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황금 그 자체 “잠깐, 잠깐만.”
아가씨는 막사에서 나와 내 팔을 붙잡았다.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돌리려니, 이젠 아예 매달리다시피 하며 내 팔을 끌어안았다.
순간 가슴의 말랑한 느낌이 팔뚝에 느껴졌다.
아, 안 돼. 착한 생각, 착한 생각.
“무, 무슨 일이요?”
짐짓 당황하여 그녀를 돌아보니, 그녀가 살짝 인상을 쓰며 내 팔에 매달려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일단 그녀의 인상이 급격하게 창백해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내 팔을 붙잡은 손도 달달 떨리고 있었다.
“조금,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래.”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 팔을 붙잡고 잠시 몸을 기대었다. 따듯한 체온이 팔을 타고 전해졌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의 떨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뭔 일이요.”
그리 말하니 아가씨는 고개를 돌려 원소의 막사로 시선을 돌린다.
“저거 완전 괴물이야.”
그건 동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대체, 아니면 설마. 그동안 저 안에서 원소를 맞상대하면서 계속 이렇게 떨리는 걸 억지로 참고 있었던 것일까.
이리도 벌벌 떨리는 신체를 억지로?
“무리하신 거요?”
“응, 무리했어.”
그녀는 그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 팔에 매달리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그 자세를 유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에서 몇몇 병사들이 쳐다보긴 했으나, 뭐 어쩔 것인가.
그렇게 계속 발걸음을 옮기고, 이윽고 원소군 진영에서 완전히 벗어나 인근 숲에서 잠시 쉬자며 들어오고 나서야 그녀는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그녀가 쓰게 웃는다.
“저게 그 원소란 말이지. 놀랐어. 실제로 보는 건 진짜 차원이 다르구나. 영웅이란 건 다 저런 건가 봐.”
그러게 왜 무리를 해서는.
그렇지만 그녀가 무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연줄도 없는 아군이 이런 연합군에 참가하려면, 누군가의 보증을 받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원소라면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기도 했고.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난 진소연이 이렇게 떠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연약해진 모습 같은 건 가슴 한편이 아려올 따름이었다.
“…영웅이라고 다 저렇진 않을 거요.”
그리 말을 하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부드러운 살결이었지만, 살짝 서늘한 느낌에 땀의 끈적함이 느껴져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꼭 원소였어야 했소?”
그것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서 물어봤다.
군웅들이 저리도 많이 모였다. 날고 긴다는 이들이 저리 많으니 제아무리 원소가 대단하다지만 조금 만만한 이를 붙잡고 보증을 받아냈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가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원소는 앞으로 천하의 축이 될 남자야. 지금 미리 눈도장을 찍어둔다면 앞으로 움직이기가 수월해져.”
“그건, 마음에 들지 않네.”
나는 아가씨의 검이다. 그러고자 했다. 그렇게 약속했다. 그 앞길을 헤쳐나가기 위한 수단이 되고자 했다. 거기에 연심 같은 건 한 올도 섞이지 않았을 터.
그런데도.
그냥 그녀가 다른 남자를 인정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소가 별로였어?”
내가 이 여자의 첫 번째 검이다. 그녀가 다른 이를 인정한다면 그건 내가 부족한 탓. 그것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리 생각하며 아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에 안 들더이다. 겉으로는 착한 듯이 보이는데, 그런 괴물이 그럴 리가 없지.”
웃기는 소리였다. 그런 이가 대단한 유교자라느니, 이 시대의 명사라느니. 다들 눈깔이 삐어도 단단히 삔 것이 분명했다.
그런 괴물이 제 얼굴을 감추고 그런 평가를 받는다?
위선자도 이런 위선자가 없었다. 막말로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움직인 대가로 제 가족이 모두 몰살당하지 않았는가. 그럼 그 결과는?
원소는 대의명분과 함께 시대의 진정한 충신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신분 탓에 먹는 욕을 제외한다면, 그 모든 것이 원소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당장 맹주도 원소로 추대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이게 단순히 우연일까?
우연이라면 그건 정말 시대의 부름을 받는, 말 그대로 천운이 그를 돕는다고 말할 정도로 재수가 좋은 사람일 것인데.
그런 괴물 딱지가 단순히 우연에 기댈 턱이 없었다.
“응. 그건 괴물이었지. 아, 아직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그녀도 비슷한 생각인지 짐짓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나도 뭐 하나 거들까 하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려던 찰나.
“씁. 어딜 주인 몸에 손을 대려고.”
내 손을 한 대 후려친 그녀가 머리를 까딱거린다.
“그런 헛짓 말고 어깨 좀 이리 가까이 가져와.”
어휴, 이 독불장군.
어쩔 수 없이 어깨를 가져가니 그녀가 냉큼 제 머리를 내 어깨에 얹었다.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은 남녀 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서로 밀접하게 몸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혹자가 보면 꼭 연인과 같다고 평가하진 않을까.
이런 나쁜 생각, 이건 나쁜 생각이다.
“나, 고생했어.”
“알고 있소.”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댄 머리를 비비고 있었다.
“많이 고생했다구.”
“거, 알고 있다니까.”
그 머리에서 나는 향이 마치 꽃향기와 같은데, 대체 무슨 꽃의 향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애당초 꽃과는 연이 없는 천한 삶을 살았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많이 고생했으니까, 이번만 상을 받아도 되는 거지?”
아가씨의 말에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다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니까. 두 번 다시, 누구에게도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야. 이제부턴 정말로 강해질 거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그리 말하며 눈을 감는다.
