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66/110)



〈 66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가슴 정도는 만져도 된다고.”

나를 올라타고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어대던 카렌은 선심이라도 쓰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즈-억! 즈-억!]

그녀는 어느새  목에 손을 감고 눈을 감은 채 섹스를즐기고 있었다.
어찌나 신나게 허리를 놀렸는지 그녀와 내가 연결된 부위에 거품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교성을 질러댔고, 그런 우리를 지켜보는 병사들의 눈에는 흥분과 열기가 가득했다.

“어이, 아무래도 나도 발동이 걸린 모양이야.”
“우리도 위로해 달라고.”
“그런 놈의 자지로 만족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나름대로 직급도 높고, 카렌과 친분도 있는 듯한 남자들이 어정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참 흥을 내고 있을 때 불청객이 끼어들자 카렌은 미간을 찌푸렸다.

[깡-!]

“!!!”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던졌다.
그녀가 던진 칼은 접근하던 남자들의 발치에 날아가 박혔다.
바닥은 금속 재질이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던진 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박히는 것이었다.
대단한 힘과 기술이었다.

“발정 나서 까불지 말고 꺼져! 나중에 놀아줄 테니까.”

그녀의 으름장에 척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들었지? 괜히 까불다가 ‘거시기’가 잘리는 수가 있어. 다들 얌전히 구경이나 하라고.”

상황이 정리되자 카렌은 억지로 나의 턱을 잡아 돌렸다.
그리고 시선을 맞추면서 허리를 움직였다.

[찌-걱! 찌-꺽! 찌-꺽!]

“왜 그래? 너도 기분 좋잖아? 억지로 참지 않아도 된다고? 어차피 죽을 거면 즐기는 쪽이 이익 아니야?”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가 치료를 위해서 풀어준 손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직 남은 카드가 있거든!’

손목에 걸린 ‘페로몬 조절 장치’를 바라보며 틈을 노렸다.
분명 기회는 있을 것이다.

“아-아악! 좋아! 기분 좋아!”

[쯔-억! 쯔-억!]

그녀는 허리까지 꺾어대며 쾌감을 만끽했다.
나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척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카렌은 싫어하는 남자를 억지로 범하는 걸 좋아하거든. 네놈이 그럴수록 카렌을 더욱더 기쁘게만 하는 거라고? 게다가 적당히 상처까지 입어서 약해진 남자는 더욱더 취향이지. 너도 이제 포기하고 즐기는  어때?”

흥, 말도  되는 소리!
아무리 자지로 전해지는 쾌감이 짜릿하다고 해도 마음 편하게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대는 나를 납치한 사람이다.
게다가 내가 원하지도 않는 데 억지로 나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 감각에 모든 걸 맡기고 편해지라고?
그런 말을 순순히 들을 내가 아니다.

‘그것보다 보는눈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사방에서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뭔가 묘한 행동을 하면 바로 제재가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자연스러운 동작을 취하면서 틈을 만드는 수밖에.

‘미안해. 윤소야!’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양손을 카렌의 뒷머리 쪽으로 가져갔다.
이이서 그녀의 머리를 당기며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쪼-오오옥!]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뒷머리를 당기고, 혀까지 집어넣으며 격렬하고 끈적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래, 그거야! 잘한다!”
“좋아! 그래야 남자지!”
“좀 더 화끈하게 놀아보라고!”

나의 태도가 돌변하자 지켜보던 병사들은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흥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 실컷 좋아해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 계속 그녀의 혀를 빨아댔다.
 좋아하냐고?
사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인 손놀림으로 페로몬 조절 장치를 조작했던 것이다.

‘98%에 버티나 보자.’

무려 수치를 98까지 올렸다.
아무리 변태에 정신이 나간 여자라도 분명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어? 어? 이거 뭐야? 너 왜 이렇게 맛있어?”

그녀는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욱더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쩍! 북-쩍! 북-쩍!]
“아-아악!”
[쯔-억! 쯔-억! 쯔-억!]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찌-꺽! 찌-꺽! 찌-꺽!]
“보...보지가!”

그녀는 나에게 올라탄 상태로 점점 미쳐갔다.
더욱더 격렬하게 허리를 꺾어대며 나를 탐했다.
달라진 건 움직임과 반응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업신여기며 조롱하던 그녀의 눈빛에 다른 빛이 깃들었다.
나에대한 애정이 말이다.

“하-악! 하-악! 너...너무 좋아!”

그녀의 격렬한 반응에 다른 병사들은 군침을 삼키며 구경했다.
다만 척만이 이변을 느꼈는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 카렌. 진정해. 뭔가 이상하다고, 너.”

“시...신경 쓰지마!”

그녀는 척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나에게 열중했다.

‘그런 말 몇 마디가 먹힐  같아? 지금까지 나에게 벗어난 여자는 없었어!’

나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리며 계속 그녀의 몸을 자극하는 일에 열중했다.
더욱더 커다란 쾌락을 안겨주고 나의 포로로 만들어야 했다.

“저건 또 뭐야?”

나와 카렌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척은 손가락으로 내 손목을 가리켰다.
페로몬 조절 장치를 말이다.
망할! 설마?

“스마트워치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저걸 왜 회수하지 않았어?”

