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13화 (13/343)

1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흑산적 그것은 분명 눈동자였다.

전역 사방에서 인간이 얽히고 섞여 혼잡한, 솔직한 말로 개판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가운데 그들 모두의 눈동자를 보았다.

전투 중이기에 멈춤 없이 움직이는 이들의 눈동자를 볼 수 있을 리도 없을 것인데, 그런데도 보였다고밖에 말할 방법이 없었다.

어쩌면 그 눈에 서린 미미한 안광을 직접 느끼는 것일까. 그러하면 그것 역시 우스운 얘기였다.

그 눈동자는 설령 입은 없지만 말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우습긴 하지만, 정말로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입이나 눈이나 같은 인체에 달린 구멍이기에 썩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지도 몰랐다.

죽여라, 혹은 살려달라. 죽고 싶지 않아. 제발. 그 더러운 검을 내 배에서 빨리 뽑아. 뒤를 보이면 찌를 수밖에 없잖아. 혹시 지금이라도 도망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싸워야 끝날까.

등등.

내 상상일 수도 있었다. 상상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것은 단지 뇌 내에서만 끊임없이 재생되는 것이었고, 정작 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창칼이 서로 맞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통곡, 혹은 함성. 고통에 절어버린 이들의 몸부림과 서로를 독려하는 소리뿐.

사실 이것도 정말 많은 소리였다. 정보량이 너무 많아 뇌가 미처 그것을 다 처리하지 못해 엉뚱한 것으로 둔갑시킨 것일 수도 있었다.

사람이 잔뜩 있었다. 잔뜩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잔뜩 죽어 나갔다.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의 목숨이 초개처럼 너무나도 쉬이 소비되었다. 이것은 소모나 희생이 아니었다. 소비였다.

이걸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쟁에 대한 고찰엔 심각한 오류가 생길 것이니.

그렇게 인간이라는 재료가 소비된 자리에 남은 것은 혈흔과 비명, 그 자리를 다시 메우는 이들의 함성뿐.

전쟁이란 건 참으로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열을 유지해! 한 발짝이라도 물러서면 그 옆에 선 전우가 죽는다!!”

소리를 질렀다. 흐트러져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아군과 적군은 서로 얽히고 섞여 창칼을 맞대고 있었다.

손에 쥔 검이 무겁게 느껴졌다. 몸이 무거워진 것이거나 손에 힘이 풀렸을 확률도 있었으며, 사실은 전부 다일 확률도 제법 높았다.

검 자체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글쎄. 검에 들러붙은 핏물과 살점들은 분명 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엔 그리 가벼이 느꼈던 몸이 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무릎이 달달 떨리려는 것을 억지로 힘주며 버텼다.

사실 버텼다기보단, 그저 오기였던 것 같기도 싶었다.

벌써 반나절 이상이나 진행된 전투.

목책은 벌써 제역할을 다하고 망가진지 오래. 아군은 그저 서로에게 기대며 그것을 벽으로 삼아 상대와 맞서고 있었으니, 대충 보기에도 전선은 백중지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떠한 반전도 없이, 그저 밀고자 하는 의지와 버티고자 하는 의지의 충돌.

“와, 시발. 존나 힘드네.”

또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그것을 대체 몇 번이나 반복했을가. 아마 수십은 이 손으로 직접 상제의 곁에 보내드린 것 같은데, 정확한 숫자까지는 아무래도 알 방법이 없었다.

백중지세.

확실한 열세였을 병력을 가지고도 우세를 내주지 않으며 버텨내었다. 분명 이건 직접 앞장서서 적병을 베어내고, 또한 병사를 독려했던 내 공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오롯이 내 공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눈부신 이가 있었으니.

“이 상산의 조운에게 덤빌 자, 더 없습니까?”

빛나는 은색의 창이 번뜩일 때마다 한 명씩 바닥에 몸을 뉘었다. 빠르고 간결하게, 적어도 내 눈에는 어떠한 낭비도 없는 정확한 창 솜씨.

그녀가 한 번 달려들 때마다 적병이 혼비백산하여 물러나기 바빴으니, 이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솜씨였다.

저게 진정 인간이긴 한가.

창을 휘두름에 있어선 검보다 빠르게. 그렇지만 창을 내지름에 있어선 범인은 쉬이 볼 수도 없을법한 속도로 정확하게 그 급소를 찔러내는 모습이 정말 천부적인 살인마의 재능이라 평하고 싶었다.

상대는 분명 조운의 기세에 기가 죽었다.

제아무리 잔혹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흑산적이라도, 접근하는 것만으로 저이들 목을 잡초 뽑듯이 쳐 날리는데 그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저건 나라도 무섭겠다.

“제2열, 앞으로 나와! 천천히 1열을 받쳐주면서 교대. 1열을 빠져나오면 바로 후방으로 빠져서 휴식이다!!”

전쟁이라고 해도 온종일 미친 듯이 싸울 수만은 없는 노릇.

