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8화 (8/343)

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상산의 조운 조용히 듣고 있을 생각이었다.

내가 나설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아가씨가 말하고 있으니 그저 듣고 있는 것이 바른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은 했었는데.

“진짜 드럽게 시끄럽네. 아가씨, 뭐 합니까? 이런 애랑 무슨 얘기를 하겠다고. 어차피 공친 거 그냥 보냅시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어차피 조운이라는 계집애의 눈에는 우리가 산적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이런 여자에게 인정을 받아 어디다 쓰겠다고 이러는 건지.

“저는 보이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에요.”

조운이라던 여자는 그리 말하면서도 또렷하게 날 응시하고 있었다. 뭐, 사실 우리를 도적 패거리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응. 맞아. 우리 도적 패거리야. 그러니까 얌전히 갈 길 가시라고. 댁 둘러싸고 있는 게 몇 명인지 알기나 해? 죽기 싫음 걍 꺼지라고.”

“호세, 잠깐.”

아가씨가 내 팔을 붙잡았다.

“아니 아가씨. 아가씨는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천것들에게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던가 도덕적인 행실 같은 건 너무 먼 얘기 아니겠소.”

만약 그런 걸 우리에게 바란다면 그건 주소를 잘못 찾아도 한참을 잘못 찾은 셈이었다. 적어도 나나 다른 이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멀었으니.

아가씨는 이 계집에게 무엇을 봤는지 모르겠다마는, 아가씨 나름의 판단으로 이 계집애를 좀 꼬드겨볼 의향이 있었던 듯싶었다.

그것도 뭐 다 공친 거지.

“올바른 게 뭐야. 그런 게 밥 먹여주나? 굶어 죽어가는 놈들에게 무기를 잡지 말라고? 그건 너무 윗분들 생각이고.”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나만 해도 당장 어릴 적에 왜 검을 쥐었던가. 간단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살려면 식량이 필요한데 식량을 얻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으니까.

그렇게 전쟁을 돌면서 방삼이를 만났고, 그렇게 점점 손이 닿는 이들을 거느리고 다닌 것이 이렇게 되었다. 아가씨는 그 이상을 바라여 사람을 모으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게 전부였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아가씨의 말에 감화되었을 뿐.

내 이유는 처음부터 그것뿐이었다.

“법? 뭐? 사병? 그런 거 생각해본 적도 없어. 법이 뭔데. 그 법은 굶어 죽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뭐 그런 건가?”

우스운 일이지.

어차피 더 할 말도 없었기에 이 계집애를 냉큼 쫓아내려고 했다. 아가씨의 말을 잘라먹었던 건에 관해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지.

딱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

“법은 지엄한 것이에요.”

“아나, 이게 진짜.”

고개를 돌리니 여전히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선 시선을 돌리지 않는 여자가 한 명. 아가씨는 나와 조운을 번갈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그래. 법? 지엄하지. 지엄해야만 하고. 인간의 귀천과는 관계없이 그 누구나가 그것을 지켜야 하니, 감히 법 앞에선 누구도 고저를 논할 수 없지. 맞아. 법이란 응당 그래야만 하지.”

우스운 일이었다. 본인이 말하면서도 부끄럽지는 않은가?

그녀가 말하는 바는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법이 있으니 모두가 그것에 복종한다면 이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반대로 고개를 돌려보자.

대체 이 세상천지에 누가 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어?

“당장 이 근처만 보자고. 그 법이라는 걸 제대로 지키는 놈들이 많을까, 그 지엄함을 비웃고 농락하며 어기는 놈들이 많을까?”

아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으니.

“후자가 훨씬 많겠지. 내기해도 좋아.”

안 그래도 개판이었던 세상은 어찌 된 영문인지 황건의 난 이후 절정에 다다랐다.

세상이 개판이기 때문에 살고자 반란을 일으킨 그 수많은 민중을 보고도 고관을 차지한 윗분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황건의 난 이후의 재건을 백성의 고혈로 메꾸고 있었다.

“당장 어디 태수직만 하더라도 삼공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도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아닌가?”

매관매직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태수직은 어지간한 중앙 고위 관리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당장 인구가 적고 흑산적 탓에 제대로 관리하기 힘든 병주의 군수직조차 평민에겐 상상하기도 힘든 고액에 거래되는 것도 그런 이유.

내가 알기로 당장 오원군만 하더라도 벌써 4번이나 군수가 바뀌었다.

전임 군수가 죽어서가 아닌, 황실에서 차례차례 파견한 인사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거다.

