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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화 〉이판사판으로 이뤄낸 초 진화 (超 進化) (67/110)



〈 67화 〉이판사판으로 이뤄낸 초 진화 (超 進化)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뜨거웠다.
고통인지 희열인지 구분할 수 없는감각이 반복적으로 몸을 휩쓸었다.

[슈-아아아아아아앗! 슈파파팟!]

몸에서는 연신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건 환상이 아닐까?
나는 척이 발사한 총에 맞고 이미 죽은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분명 신지혜는 몸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다고했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몸에서 이상한 소리와 빛만 뿜어져 나오고있었다.

‘아니지. 아니야. 이러다가 폭발할 수도 있지. 영화에서 곧잘 그러잖아?’

그렇게 어리둥절한 얼굴로 몸을 둘러보는 나에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놈을 총으로 쏴라! 어서 쏴버려!”

당황한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병사들에게 척이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은 총을 겨누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이제 정말 끝인 걸까?
그 순간이었다.
타는 듯한 감각이 순식간에 전신을 휩쓸었다.

[[퍼-어-엉!!!!!!!!!!!!!!!!!]]

그리고 굉음과 함께 격통이 찾아왔다.
나는 극심한 통증에 바닥을 뒹굴었다.
정말 몸이 폭발한 걸까?
하지만 나는 아직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의외로 인간은 끈질기다고 하지?’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섬뜩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의 머리는 몸에서 떨어져도 몇 분간 사고하며 살아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나도 사지가 찢긴 상태로 사고능력만 남아있는 건 아닐까?

‘어라? 아직 살아 있는 건가?’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감각은 유지되고 있었다.
의식도 또렷했다.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아직 생각이란 걸   있는 걸 보니 아직 무사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몸을 감싸고 있던 빛과 통증도 어느새 수그러든 상태였다.

‘이게 어떻게  거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나에게 총을 겨누던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페로몬이 또 효과를 발휘한 건가?’

총상을 입은 다리와 어깨를 급하게 살폈다.
이미 상처는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 뭔가 일어난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쓰러져있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으...으....허-으으으으~.”
“끄-으....으...”
“흐-으으으읍,...”

쓰러진 병사들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눈을 크게 뜬 상태로 몸을 움찔거렸다.
의식은 있지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좋아. 이대로 탈출한다.’

나는 그들을 피해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터-억.]

조심스럽게 걷고 있던 나의 발목을 누군가 붙잡았다.
바닥에 쓰러져서 뒹굴던 카렌이 나의 발목을 낚아챈 것이다.

“!!!!”

나는 놀라서 발을 휘저었다.
그러면서 소리쳤다.

“이...이거 놔! 빨리!”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목소리였다.
그러면서도 영어로 지껄이는 걸 잊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도 참 어지간하다.
아직도 저들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기고 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나를 여기로 끌고  것도 모자라서 총까지 발사하는 인간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의 입은 솔직한 바람을 외치고 있었다.

[스-르륵.]

“!!!”

하지만 뒤이어 벌어진 일은 의외였다.
그녀가 순순히 손을 거두는 것이었다.
어라? 뭔가 이상하다.
놀라서 손을 치우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마치 내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인 것이다.

‘설마?’

뭔가 기분 나쁘지 않은 예감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와 그녀를 차분하게 살폈다.
사람들은 여전히 몸을 떨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카렌도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표정이...’

게다가 표정에 미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카렌은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을 떨면서도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쾌락에 젖은 미소를!

“흠, 흠, 좋아. 일어나 카렌!”

나의 예감이 이끄는 대로 외쳤다.
그러자 카렌은 냉큼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에게 애정이 듬뿍 담긴 표정 짓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건지설명해봐.”

“알 수 없는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향기 씨 몸에서 시작된 거로 보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왜 쓰러진 거지?”

“뒤이어 향기 씨의 명령이 들렸습니다. ‘모두 움직이지 말라’고요.”

나는 그저 마지막 발악으로 페로몬 수치를 최대로 올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덕분에 뭔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모종의 작은 폭발이 있었고, 그 후에 그들은 나를 공격할 수 없게   같았다.
그리고 말하는 기색과 표정을 보아하니 나에게 단단히 빠진 모양이었다.
페로몬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 나를 죽이지 않을 거냐?”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죽일 수 없습니다.”

“왜?”

“어떤 일보다 당신의 명령이 가장 중요합니다. 향기 씨가 ‘움직이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우리는 그 명령에 따릅니다.”

그녀의 설명은 결코 논리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나에 대한 선망이 담긴 눈빛과 미소 그리고 붉은빛을 띤 얼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여기에 있는 전원이 나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심지어 여성도 아닌 남자까지 말이다.

“다들 일어나!!!”

나는 시험 삼아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있던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척은 어떻게 되었지?’

나를 죽이기 위해서 달려들던 그를 바라봤다.
그는 호의가 가득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나에게 총까지 발사하며 살기를 내뿜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모두 무장을 해제한다! 실시!”

나는 짐짓 위엄을 담아서 소리쳤다.
그러자 척을 포함한 병사들은 순순히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군장을 풀어헤치는 것이었다.
역시! 먹힌다.
나의 페로몬이 제대로 영향을 발휘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법 거리가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들까지 순순히  목소리에 따르고 있었다.
엄청난 일이었다.

