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흑산적 “뭐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릴까? 물론 아가씨가 무인은 아니겠으나, 어차피 비유 아니요. 지금 상황에선 어차피 마찬가지지. 어찌 칼이 상할 걸 우려하여 싸우지 않느냐는 말이요.”
내 아가씨와의 약속 이후, 언제나 그녀의 칼이 되고자 했다. 1년 가까이 도적 떼를 치고, 베고, 죽이면서 그 손에 묻힌 피가 얼마인가.
이 오원 제일이 되어 병주에 이름을 날린 것도 전부 그 약속의 일환이었다.
모든 건 그날의 약속이었다.
나는 오원의 공포로 군림할지니, 당신은 날 배신치 말라.
이민족과 도적이 판을 치는 이 오원 땅에서 내가 으뜸으로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는가. 다치기도 많이 하였고, 죽을 뻔했던 적도 더러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싸워야 한다는 거야.”
“당장의 이유를 놓고 본다면 병량이 없소. 치중이 부족하니 도망친다고 하여도 그 뒤가 없지. 어차피 뒤로 가도 파멸이라면, 차라리 한 번의 고비를 이겨내어 바로 전화위복을, 기회가 있다면 잡는 게 맞지?”
여기서 물러서면 결국 유주 혹은 기주인 것이, 이동할 동안의 식량만은 어떻게든 모을 수 있겠으나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군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가서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겠는가. 결국에는 거의 1년 가까이 노력했던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두 번째로는 상대가 흑산적이라는 거? 알다시피 우리가 밑에 꿇린 저놈들, 다 병주 사람들이야. 병주에서 흑산적은 나라님보다 무섭다고 하는 거 알지?”
상대는 흑산적 중에서도 정식으로 장연의 바로 아랫줄에 위치할 대영채의 군주일 확률이 높았다.
오천 가까운 병력을 움직일 정도면 거의 확실하다고 보는 것이 맞는데, 그것들은 단지 흑산적의 아래로 들어간 어중이떠중이랑은 달랐다.
“흑산적이랑 싸우라고 해도 쫄 판국에, 흑산적에게 계속 쫒겨다닌다는 공포는 어떻게 할 거요? 이 악물고 싸워라도 보는 것과 뒤도 안 보고 도망친다는 건 확연히 다르오.”
안 그래도 내가 억지로 억누르고 있던 놈들이다.
폭력에 의한 통치였다. 배신자의 목을 내리쳐오면서, 공포와 폭력으로 굴복시키며 모은 게 지금까지 모은 이천이라는 머릿수였다.
죽음에 대한, 나에 대한 공포와 굴복하면 안전하리라는 안주. 그것을 잘 조립해서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것이 그들에게 건 족쇄였다. 그간 놈들을 끌고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쌓아 올린 공포와 그 소속이라는 자신감.
그런데 여기서 도망치면 그 모든 게 무너진다.
“아가씨는 머리가 좋으니까, 뭐 내가 모르는 생각이 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것만큼은 나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난 반드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
뭐, 말따나마 장연이 직접 수만을 이끌고 몰려오는 것도 아니다. 숫자는 확실히 많지만, 그것 또한 압도적이라 하기엔 부족함이 있으니.
충분히 해볼만하다.
아니, 해볼만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했다.
“게다가 당장 이 도적놈들을 뭐라 생각하시오? 영채를 버리고 도망치겠다고 하면 좋다고 따라올 거 같소? 나 같아도 도망치거나 우리 목부터 노리겠네.”
소연 아가씨는 분명 똑똑했다. 판을 보는 눈이 있고, 거의 미래예측이라 해도 이견이 없을 법한 이해력을 수반한 판단력도 있었다.
게다가 매일 읽고 있는 이 죽간도 병법을 정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매일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노력한다. 그것은 재능 이상의 영역으로, 언젠가 반드시 크게 대성할 기본 덕목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경험이 부족했다.
이 호세. 자랑은 아니지만, 칼을 들 수 있을 무렵부터 전쟁에 뛰었다.
처음에는 황건적 토벌, 거기서 나아가 용병. 이제는 도적질을 겸하고 있었다지만 벌써 햇수로만 6년을 훌쩍 넘는 기간을 칼을 잡으며 지내왔다.
오히려 아가씨의 이런 미흡한 점이 살짝 기쁘기도 했다.
아직은 내가 도울 일이 많았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고, 그녀가 나에게 의존할 수 있는 구석이 있었다.
아직 그녀에게 이 무지렁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언제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게 썩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나보다 더 대단한 이들과 어울리고 더 위로 올라갈 사람이지만, 지금만큼은 내가 그녀의 기둥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당신이 내게 말하지 않았소. 이 오원에서만큼은 공포의 존재로 군림하라고. 이제와서 꼬리 만 개처럼 도망치라고? 그럴 수야 있나.”
“그건…!!”
뭐라 더 말하고자 하는 아가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아.”
굳은살이 잔뜩 배겨 볼품없는 손이었다. 자상이나 흉터도 많은, 누가 보더라도 수려하다 평하기엔 부족함이 있는 손이다.
