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3화 (23/343)

2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반동탁 연합 189년 12월 중순.

드디어 반동탁 연합에 참가하기로 한 모든 제후나 세력이 진류군 산조현에 결집했다. 그곳에 모인 병사만 하더라도 물경 20만을 훌쩍 넘는 거대한 규모의 군단이었다.

게다가 거기에 모인 인사는 또 어떠한가.

이건 뭐 언급하는 것이 골머리가 아플 정도로 잔뜩이었다.

후장군에 각 군의 태수와 상, 주의 목이라는 양반들이 벌떼처럼 군사를 아주 잔뜩 이끌고 몰려왔고, 그들 하나하나를 언급하는 것도 참 골때린 일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세력이 몇몇 있었으니.

우선 후장군이자 남양태수, 사세삼공 원가의 본가 중 이제 둘밖에 남지 않은 원가의 원술과 그가 이끄는 장사태수 손견이 가장 눈에 띄었다.

원술은 말할 것도 없었고, 손견 역시 황건적의 난부터 전장을 뛰어온 맹장이며 영웅이라 칭송받는 호걸이 아닌가.

그 외엔 또 여럿이 있기야 했다.

당장 우리를 거둔 원소의 군도 그렇고, 제북상 포신의 군이나 진류태수 장막의 군도 볼만한 군이었다. 애당초 그 면면 하나하나가 엄청난 거물들이긴 했으나.

글쎄. 내 개인적으로는 딱 두 곳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공손찬의 군.

애당초 공손찬 본인이 온 것도 아니고,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현령에게 군을 이천 정도 맡기어 보냈으니.

그 하북 제일의 맹장이자 현재 동탁을 군사력으로 이길 유일한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공손찬의 부재는 뼈아팠다. 게다가 고작 이천?

이건 사실상 그냥 체면치레만 한 정도가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의 군을 꼽자면.

“흠, 본인의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닙니다.”

분무장군 조조. 원소의 휘하로 들어가 우리 군과 활동을 같이하게 된 이 여자. 이 여자의 군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

사실 군세로만 보면 우리나 조조나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다.

조조는 고작 오천의 민병이요, 우리는 고작 사천의 도적 패거리니. 합쳐봐도 일만에도 못 미쳐, 다른 제후들에 비해 모양새가 안 난다.

조조는 뭐, 그나마 원소를 맹주로 추대하며 각 제후에게 공문을 돌린 것과 중앙에서 꽤 고관이었던 점을 감안하여 용납이 된다지만.

우리는 뭐 더 볼 것도 없지.

그런데도 조조의 군세가 인상이 깊은 이유는.

아니다. 아마 나는 조조의 군세가 아닌, 조조 그 자체를 눈에서 뗄 수가 없는 것이리라. 이 은발의 키 작은 장군을, 난 아마 평생 잊을 수 없겠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차라리 뇌리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 기억이 어떻게 지워질까.

처음으로 전장이라는 것에 선 것은 황건적의 난이었다.

당장 하루하루를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니까. 재주도 없고 부모도 없다. 하나 있던 어미도 작년에 잃어, 진짜로 허덕이다 못해 결국에는 군에 투신했다.

영천 전투.

그게 내 첫 전쟁이었으며, 아직도 기억에 남아 후유증에 시달리게 하는 전투였으니. 그 전쟁의 장군이 다름 아닌 기도위 조조였다.

어찌 잊을까.

서로 죽고 죽이기를 반복, 그냥 정신없이 시쳇더미에 숨다가도 나서서 싸우고, 그러다가 다시 시쳇더미에 몸을 맡기기를 반복했던 처절한 전투.

나중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도. 그 경계조차 애매했던 전투에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그 뒤엔?

그 황건적들의 식솔들마저 전부 처형하는 대대적인 처형식을 감행하니, 그때 당장 죽어 나간 민간인의 숫자만 하여도 물경 수만에 이르렀다.

아마 그때부터 약간의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전쟁에만 서면 막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것도, 누군가가 계속 내게 말을 거는 듯한 착각에 시달리는 것도.

전부 시작은 영천이었다.

“혹여 본인에게 할 말이 있는가?”

옆에 서 있던 조조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할 말? 당장 그 전쟁에선 많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딱히 없었다.

