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4화 (24/343)

24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반동탁 연합 천하에 힘 있다는 제후들이 모였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말의 목을 쳐 그 피를 나누어 마시니, 그것이 곧 난적 동탁을 도모하기 위한 대 연맹의 시작점이었다.

원소를 맹주로 추대하여 그 참군으로 조조. 기주목 한복이 그것을 뒤에서 지원하고 후장군 원술이 군량미의 배급을.

그 밖에도 다양한 이들이 저마다 역할 하나씩을 맡으며 천하의 역적 동탁을 토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며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뭐, 생각해보면 우리 같은 떨거지가 낄 수 있을 리가 없지.”

밖에서 경비나 서고 있으려니 몸이 쑤신다. 천하의 대단하신 고관들이 전부 모였으니, 우리 같은 한량들은 이게 맞는 것이겠지.

아가씨는 뭐, 원소와 같이 참가는 했다지만.

“오라버니, 표정이 어두운데요?”

옆에 서 있던 조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표정이 어두웠나. 그럴 만도 했다. 당장 저런 자리에 껴있을 아가씨의 위장 건강부터 걱정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냥. 아가씨가 그 아귀들한테 먹히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대의? 정의?

헛소리. 저 위치까지 올라선 권력의 망자들이다.

과거였으면 모를까, 매관매직이 판을 치는 이 한나라에서 단지 정의만을 논하는 이가 저런 고관에 오를 수 있을 리가 없지.

지금 연합의 제후들이 모인 곳은 또 다른 전쟁터.

저마다가 꿍꿍이를 숨기면서 제 편을 찾아 헤매는 정략의 중심지였다. 그런 곳에 아가씨 혼자 던져두려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흥, 애송이가.”

마음이 편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

“아 거, 아재요. 내 사과하지 않았소?”

살짝 고개를 돌리니 얼굴은 시뻘건 것이, 눈을 부라리며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남자.

분명 이름이 하후돈이라 하였던가. 그는 저번에 한 번 만난 이래로 여전히 내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군법에 의했으면 네놈은 죽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인데.”

아니 시발, 그놈의 군법. 어차피 직속도 아닐뿐더러, 솔직한 말로 잡호장군의 직위라면 소연 아가씨도 원소가 내려준 직위가 있다.

입지는 조조에 비할 바는 아니나, 적어도 작위에선 밀리지 않는다.

물론 그 일이 있고 난 뒤, 바로 아가씨에게 목줄에 메인 개 마냥 끌려가서 머리를 박고 사과를 해야 했다.

물론 내가 실수했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했었으니, 사죄를 올리는 건 어렵지도 않았다. 고작 머리 한 번 숙이는 것이 무에 어려울까.

자칫 잘못해서 조조가 관대히 넘기지 않았으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었던바. 다행히도 잘 마무리는 됐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아무래도 이 하후 가의 돈이라는 양반은 영 이쪽을 곱게 봐줄 생각이 없는 듯싶었다. 봐라, 나랑 눈만 마주치면 바로 얼굴을 흉신악살과 같이 일그러뜨린다.

“그 귀여운 아이에게, 뭐? 괴물? 그래, 그러면 지금 네 앞에 선 나는 어떻게 보이더냐. 이 하후원양은 괴물로 보이지 않더냐?”

물론 강해 보이기는 한다. 당시 영천에서 잠깐 보았을 적에도 그 무력이 태산과 같았던 남자, 그것이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지.

그런데 괴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거, 내가 아무한테나 그러는 줄 아쇼? 오히려 댁네 아가씨는 칭찬받은 거야. 대단한 이가 아니면 괴물이라고 부를 이유도 없지.”

대단하기로는 말이 필요가 없지.

거의 6년 전 처음으로 그녀를 봤을 때, 나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전쟁의 여신과 같다고 생각했으니. 그것이 어찌 대단하지 않을까.

설령 여신은 아니어도 그녀는 충분히 대단한 영웅이다.

“그, 그렇지? 그럼!! 우리 맹덕이 얼마나 대단한 이인데! 주변에서 환관의 여식이니 어쩌니, 이 개 같은 것들을 전부 갈아 마시려 했는데, 그럼! 맹덕은 대단하지!!”

…어, 댁. 좀 쉬운 쪽 사람이었소?

