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화 (2/343)

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도적이었는데요? 정원은 죽는다며 그녀는 그리 단언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현 병주 최대 군벌이면서 정예군과 맹장을 다수 이끄는 정원이 죽을 거라는 예측을 너무 당연하게 현실이라는 마냥 단언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이상하지. 낙양이 얼마나 인외마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원이라고? 흑산적 놈들도 벌벌 길 정도로 정예군을 이끄는 데다가 그 여포를 부리고 있는 미친 양반이라고? 아가씨 여포는 알아? 그거 완전 미친년이야.”

내가 머리털 나고 지금까지 그거보다 센 년은 본적이 없다.

내가 그 흉포하다는 선비나 흉노도 많이 봤고, 그래도 저마다 한주먹 한다는 것들을 더러 봤는데도 그 여포 이상으로 강한 사람은 없었다.

장담컨대 그년 하나만 있어도 사람 백 이상은 감당 가능할 거다.

“그 인간병기가 있는데 정원이 죽는다고? 아니 뭐, 정원이 역모죄로 호송 당하는 것도 아니고 대장군이 불러서 가는 거라며. 설마 그 병주군에 여포가 있고, 정원 그 양반도 한 실력 하는데 싸워서 죽을까?”

나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보는데. 그런데도 아가씨는 너무 쉽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그런 판단이 서는지,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정원은 강하지. 여포 역시 맹장이고. 그렇지만 그는 정세를 읽을 눈이 부족하고 상황을 이해할 지혜도 부족하니, 그 권력 암투가 판치는 낙양에서 제 모가지를 건사하기도 벅찰걸? 내기해도 좋아.”

“……거 참, 이렇게까지 단언하니 또 할 말이 없네.”

어쩌면 이런 여자였기에 그녀를 따라갈 마음이 들었던 건지도 몰랐다.

단순히 주먹이 강해서 강제로 굴복시키려 한 거라면 그냥 도망갔으면 그만이었다. 딱히 이렇게 따를 이유는 없는데, 그런데도 여기에 남았다.

이제야 막 소녀 티를 벗기 시작한 그녀는 이런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마치 미래를 보고 왔다는 듯한 거침없는 예견과 행보.

혹자는 머리가 비상하다 평가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건 머리가 어떻고를 운운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면 여차할 때는 현장직을 차지하고 힘을 기르겠다, 뭐 이거요?”

“어차피 내부에서 저렇게 곪은 이상 낙양은 끝이야. 분명 군벌 세력에게 점거당할 거고, 결과 필연적으로 각 지방 군벌들의 자치를 가속하는 결과를 낳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한 황실의 수도를 너무 쉽게 말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야 무지렁이라 잘은 모르겠다마는, 그 잘나신 분들이 널리고 널린 곳이 낙양 아닌가. 그런 곳이 그녀 말처럼 그리 쉬이 무너지진 않을 거 같았다.

물론 이걸 곧이곧대로 말하면 또 한심하게 쳐다볼 게 뻔했다.

“그런데 무도현으로 도움이 되겠수? 내 이런 말 하긴 뭐한데 우리한테 현장 목이 날아갈 정도로 별거 없는 지방이야. 이렇다 할 호족도 없고 기껏해야 있는 건 관아의 병사들이랑 굶어 죽어가는 인간들 정도?”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나름의 실력은 있다 자부하는 우리라도 머릿수는 고작해야 백 언저리에 불과했다.

몇 년을 동고동락했기에 합은 맞겠으나, 그렇다고 관아의 병사와 현장이 이렇게 쉬이 목이 달아날 정도면 그 수준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런 의문에 그녀도 동의는 하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거기를 차지할 이유는 없어. 당장 우리가 가진 물자도 부족하고, 가봐야 고운 시선도 못 받을 게 뻔한 데다가 굶어 죽어가는 이들에게 군역을 받아 어디에 쓸 거야.”

“그러면요?”

“현은 딱히 도움이 안 되지만, 이 인근에 있는 훌륭한 병사들은 쌔고 쌨잖아? 당장 저 현 인근에 녹림장이었나? 참, 고작해야 도적 주제 이름은 번듯하다니까.”

도적을 병사로 만든다는 발상은 꽤 예전부터 존재하던 방식이긴 했다.

그렇다면 현장 인장을 차지한 건 공격의 정당성과 복속시키기 위한 명분일까. 그러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걱정이 되는 것은.