“…일부가.”

“응?”

“그 일부가 법을 사사로이 어긴다고 하여 그것을 어기는 행위가 정당화될 순 없어요. 그렇게 하나둘 법을 어기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법은 존재의의를 잃어요.”

맞는 말이다. 정말 고지식한 계집애라고 칭찬해줘야 할까.

딱 서당에서 학문을 사사 받은 직후의 모범생들이 할만한 답변이었다.

“그러면 먼저 고위직의 높으신 분들께서 실천하셨어야지. 십상시라는 불알 없는 내시들부터 해서 높으신 주의 자사님들이랑 군수님들이. 가장 청렴해야 했을 분들이 우리의 고혈만 안 짠다면야 우리 같은 천것들이 법을 어길 이유가 없지.”

그분들이 가장 먼저 그놈에 잘나신 법이라는 걸 대놓고 어기고 있는데, 우리 같은 천것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응?

우스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신들이 사사로이 군을 모으는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에요. 대체 무슨 연유로 제게 인정받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들의 행위를 부정합니다.”

조운은 그리 말하면서 내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예. 당신의 말이 맞아요. 높으신 분들의 아욕에 휘둘려 천하가 그 올바름을 잊고 있죠. 애당초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 당신들의 행위 역시 나쁘다고는 못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녀는 그리 운을 뗐다.

“나쁘지 않다고 해서 정의롭다고는 하지 않아요.”

분명 그것은 나름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긴 했다. 애당초 내가 왜 이 여자랑 이렇게 떠들고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나름 고개를 끄덕일 구석은 있었다.

그렇지만 정의로움에 대해선 다소 의문이 있었다.

“거참. 세상 모든 사람의 팔이 세 짝이면 두 짝 달린 사람이 괴물인 거야.”

정의로움을 아무리 고집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은 사회적인 생물이었다. 그 정의로움을 모두가 잊었을 때, 과연 홀로 정의로움을 외치는 게 올바른 행위인가?

그 말에 조운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답하기를.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팔이 두 짝인 것을 자랑스레 여기고 있다면, 그걸 올바르다 여기고 있다면 문제는 없죠. 누가 뭐라 하건 자신을 잃지 않는다면 그건 올바른 자신만의 정의로 남을 수 있어요.”

설령 그걸 모두가 비웃더라도 말이죠.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빙긋 웃었다.

방금 자신의 말에 한점의 미혹도 없다는 것처럼, 단지 자신은 올바른 걸 논했다는 것 마냥 자신 있게 웃었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이해 가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도 본인의 생각이 있고 그에 따른 가치관을 지키겠다는데 내 무얼 더 말할까.

그래도 이 모습에서 굳센 의지만은 보았으니.

이게 아까까지 내 고추를 보고 얼굴을 붉히던 그 계집애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사람이 달라져도 정도가 있지, 난 그냥 푼수에 미친년인가 싶었다.

정작 까보니 이건 뭐 선비 중에서도 외골수였다.

“당신의 말도 일리는 있어요. 그렇다고 사람을 모으는 걸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정말로 백성에게 패악질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저도 당신을 노릴 이유도 없고요.”

“그럴 리가 있나. 애당초 우리는 그 백성을 위해 싸우는 건데.”

거기까지 말하니 조운이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솔직히 아까부터 사사로이, 사사로이. 우리가 왜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자꾸 사사롭다고 단정 짓는 게 기분 나빴거든?”

“그럼 당신이 싸우는 이유는 뭔가요?”

아 그거. 아니 뭐냐,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정작 또 제 입으로 말하려니 다소 부끄러웠다.

아니 생각해보면 진짜 어린애 같은 단순하고 유치한 이유였다. 아가씨는 대체 어떻게 이런 말을 당당하게 말했는지 원.

그렇지만 그걸 무시당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천하 만민의 배부르고 등 따스운 삶.”

“네?”

아니 시발 왜 또 되묻고 지랄이야. 한번 말하기도 솔직히 쪽팔린다.

사내가 되어 언제나 당당하게 살자고 생각했지만, 이거 생각보다 영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소연 아가씨. 댁은 왜 의외라는 표정으로 보는 거요?

이거 그쪽이 나한테 말해준 거요. 난 그냥 그거에 따라갈 뿐이었는데, 왜 정작 당사자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로, 그걸 위해 싸운다고요?”

“엉.”

“거짓말이면요?”

아니 거짓말이건 뭐건, 그게 뭐가 중요한가. 어차피 쫑난 거, 그냥 갈 길 가시라고 손을 휘휘 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조운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거짓말이면 어떡할 거에요?”