조조 양반 조금 칭찬하니까 바로 입이 찢어지라 웃는 것이, 참 딸바보 느낌이라 영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아니 댁, 조조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그럼! 우리 조조가 대단하기야 하지!!”

“아무렴요. 첫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장군의 재능. 십상시를 타도했으며 동탁을 암살하고자 하던 그 충정까지. 누가 조조를 얕보겠습니까요.”

약간 입바른 소리를 덧붙이니 아주 그냥 광대가 승천할 기세로 웃는다.

안 그래도 노화가 30대 중후반 전에 멈추지 않아 아저씨처럼 보이는 것이, 그렇게 헤벌레 웃으니까 좀 무섭다.

제발 내 노화는 20대에서 멈추길 바란다.

“흠! 그래, 그럴 수 있지. 본디 그 대단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괴물로 보일 수도 있을 따름,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예쁜 아이에게 괴물이라니.”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제 딴에는 나름 기분이 풀린 것을 겸하여 그런다지만, 솔직한 말로 아프다. 조조가 부리는 이라더니, 이자도 범부는 아닌 듯싶었다.

사람 힘이 무슨, 이건 아가씨에게서나 느껴본 힘이다.

“다시금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자리에선 제가 큰 실례를 범한바, 어르신께선 부디 노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조금 전까진 격식 없이 대하더니, 어찌 예를 차리는가? 곧 같은 전쟁에 설 이가, 그러면 안 돼~!”

그러면서 다시금 어깨를 두드린다.

아니, 아파. 아프다고 이 멧돼지 같은 인간아.

“알겠수다. 그러니까, 좀 고만 때리슈.”

어깨 나가겠다, 이 양반아. 무슨 사람 손이 곰 발바닥도 아닌 것이, 맞을 때마다 어깨 관절까지 울리게 두드릴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그래, 그래. 이 얼마나 좋은가. 다소 거친 어투기는 하나, 어째서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까지 그러느냔 말이다.”

하후돈은 그리 말하더니 내 어깨를 붙잡았다.

“어투는 제 삶의 일부다. 물론 격식을 차림도 좋지만, 어린아이들이 구태여 예를 차림도 좋지 않지. 하여간 다 전쟁이 문제야. 에잉, 쯔쯧.”

그러더니 시선을 돌려 주변을 돌아본다. 나도 따라서 시선을 돌려보니, 저 멀리에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병사들이 여럿.

“언젠가는 이런 일이 없게 만들 것이야.”

그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이내 내부에서 합준식이 끝났는지 저마다 제후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조조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거, 나중에 보자고! 젊은 친구!!”

그러면서도 인사는 잊지 않는 것이, 저걸 순박하다고 보아야 할지. 참, 여러 의미로 상대하기 곤란한 사람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오라버니, 괜찮아요?”

그 모든 걸 단지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보고 있던 조운이 내게 다가왔다.

이 오라비가 걱정됐으면 진즉에 왔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녀는 최진사의 직을 명받은바, 행군사마인 하후돈과 나의 대화에 함부로 낄 수 없는 위치였다.

“괜찮지. 고작 어깨 가지고 무슨.”

사실 아직도 관절이 아프지만, 그보다는 방금 하후돈의 모습이 눈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그 다소 한스러운 모습이, 그 소년병들에게 지었던 표정이.

“그가 말하지 않았더냐. 언젠가 저런 이들이 전장에 끌려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그랬었죠?”

우스운 일이었다.

그는 결국 조조의 사람일 것이니, 하후돈이라는 사람은 제 희망을 조조가 이뤄주리라 굳게 믿고 따르는 셈이 아닌가.

조조가 이 천하의 전란을 없애줄 것이라.

“내 눈엔 그게 불가능해 보여서 그런다.”

아무리 생각해도, 짱구를 열심히 굴리면서 미래를 점쳐보아도 조조라는 여걸의 앞날에 전란이 없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발아래 시산혈해를 딛고 일어설 느낌.

“뭐, 내 편견일 수도 있고.”

실제로 능력이 있다는 건 그 전쟁이 아니더라도 중앙에 있으면서 벌인 행보를 통해 증명된 여자였다. 마음을 다잡고 천하를 위해 힘써 일한다면 그만한 인재도 드물 터.

너무 과잉반응일 수도 있었다.