“놈들은 현장 인장 보여준다고 예입, 하고 꿇는 놈들은 아닐 거요. 애당초 그런 놈들이었으면 도적질을 하고 있을 이유도 없지.”

결과적으로는 힘으로 꿇려야 한다. 땅에 머리를 박고 기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건 뭐, 너희의 힘을 믿도록 하지. 특히 너는 병주, 적어도 이 오원군 인근에 있는 도적들에게 공포로서 군림해줘야겠어.”

“그게 말은 쉽지. 애당초 힘은 아가씨가 더 강하지 않소?”

“어머, 나 같은 가녀린 여아에게 싸움을 강요하는 거야?”

말은 잘한다. 확실히 아가씨가 가녀리게 생기긴 했다. 저 주먹에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살다 살다 주먹 한 대 맞고서 하루 이상 기절했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음 같아선 가녀리긴 시발 가녀린 처녀 다 뒤졌냐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나도 가녀린 처녀로 보고 죽일 게 뻔하다.

“뭐, 사실 네 무력이 조금 애매해서 불안하긴 한데….”

“그야 아가씨에 비하면 약하긴 하지만, 나도 어디 가서 칼밥으로 밀리진 않는데. 적어도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정규군 장군들만 아니면 져본 적이 없다니까?”

“음. 뭐라고 해야 하지? 네 무력은 최대를 100으로 봤을 때 딱 78 정도거든.”

78? 뭐야 그거. 강한 거야 약한 거야. 뭣보다 수치가 왜 그렇게 애매한가.

80이면 80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좀 조잡하게 자세한 수치라서 반박을 하고 싶어도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도 없었다.

“내가 약한 게 불안하다, 뭐 그런 거 같은데.”

조금, 많이 자존심이 상하는 얘기였지만 썩 틀리진 않았다. 민간에서 싸우는 것과 실제로 군을 이끌면서 싸워야 하는 건 천지 차이.

비록 이 근방에서 나보다 강한 놈은 아직 못 만났지만, 저 흑산적의 연이라는 놈도 나보다는 강하겠지.

“거 걱정하지 마쇼. 적어도 나보다 확실히 강한 사람은 힘으로 이름 제법 날린 놈일 건데, 적어도 내가 이 주변에서 그런 놈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자고로 힘이 있으면 사람은 알아서 꼬인다. 힘을 숨기고 있는 은거기인? 아니 힘이 있으면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건데 뭐하러 그 힘을 숨기고 있나.

게다가 힘을 숨기고 한다는 짓이 도적질?

우습지도 않은 농담이었다.

“자고로 도적이란 놈들은 얕보이면 뒤지는 업계인데, 적어도 이 근방에서 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소문이 많은 곳은 없어.”

“그래, 믿을게.”

아가씨는 그리 말하며 작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제부터 다른 도적놈들 쳐부수고 규합한다. 이게 우리 다음 목적 맞는 거요?”

“대략적으로는.”

대략적, 이라. 또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이 여자는 다 별로지만 우리와 제대로 의견을 터놓지 않는다는 게 제일 불만이었다.

실제로 우리 애들도 아가씨의 그런 면을 가장 싫어하곤 했다.

아무렴 우리 같은 한량들이 속내를 숨기거나 할 일이 무에 있을까.

그렇지만 이것만은 말해두어야 했다.

“속이지 마쇼. 우리는, 적어도 나는 아가씨를 믿고 따라갈 생각이니까. 배신하지만 않으면, 우리가 댁의 팔다리가 되어 드릴 테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배신하지 마라.

우리 민초라는 것들은 짓밟히고 짓밟혀, 마구 짓밟혀왔다. 신뢰도 기대도, 하물며 그 알량한 일상마저도.

그 작태에 진저리가 나서 도망쳤다. 산골에 숨어 살며 마음에 맞는 놈들을 하나하나 받다 보니 이제는 백 단위가 넘는 대 구성원이 되었다.

내 머리 위로 누구도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걸 당신이라서 바꾼 거다.

이상한 여자지만, 요 몇 달간을 지켜보고 믿어볼까 싶어 우리 가족들과 함께 당신에게 믿음을 주었다.

배신한다면, 그 팔다리가 당신의 목을 조여오는 게 뭔지 알려드리리라.

“너야말로 죽지 마. 애매하긴 해도 넌 내 첫 부하니까.”

