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9화 (19/343)

19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황금 그 자체 진류군 산조현으로 이동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군세도 군세요, 반동탁 연합을 위해 출발한 군이라는 명목과 함께 병주에서 출발하였다 하니 어지간한 관문은 쉬이 그 길을 터주었다.

솔직히 군기 너무 빠진 거 아니냐 싶긴 한데.

하, 이게 참 어렵단 말이지. 솔직히 관 지키는 것들이 몇이나 된다고 사천이 넘는 군대가 움직이는데 막기도 힘들 것이니.

요즘 세상에 관직이고 원칙이고 따지다간 목 날아가기 일쑤니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긴 했다. 나라 꼴이 참 개판이지? 참나. 이젠 내 별칭도 한나라에 돌려야겠다.

예를 들면, 그렇네.

미친 한나라여, 그대는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푸흡, 프흐흐흐.”

“뭐가 웃겨요?”

옆에서 조운이 내게 살짝 속삭였다. 바로 앞에서 말을 타고 가는 아가씨가 있었기에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그녀는 아직 아가씨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별거 아니다.”

한나라가 미쳐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웃겼을 뿐. 그렇지만 그걸 이 대쪽 같은 조운에게 말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여 그냥 그렇게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189년 12월의 겨울.

진류군에 도착하여 보니 몇몇 현에 흩어져 군이 포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각지에서 모인 고관들의 군세라 그런지 그 규모가 다들 못 해도 만 이상은 되어 보인단다. 실제로 멀리서 봐도 장관일 정도로 수많은 병력이 포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봐도 우리가 낄 곳을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원소군 진영 근처에 진을 차리고 그들에게 먼저 사절을 보낸 뒤. 이제 정식으로 소연 아가씨와 같이 인사를 하러 가면서 보기를, 이건 진짜 수준이 달랐다.

당장 군의 기강도 기강이요, 무장한 병장기의 질은 어떠한가. 당장 숫자도 숫자지만, 원소군은 그냥 강군이었다.

“아가씨요. 진짜 원소가 우리를 받아주겠소? 아니 시발, 막말로 그쪽도 삼만이 넘는 군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출신도 애매한 사천 정도를 받아주겠냐는 말이요.”

“이제부터 말하기에 달렸겠지.”

이런 상황에도 아가씨는 태연하게, 정말 당연한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주변의 시선도 전부 뿌리치면서 앞으로.

진소연. 그녀는 확실히 흑산적과의 전투 이후 조금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냐고 물으면 바로 답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답할 수 있는 것으론 우선 자신감이 생겼다.

평소에도 뭔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이던 사람이 이제는 사뭇 여유로움까지 겸비한 모습. 그것은 예전과는 퍽 다른 모습이어서 다소 생소하기까지 했다.

분명 좋은 일이었다. 이런 당당한 모습은 대장이라면 응당 지녀야 했을 행동거지긴 한데.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이던가. 아무튼, 뭔가가 좀 꼬였다는 느낌? 잘못되어간다는 느낌만은 확실했다.

말로 설명하진 못하겠는데, 이러면 안 됐던 게 아닌가 싶었다. 분명 바뀐 모습이 성장했다고 부를 수 있는 모습인 듯싶기도 했지만, 이 느낌은.

그녀의 걸음 하나하나가 당당했다. 쭉 뻗은 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선 어떠한 미혹도, 불안도 찾을 수 없다.

이걸로 좋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소연 아가씨를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서부터는 무장을 전부 풀어주셔야겠습니다.”

우리를 원소가 있는 본채까지 안내한 병사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야 본래 무장이 없이 왔으니 나만 제공하면 그만이긴 하다만.

영 불안하다.

쯧, 하여간 한 번 안 좋은 생각을 하면 사고 전체가 부정적으로 매몰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어찌할까 아가씨를 한 번 보니 살짝 고갯짓으로 병사를 가리켰다.

“여깄소.”

그리 말하고 허리춤에 찬 검을 하나. 그리고 아, 맞다. 품 안에 넣어둔 단검도 하나. 혹시 몰라 신발 아래에 넣어뒀던 비수도 하나.

혹시 책을 잡힐 수 있었기에 어지간한 것은 다 꺼냈다.

“…어차피 반납할 거라고 했잖아.”

소연 아가씨가 날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치만 어쩔 수 있나. 호위라고 들으니까 뭔가 영감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좀 이것저것 신체 구석에 숨겨서 완벽한 호위라는 우상을 꿈꿨을 따름이다.

난 죄가 없었다.

설령 아연실색으로 날 바라보는 저 경비병이 슬쩍 제 허리춤에 있던 칼에 손을 가져갈까 말까 고민할지라도, 난 무죄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거, 너무 걱정하지 마쇼. 이젠 속옷 한 장까지 다 벗겨도 아무것도 안 나올 거니까.”

사실 옷과 옷 사이에 작은 칼날을 하나 넣어두긴 했다. 미안하지만 만약이란 건 정말 모르는 일이다. 준비해두어 나쁠 게 있던가?

물론 그걸로 누군가와 싸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포박당했을 때 밧줄을 잘라낼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흐, 흠!! 그럼 발해태수 원소 어르신께 실례 없도록 하십시오.”

