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죽음과 동시에 퇴사! (68/110)



〈 68화 〉죽음과 동시에 퇴사!

‘이 정도면 거의 성형이네. 성형이야.’

집에 돌아온 후에 전신거울로 자신을 비춰봤다.
거울 너머에는 너무나 생소한 모습의 미남이 서 있었다.

‘그래도 전에는 이목구비라도 남아 있었는데...’

그랬다.
전에 페로몬이 폭주했을 때는 몸이 근육질로 변하기는 했어도 이목구비는 남아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자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외모가 변해있었다.
얼굴형은 갸름한 미형이었지만, 얼굴에는 온갖 인종의 아름다움이  곳에 모여 있었다.

머리카락은 검은색에서 은은한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햇빛에 비치면 붉은색을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갈색이었다.
눈은 큼직하고 동그랗게 변한 것이 누가 보면 앞트임과 뒤트임을 한 거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코는 또 어떠한가?
적당한 높이로 오뚝한 것이 보기에 참 좋았다.
마지막으로 하관과 입술도 예술이었다.
하관은 남자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날렵한 모양새로 빠진 것이 세련되게 보였다.
입술은 도톰한 것이 흑인도 아니요, 그렇다고 동양인이나 백인의 그것도 아니었다.
그 중간의 형태를 띠면서 오묘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아볼 수나 있으려나?’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연신 자신을 살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겁도 났고,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짜릿해~. 늘 새로워~. 잘생긴  최고야~.]

공짜로 성형수술을 한 셈이니 그렇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변해버린 외모가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잘생겼네. 이제 페로몬이 없어도 여자가  꼬이겠는데?’

계속 들여다보니 새로운 모습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한창 흥을 내며 자신에게 도취해 있던 나는 얼른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앞으로 어떻게 한다?’

배에서는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페로몬을 이용해서 ‘블랙 애로우’의 병사들을 지배했고, 그들을 조종해서 상황을 수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은 남아있었고, 너무 변해버린 자신이 있었다.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건 계속 이 모양이네.’

나는 손목에 걸린 상태로 먹통이 된 ‘페로몬 조절 장치’를 살폈다.
위기의 순간에 수치를 ‘1000%’로 올렸더니 망가져 버린 모양이었다.
어떤 반응도 없었다.
이러면 단순한 팔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건 이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소리인데.’

실제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어떤 소동도 없었다.
그렇다고 페로몬의 힘이 사라졌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 거 같았다.
병사들은 내 명령을 충실하게 따랐고, 집중하면 어떤 대상이든 조종할  있었으니 말이다.
분명  몸에 아직 페로몬의 힘이 남아있다는 증거였다.

‘좋아. 완벽하게 컨트롤하려고 하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졌다는 소리겠지.’

이제 더는 조절 장치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불행  다행이었다.
나는 천천히 옷을 입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신지혜가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어. 그리고 블랙 애로우를 그대로 둔다는 것도 찜찜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녀의 폭로와 고발을 기다리며 불안한 일상을 보낼 수는 없었다.
모두 그런 기억이 있지 않는가?
학창시절 체벌의 기억!
차라리 바로 혼내주는 선생님이 오히려 고마웠다.
잘못한 것을 모아서 하교 시간이나 일주일이 끝나는 날에 몰아서 때리는 선생은 도리어 사악하게 느껴졌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는 체벌에 대한 공포에 떨어야 하니 말이다.
육체적인 고통은 잠깐이지만 심리적인 고통은 오래가는 법이다.
그걸 알고 즐기는 변태 같은 선생들이  명인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일어날 손해와 고통보다 내가 감수해야 할 부담감이 너무 컸다.

‘차라리 먼저 치고 나가는 게 좋아. 게다가 상대는 아직 나의 생존을 모른다.’

전략상 우위에 있을  치는 게 좋았다.
자금력과 무력이 우수한 민간 군수 기업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페로몬의 힘을 이용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제대로 사용하면 어떤 상대라도 나의 포로가 될 테니까.
괜히 전쟁에서 일기토를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강대하고 뛰어난 조직도 머리가 떨어지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굳건하고 튼튼한 조직일수록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 조직은 한두 명의 리더를 잃는다고 해도 무너지지 않으니 말이다.

‘척과 카렌에게 지시를 내려놨지만...’

그저 보고만 믿고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었다.
분명 확인하려고 들겠지.
그렇다면 나의 다음 행보는 정해져 있었다.
철저하게 죽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가짜 시체를 구해서 현장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나의 흔적도 완전히 지워야 했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혜성그룹과 주아린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불현듯 떠오른 것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했던 것은 물론이고,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대기업이기도 했다.
합법과 비합법을 넘나드는 모종의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현하게 해줄 현실적인 방법이 간절했다.

[뚜-르르-르르르]
[뾰-로롱!]

“여보세요?”

전화를 걸자 주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내가 거는 전화라는 것을 깨닫자 냉큼 받은 것 같았다.
신호음이 얼마 울리지 않았는데 바로 연결되니 말이다.
이런 모습도 그녀답다고 해야 할까?
크크. 나름 귀엽다.

