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당신들이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부스럭-.]
나는 시장에 풀린 우리 회사의 상품을 만지작거렸다.
상품에는 우리 회사의 이름과 상품명이 멋스럽게 박혀있었다.
상호는 CL컴퍼니.
상품명은 S3B the monster.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네.’
나는 회사의 상호를 최영훈의 C와 내 가명인 이정혁의 L을 따서 ‘CL컴퍼니’라고 지었다.
의미도 없고 단순한 명명에 걱정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그럴듯하게 이름을 지은 기업은 전 세계를 찾아봐도 드물었기에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술 마시다가 대충 짓거나 창업자 이니셜을 따오는 것은 일상다반사였고, 종사하는 업종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명칭을 쓰는 회사도 많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텃세가 심했어.’
나는 특허를 등록하고 상품을 시장에 풀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시제품을 개발하고 2개월.
최영훈과 나는 생산시설을 디자인하고, 설비를 공장에 들이고, 생산을 위해서 근무해줄 직원까지 뽑으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새로운 발명품인 ‘S3B the monster'를 홍보하기 위해서 언론과 관련 학계에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뉴스에서는 위대한 쾌거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게다가 학계에서는 박사학위도 없는 청년 두 명이 만든 이론과 상품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분명 어딘가 결함이 있을 거라면서.
‘자기들도 검증해 보고 놀랐으면서!’
하지만 언론과 학계의 반응과 다르게 재계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우리의 발명과 상품이알려지자 그들은 기술을 넘기라면서 큰돈을 제시해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재계가 언론과 학계를 압박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기술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당신들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드리죠.’
내가 공장을 설립하고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서 투자한 금액의 100배가 넘는 금액을 대기업들이 제시했다.
사업의 목적이 돈이었다면 바로 흔들릴 정도의 금액이었다.
하지만 나와 최영훈은 그들의 달콤한 목소리를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더욱더 황당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흥, 치졸한 놈들!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기술을 가로채 왔던 거냐?’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피가 끓는다.
그들은 돈으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자 조폭이나 흥신소의 사람들을 보내서 기술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기도 하고, 연구원이나 직원으로 위장한 자신들의 첩자를 취업시켜서 기술을 빼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특허권 사용 요청]이나 [하도급 요청]도 전부 거절하기를 잘했어.’
이런 불법적인 접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용료를 지급하고 특허를 쓰고 싶다는 요청을 하는 기업도 많았다.
하지만 시장에 직접 물건을 공급하고 싶었던 나는 그것도 거절했다.
이미 유명한 브랜드를 가진 회사와 경쟁해서 이길 자신도 없었고, 상품의 핵심 기술을 노출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우리 회사의 기술과 상품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그 어떤 외부의 압력과 회유에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상품으로 하시겠어요?”
상품을 만지작거리며 지난 2개월의 고생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매장의 직원이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게 뭐예요?”
“이건 CL컴퍼니에서 나온 초고용량 보조배터리에요.”
“그래요? 보조배터리가 다 거기서 거기지...”
“아니에요! 이건 용량이 엄청나고 무게도 가벼워서 요즘 완전 인기랍니다.”
직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꼬리가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 이거 엄청 잘 나가겠네요?”
“네. 요즘 이거 완전핫한 아이템이에요. 용량이 엄청나서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영화를 계속 틀어놔도 일주일을 넘게 버텨요. 평범한 보조배터리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에? 그러면 엄청나게 비싸겠네...”
“에이, 그렇지도 않아요. 유명 메이커 보조배터리보다 2천 원 정도 더 싸다고요.”
직원의 말에 나는 짐짓 감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훗, 사실 이거 내가 친구랑 만든 겁니다. 하하하.
“이건 제 감인데요. 곧 이 회사 엄청나게 뜰 겁니다. 이 회사가 개발한 기술은 혁명이라고요. 혁명!”
직원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흥분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시장에 상품이 풀리고 1개월 정도가 흘렀다.
우리의 상품은 소위 초대박을 쳤다.
어찌나 찾는 사람이 많은지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속도를 우리의 생산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우리가 공급하는 모든 판매처에서는 상품을 더 달라고 아우성쳤다.
“흐흐흐, 조...아니이대표! 우리 완전 대박이다!”
