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6화 (16/343)

1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흑산적 “미쳤어요!?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이딴 소리가 나올 리가 없지. 안 그래요? 아무리 미친개라고 불린다지만, 진짜 광증에 걸렸을 줄이야!!”

조운이 그리 소리치며 전호의 팔을 붙잡았다. 만류하는 듯. 아니, 확실히 만류하기 위해서 그의 팔을 붙잡고 버텼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것을 들었으니, 조운 입장에서 어찌 이 손을 놓을까.

전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작게 웃기를.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경사가 완만한 곳이 있다. 거기라면 도망치는 아군의 앞에 떨어질 것이니, 다시 그들을 규합하기에도 적합해.”

“예, 있긴 했죠! 거기라면 그냥 땅으로 뚝 떨어지진 않겠지만!!”

조운은 조금 전에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벼랑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면, 그걸 넘으면 그만이잖아? 돌아가면 먼 거리겠지만, 직선거리로는 사실 이만큼 가까운 곳도 없다.’

그렇다고 모포를 두르고 벼랑을 굴러 내려가겠다니.

미친놈이었다. 조운에게 있어서 이 남자는 상상을 뛰어넘는 미친놈이었고, 제 이해를 벗어났으니 그걸 어찌 또라이라 부르지 않을까.

전호는 그런 조운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죽고 싶으면 저한테 말하지 그랬어요? 그냥 죽여줬을 건데!! 자살도 이런 자살이 없어요, 댁의 미친 짓에 따라가는 이들은 무슨 죄에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가리켜 이곳에 막 불려온 1번대의 이들을 가리켰다. 진을 두 곳으로 나눌 당시, 방삼에게 50명 정도를 딸려 보내고 남은 50인.

그 백의 인원은 처음부터 전호와 방삼과 함께하던 이들이었다. 조운은 제아무리 그들이라도 이런 일에 찬성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호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 머리를 긁적이며 쓰게 웃으니.

“거, 무슨 죄긴. 미친놈한테 붙은 죄지.”

“그치?”

그들끼리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조운에겐 그 광경이 환장이 환장을 불러오는 대 환장의 연쇄작용처럼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더니, 미친놈은 미친놈끼리 노는 게 분명했다.

“이 멍청한 새끼들. 지금이라도 싫은 새끼는 꺼져. 여기서 빠진다고 나중에 막 따돌리거나 쥐어패진 않을 거니까.”

전호가 그리 으름장을 놓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건 그가 생각하기도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 당장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발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니만큼, 그들을 강제로 부릴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참가하겠다고 하는 이들만을 데리고서 내려갈 생각이었다.

“거, 가족 살리러 간다는데 불길이면 어떻고, 물길이면 어떠하며, 돌길이면 또 어떠할까. 아니 근데 시발, 솔직히 돌길이라기보단 그냥 하늘길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요?”

아무리 굴러서 내려간다지만 그 벼랑을 돌길이라곤 못하겠다며 누군가가 너스레를 떠니, 이어 그 반응에 찬동하는 이들이 나왔다.

“이야. 하늘길도 걸어보고, 출세했네.”

“염병할 놈아, 난 진즉에 대장이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야이 새끼야, 대장이 조류냐? 하늘을 날게.”

저마다 헛소리에 가까운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누구 하나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이게 몇 년을 동고동락하면서 피를 잇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던 이들의 힘일까.

조운은 결국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아, 알았어요. 알겠다고요! 어차피 말려도 할 머저리에게 제가 뭔 말을 더할까요.”

“머저리라니, 말이 좀.”

전호가 뭐라 더 말하려다가 조운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무슨 호랑이가 노려보는 것도 저것보단 낫겠다 싶어 그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죽지만 말아요. 나도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어차피 저 정도로 연기가 자욱하니, 본채에서 아가씨도 움직일 거다. 어차피 널 움직이는 건 보험이니까 무리하지 말고 안전하게, 그치만 존나 빨리 와줘야 한다.”

그게 뭐냐며 조운은 한 번 웃고는 자리를 떠났다.

