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9화 (9/343)

9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상산의 조운 슬슬 우리 인근에서 도적이란 것의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거의 반년 이상을 도적 사냥에 힘썼기에 당연한 수순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진짜 슬슬 위험한데.”

돈이 없다.

지금까지야 도적 떼를 털면서 나오는 것과 시체에서 벗겨낸 것들을 팔아서 어떻게든 버티기야 했다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불가능해졌다.

애당초 기반도 없이 병력만 모이면 이런 문제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슬슬 선택하긴 해야 할 건데.

원래 이렇게 규모가 큰 도적단이라면 아예 어디 고을 하나 점령하고 거기서 백성들을 지배하며 그 고혈을 빨아 생존했다.

우리가 아마 평범한 도적단이라면 당연히 어디 하나 점령해서 똑같이 했겠지.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었으나 아가씨 말하길, 그건 당장 갈증을 해소코자 바닷물을 들이키는 꼴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물론 나도 구태여 민간인을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결국 다른 방법으로 살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차라리 어디 군에라도 의탁해야 하나.”

당장 생각나는 것은 기주자사 한복이 있었다. 여기서 거리도 멀지 않으면서 꽤 넓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지방 토호.

그렇지만 우리 행세가 좀 도적 떼와 비슷해서 쉬이 받아줄 것 같지도 않은데.

유주자사 유우 정도도 가능하려나. 어쩌면 한복보다야 입지는 나쁘지만, 그 유우의 인물평만 놓고 보자면 오히려 나은 면도 있었다.

“의탁하면 그 순간 다 흩어져버릴걸요?”

“그도 그렇겠…, 지?”

아니 시발 깜짝이야.

분명 혼잣말이었는데 누군가가 대답하는 꼴을 보아 고개를 돌리니, 얼마 전에 만났던 계집애가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오랜만은 시발, 엊그제 봤는데.”

근데 이 계집애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분명 저번에 만났을 때 다신 안 볼 사람처럼 굴지 않았던가. 나였으면 일단 절대로 이 근처에 고개도 안 내밀었을 듯.

“뭐냐. 왜 아직도 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려.”

“군 의탁, 안 하시는 게 나아요.”

아니 시발, 묻는 말에 대답하라니까 딴소리를 한다. 고개를 살짝 돌려 시선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는 태연자약한 모습에 헛웃음까지 나올 뻔했다.

“뭐가 목적이냐. 설마 내 자지냐??”

“이익!! 흐, 흐음. 우연이네요! 마침 저도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순간 이를 악물다가도 금세 표정을 풀고 딴청을 부렸다. 아무래도 이 계집애에게 있어 그 일은 생각 이상으로 큰 충격이었던 듯싶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 가도 우리 산채 빙 두르는 길인데.”

잠시 흐르는 침묵. 슬쩍 얼굴을 봤더니 흰 피부가 새빨갛게 물들어간다.

몸도 부들부들 떨면서 또 눈매가 흔들리는 것이, 뭐라고 한 마디 더했다간 진짜 애 하나 울릴 것 같아서 작게 뒷머리를 긁었다.

“뭐 아무튼 의탁은 생각만 하는 거지.”

“당신의 주인도 그걸 바라는 거 같진 않은데요.”

어, 다시 살아났다.

“나야 아가씨가 뭔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가 있나. 나 같은 무지렁이는 그냥 정해주는 대로 따라갈 뿐인 것을.”

그녀는 내게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누구나 알고 있을 도덕적인 길이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차마 그것이 옳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가시밭길.

너무나 당연함에도 그걸 당연하다 생각하지 못하게 됐었다.

나도 삶의 각박함에 매몰되어 있었다.

단지 나 하나, 넓혀봐도 주변 사람과 단지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해서 그 당연함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현실에 매몰되었던 변변찮은 한량을 꺼내주었다.

“당신이 누군가의 말에 그저 따르기만 할 사람으론 안 보이는데 말이에요.”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한데 말이지.”

그렇지만 남에게 그걸 직설적으로 들으니 영 찝찝한 기분이다.

물론 나도 누구를 모시는 게 싫어서 산골짜기로 도망쳐 나온 전례도 있고, 누구 명령만 듣는 삶 같은 건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누누이 생각했었으니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냥 따라봄 직한 미래를 제시했으니 내 감정 같은 건 죽이고 따라가는 거지. 그냥 칼 한 자루가 되어서 누구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냐.”

“생긴 거랑은 다르게 수동적이시네요.”

내 생긴 게 뭐 어때서 그러냐?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얼마나 구시대적인 발상인가. 관상? 웃기는 소리. 그렇게 치면 본인도 생긴 거랑 안 맞으면서.