“이번 한 번만, 마지막으로 기대도 되는 거지?”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의 말도, 앞으로도 기대라는 말도. 그 어떤 말을 해도 그녀에게는 와닿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진소연이라는 인간이 강해지고자 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것에 참견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불경한 짓이 아닌가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는 것이 강함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강함은 저마다 다른 것이다. 개인의 가치관에 의해 그 강함은 천지 차이로 나뉘는 것을, 그것을 내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됐다.
그래서 그냥 어깨를 내어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된 느낌도 들었지만, 그저 그랬을 뿐이다.
*****************************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이 흩날렸다. 그녀는 제 은빛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는 걸 보고는 묶고 올 것을 그랬나 싶었지만, 원소라는 작자는 어릴 적부터 제 머리카락을 묶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또 머리를 묶어 올리고 나왔다면 잔소리를 할 것이 뻔하여 그냥 불편을 감수하고 있자니 그녀의 옆에 있던 남자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여간 그 본초란 작자도 괴팍하지.”
반동탁 연합을 세우기 위한 공문을 돌리는 역할로 그녀를 골랐다. 어릴 적부터 나이 차는 많이 나더라도 친우로 지냈을 것인데, 이제는 거의 부하처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
“진정하라. 본초는 어찌 되었건 작위를 가진 제후다. 그렇게 말을 쉬이 하다간 경을 칠 수도 있다.”
그녀는 단지 무표정한 그대로를 유지하며 남자에게 주의할 뿐. 애당초 그녀에게 원소란 좀 껄끄러운 친구였기에, 어쩌면 이렇게 부하처럼 대하는 것이 더 편한 부분이 많았다.
“조조! 그래도 우린 너만 보고 가는 사람들이야.”
“원양. 그 이상은 자제하라.”
여기가 어디던가. 당장 그 원소의 진영에서 이런 문제로 언성을 높여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 조조는 머리가 아파짐을 느꼈다.
대체 원양은 언제쯤 되어야 진중해질는지.
“아무튼, 이번 건도 그렇소. 산조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저를 찾아오라니. 아무리 제가 잘났기로서니, 무슨 황제도 아니고.”
“원양. 본인이 하겠다고 하였는데, 자꾸 그렇게 뒷말을 하면 그대의 주군인 본인의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발언 한 번엔 생각 한 번을. 알겠는가?”
그러니 그제야 원양은 시무룩하니 고개를 숙였다.
“좋다.”
누가 봐도 대답하지 않았고, 납득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도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당당한 포부. 비록 남들보다 작은 체구지만 그 발걸음 하나 하나에 힘이 실려있어, 뭇 호쾌한 움직임이라는 느낌마저 받았다. 적어도 원양은 그리 생각했다.
단지 문제라고 하면 그녀가 어지간해서는 무표정한 채여서, 그것이 다소 그녀의 인상을 삭막하게 보이게 한다는 것.
언제부터 저리됐던가.
원양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언제부터라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그저 철이 들 무렵부터 조조는 항상 저렇게 무표정을 고수했었다.
당장 십상시 건석의 숙부를 죽였을 때도. 황건적의 난에 기도위로 발령이 나, 그 험지에서 연전을 거듭했을 때도.
심지어 동탁을 암살코자 했을 때도 그녀는 항상 저리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쯧, 어릴 적엔 나름대로 귀염성이 있었는데.”
원양은 그게 못내 안타까워 먼저 앞서가던 조조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과거에는 오라버니~ 하고 불러주며 붙임성도 있던 것이, 어찌 저렇게.
“뭐라고 했는가?”
“아니다.”
어찌 저렇게도 목석같은 여자로 변했는가.
그 어릴 적의 조조를, 그 사고뭉치 아만이 못내 그리운 하루였다. 적어도 원양에겐 그 당시의 제 동생과도 같았던 조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뒤에서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앞으로 조조는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칭얼거리는 소리도 들려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하던 원양의 칭얼거림일 뿐.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던 차.
“…흠?”
저 멀리서 보이는 남녀.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을 가진 여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빨간 눈을 보니, 마치 조조 자신의 눈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디 이 천하에 붉은 눈이 흔하던가.
그렇지만 그 뒤에 있던 남자에게 더 눈길이 갔으니. 생긴 것은 그럭저럭 미형이긴 하나 과한 특징이 없는 생김새. 머리도 덥수룩하게 자란 검은 머리에, 눈 또한 그저 검을 뿐.
그렇게 눈길이 갈 이유가 없는 남자였다.
“응? 뭐야. 저건 또 누군데 원소 막사에서 나오나?”
원양이 뒤에서 말하는 것을 잠시 흘리고 계속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드는 남자였는데, 어디서 봤는지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녀 자신이 한 번 얼굴을 기억하면 쉬이 까먹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리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는 오랜만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렇게 그녀가 곰곰이 생각을 거듭할 때.
“어, 뭐야. 저거, 그때 그거 아니야?”
하후돈이 남자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그때 왜, 영천에서. 그 어린놈 하나 있었잖아. 너보고 괴물이라던 꼬마. 그거랑 생긴 게 얼추 판박이인데?”
원양이 그리 말하며 콧방귀를 뀐다.
“허, 그때 그 꼬마가 저리 자랐나.”
원래라면 군법으로 처형했어야 했을 것을 조조의 만류로 살려뒀더니 벌써 저리 장성했다. 원양은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나 싶어 그것이 못내 신기했다.
그리고 조조는.
“아, 그때 그 아이인가.”
한 번 눈길을 주고는 이내 다시 원소의 막사를 향했다. 우스운 인연이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기도 했다.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모를까, 지금은 그런 옛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오, 아만! 드디어 왔는가!”
“원소, 답답하니까 달라붙지 마라.”
조조는 이 느끼하기 그지없는 작자를 떼어내는 것이 가장 시급한 선결과제였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