거기까지 말한 그가 살짝 비키면서 본채 입구에 내걸린 천막을 걷었다,

확실히 그 원소군의 본채여서 그런가 넓긴 뒤지게 넓긴 했다. 당장 천막이 열리고도 바로 원소라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으니, 본채여 봐야 고작 막사가 뭐 이리 큰지.

“무례하게만 굴지 마.”

거의 속삭이듯 말하는 아가씨의 말에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아무렴, 그 천하에서 가장 명성이 급상승 중인 원소의 면전에 대고 어찌 무례하게 굴까.

당장 삼만이라는 병력의 심처에 와서 무례하게 굴 정도로 싸구려 목숨은 아니었다.

그렇게 아가씨와 나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주위로 호위하는 병사들의 기세가 제법 만만치는 않은 것이, 확실히 정예는 정예인가 싶었다.

그 순간.

“흠. 그대가 최근 병주에서 소란을 일으킨 여자인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저 목소리. 모습을 채 보기도 전이었는데, 그런데도 당연히 이 목소리가 원소의 목소리일 것이라 확신했다. 이건 확신할 수밖에 없지.

가벼운 말이었지만 그 목소리엔 짐짓 힘이 실려있었다.

폐부에서 끌어올린 듯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 밑에서부터 울리는 중저음의 음색. 섣부른 판단이긴 하나, 이런 목소리가 대장이 아니고서야 재능의 낭비다.

그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가씨는 바로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살짝 얼을 탔고, 결국 봐버렸다.

그것은 황금이었다.

색채가 밝은 금발을 깔끔하게 뒤로 넘겼다. 눈의 색도 머리와 같은 금빛에, 비록 입고 있는 복장이 검은 예복이라 해도 그 뚜렷한 금빛이 어디로 사라질까. 그것은 그저 그 자리에서, 단지 빛날 뿐.

그러니 고고한 금빛이었고, 그렇기에 황금이었다.

첫 대면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결코 색을 바라지 않을 황금과도 너무 흡사하다 여겨졌다. 저도 모르게 복종해야만 할 것처럼.

설령 원소 본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냥 무릎을 꿇어야만 할듯한 강렬한 인상.

“죄송합니다.”

너무 빤히 쳐다보았다는 생각이 스치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실수였다. 아가씨가 무례를 범하지 말라고 하자마자 바로 1무례를 적립해버렸다.

마지막까지 눈에 비친 그의 표정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아,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무례에 차라리 화라도 냈더라면 조금은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도 있었을 것을.

확실한 건 저 남자는 결코 호락호락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

이봐요, 아가씨. 저 남자를 입맛대로 움직일 수가 있다고?? 내 아가씨가 제법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도가 지나치지 않소.

저건 누가 함부로 움직일 남자가 아니라는 건, 당장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일목요연한 진실이었다.

“무도현장 진소연. 한 제국의 향향후이자 발해태수이신 원소님을 뵙습니다.”

아가씨는 그저 당연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올렸다. 내가 모시는 주인이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 남자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느꼈다.

애초에 가진 것도, 보이는 것도 격이 달랐다.

명문가의 자제는 다 저렇게 인간 같지 않게 생겨 먹었나 싶었을 무렵. 아주 잠깐의 침묵을 깨고 원소가 입을 열었다.

“향향후는 빼도록. 그 난적이 내린 제후직 따위, 언급해봐야 우아하지 못할 따름. 초면이니 용서하겠으나, 다음부터 그런 멸칭을 쓴다면 용서치 않을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아가씨가 그리 답하니 그제야 원소가 살짝 웃었다.

“고개를 드시오.”

그 말이 끝나고서야 아가씨와 나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찰나가 아닌, 고개를 들어 그의 용모를 자세히 보니 더욱 확신이 든다. 내 비록 관상을 볼 줄은 모르지만. 그런데도 이 남자는 정말 황금과 같이 고고하고, 제 한 몸 꺾을 줄 모르는 강자라는 게 느껴졌다.

이런 남자가 세간에서 그리 칭송하는 인격자라고?

다들 눈깔이 삔 것이 분명했다.

이 남자가 그런 인격자일 턱이 있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저런 기세다. 이건 머리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본능이 먼저 이해했다.

저 남자는 강자다.

본인의 성향이나 성격은 모르겠으나, 강자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저만한 강자가 타인을 위해 움직이고 헌신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는 것이.

저건 오히려 아귀에 가깝지 않을까. 만족을 모르고 계속 먹어 치울 뿐인, 언제까지나 계속 탐할 뿐인 아귀.

첫인상으로 평가하기엔 가혹한 평가지만, 내 감은 제법 잘 맞았다. 저건 아마 제 살을 파먹는 한이 있더라도 멈추는 것을 모르는 탐욕의 화신이리라.

“그래. 병주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그 무도현장께서 이 원소에겐 무슨 일인가?”

원소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아가씨가 화답하기를.

“원소님의 이름을 빌리러 왔습니다.”

거 아가씨, 초면부터 너무 빠꾸가 없는 거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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