“그쪽도 자.”

“아무튼! 귀순이나 의탁은 좋은 판단은 아니네요.”

지를 탐할 인상은 아니지 않냐고 하려 했더니만, 어떻게 바로 눈치를 챈 것인지 도중에 말을 싹둑 잘라 버렸다.

억지로 말을 돌리려는 것 같아서 오기가 들긴 했지만, 구태여 이 계집애를 그렇게 괴롭힐 이유도 없었다.

“뭐, 그렇긴 하지. 애당초 아가씨 정도면 그런 한직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면 여기서 이러지 않아도 충분히 한 자리는 차지했을 터이고.”

“……그 사람을 꽤 높게 평가하시네요.”

조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기를.

“전 사실 잘 모르겠네요. 애당초 제가 여기 온 것도 오원 인근 무패의 도적단을 이끈다는 호세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니까.”

“바깥에서 보면 모르는 것도 있는 법이지.”

당장 저 아가씨가 예측했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낙양에서의 내전, 정원의 중앙진출, 흑산적을 토벌하려는 조정의 행보까지. 지금까지 그녀가 내놓았던 모든 예측은 틀린 법이 없었다.

“대단한 사람이다. 여러모로.”

이 병주에서 호세라는 이름이 제법 날린다고 한다면, 그런 나를 움직이고 수하로 부려먹을 수 있는 진소연이라는 사람이 더 대단한 것이 아닌가.

오원의 미친개가 두렵다면, 그 개를 기르고 있는 진소연이라는 이름을 알아야 할 터.

아직은 내가 선두에 섰기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때가 온다면 너뿐만 아니라 만천하의 모든 이들이 진소연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할 거다. 이것 또한 내기해도 좋아.”

기억하지 못한다면 기억하게 하리라.

그 잘남을 모른다면 일깨워주겠다.

저 사람은 앞으로 더 대단해져야 한다. 내게 보여준 그 유치함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녀는 위로 올라가게 만들겠다.

내 손에 뭘 묻힌다고 한들, 반드시.

“풋, 푸흡! 끄흐흐!!”

“…뭘 또 쪼개. 네 머리도 쪼개주랴?”

남이 기껏 진지한 말을 하고 있는데, 이 계집애는 그걸 보더니 입을 틀어막고 끅끅거리는 것이,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고 말하듯이 웃어 재끼고 있다.

“아, 아뇨! 죄송해요. 그냥, 있잖아요. 병주에서 한창 이름을 날린다는 미친개가 이리도 연심을 품은 소녀 같은 반응을 보이니까, 그게 좀 웃겨서.”

“우습냐? 오냐, 오늘 네 꼴도 우습게 만들어주마.”

연심? 웃기지 마라.

저 사람의 진면목을 안 순간부터 이미 그런 발칙한 상상은 저버렸다. 저 사람에게 연심을 품는다고? 그건 불경함을 넘어선 무도함이었다.

그릇이 다르잖냐, 그릇이. 애초에 보는 풍경이 다른, 전혀 상반된 세계에 사는 사람과도 같았다.

사는 세계가 다른 것인데, 어찌 그런 사람을 올곧게 바라보고 연심을 품겠나. 품을 수 있는 감정은 존중이나 존경 정도면 충분했다.

적어도 그녀가 배신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를 존중하고 발받침이 되어 위로 올려주겠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게 그녀와 나누었던 약속이었다.

“아, 죄송하다니까요. 그렇게 이 빠득빠득 갈지 마세요.”

“너 조심해라. 내가 기억했어.”

조운은 그런 내게 머쓱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여기서 더 뭐라고 할 말도 없고, 솔직히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 언급하는 것도 그러하니 상대가 사과한 시점에서 더 말하지 않는 게 나았다.

“아무튼 돈이 없으시다는 것 같은데, 맞나요?”

“어. 보증 좀 서줄래?”

“그건 남편이 생기더라도 안 서줄 건데요.”

거참 올바르게 배운 아이구나. 그럼, 그럼. 보증은 아무한테나 서주는 게 아니긴 하지. 그렇지만 우리가 어디 남인가.

서로 부둥켜안고 음부를 보이던 사이였다. 그건 어떤 의미로 부부의 정을 맺었다 할 수 있지 않은가?

“또 무슨 나쁜 생각하죠.”

“아니, 어떻게 알았지?”

“그렇게 음흉하게 웃으면 누구라도 알아요.”

방삼이도 그렇고, 소연 아가씨도 그러더니. 내가 생각보다 얼굴에 티가 잘 나는 성격인가? 나름 진중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조운은 그런 나를 보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돈이 없다면 가장 간단한 건 지방 호족들과 연계하는 거 아닌가요? 투자 좀 받으면서, 여차할 때 그들의 사병 역할을 대행해주겠다는, 뭐 그런 계약은 그리 드문 건 아닐 텐데요.”