“나야. 조향기. 혹시 지금 만날 수 있을까?”

“네. 어디서요?”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내가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도 들뜬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약속장소를 정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눈치를  거겠지.

[드-르르륵!]

그녀가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CCTV도 없고, 인적이 드문 낡은 횟집이었다.
들어서자 주인이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주아린이 앉아있었다.

“왔어요?”

“응. 여기는 안전한 거지?”

“네. 비밀리에 회동할  쓰던 곳이거든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예전부터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사용하던 공간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횟집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밀담을 나누거나 중요한 계약을 체결할 때 이용하던 곳이라고 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내심 걱정을 했었다.
너무 외진 곳에 있었고, 시설도 낙후되어서 장사가 제대로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이곳은 애초에 영업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지금 내가  걱정할 처지가 아니지.

‘좋아. 괜찮겠지.’

나는 주위를 살핀 후 천천히 후드를 젖혔다.
그러면서 서서히 얼굴을 드러냈다.

“어?! 헉! 향기 씨? 맞아요?”

 얼굴을 확인하고 주아린은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얼굴이 왜 그래요?”

“블랙 애로우에게 납치된 후에 실험을 당했어.”

“네?”

“신약 실험이라고 하더라고. 내가 예전에 임상 시험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 그것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야.”

그들에게 잡혀간 것은 맞지만, 실험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힘을 폭발시킨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다만 그녀에게 페로몬과 신지혜에 대해 이야기를  수는 없었다.
나는 어쩔  없이 그럴듯한 말을 지어냈다.
그렇게 그녀에게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일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래서 죽음으로 위장하고 탈출했다고?”

“응.”

“이건 아버지와도 상의를 해봐야 할 거 같아요.”

그녀는 이목을 피해서 나를 회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가는 도중에 그녀는 곁눈질로 연신 나의 외모를 살피는 것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미남이 되었으니 신경이 쓰이기도 하겠지.

“어이구, 그래, 어서들 와요~.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버지 놀라지 마세요.”

“접니다. 조향기입니다.”

“!!!”

사람들눈을 피해서 은밀한 경로로 회장실로 향했다.
우리는 회장의 수행비서만 자리에 남았을 때 조심스럽게 만남을 청했다.
회장은 직접 문까지 열면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신지혜와 페로몬의 이야기는 빼고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

잠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턱을 쓸어내리던 회장은 종이  장을 꺼내더니 탁자에 올려놨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아직도 예전 스마트폰을 쓰고 있나?”

“네.”

“일단 그것부터 처분해야겠어. 그 종이에 꼭 필요한 사람의 연락처만 옮겨 적게나.”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연락처와 꼭 필요한 정보를 종이에 옮겼다.
그렇게 필요한 정보를 챙기자 그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스마트폰 이리 주게나.”

“네?”

“어서.”

나는 그의 말에 따랐다.

[콰-지지지직! 와-작!]

그는 나에게 스마트폰을 건네받자 곧바로 부숴버렸다.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사정없이 밟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는 유심칩과 메모리카드, 안에 있는 회로까지 철저하게 박살을 냈다.

“죽은 사람이 여태까지 통화했다는 것도 모순이니 말일세. 기록은 내가 어떻게 처리할  있을 걸세. 지금까지 밖을 많이 돌아다녔나?”

“아니요. 돌아와서 쭉 집에 있었고, 바로 아린 씨를 만났습니다.”

“좋아. CCTV 쪽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회장은 바쁜 손놀림으로 필요한 일들을 해치워 나갔다.
공공기관이나 계열회사에 연락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는 어느 정도 일이 처리되자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자네의 기록은 모두 없앨 거야. 아무리 놈들이라고 해도 쉽게 추적하지는 못하겠지.”

“...”

“그리고 자네에게 새로운 신분을 주겠네. 그러면 당장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거야.”

“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잠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주아린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그룹을 위기에서 구해준 은인이라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네. 그러나 사정이 이러니 어찌하겠는가? 자네도 대충 알겠지?”

“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회장님.”

“미안하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린아, 오늘부로 향기 군은 비서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구나.”

“!!!”

회장의 말에 주아린은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사는 곳을 습격할 정도면 대인관계나 직업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이런데 계속 혜성그룹을 들락날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이들마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조금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가족과 회사를 지켜야 하는 회장의 처지에서는 저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쨌든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신분을 얻은   수확이다.’

게다가 혜성그룹이 아주 유용한 퇴직금을 건네주었다.
이런 서비스는 단순히 돈이 있다고 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공공기관, 통신사, 인터넷 관련 회사 등의 인맥과 자금이 동시에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며칠 내로 일이 처리될 걸세. 인편으로 연락을 보내지. 그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게나.”

회장은 나와 주아린에게 별장의 주소와 열쇠를 건네줬다.
나는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것은 동시에 작별인사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이제 우리 못 만나는 거예요?”

“당분간은.”

별장으로 향하는 길에 주아린은 눈물이 맺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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