이제 그도 움직일 때가 되었으니, 전호는 저를 따르는 50인을 이끌고 영채 쪽으로 쭉쭉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가길 반복하여, 얼마나 올라갔을까.

이쯤이었을 건데.

전호가 아래를 살피며 확인하니, 이윽고 그가 보았던 벼랑길이 나타났다.

“……대장. 경사가 완만하다며.”

“지금까지 중에선 제일.”

물론 원래 있던 곳에 비해선 제일 경사가 완만하긴 하였다.

본디 있던 곳이 거의 직각에 가까울 수준으로 깎아 내려가는 절벽이었다면, 여기는 그나마 돌 같은 걸 굴리면 굴러는 갈법한, 아주 약간 완만한 느낌이었으니.

“안 높은 거 아니었소?”

“그런 말 안 했는데.”

확실히 전호는 이곳이 높지 않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물론 그나마도 다른 지점에 비해선 가장 살 확률이 높을법한 곳을 고르긴 했다.

문제는 그것도 성인 남자를 수십은 나열해야 겨우 맞먹을만한 높이라는 것.

“시발, 오늘이 진짜 죽는 날인가.”

“한 많은 인생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대장, 댁 발 꼬랑내 심하니까 다음 생에선 발 좀 잘 씻고 다니쇼.”

저마다 몸에 모포를 두르며 한탄하기 시작했다. 전호는 그 말에 차마 대꾸조차 못 하고 쓰게 웃으니, 이내 모든 이들이 제 한 몸에 모포를 몇 겹이나 두르고 남은 한 명이 그걸 밖에서 묶어주었다.

“나도 갈 수 있는데 말이요.”

“넌 남아서 우리 굴려줘야지. 다들 투구 잘 덮어썼냐? 팔다리는 부러져도 살겠지만, 대가리 깨지면 그것도 없다!!”

이제 모포를 머리까지 쓰고 나면 정말로 구를 일만 남았다. 전호의 말에 모두가 수긍하니, 그제야 모두 모포로 머리까지 가리면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남은 이가 이들을 하나하나 굴려서 떨어뜨렸다.

“씨바아아아아알!! 대장 지옥 가라!!!!”

“어떤 새끼야!!”

그랬다.

* * *

뭔가 하염없이 흔들리고 부딪히던 몸이 멈췄다. 시발, 너무 구르고 부딪혀 머리가 잘 안 돌아가지만, 아무래도 이런 잡생각을 할 정도면 살아남긴 한 듯싶어 품에 넣었던 단검을 하나 들어 모포를 살살 잘라냈다.

“야, 이 새끼들아. 다 살아있냐?”

그리 말하니 내 주변에 있던 모포말이 속에서 화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게 언어가 되지 못한, 무슨 앓는 소리밖에 안 들리긴 했으나 산 게 어딘가.

일단 모포를 다 썰고 밖으로 나와보니 저마다 모포를 썰겠다고 여념이 없다. 칼이 삐죽 튀어나와 쓱쓱 움직이는 게 다소 우습기도 했다.

“어휴, 이 머저리 새끼들.”

빠져가지고 즈그 대장보다 늦게 나와?

별수 없어서 칼을 하나 빼 들고 좀 도와주려고 모포에 칼을 가져갔다. 근데 확실히 좀 많이 둘러서 그런지 두껍긴 하다.

“아, 악!! 시바, 이런 시발! 적습이다!! 누가 내 팔을 찔렀다고!!”

“미안, 그거 나다.”

잘라주려고 했는데 잘못 썰었다. 그거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면 어쩌자는 거냐. 사람 민망하게.

결국 놈들이 다 모포를 썰고 나오기를 기다렸고, 이내 살아남은 이들은 전부 모포에서 나와 내 앞에 섰다.

살아남은 이들만.

“쯧, 다섯 놈은 먼저 하늘 갔구만.”