내 본명을 부르려다가 말을 고치며 가명을 부르는 최영훈이었다.
그는 매출보고서를 보고는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나도 그런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공장을 지어야겠어. 남는 공간에 계속 생산시설을 들여놨는데 이제는 한계네.”
초대박이라고 말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내가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분명 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반응이 있을 줄이야.
사업을 구상하고 고작 6개월 만이었고, 상품을 시장에 내놓은 지 불과 1개월 만이었다.
우리는 생산된 모든 상품을 팔아치웠다.
그것도 모자라서 추가로 공장이 필요할 만큼 뜨거운 호응까지 얻었다.
‘마치 아X팟 1세대 처음 나왔을 때 같아.’
아마 전자기기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흡사 그때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우리의 상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현대사회의 핵심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도 난리다. 난리야.”
최영훈은 우리와 접촉하고 싶다는 회사들의 이메일 목록을 나에게 건넸다.
300개가 넘는 기업이 우리의 기술과 상품에 관심이 있다고 연락을 해온 상태였다.
‘자, 이래도 계속 무시할 수 있어?’
내 생각대로였다.
우리를 무시하던 언론과 학계 그리고 다른 대기업들이 더는 우리를 흔들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고, 소비자들은 왜 우리 회사의배터리를 채용하지 않느냐며 다른 기업들의 제품에 문의하기 시작했다.
“자네들 제법 잘 나가네?하지만 수요 따라가기 힘들지? 우리가 공장을 지어줄 테니 기술을 좀 주는 건 어때? 물론 특허를 넘기라는 건 아니야. 그저 우리도 생산을 좀 할 수 있도록...”
“...”
거의 시장을 장악할 무렵 어떤 대기업의 이사라는 작자가 찾아와서한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그를 돌려보냈다.
이것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못 차렸어.
“공장을 지어줄 테니 우리에게만 공급하세요. 후후. 우리 회사가...”
“...”
다음에 찾아온 사람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무리 급해도 댁들 손은 안 빌린다.
급하면 손을 빌릴 곳은 얼마든지 있다.
주아린도 있고, 마리나 자매도 있다.
썩어빠진 마인드로 손쉽게 기술을 꿀꺽하고 삼키려는 댁들에게 내가 단 1페이지의 정보라도 제공하나 봐라.
하지만 나와 최영훈의 일관된 보안정책은 이상한 곳에서 역풍을 맞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독점하는 기업. CL컴퍼니.’
연일언론은 우리를 물어뜯었다.
재계는 우리를 길들이기 힘들어지자 본격적인 여론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면서 기술을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는 식으로 우리를 헐뜯기 시작했다.
“와~. 인간들 치사하게 나오네.”
“심지어 정부에서도 접촉이 왔어. 혁신적인 기술이니까 국내 기업과는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거 거절했다가는 세무조사 나와서 뒤집어 놓고, 세금폭탄 때릴 기세던데?”
나는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여론에 위기감을 느꼈다.
게다가 벌써 매출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보조배터리 말고 다른 것을 만들 기술은 없다는 식으로 비꼬는 시선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 새끼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좀 산다고 하는 것들이, 좀 있다고 하는 것들이 다들 손잡고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우리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서.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언론까지 모두 썩어 빠졌어!’
나는 이를 갈면서 머리를 굴렸다.
애초에 내가 무리한 사업을 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 혁신적인 발명을 했을 뿐인데 그걸 남들과 무조건 공유해야 하는 건가?
시장에 처음으로 진입한 사람으로서의 프리미엄은?
대기업이 아니면 무조건 기술을 넘기고 꺼지라 이건가?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최영훈.”
“왜?”
“우리도 여론전 하자.”
“뭐?”
“우리도 공격적으로 나가자고.‘
“어떻게?”
“내가 직접 대학이나 단체를 돌면서 강연할게. 언론과 적극적으로 인터뷰도 하고.”
“야, 지금 밀려드는 물량 감당하기도 힘들어. 이러다가 진짜 퍼진다고. 잘 되면서 망한다는 게 이런 거야. 지금 우리는 규모에 비해서 너무 잘 나가고 있다고.”
“일단, 이 국면만 돌파하면 다음은 우리 페이스라고 나를 믿고 더 세게 나가보자.”