그렇지만 난 단 한 번도 이 손을 부끄러이 여긴 적이 없었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역사.
손바닥에 난 긴 자상은 어릴 적 칼 잡는 법도 모르면서 싸우다가 손이 미끄러져 베인 상처였다. 손등의 화상은 불 난리가 난 영천에서 황건적과 싸우다가 난 상처.
그 밖에도 수많은 흉터가 내 삶의 증거였다.
“손이 좀 추하지?”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한테 내민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제 손을 쥐락펴락 반복하며 묘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
“당신에게 모자란 경험은 내가 채워줄게. 앞으로 아가씨는 더 많은 경험을 할 거고, 다양한 걸 겪으면서 성장하겠지만.”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그 전까지만이라도.
“내가 그때까지는 당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이니, 당신은 날 붙잡고 휘두르기만 하면 돼. 미래는 아무도 모르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날 믿으라고.”
내가 해주겠다. 피를 보는 것도, 피를 흘리는 것도.
그러니 당신은 나를 믿어라. 내가 당신에게 모든 걸 바치기로 했다. 비록 파락호에 불과한 한량에, 배움이 짧아 모자람만 있는 사람이지만 칼밥만큼은 잔뜩 먹었다.
그 말을 끝까지 듣던 소연이 작게 고개를 들었다.
떨리는 눈동자, 꼭 다문 입술. 원래 피부가 하얗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상황 탓일까. 괜스레 창백해 보이는 피부가 눈에 밟혔다.
“…이길 수 있겠어?”
“물론. 당신이 믿어주고 밀어준다면, 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저것들의 목을 모조리 쳐내 보이지.”
가슴을 두드리자니 웃음이 나왔다. 꾸며낸 것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그것은 자연스레 고양감으로 이어졌다. 이런 기분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날 바라보던 소연이 내 손을 잡았다.
“멍청하긴. 넌 죽어선 안 돼. 네가 죽으면 패배라고 생각하고, 그런데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
딱 한 차례.
그녀는 내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가서 싸워. 이겨서, 내 곁으로 돌아와.”
그리 말한 그녀가 내 손을 꼭 부여잡았다. 나도 그 손을 맞잡으니, 우습지만 이 순간만은 우리의 마음이 이어진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떤 여자를 안아도, 어떤 싸움에서 이겨도 이런 고양감은 느끼지 못하리라.
내가 인정하고 존중하던, 그렇기에 인정받고 싶었던 여자가 지금, 이 순간. 드디어 나를 인정하고 기대주었다. 내게 의존하며, 그 미래를 나에게 맡겼다.
장차 분명히 대단한 사람이 될 사람의 미래를 내 손으로 이어간다.
“으흠!! 서로 의지하며 존중하는 두 분의 모습이 보기는 좋은데, 슬슬 제가 발언권을 가져도 될까요?”
“……뭐냐, 아직도 있었어?”
솔직히 말해서 진짜 완전히 존재 자체를 까먹고 있었다.
방금 그 장면을 전부 보였다는 생각에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졌다. 낯뜨거운 남녀 간의 정사를 누군가에게 발각당한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건 아가씨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조운은 그런 우리를 힐끗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당신들이랑 있으면 말려드는 것만 같아요.”
괜히 성깔 부리긴. 조운 그녀도 분명 뭔가 목적이 있으니까 흑산적이 떼거리로 몰려온다고 하는데도 여기서 떠나지 않고 이러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끈질기게 남았겠어?
그리고 예상대로 조운은 양손으로 포권을 취하며 말하길.
“이 상산의 조운, 비록 뜻은 있으나 팔이 네 개인 것이 아니기에 감히 흑산적과 대적할 생각을 못 하였는데, 당신들께서 그걸 행하고자 하신다면 부족한 몸이오나 객장으로 그걸 돕겠습니다.”
“어엉? 뭔 헛소리를….”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하기도 전에 소연이 확 튀어나왔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녀는 잽싸게 조운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 주시겠어요!?”
아니 시발? 아가씨 잠깐만. 그거 배신이야!
아니아니, 방금 전까지는 날 믿는다고 그렇게 좋은 분위기를 풍기더니, 이상한 계집애 하나가 곁다리를 걸친다고 하여 바로 그쪽으로 달려가!?
어쭈? 방긋거리며 웃는 게, 내 때랑은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네??
억울해도 너무 억울했다.
“흥. 자신감은 넘치네. 팔이 네 개가 아니어서? 그럼 팔이 네 개라도 됐다면 저 흑산적 놈들을 모조리 도륙 낼 자신이 있겠네?”
반쯤 도발의 목적으로 빈정대며 말하니 조운이 씩 웃는다. 비웃음인 듯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자신감이 철철 넘쳐 흐르는 얼굴로.
“못할 것도 없죠.”
결국 이만 빠득빠득 갈며 소연과 조운이 얘기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쁜 계집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낚은 물고기다 이거냐.
어차피 전쟁을 결정했다면 슬슬 그에 맞는 준비를 할 필요도 있기에 산채에서 조용히 나와 군영으로 발길을 돌렸다.
늦가을의 바람이 묘하게 차가운 날이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