“평범한 시계로 보여서...”

“가져와. 빨리!”

아마도 ‘페로몬 조절 장치’를 회수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던 모양이다.
내 몸을 수색하던 병사가 실수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걸 여기서 뺏기면 낭패다.

“저리 꺼져! 안 꺼져?”

척에게 핀잔을 들은 병사가 카렌과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카렌은 손을 내저으며  병사를 밀어냈다.
게다가 다가왔던 병사도 페로몬에 영향을 받았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냥 다 끝나고 회수하죠?”

“뭐?”

“지금 카렌도 즐기고 있으니까...”

“멍청아! 저게 사람을 조종하는 물건이면 어떻게 할 거냐? 지금 카렌과 우리가 조종당하고 있는 거라면?”

“!!!”

나는 최대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카렌의 등에 양팔을 감으며 밀착했다.

‘이래서 눈치가 빠른 놈들은 싫다니까!’

이제는 카렌과 어벙한 병사가 최대한 나의 방패가 되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타-다다닥!]
“커-억?!”
[퍼-버벅!]
“꺄-악!!”

하지만 그런  바람을 하늘은 들어주지 않았다.
상황을 어느 정도 깨달은 척이 움직였다.
그는 얼른 다가와서 어벙한 병사에게 일격을 날려 기절시켰다.
그리고 단번에 카렌을 나에게서 떼어냈다.

“안 돼! 그 사람 건드리지 마! 그 사람은 안 돼!”

이미 나에게 빠져든 카렌은 발광하며 척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고 움직이는 카렌이 거구의 척에게 상대가  리가 없었다.
그는 카렌의 손길을 피해서 그녀를 가볍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쓰러진 그녀를 제압하며 소리쳤다.

“다들 경계해라! 저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어!”

척이 외치자 웃으며 시시덕거리던 병사들은 얼른 총기를 쥐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서 뿜어지는 페로몬의 영향인지, 아니면 조금 전까지의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기까지는 띠지 않았다.

“너 무슨 짓을  거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탕-!!!]

고막을 울리는 소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화끈한 통증이 다리에서 느껴졌다. 설마?

‘씨발! 아파!! 아파!!!!’

그렇다.
척이 내 다리에 총을 쏜 것이다.
예전에 사고를 당했던 오른쪽 다리에 큼직한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구멍으로 피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상처를 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통증과 공포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순순히 말해라. 지금  장치로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건가?”

“...아니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

척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총을 겨누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잡아떼며 모른 척했다.
여기서 사실을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 장치마저 뺏기면 모든  끝이다.

[탕-!!!!]

“!!!”

다시 화끈한 불길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왼쪽 어깨의 살이 파이며 다시 피를 흩뿌렸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뒤틀며 공포와 통증을 견뎠다.

“그래?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 지금 상황이 말해주고 있으니까. 카렌이 날뛰고, 병사들이 망설였어. 달리 설명이 필요해? 네놈이 뭔가를 한 거겠지. 안 그래?”

“...”

“그리고 내가 볼 때는 네놈 손목에 걸린 장치가 신지혜라는여자가 개발한 물건일거야. 안 그래?”

“...”

“어쨌든 조사해보면 되겠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너와 신지혜가 통화했던 기록도 있으니까. 찾는 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척은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주며 말했다.

“위험 요소는 제거하고 봐야지. 잘 가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쉽게 속아 넘어가던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척은 단번에 이상한 분위기를 깨닫고 손을 썼다.
그리고 능숙하게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제 끝인 걸까?’

그의 방아쇠가 천천히 뒤로 당겨지고 있었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그의 손가락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순간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주마등인가?
그렇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였다.
문득 신지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100% 이상으로 수치를 올리지 말 것. 몸이 견디지 못하고 폭발할 수도 있다.’

그래, 어차피 죽게  거 인생 뭐 있나?
갈  가더라도 폭탄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나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는 얼른 조절 장치의 수치를 최대로 올렸다.
이걸로 저승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해피 데스 투게더!!!

‘1000%?!’

있는 대로 잡아 돌리니 수치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갔다.
이 정도까지 가능한 건가?
나는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조절 장치를 조작하고는 척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미친! 죽어!”

그는 내가 묘한 움직임을 보이자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며 미끄러지던 그의 손가락은 상냥함을 잊고 거친 움직임을 보였다.
재빨리 방아쇠를 당기며 손을 움켜쥐는 것이었다.

[탕-!! 탕-!! 탕-!!]

나를 확실하게 끝장내기 위해서 그는 몇 발이고 총을 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최후를 준비했다.

[[파-아아아아아아앗!!]]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뭔가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이 없었다.
오직 느껴지는 것은 몸이 팽창하는 듯한 감각과 이상한 고양감이었다.
불쾌한 무력감이나 통증, 뒤틀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몸이 부풀어 오르며 뭔가 주변이 유난히 빛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뿐이었다.
이건 뭐지? 총알이 빗겨 나간 건가?

[[파-아아아아앗!]]

이상한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거냐?”

총을 발사한 척이 도리어 겁에 질려 있었다.
그는 주춤거리며 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반응을 보건대 나는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이상한 감각과 소음, 빛에 휩싸인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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