나는 이 기세 싸움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서 우리를 찍어 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듯한 ‘쓰레기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저들의 논리를 뒤엎고 여론을 반전시키면 그만이다.
‘아주 나를 호구로 봤다 이거지? 근데 어쩌지 나는 이걸 들고 있는데?’
나는 손에 들고 있는 USB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이것에는 나와 최영훈의 기술을 탐내고 접근했던 자들의 수작질과 폭언을 일삼았던 기업인들의 녹취가 담겨있었다.
좋았어. 완전히 까발려주지.
‘신생기업 CL컴퍼니. 그리고 기술을 훔치는 대기업의 민낯!’
자는 시간도 아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신생기업의 기술을 탈취했는지 그 사례를 방송과 언론 그리고 대학교 강연에서 까발렸다.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혁신적인 기술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대중들은 다시 우리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며 우리를 지지하는 일종의 ‘팬’까지 생겨났다.
마치 미국의 애X사의 골수 지지층이 생겨나는 것처럼.
나의 열정적인 설득으로 세상은 우리를 ‘이기적으로 기술을 독점하는 기업’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지켜내고 전진하는 신생기업’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걸 진짜 돌파했네.”
“봐. 내가 된다고 했잖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몇 주 만에 태도를 바꾼 신문의 기사를 바라봤다.
워낙 혁신적인 기술이니 계속 공격하기도 난감했을 것이다.
게다가 창업주가 직접 해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니 그들로서도 더는 뭐라고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SNS가 발달한 시대.
진정한 언론은 대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중을 일일이 찾아가며 설득한 건 나였고.
우리를 쓰러뜨리고 싶었으면 알량한 선동질이나 할 것이 아니고 직접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어야지!
쓰레기들!
[똑-. 똑-.]
“무슨 일이죠?”
“밖에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우리의 기술을 탐내고 접근했던기업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고생을 했는지 얼굴이 초췌해진 상태였다.
“...꼭 그렇게 해야 했나?”
“자네가 까발린 내용 때문에 우리 기업 매출이 반 토막이야.”
“이제 자네들을 방해하지 않을 테니...”
찾아온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니 여기서 전경련 회의를 열어도 될 정도였다.
이제는 단체로 찾아와서 하소연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제가 없는 말한 것도 아니고. 먼저 시비를 건 쪽은 당신들이니까요.”
“다 필요 없고. 그냥 배터리만 공급해 주게.”
“그래, 그냥 물건만 좀 대주라고.”
“우리도 고용량 배터리가 필요해. 이제 기술은 원하지도 않아...”
뻔뻔하기는 누가 얌전히 팔아준 데?
나는 전부터 준비해놨던 서류를 그들에게 건넸다.
“이건 뭔가?”
“현물거래 계약서입니다.”
“응”
“요즘 우리가 물량을 따라가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도움 좀 받았으면 합니다.”
계약서의 내용은 이랬다.
공장을 지어주면 그 비용을 현물인 배터리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좀...”
“그래, 아무래도 좀그렇지. 기술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거나...”
“독점 공급이나...저가 공급을...”
“여기에는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조항도 없잖아...이래서는...”
하하하! 대단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나는 광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그들을 잠시 노려보고는 그들 손에 들린 계약서를 거칠게 뺏었다.
“싫으면 그냥 가세요. 저희는 천천히 성장하면 됩니다. 급할 거 없어요. 급하게 성장할 마음도 없고요. 고객들도 기다려주시기로 했고요. 지금 우리 회사 배터리의 중고가격이 신품보다 비싼 건 알고 계시죠? 상황 파악을 좀 하고 입을 놀려주세요.”
나는 승리감에 젖은 미소를 띠며 발걸음을 사무실로 돌렸다.
그러자 다급한 목소리가 나의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아...알겠네. 추가 공급은 나중에 계약하면 되니까...일단 그런 조건으로...”
“비켜!! 우리 회사가 먼저야!”
“우리 회사는 해외 진출 거래처를 알아봐 주겠네.”
그렇게 나는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추가로 많은 공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게다가 기업마다 원하는 배터리의 종류도 달랐기에 우리는 공짜로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과 다양한 규격의 ‘스마트기기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