그저 과거의 일이었고, 이미 다 죽은 사람들. 이제야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단지 그 은발. 그 은발만은 내 잊은 적이 없었다. 아가씨와 꼭 빼닮은 그 붉은 눈도. 조조의 눈은 개인적으로 핏빛을 연상케 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분무장군.”

아무리 자연스럽게 있으려고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괴물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긴장을 풀까. 전쟁에 처음 참전했다는 지휘관이 귀신 같은 지휘로 황건적을 격파할 때만 해도 난 당신이 영웅인 줄 알았어.

아름다운 전장의 여신. 그 비단같은 은발을 흩날리며 병졸과 같이 서 적을 격파하니, 그것을 어찌 동경하지 않을까.

아니었다.

그 어릴 적의 내가 완벽하게 틀렸었다.

그녀는, 조조는 여신 따위가 아니었다. 그걸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악몽으로 남았다.

살려달라고 비는 민간인들을, 단지 배가 고파서 따랐을 따름이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내 또래의 어린아이도. 전부 죽었다. 내가 죽였고, 누군가가 죽였다.

“무언가 억하심정이 남은 표정인데. 그럼에도 아니라고 하는가?”

“없습니다. 맹주님의 연설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제발 조용히 좀 해줬으면 좋겠다.

솔직한 말로 군의 배치가 아군과 묶여있는 것만 아니라면 이 여자의 곁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대체 이 연설이라는 건 언제 끝나는가.

아가씨, 조운아, 방삼아.

제발, 지금만큼 그들이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흠. 본인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거늘. 괴물이라고 했던가. 우습지. 그 어린아이가 본인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리 말하는 게 어찌 충격이었는지.”

그랬었던가. 당장 내 얼굴을 기억하는 그녀가 더 신기할 따름인데, 어떻게 그 옛날 소년병 하나를 아직도 기억할까.

난 솔직히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이미 반쯤 실성해서 내가 뭘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기억나는 건 나를 방삼이나 다른 병사들이 제압하고 조조 발밑에 바싹 엎드리게 하며, 제발 이놈을 살려달라고 빌던 광경뿐.

그러고 보니, 그 전부터 방삼이는 나와 같이 있었지.

머리가 어지럽다. 이 여자랑만 같이 있으면 머리가 이상해진다. 아 제발, 이런 여자와 같이 있어야만 하는 내 고통을 누가 헤아려줬으면.

“그대는 어째서 그리 싫은 얼굴로 본인을 보는가? 아직도 그날의 원한이, 그때의 감정이 남아있는 듯싶은데, 아닌가?”

“감정이라뇨,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실수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제아무리 직속 상관은 아닐지라도 그녀는 분무장군이었다.

나는 까불 수도 없는 위치에 있는, 그녀 역시 지배층이었다.

“당연히 장군께서 하셔야 했을 일이 아닙니까. 그들은 모두 반역도당, 그 당시에 처형함이 옳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려서 무례를 저지른 것이지요.”

호세야, 대들지 마라.

저건 원소와 맞먹는 괴물이다.

제발, 제발.

“그러한가. 그대는 그리 보는가. 그대도 아무래도 다소 성숙해진 모양이군.”

뭔가 시원섭섭하다는 듯한 조조의 반응이 순간 어금니가 나가도록 세게 이를 꽉 깨물고 말았다.

성숙해졌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라.

그래, 사실 그녀는 틀리지 않았다. 대다수 지휘관은 반란에 가담한 민간인을 같은 반군으로 보고 처형한다. 그게 맞다. 모두가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녀의 행동도 잘못이 아니었다.

잘못이 있다면 거기에 반발하는 나.

전쟁에 나섰음에도 사람을 죽이는 것에 정신병까지 얻어버린, 그러면서도 그날의 풍경을 아직 잊지 못하고 계속 떠올리는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조조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단지 내가 너무 어린 나이에, 그것도 조조라는 이에게 너무 과도한 기대와 희망을 품어버렸다는 것이 문제겠지.

그 어린 날의 나에게 그녀는 여신처럼 보였고, 마치 그녀가 하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내려온 천장과 같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기를, 전장에서 병사와 동고동락을 함께 하며 우리 같은 천것들의 목숨을 아껴주는 선녀.

전쟁에서는 우리의 앞에 서서 적과 함께 싸우는 전장의 여신.