‘동귀어진이라도 하려고 했던 건데. 기적이네. 기적이야!’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판사판으로 수치를 올렸던 것이다.
혹시 폭발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약간의 타격이라도 줄  있을지 모르니까!
그런데 내 몸은 폭발하기는커녕 또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나는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호의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는 어디지?”

“웨이크섬 근처입니다.”

웨이크섬?
미국 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던 걸까?
어쨌든 일본을 지나 태평양 깊숙이 온 모양이다.
잠깐 기절한 것 같은데 어떻게  거지?

“내가 그렇게 오래 자고 있었어?”

“아닙니다. 기절시키고 헬기로 데려왔죠. 길게 잡아도 8시간 정도였어요.”

아마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았겠지.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금속 재질로 이뤄진 텅 빈 곳이었다.
나는 주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내가 무엇에 타고 있는 거지?”

“저희의 작전 선박입니다. 겉으로는 화물선으로 위장하고 있죠. 기관총과 미사일, 헬기 이착륙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놈들 봐라?
자기들이 무슨 해적인가?
평범한 컨테이너선을 개조해서 전투나 작전에 이용하고 있다는 소리다.
국제법은 개나 주라는 건가?
어쨌든 나는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 있는 사람이 전부야? 더 있어?”

“네. 조타실과 기관실, 경계 병력이 조금 더 있습니다.”

“알았어. 일단 전부 데려와.”

나는 그렇게 지시하고는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척, 도대체  하자는 거야? 뭔데 모두를 모이라고 한 건데?”
“맞아. 근무지 이탈은 문제가 된다고.”
“이러다가 기습이라도 당하면 전멸이다.”

투덜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무리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대략 20명 남짓의 그들은 척의 통신을 듣고 모여든 것이었다.

“뭐야?! 새끼는?!!!”
“너 벌거벗고 뭘 하는 거냐!!”
“경계! 경계!”

나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이제  공간에 들어선 그들은 총을 겨누며 나를 경계했다.

‘멈춰라!!’

나는 재빨리 손을 뻗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자 그들은 몸을 떨면서 천천히 총부리를 내렸다.
그리고는 눈과 코에서는 맑은 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몇 명은 사타구니에서 민망한 액체를 뿜으며 몸을 떨어댔다.

“너희들도 무장 해제!”

곧 그들도 순한 양이 되었다.
그들은 내 말대로 군장을 벗고, 무기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 배에 있는 인원은 이게 전부지?”

“네.”

“좋아.”

나는 이마에 맺힌 진땀을 닦아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느 정도 안심해도 되겠지?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는 척에게 물었다.

“우리 가족은 무사하지?”

안전이 확보되니 가족들의 안위가 궁금했다.
그러자 척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하는 것이었다.
곰도 때려잡을 것처럼 생겨서 참 어울리지 않는다. 크~.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오로지 향기 씨였으니까요. 가족 모두를 노렸다면 귀찮게 ‘여행 상품권’을 준비하지도 않았겠죠.”

“잠깐, 뭐? 그러면  상품권도 네놈들이 꾸민 수작이었어?”

“네. 향기 씨의 가족들이 집을 비우게 만들기 위해서 저희 쪽에서 준비한 물건이었죠.”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응모권을 쓰면서 실수하실 분이 아니니 말이다.

“나를 붙잡은  보고했나?”

“네.”

“지금 ‘블랙 애로우’에서는 현재 상황을 알고 있나?”

“모를 겁니다. 모든  처리한 다음에 보고하기로 했거든요.”

그 처리라는 뜻은 나에게 정보를 캐내거나, 제거한 후의 일을 뜻하는 것이겠지.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입술을 핥았다.
어쨌든 지금 상황은 본사에서 모른다는 소리다.
이걸 이용해야 한다.

“좋아. 이제부터 명령을 내리겠다. 모두 주목!”

그렇게 나는 페로몬에 홀린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
일부는 내가 죽었다는 보고를 하게 했고, 다른 일부는 선박의 컴퓨터와 CCTV를 조작하게 시켰다.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본사의 데이터베이스에 침입해서 신지혜와 나의 정보를 조작하게 했다.

‘뭔가 신기한 감각이야. 평소라면 당황하면서 도망부터 쳤을 텐데.’

그랬다.
평소의 나였다면 당황하면서 허둥댔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파악하고 냉정하게 대처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불리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기까지 했다.

신지혜에게 약을 받아 페로몬의 힘을 얻은 후에는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쳤다.
그것이 페로몬을 이용해서 뜻하는 바를 쉽게 이루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장애가 사라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불안과답답함으로 점철된 나의 일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술 더 뜨는 상황이었다.
자신감을 넘어서는 ‘전능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꼬리를 밟힐 수가 있어.’

프랑스의 범죄학자 에드몽 로르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고.
이것은 비단 범죄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든 학문과 인간의 모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문구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기 마련이고, 어떤 비밀이라도 작은 실마리라도 있다면 세상에 드러나는 법이다.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하면서 더욱더 생각을 날카롭게 정리했다.
언제까지고 도망치거나 숨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악랄한 ‘블랙 애로우’다.
민간인 한 명을 붙잡기 위해서 그들이 들인 인력과 비용을 보라!
만약 그들이 나와 신지혜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시 추적에 나설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쓰레기 같은 회사. 그냥 무너뜨려 버려?’

나는 미간을 씰룩이면서 사악한 미소로 입가를 물들였다.
예전이라면 허황된 생각이라고 자신을 질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뭐든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피어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며 나에게 복종하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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