“연이 없어. 우리가 당장 연고로 둔 곳이 무도현인데 그곳은 이민족과도 경계를 맞물려서 중앙의 손길이 닿지 않기에 부를 쌓은 이도 없지. 타지방 토호는 연고도 다른 무리에게 신뢰를 줄 이유가 없고.”

안타깝게도 우리 쪽에 이름난 명사나 명가 출신의 인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소연 아가씨도 자신은 무연고의 사람이라 말했고 나는 집도 절도 없는 한량. 나머지 놈들도 말해 입 아프다.

“그러면 이름을 걸어주겠다는 건요? 어차피 하는 일이 도적 토벌인데, 그걸 지방 관리나 토호들의 이름으로 행하고, 공적을 내어주는 대신 병량을 얻는다거나.”

그건 분명 나쁘지 않은 수단이었다. 만약 우리가 단지 이 인원을 먹여 살릴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그 수단을 선택했으리라.

단지 문제가 있었으니.

하나는 결국 그렇게 해 신뢰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위로 올라가기 요원한, 말 그대로 현상 유지 정도의 방책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이 주변에서 벗어나면 흑산적이 득세한 영토라는 것.

“안 돼. 이 주변에서 이제 남은 도적 떼는 거의 흑산적의 손길이 닿아있어. 얼마 전까지야 조정에서 흑산적을 향한 대대적인 토벌령이 내려와서 몸을 사렸지만, 이게 취소되면 놈들이 다시 움직인다.”

그럴 경우, 흑산적이라는 거인의 움직임에 우리 같은 소수의 군체는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박살날 우려가 있었다.

“그게 취소된다고요? 조정에서도 병주를 관리하기 힘들었던 것이 흑산적이 득세한 까닭이었는데, 그런 이들을 토벌하겠다 천명해놓고 그걸 무를 리 없잖아요.”

“…뭐,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아니 황실도 가오가 있지, 대장군 하진에게 천명하여 국가 계엄령까지 선포하고 흑산적의 토벌을 명했는데 그걸 무른다고?

그 순간 국가의 위엄과 계엄령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다.

황실이 친히 계엄령까지 선포하며 대대적인 흑산적 토벌을 명하고 인근 군벌까지 끌어모았는데, 그걸 손바닥 뒤집듯이 없던 일로 한다니?

자칫 잘못하면 사사로이 군을 움직였다고 비난받을 소지가 충분했다.

당연히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이쪽 아가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서 말이야.”

소연 아가씨는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흑산적 토벌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나야 의구심이 드는 게 한둘이 아니긴 한데, 우리 두목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그게 바르다고 생각하며 움직여야지.

“그게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요. 조정의 지엄한 명이 그리 쉬이 바뀔 리가 없으니, 흑산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아무튼. 우리는 아가씨 명령 없이는 더 날뛰는 건 지양하기로 했으니까, 이제 남은 건 최대한 추스르면서 사태를 관망하는 정도지. 더는 방책이 없어.”

“어휴, 외골수.”

멋대로 말하라. 물론 정말로 아가씨의 말과 다르게 흑산적 토벌군이 병주로 침입해올 확률이 없지는 않았으나, 여차할 때는 무도현에 박혀있으면 그만이었다.

그걸 위해 없는 살림에 무도현에 진소연의 이름으로 꼬박꼬박 구휼을 행했으니, 혹여나 도적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한 베풂이었다.

“뭐, 말동무는 고마웠다. 일이 없으면 슬슬 여기서 떠나라고. 그쪽 말대로 중앙군이 오건, 흑산적이 움직이건 슬슬 병주가 소란스러워질 테니까.”

거기까지 말하고 등을 돌렸다.

아가씨는 아무래도 이 계집애를 같은 편으로 삼고 싶었던 것 같지만, 어차피 같이 갈 수 없다면 남이다.

솔직히 난 아직도 이 계집애가 그렇게 꼭 필요한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인 입장이었기에 그다지 미련은 남지 않았다.

물론 같이 다니면 놀려먹는 재미는 있을법한 아이였지만.

“저, 저기 잠시…!!”

“대자아아아앙!!”

아니 저놈은 또 뭐 그리 급하다고 저리 달려오는 건가. 뒤에서 조운이 내게 뭐라 하려는 듯싶었지만, 그것보단 우선 방삼에게 다가갔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러냐?”

“시발! 흑산적이요, 흑산적! 놈들이 지금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소!”

사태가 급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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