당장 1시간, 아니 30분만 가열차게 싸워도 죽을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이 전투였고, 그것이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전장이었다.

그렇기에 당장 이들에게 가르친 훈련은 단 두 가지였다.

오와 열을 지키는 것, 아군과 능숙하게 교대하는 방법. 그 이상은 가르칠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그러기엔 당장 가르칠 사람조차 부족했다.

하지만 그런 작은 훈련조차 결국 도움이 되었다. 빠르게 인원을 교대해주면서 차륜전의 형세를 유지한 채로 전선을 지킨다.

그것만으로도 그 훈련의 모든 성과는 이룬 셈이었다.

“조운! 물러나라!!”

그녀에게 크게 소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몸은 삐걱거렸으나 쉴 만큼은 쉬었다. 어차피 이제 곧 해가 떨어지니, 전투도 슬슬 소강상태로 변할 터.

미리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후, 정말 끝이 없네요.”

내 곁으로 다가온 조운이 제 군청색 머리칼을 털어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새파란 눈은 이미 힘이 빠져 살짝 처졌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적을 베어내던 팔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오늘 그녀는 남들의, 나보다도 배 이상은 잘 싸워주었다. 그녀 덕분에 내가 전투에만 치중하지 않고 아군을 시야에 두고 움직일 수 있었다.

조운은 내 예상을 기대 이상으로 웃도는 활약을 보여줬다.

이건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고생했다. 진짜로, 정말 수고 많았다.”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니 그녀가 제 창으로 땅을 짚었다. 후들거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조운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이에요. 벌써 이러면 긴장 풀린다고요.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제가 주저앉으면 아군 사기가 떨어질걸요?”

그도 그런가. 확실히 그녀가 사람의 이목이 끊기지 않았음에도 주저앉는다면 적은 환호할 것이요, 아군의 사기가 다소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오늘 단 한 번의 전투.

그것만으로 조운이라는 이름은 아군에게 있어 승리의 여신처럼 새겨졌다.

“그러면 막사로 돌아가면 친히 고생했다고 치하해주지.”

내 말에 조운이 코웃음을 쳤다.

“친히? 치하? 그런 것보다는 앞으로 누이에게 어떻게 잘 대해줄 것인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부터 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아직 안 끝났다.”

그리 말하면서도 우리는 웃고 있었다.

슬슬 해도 저물어갔다. 적들도 슬슬 물러나기 위해 눈치를 보며 전투를 멈추고 대치상태를 유지하며 살살 물러나고 있었으니.

오늘 하루는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건 내게 묘한 성취감을 줌과 동시에, 아직 이 전쟁이 한참 남았다는 걸 암시하기도 하다 보니 참 애매함이 있었다.

솔직한 말로는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내일을 위해 다시 목책도 엮어야 했고 부상병을 모아 후방으로 돌리는 작업도 해야만 했다.

“자, 이리로 와요.”

조운이 내게 손짓했다. 그러더니 제 어깨를 가리키며 말하길.

“조금만 기대요. 그쪽 지금 표정 엉망인 거 알아요?”

엉망이겠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속된 말로 씹창났지 않았을까.

항상 이랬다. 나는 전쟁에만 나서면 머리가 복잡해지며 온갖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나만 이런 것인지, 사실 모두가 이런 건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기억하기론 소년 시절, 관군으로 지원해 황건적과 싸우며 사방을 떠돌 즈음. 정확히는 영천. 그 땅에서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

아군과 적군을 망라하고 모두가 처절했던 그 전쟁.

내가 진정한 전쟁이 무엇인가에 대해 깨달았던 그 땅에서, 황건적의 목이란 목은 모두 쳐내고 그들의 가족까지 무참히 살해해야만 했던 그 전투.

아마 그때부터 내 머리는 조금 맛이 가버린 듯싶었다.

“내 동생에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그쪽 표정 진짜 최악이거든요? 그런 표정으로 돌아다니면 아군 사기 까먹기 십상이에요.”

조운은 그리 말하며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이런 여자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을 사람이라니.

다소 이죽거리는 감은 있지만, 그런데도 배려와 존중이 느껴지는 그녀의 행동에서 조금 전까지 전쟁의 신이 아닐까 싶었던 모습과의 괴리감이 넓어졌다.

그건 그렇고 그녀는 내게 퍽 친근하게 다가왔다.

등을 맞대고 온종일 싸우면서 전우애라도 싹튼 것일까. 아니면 모종의 이유인지.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겠지만, 갑작스레 가깝게만 느껴지는 이 거리감은 대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대체 그녀는 어째서 우리와 함께할 생각을 한 것일까.

의문은 있었지만 이를 떨쳐내고자 드러내며 살짝 웃었다.

“우스운 소리. 그리고 아직 네 동생 아니다.”

툴툴거리긴 했지만, 그 호의에는 기대기로 했다.

호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의 온기를 원했다. 누군가와 접함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해가 점점 저물어갔다.

조금씩, 점점.

이윽고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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