“그래. 그것이 맞다. 세상을 삶에 있어 자신 외의 희생에는 눈을 감을 줄 아는 것이 맞지. 그 어리던 소년이 이렇게 변해버렸구나.”

“변해버렸지요.”

많이도 변했다. 그 어릴 적 타인의 죽음에, 그들의 아픔과 눈물에 공감하여 제 지휘관에게 괴물이라며 소리를 지르던 철없는 아이는 이제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도적 호세.

아, 이제는 진소연의 검인가. 아무렴. 뭐가 됐건 그 어린 날의 나보다는 훨씬 낫다 자부할 수 있는바, 이제는 나도 어른이 된 것이다.

세월이 무상하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어른이 됐다. 이제 과거의 어린아이와는 다르다. 더는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런 것인데.

“사실 아직도 제 눈엔 댁이 괴물로 보입니다요.”

이 방정인 입이 문제였다.

“새빨간 눈에 흰 가죽을 뒤집어쓴, 입가에는 누군가의 피를 철철 묻힌. 이만한 괴물이 또 어디에 있겠냐는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거기에 더 있을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더 있다가는 그 이상의 실수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실수도 이런 말실수가 없었는데,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 난 아직 어른이 되기엔 글렀구만.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에 입김이 허옇게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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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건방진 놈이!!”

원양이 달려들려는 것을 팔을 뻗어 막았다. 아직도 귓가에는 그의 말이 맴돌았다. 시뻘건 눈에 흰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이라.

웃음이 나왔다.

“맹덕!! 이번 건은 나도 못 참는다! 저 시건방진 것이 장군을 모욕했다. 군법으로도 당연히 벌을 내려야 마땅한 사안인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원양이 제 분을 못 이겨 발까지 굴러가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 원양. 본인이 그렇게 말하기 전엔 생각을 한번 하라 일렀거늘.

본인이 그냥 보낸 것이 군중에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때는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처벌해야 함이니 조용히 하고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는 사촌이기도 했고 충심도 깊었지만,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는 것이 유일한 결점이었다.

“됐다. 어차피 본인이 먼저 살살 긁어보았을 뿐이니, 원양 그대도 개의치 말라.”

“이걸 어찌 개의치 말아? 괴물? 저 애송이가…!!”

그의 말에 틀린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인데, 원양은 어찌 이리 화를 낸단 말인가. 그러면 본인이 뭐 성인군자라도 될 것처럼 보였는가.

“괴물이지, 암 괴물이야.”

나라를 바로잡고 싶었다.

썩어들어가는 한나라를, 이 대륙을 지지하는 기둥을 새로이 고쳐잡고 싶었다. 그런 이상이, 그런 기개를 품고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움직이고 움직여, 지금은 무엇인가?

결국 본인조차 권력을 탐하는, 지배층의 괴물이 되지 않았는가.

십상시를 벌할 때, 그날 처음으로 제 아비에게 맞았다. 이 세상에 건드릴 것과 건드리면 안 될 것이 있다면서.

본인의 뺨을 후려치던 아비가 처음으로 남처럼 느껴졌었다.

황건적의 난. 십상시에게 밀려나 기도위로서 영천에 파견됐을 당시, 본인은 무조건 복직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공을 세워야만 했고, 그래서 다 죽였다.

죽이고 죽여, 계속 죽여나갔다.

죄가 없는 민간인? 그런 것이 눈에 보일까. 최대한 많은 수급을 쌓아 다시 복직하는 것만을 생각하던 당시의 본인에게 그런 감상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한나라를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괴물이 되었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동탁을 암살코자 하였으나 그것도 실패하였고, 이제는 옛 친우의 권세에 빌붙어 다시금 군을 이끌고 있다.

“그래, 괴물. 좋다. 본인은 괴물이 되겠다.”

이 무너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움이라면 괴물이 아니라 괴물의 할애비라도 되어주지. 인간의 길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게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 두려우랴.

그러니 원양.

“너무 화내지 말라. 저 이도 결국에는 백성일 뿐이었다. 본인이 가장 먼저 져버리기로 결심했던, 본인에게 버림받은 백성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존재는 나름 기쁜 면도 있었다.

적어도 본인이 인간의 길을 벗어났다고 비난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 이제 본인 주변에선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그 면전에서 그리 말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

그 자신의 과거, 그 과오를 목격하여 분개했던 어린아이가 아직 인간성을 져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은 이 조조에게도 기쁜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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