등을 지고 있어 아가씨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상상하려고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고,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예입. 일단 애들한테 일러두리다.”

거기까지 말하고는 문을 열고 자리를 벗어났다.

일단 얘기가 정리된 건 좋은데 이걸 애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할까. 앞으로 다른 도적놈들을 보이는 족족 때려잡고 굴종시킨다니. 사실 말이야 쉽지, 우리 머릿수는 싹싹 긁어모아도 150명 언저리다.

게다가 아가씨의 목적은 고작 100, 200을 늘리자는 게 아닐 터.

결과 우리의 지금까지 있었던 일상은 사라지게 된다. 그냥 유유자적 산에서 한량처럼 지내며 거주지를 짓고 사는가 하면, 어쩔 땐 또 적당히 터를 옮기기도 하면서.

어쩔 땐 용병으로, 어쩔 땐 도적으로.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던 이들이 과연 이 결정을 따라와줄수 있을까.

“뭐, 호세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알아서 하쇼.”

고민이 기우였다는 듯, 그들은 너무 간단하게 수긍해버렸다.

말을 꺼내고 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앞으로 계속 전쟁을 하게 생겼다는 말인데 그걸 이리도 쉬이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어떨까 싶은데.

“괜찮겠냐?”

“지금까지 용병질에 도적질에, 목숨 안 걸었던 적도 없고. 게다가 대장이 우리더러 가족이라 하지 않았소. 가족이 하겠다는데 뭐 어쩌겠나, 따라가야지.”

아니다. 그걸 구실로 부려먹으려고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정 붙일 곳은 없고 마음 가는 곳도 없는 놈들끼리 모였으니, 우리끼리라도 잘살아보자고 그리 불렀던 것이었다. 결단코 의견을 강요코자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말을 해보려 입을 뗐으나 마른 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미 그들도 알고 있었다. 남정네가 백도 넘게 모여서 나를 바라보는데, 저마다 표정 하나 흐리지 않고 올곧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서 무언가 왈가왈부하는 건 풍류를 해치는 행위일진저.

“머저리 새끼들.”

입술을 비틀었다. 웃음일까, 아니면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인가. 거울이 없어 지금 지은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렇게 모든 걸 정하고 자리를 파했다.

놈들은 모두 저마다 흩어져 누구는 자기 병장기를 만지고 있는가 하면 누구는 또 끼리 모여서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참 개판도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이게 본디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이없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그걸 보고만 있자니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대장.”

방삼이가 웬일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 산에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 뭉쳤던 녀석이라 오래된 연이었는데, 그 오랜 어울림 중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짓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소 진지한 이야기인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니 방삼이가 말을 잇기를.

“그 여자. 따라갈 가치는 있는 거요?”

“가치란 본디 저마다의 기준이 다른, 아 알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네놈 얼굴은 솔직히 여기 모인 놈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범죄자처럼 생겨서 인상 찌푸리면 무섭다고.

“등따습고 배부른 세상을 만들어 보자더라.”

“뭐요?”

“소연 아가씨 말이야. 나보고 이런 곳에서 한량 짓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있으면 세상을 위해 살아보라고, 천하를 등따습고 배부른 천하를 위한 초석이 되라고 그러더라.”

우스운 얘기였다. 고작 천하를 등따습고 배부르게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어린아이의 발상처럼 단순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반대로 그것은 무려 천하 만민이 배곯을 일 없이 추위에 버려질 일 없이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무모한 포부였다.

“그런 큰 목표를 당연하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따라가고 싶지 않겠냐.”

내가 그랬으니까. 모두가 그랬으니까. 이 천하의 사람들은 단지 추위를 견디는 방법밖에 모른다. 그걸 이겨낼 지혜도 없을뿐더러 힘도 없는 약자뿐이었다.

허황된 이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런데도 허황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장차 높은 자리에 올라선다면.

그 너무나 단순하여 우스울 뿐인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내게 도움을 요구한다면.

“그 앞날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은 게 남자 아니겠냐.”

“어휴. 난 모르오. 그 아가씨는 대장이 잘 관리하쇼.”

방삼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답해주었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당장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일 따름이고, 그 여자가 단지 허풍쟁이일 확률도 있으리라.

그런데도 따라가는 건, 그 여자가 무언가 특이한 걸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

앞으로는 어찌 될런가.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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