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상품화 성공
“진짜 엄청나네.”
“이거 우리 공장 맞아?”
나와 최영훈은 얼빠진 표정으로 반짝이는 새 건물을 바라봤다.
완공된 건물은 총 세 채였다.
하나는 사무실로 사용할 아담한 건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연구를 하거나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건물이었다.
‘휴~. 진짜 내가 사업을 하는구나.’
마지막 건물이 압권이었다.
500평 규모의 생산 공장.
처음에는 100평에서 200평 정도의 규모로 공장을꾸미려고 했다.
나중에 수요가 늘어나면 공장을 더 지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의견을 주아린과 마리나 자매는 정면으로 반대했다.
뭘 모르는 소리라고.
그녀들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서 나의 의견을 반박했다.
첫 번째, 시장성이 있는 제품이니 금방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당장의 유효수요만 보고 작은 규모로 공장을 만들면 오히려 나중에 고생할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시장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크게 건축을 해놓고 생산설비는 매출을 보면서 조금씩 늘리면 되니 말이다.
작게 지었다가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따라가지 못해서 허둥대며 신축을 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고 했다.
알다시피 고객은 즉시 응답하지 못하는 생산자에게 냉담하다.
게다가 그다지 유쾌한 가정은 아니지만, 매출이 신통치 않다면 남는 공간에 재고를 보관할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좋다고 했다.
세 번째, 건설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는 것이었다.
크게 지을수록 당연히 용지의 매입비용이나 재료비는 조금 더 들어가지만, 전체적인 평당 건축비용은 낮아진다고 했다.
어차피 크게 건축을 한다고 해서 필요한 중장비가 하루에 몇 번씩 오는 건 아니니 말이다.
하루에 이용하는 사용료는 같았다.
작은 건물을 올릴 때나, 큰 건물을 올릴 때나.
물론 규모가 큰 건설인 만큼 인건비가 증가하는 부분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벌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평당 건축비용이 낮아지니 자금에 여유가 있을 때는 크게 짓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고 했다.
이런 부분에서도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는 모양이다.
크게 지을수록, 자재를 대량으로 구매할수록 단가는 낮아지는 것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뜻하지 않게 꿈을 이루게 생겼다.
내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말이다.
‘들어간 비용이 6억 정도인가.’
나는 손가락을 꼽으며 앞으로 들어갈 비용을 어림잡아 보았다.
5천만 원도 들지 않은 사무공간에 비해서 연구동은 제법 비용을 잡아먹었다.
아무래도 최영훈이 요청한 설비를 갖추느라고 3억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 탓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500평 규모의 공장을 2억 5천 정도에 건설한 건 싸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지. 역시 연구시설이나 생산설비가 비싸다고 할 수도 있겠지.’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껍데기보다는 알맹이가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나는 앞으로 공장에 들어갈 생산설비를 20억 정도, 고용하게 될 직원의 1년 인건비를 10억 정도로 책정했다.
지금 당장 돈이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쓰이게 될 돈이 그 정도라는 소리다.
그리고 실제로 사용한 돈은 건설에 6억 그리고 용지매입과 인허가 그리고 기타 잡비에 들어간 비용이 3억 등 합쳐서 9억 정도였다.
이 모든 비용을 제외하고 ‘여유’라고 할 수 있는 자금은 11억 정도였다.
얌전히 소비한다면 성인 남자 1명이 10년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충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시장의 환경 때문에 묘한 불안감이 든다고 할까?
이래서 대기업들이 그렇게 사내유보금을 많이 만들어 두는 모양이다.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으면 거금이 들어가니 말이다.
‘무슨 공사를 두 달 만에 끝낸 건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고 불과 두 달 만에 모든 건설이 완료되었다.
보통 3개월에서 6개월은 걸리는 일이었다.
‘이건 그녀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던 거겠지.’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건설계약을 끝냈을 무렵이었다.
나는 착공이 시작된 이후부터 빈번하게 현장을 왕래했다.
누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믿을만한 직원이 있는 매장이라도 사장이 관리하지 않으면 엉망이 된다고.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을 닦달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사업가로서 신경 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요량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먹을 것도 사다가 나르고.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나름대로 고생했지.’
그랬다.
건축 현장에 주아린은 물론이고 마리나 자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처음에 그녀들은 나를 만나고 싶어서 오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들은 몰래 나를 돕고 있었다.
입단속을 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 스치는 광경과 풍문으로 들려오는 소식으로도 그녀들의 활약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할당량을 채우고 조기 퇴근을 하는 일명 ‘야리끼리’를 장려함으로써 별도의 야간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일정이 당겨지면 몰래 성과급을 지급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개인재산을 털어서 내가공장을 짓는 것을 뒤에서 도왔던 것이다.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신기해?”
“이제 어엿한 사업가네요.”
감상에 젖어서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최영훈은 뒤를 돌아봤다.
마리나 자매와 주아린이 서 있었다.
나는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다들 고마워요.”
“후훗,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맞아. 우리 신랑이 되면 더 좋은 걸 줄게.”
“향기 씨~~, 우리 혜성전자에 통신기기 사업부도 있는 거 알죠? 앞으로 더 도와줄 수있다고요.”
“...이 분들 누구야?”
갑자기 나타나서 나에게 애정공세를 펼치는그녀들을 바라보며 최영훈은 물었다.
나는 그녀들을 그에게 차근차근 소개했다.
“이거 ‘테이프 커팅’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미녀들이 나타나니 들뜬 것일까?