그들은 모포에서 꺼내어 우선 비탈길 아래에 몸을 기대어두었다. 입맛이 썼지만, 그걸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기에 그저 쓴맛은 쓴맛이라고, 안타깝지만 쓰게 웃으며 남은 놈들을 둘러보았다.

“일단 팔다리 멀쩡한 놈들만 간다. 어디 하나 부러진 새끼들은 얌전히 여기서 기다려라.”

그리 말하니 몇몇이 제 팔과 다리를 흔들어보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열 하고도 넷 정도가 뒤로 물러나니, 남은 인원수는 날 포함해서 딱 서른 명인가.

“아니, 근데 대장. 대장도 왼팔 작살난 거 아니요?”

살짝 눈을 깔아보니, 확실히 왼팔이 돌아가면 안 될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시발, 살았다는 생각에 죽으라고 아픈 느낌도 없었는데, 그냥 온몸이 아파서 몰랐었나 보다.

문제는 그렇다고 내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여기서 내려가면서 도망쳐오는 아군을 다시 하나로 규합해서 저 흑산적 놈들을 막으며 싸워야만 했다.

그런 자리에 우두머리가 없으면 어찌 도망쳐온 이들이 다시 하나로 뭉칠까. 안 그래도 패배를, 그것도 큰 대패를 겪은 이들을 두목도 없이 하나로 다시 뭉치기란 요원한 법이었다.

“긁힌 상처다.”

“이야, 시발. 요즘엔 팔 긁히면 저렇게 되나 보다.”

이 새끼들이 빈정거리기는.

나라고 시발 팔이 부러졌는데 싸우러 나가고 싶겠나. 그렇지만 곧 죽어도 우두머리는 나였고, 패전으로 도망치는 이들을 수습하려면 중심을 잡을 이가 필요했다.

어차피 여기서부터는 외길이었다. 진짜 산속으로 도망치는 이들은 모르겠으나, 어지간하면 다들 외길 가도를 타고 도망쳐왔다.

그렇게 도망쳐오는 이들을 모으면서 길을 내려가니, 얼추 머릿수 삼백 언저리는 다시 뭉친 듯싶었다.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아직도 저 멀리서 도망쳐오는 이들도 있었다.

점점 다시 불어나는 머릿수를 모으며 전장에 도착했다.

탄내가 진동하는데, 거기엔 분명 시체가 타는 냄새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부디 저 탄내 사이에 방삼은 포함되지 않았길 바랄 뿐.

“야, 방삼이가 후미에 있던 거 맞아?”

“그, 그렇습니다! 방삼 대장께선 마지막까지 남겠다고 하면서 저희를 먼저 올려보냈습니다!!”

쯧, 멍청한 새끼. 내가 분명 무리하지 말고 제 목숨부터 챙기라고 누누이 당부했건만. 이놈이 평소 싹수가 노란 놈이니, 보나 마나 또 지 대장 말을 귓등으로 흘렸겠지.

빌어먹을 놈, 배은망덕한 놈.

혀를 차며 다시 군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음만 같아서는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직도 도망쳐오는 아군이 너무 많았다.

그들을 다 수습하지 않고 간다면, 그리 서둘러 가도 같이 죽어주는 길동무밖에 더 될까.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되, 계속 아군을 받아들이면서 움직였다. 만족할만한 속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급행하여 꼬라박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저 멀리에 주저앉아서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가 한 명. 처음엔 누군가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며 보이는 얼굴은 더 말할 나위 없는 아귀의 얼굴이었으니.

“뭐냐, 아직 팔팔하네. 거 주저앉아서 뭐하냐?”

“대, 대장…!!”

이 머저리 같은 새끼를 드디어 만났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그 이상으로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부둥켜안으며 울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건 이번 전투가 끝난 뒤에 해도 충분하겠지.

그래서 놈에게 그냥 그윽한 눈길만 주고 있는데, 방삼이 주춤거리면서도 제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대장! 머리에서 피가, 아니 시발? 팔은 또 왜 그 모양이요?”

아, 이거?

“오다가 굴렀다.”

단언컨대 거짓말은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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