아니, 과잉반응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만한 여자가 마음먹고 패도를 걸으며 천하를 뒤흔든다면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어디 있겠는가?

“가만 보면 오라버니는 조조 진짜 싫어하네요.”

싫어한다는 말엔 어폐가 있으니, 오히려 반대였다.

정말로 싫어했으면 이리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지.

어떤 의미로는 싫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때 내가 진심으로 따라가고 싶었던 여걸을, 그 전쟁의 여신을 어찌 그냥 밉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냥, 그거다. 어, 뭐냐. 배신감?”

병졸까지 챙겨주는 그 모습에서 여신의 모습을, 따스한 빛과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까. 이 사람을 정말 마지막까지 따라가고 싶었으니까.

저 혼자 기대하고, 저 혼자 배신당한 얼간이.

“참, 오라버니는 성격 참 이상하다니까요.”

조운이 그리 비꼬듯이 말하며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에 원소의 뒤를 지키는 아가씨의 모습이 보였다. 살짝 피곤한 기색은 있지만, 그 외엔 별 탈은 없어 보였다.

그래. 어차피 다 지난 일이다.

내가 모시는 사람은 진소연. 저 이상한 여자인즉, 조조는 그저 잠시 합을 맞출 상대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앞으로 아가씨가 어떻게 움직일지, 또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모르겠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라고, 하물며 대뜸 기이한 행보를 걷는 아가씨의 앞날을 어찌 예측하나.

아가씨는 우리가 다가가니 힘없이 손을 들었다. 또, 또. 지쳐서는 한숨만 내쉬는 꼴이 보였다.

“여, 아가씨. 일은 괜찮았수?”

“괜찮았을 리가 있나, 이 버러지 같은 작자들.”

그녀는 정말 누구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그 고관 어르신들이 한순간에 버러지 같은 작자들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또 무슨 일이기에 그래.”

“누가 선봉을 서겠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미 정해진 직책에 대해서도 반발이 일지를 않나. 원술은 심심하면 원소의 말에 태클부터 걸고 자빠졌고.”

뭐, 잘은 모르겠지만 요컨대 개판이었다는 소리지?

그건 어쩔 수 없지. 결국 고관의 높으신 분이건, 저잣거리의 한량들이건 사람이라는 게 뭉치면 항상 개소리가 끊이질 않는 법잖아?

“아가씨가 참으쇼. 여기서 우리 같은 찌끄레기들이 발언권 가지면 진짜 말 그대로 개 박살이 나는 거여.”

“…찌끄레기?”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그렇게 사람을 눈 치켜뜨고 노려볼 것까지야 있나. 아, 알았어. 미안하다니까. 거 진짜 너무하시는구만.

“저희가 숫자가 모자라는 건 사실이잖아요.”

옆에서 조운까지 거들고 나서야 눈에 힘을 푼다. 하여간, 말 한 번 잘못했다고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아서야 쓰겠나?

“그나저나 군량 수송관이 자꾸 어깃장을 놓는 건 위험한 거 아니요?”

어떻게 되었던 사람이라는 것이 밥을 먹질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생물이다. 특히 박터지게 싸우고 왔는데 먹을 밥이 없으면 어떻게 힘을 내나.

굶어 죽어가는 병사만큼 약한 것도 없었다.

“일단 사람의 눈은 많으니, 대놓고 그러진 못하겠지만. 손견, 자기 부장인 손견의 군에게라면 혹시 모르겠네.”

혹시라고 말은 하지만, 말하는 투가 당연히 한 번은 그럴 것 같다고 확신하는 사람의 어투였다. 아가씨는 종종 이렇게 애매하다는 듯, 확신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경우에 대부분 다 맞아들어갔고.

“그러면 뭐, 당분간은 그쪽이랑은 어울리지 말아야겠구만.”

우리야 뭐, 이대목이 영채 털고 나온 군량미가 아직 넉넉하긴 하다. 그렇다고 또 같이 출병한 군단이 군량미를 보급받지 못하여 거기에 말려들게 되면 얘기는 별개였다.

“복잡하구만.”

“복잡하지.”

나와 아가씨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대의를 위해 뭉쳤다는 연합군인데. 분명 바른 것을 행하려고 모인 군대인데 어찌 된 것이 이렇게 시작부터 뭔가 답답하게 굴러가나.

이래서 높으신 분들을 많이 모시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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