최영훈은 흥을 내면서 그럴듯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적도 없는 신생기업이? 그리고 아직 생산설비도 안 들어온 공장에서 무슨 놈의테이프 커팅? 그냥 다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렇게 우리는 공장이 완공된 기념으로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교통은 편리하지만, 땅값은 싸고, 주위가 조용한 곳에 터를 잡았던 까닭일까?
식당은 차를 타고 나가서 한참을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중국 음식 먹자! 이런 날은 짜장면이지!”
“무슨 이사 왔어? 메뉴는 다른 사람이 정하게 할 거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그녀들에게 원하는 음식이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서글서글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도심에 있는 중국집으로 향했다.
“아이템은 이미 개발된 거예요?”
“거의요. 그런데 소형화 문제가 아직 해결 안 되었어요.”
“너무 오래 끌면 안 돼. 최대한 빠르게 개발을 끝마치고 바로 생산설비 디자인에 들어가야 한다고.”
“시제품만 만든다고 바로 생산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바로 특허 등록하는 것도 잊지 말아요.”
나는 그녀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들은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주고 있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놓치고 지나칠 법한 부분에는 충고와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르게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이야, 언제 또 저런 미인들과 친해진 거냐?”
“어쩌다 보니까 인연이 닿은 거지.”
“보니까 주아린 씨는 혜성그룹 딸내미 맞지?”
“그래.”
“어쩐지 네놈이 사업한다고 설친다 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최영훈과 나는 다시 공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는 은근한 말투로 내 옆구리를 찔러대며 시시덕거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모습을 지켜본 그도 지금은 묘한 편견에 사로잡힌 모양이었다.
내가 재벌의 그림자를 보고 쫓는 것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나를 그렇게 몰라? 이 자식이~~~.
“쓸데없는 소리 말아. 오늘부터 시제품 만들 때까지 철야다.”
“야, 나 오늘 왔다. 학교도 때려치우고 오늘 왔어! 그런데 오자마자 굴릴 거냐?”
엄살을 피우는 그에게 나는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새로운 ‘전고체 전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너만 떠올리라는 법이 있어?”
“그건 무슨 소리야?”
“누군가 너와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생각을 해낼 수도 있다는 거지.”
“그건...”
“결국 사업은 시간 싸움이라는 거야. 엄살 부리지 말고 무브무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있을 가능성은 작았다.
최영훈만큼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기막힌 우연까지 겹쳐지며 이뤄진 발견이었다.
쉽사리 추월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법!
만약 우리와 유사하거나 더 뛰어난 아이디어로 무장한 사람이 시장에 먼저 진입한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조바심이 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진지한 말투로 그를 재촉했다.
“아-씨! 이게 왜 안 되는 거지? 어디에서 막히는 거야! 왜 이렇게 이온이...이게 자꾸 왜 떨어져!”
우리가 연구동에 틀어박힌 지 2일이 흘렀다.
최영훈은 잠도 제대로 자지 않으며 연구에 몰두했다.
그래도 소형화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나는 그의 곁에서 연신 인터넷으로 시장 동향을 분석하며 같이 불면의 시간을 보냈다.
‘음.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지?’
나는 그가 머리를 싸매고 들여다보고 있는 논문과 실험 자료를 훑어봤다.
이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막연한 내용일 뿐이었다.
“네가 본다고 뭐 알겠어? 이리 줘.”
“...잠시만.”
뭔가 섬광이 뇌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얼른 인터넷을 뒤적이며 모르는 부분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하기를 몇십 분!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다.
“야, 부극과 정극에 놓는 소재를 이 정도로 분량으로 하고. 전해질은 이 정도로 배치하면. 전하량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작게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그리고 애초에 배치를 이렇게 하면 되잖아. 왜 꼭 위아래로 끼려고 하냐? 앞뒤로 끼워도 되고, 옆으로 끼워도 되고, 대각선으로 끼워도 되잖아. 넌 공간 감각이 없냐? 좀 입체적으로 생각하라고.”
답답한 마음에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최영훈은 짜증을 내기는커녕 나의 지적에 눈이 커질 뿐이었다.
그는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야, 너 이쪽 사업한다고 따로 공부라도 했냐?”
“아니.”
“근데 이걸 어떻게 알았어?”
“몰라. 그냥 떠오르더라. 어쨌든 그렇게 하면해결되는 거지?”
“어, 어. 일단 실제로 검증을 해봐야겠지만. 될 거 같다. 기다려, 기다려...”
그는 내가 제시해준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설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꼼지락거리며 뭔가를 했다.
“야, 야, 이거 된다! 시뮬레이션은 통과했어!”
“진짜?”
“어, 일단 내가 시제품으로 만들어 볼게.”
그는 다시 설비로 향했다.
그리고 연신 손을 움직이며 꼼지락거렸다.
그는 기괴한 컴퓨터와 거대한 3D프린터기 그리고 특수 생산기기 앞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시제품을 만들었다.
“대...대박!!!”
“왜? 왜?”
“소형화 성공이다! 아싸! 시제품 돌아간다!”
“어, 어, 어머니!!”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나와 최영훈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환호성을 올렸다.
“이거 전해액 대체할 물질. 요거 말이야. 요거. 값싸고 구하기 쉬운 거 맞지?”
“당연하지. 내가 이거 발견한 거 믿고 너랑 한배를 탄 건데.”
최영훈은 시제품을 든 손을 흔들면서 엉덩이를 실룩거렸다.
그리고 괴상한 춤을 추는 것이었다.
‘좋았어. 특허 등록하고 생산설비 디자인 끝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나는 아랫입술을 핥으며 눈에 힘을 줬다.
거울에 비친 나의 눈빛은 예리한 총기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