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무사를 빌어줄 뿐.

그런 의도에서 말을 꺼내니 조조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군.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한들 바뀌는 것도 없으니. 본인은 먼저 돌아가지.”

조조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제후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슬슬 우리도 돌아갈 때가 아닌가 싶었을 무렵이었다.

“아, 소연 장군. 잠시 이리로.”

원소가 아가씨를, 우리를 부르며 싱긋 웃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저런 부류의 인간이 웃을 때는 항상 귀찮은 일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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