“아니 뭘 어떻게 해. 내가 그러고 싶다는데 거짓말이건 진실이건 그게 뭐가 중요해. 댁이 말한 자신만의 올바름이라는 거? 내 올바름은 그냥 배부르고 등 따스운 거로 만족하는 작은 올바름이라는 소리지.”

애당초 올바름을 논한 건 그쪽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올바름을 말해줬을 따름이지, 그걸 해명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이 유치한 이상도 처음엔 내 것이 아니었고.

“그러면, 차라리 군에 임관하는 게 나은 선택 아닌가요? 백성을 위해서라면 위에서 올바른 정치를 펼치는 게 당연한 길일 텐데요.”

“이거 보소. 내가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임관이란 걸 하나?”

관직은 돈이 없다면 오를 수 없다.

설령 오른다고 하더라도 뇌물을 바치지 못하면 그나마도 부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이미 아는 사람들은 익히 아는 풍문이었다.

게다가 사실 나 자체가 그런 걸 싫어하는 한량이기도 했고.

조운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턱을 만지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저러다가 저 선비 계집애가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거니 싶어 적당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뭐 아무튼 우리야 하는 일에 방해만 안 한다면 딱히 불만은 없으니, 이제 슬슬 갈 길 가보라고. 원래 손님이 오면 뭐 하나 쥐여주고 보내는 게 예의긴 한데, 그쪽은 원래 불청객이었으니까 그런 거 필요 없지?”

당장 우리도 없는 살림이라 뭐 챙겨줄 여력도 없었다.

게다가 사실 내 모가지 따러 왔다는 계집애를 이렇게 몸 온전히 보내주는 것만으로 이미 줄 건 다 줬다고 본다.

살려는 드렸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네. 나름 생각하는 바가 생겼으니까요.”

“그래, 그럼 멀리 안 나간다. 다음부터는 외간 남자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아니 정말, 그런 거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이 계집애는 놀려먹는 재미가 있었다.

어찌 됐건, 그렇게 해서 한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녀는 축객령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떠났고, 아가씨는 그 모습을 보고 있더니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조운을 이렇게 떠나보내네.”

“머리는 나름 잘 돌아가는 계집애 같긴 했는데, 대체 뭘 보고 그렇게까지 저 계집애를 원했던 거요? 시발 설마하니 그 계집끼리 오입질하는, 뭐 그런 취미셨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옆구리에 주먹이 박혔다.

아니 농담도 못 하나. 그것보다 주먹이 너무 세잖아.

덕분에 한참 옆구리를 부여잡고 꺽꺽댔다. 이거 분명 피멍 들었을 거다. 아무리 천박한 농담이라지만 응징이 너무 과격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말이야.”

“끄, 아으, 뭐요. 아파 죽겠네.”

“네가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줄은 몰랐어.”

뭘 말하는, 아 그건가.

그 천하를 배부르고 등 따습게 만들겠다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목표.

“그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적어도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누구 하나 그렇게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말한 적도 없었고.”

“단순하다고 놀리니?”

아가씨가 다시 쌍심지를 켜기에 냅다 도망쳤다.

한 대야 버티겠지만 같은 자리에 저 주먹을 두 대 맞았다가는 진짜로 뼈 상한다. 저 조그마한 주먹에 힘이 얼마나 세게 담겼는지는 맞아본 사람만 알았다.

물론 조금 부끄러워서 자리를 뜨려고 도망친 것도 있었다.

어떻게 말할까.

“그 애 같은 유치한 이상에 반했소.”

말을 복잡하게 하면서 자기 자신을 유식하다 포장하는 사람은 많았다. 특히 제 머리가 좋다고 잘난 체하는 놈의 대다수가 말을 꾸며서 내뱉기를 좋아했다.

오히려 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말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그녀의 말에 끌렸던 걸지도 몰랐다.

얼마나 단순한가. 세상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하자는 말은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고사나 논리보다도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이었다.

누가 모르겠나, 좋은 삶이란 배부르고 등 따스운 삶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위에 서는 사람은 그것만을 목표로 한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마치 대단한 대의명분이 있다는 마냥 행동하는 것이 이 세상의 위정자들이었다.

정작 아래에 있는 것들은 그런 대의명분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냥 그들은 하루하루 배부르고 따습게 살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는데,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주었다.

그래서. 그냥, 뭐. 그렇기에 그 이상에 반해버렸다.

부끄럽지만 정말 그것뿐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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